문화예술교육의 진정한 가치나 의미에 대하여 한번쯤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링컨센터의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맥신 그린 박사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하는 이른바 심미적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오랫동안 설명해왔는데요. 그녀는 이러한 교육이 학생들에게 사물을 적극적으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키워준다고 말합니다. 오늘은 그린 박사가 30년 동안 강의를 통해 말해온 예술 교육의 진정한 가치와 필요성을 담은 책, 『블루 기타 변주곡』을 소개합니다.

 

『블루 기타 변주곡』이라는 다소 생소한 제목과 표지는 혹시 음악 책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의 정체를 파악하기까지는 다소의 시간이 필요하다. 일단 제목에 대한 설명부터 하자면 이 책의 제목은 20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인 월리스 스티븐스의 시 <블루 기타를 지난 사람>(1937)에서 비롯된 것이며, 스티븐스는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늙은 기타리스트>(1903)에서 영감을 얻어서 시를 썼다. 책의 첫 출간이 2001년이니 피카소에서부터 맥신 그린에 이르기까지 100년에 걸친 영감 릴레이로 말미암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맥신 그린 박사(1917~ )는 컬럼비아 대학교 티처스 칼리지의 명예 교수로서 예술, 심미적 교육, 문학, 사회사상에 관한 꾸준한 연구를 지속하여 이 분야의 논문을 100편 이상 발표한 열정적인 철학자이자 교육자다. 그린 박사는 링컨센터 인스티튜트 상주 철학자로서 지난 30년 동안 매년 전 세계에서 온 교사들과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시행해왔다. 강의주제는 예술 작품을 통해 교사와 학생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하는 심미적 교육방법론이다. 강의록 24편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것이 바로 『블루 기타 변주곡』이다.

 

100세를 바라보는 그녀가 ‘블루 기타’라는 시적 단어를 내세우면서 심미적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그린 박사가 원하는 것은 이 시대 학생들에게서 볼 수 있는 희망을 잃은 눈동자, 감정이나 흥미, 호기심 없이 그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만 보는 눈동자를 다시 빛나는 것이다. 즉 획일적으로 평가되는 가치에 매진하는 눈동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주변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진단하며 반짝이는 눈동자로 변화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는 침체, 좌절, 무기력 같이 극복해야 할 끔찍한 수동적인 자세와 부주의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술이 우리가 맞닥뜨린 두려운 사회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현대 세상을 괴롭히는 악이나 잔인함을 직접적으로 상쇄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예술은 우리가 무엇을 보고 듣는지에 대한 대안의 감각을 제공합니다. 어떻게 참여하는지를 배움으로써 가능성의 의식을 고양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깨어난다면 그 자체가 변화의 시작입니다. – p. 97

 

따라서, 그린 박사가 역설하는 심미적 교육은 각 장르의 전문 예술가가 되기 위한 기술 훈련으로서의 예술 교육과는 차별화된다. 예술 작품을 보고 듣고 즐기는 예술 감상 교육과도 다르다. 심미적 교육이란 시와 소설 같은 문학 작품에서부터 회화, 음악, 무용, 뮤지컬, 연극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 작품을 대면하면서 집중하고 의심하고 질문하고 체험하는 적극적인 태도로 한 작품의 전체와 세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상상력’, 즉 블루 기타를 어떻게 연주하는가 하는 것이다.

 

더 많이 보기 위해 더 많이 듣기 위해 더 많이 느끼기 위해, 예술이 아니었다면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그러한 “널리 깨어있음”으로 존재하기 위해, 그래서 더 살아있기 위해 애쓰는 나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예술과 그러한 예술과의 대면이 인간의 삶에 주는 영향이라고 봅니다. 이것은 블루 기타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 p. 354

 

‘블루 기타’는 ‘상상력’에 대한 메타포로, 상상력은 사물이나 상황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하는 정신의 능력이다. 그리고 비정상적인 것에서 정상적인 것을 감지하게 하는 힘을 가리킨다. 상상력을 발휘하느냐 발휘하지 않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을 크게 좌우한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블루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지각하게 되며 이전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것을 듣고 느끼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지루한 일상을 넘어서는 무엇,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 가운데에서 오직 우리 자신만이 공예품, 훈련, 맛, 성취 기준을 스스로 체험할 때, 그리고 수월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지하게 될 때, 우리는 자기 발견이라는 놀라움으로 개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내게는 창의적인 정신이 의미하는 바이고, …… 취약한 인간 세상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더욱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의무입니다. – p. 355

 

서평을 마무리 하려는데 문득 조선의 22대 임금인 정조가 떠올랐다.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재미있는 일화 때문이다. 수원 화성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적과 싸우는 공간인 성을 왜 이토록 아름답게 짓느냐”며 신하들이 볼멘 소리를 한 모양이다. 이에 대해 정조는 “어리석은 신하들아 아름다움이 적을 이기느니라”고 답했다. 참으로 멋진 답변이다. 그렇지만 정조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열한 살의 나이에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죽었다. 그런 참사를 두 눈으로 목격하고도 그는 연산군과 같은 폭군의 길을 걷지 않았으며 개혁군주로 정치적 역량을 펼쳐갔다. 평생을 쫓아다녔던 팽팽한 왕권과 신권의 대립관계 속에서 자신의 뜻을 펼쳐나갈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아름다움이 적을 이기는 원리”였다. 그는 평생 미술을 사랑했고, 문인화가로서 작품을 남겼다. 또한 김홍도를 필두로 하는 당대의 화단을 이끌어 풍속화, 인물화와 같은 새로운 화풍을 열어가도록 했다.

 

“충격을 받아들이는 수용력이 나를 작가로 만들었으며 충격은 즉시 그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나의 욕망으로 이어졌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고백처럼, 정조도 예술을 통해 자신의 고통을 승화시켰으며, 개개인에 대한 복수로 돌리지 않고 문제의 근원을 밝혀 올바른 정치로 나아가고자 했다. 맥신 그린 박사가 역설하는 심미적 교육의 열매는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조정미 시인, 출판인

글쓴이_ 조정미 (시인, 출판인)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언론대학원에서 문학과 출판을 전공했다. 1993년부터 PC통신을 시작하였으며 지금도 SNS와 블로그를 통해 수많은 이들과 소통한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인간 커뮤니케이션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다른 코드를 가진 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메타포가 필요하며, 이전 세대와 대화하기 위해 책을 읽고 다음 세대와 대화하기 위해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