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어귀마다 하나씩은 자리 잡은 슈퍼는 오며가며 누구나 들를 수 있는 편한 공간입니다. 반면에 문화예술 공간이라고 하면 소시민들의 일상생활과 다소 거리가 있는, 예술가들만의 전용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죠. 그런데 수원시 행궁동에는 동네 주민, 지나가는 여행객 모두 가벼운 마음으로 들를 수 있는 문화 공간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행궁동 문화슈퍼에요. 지금부터 행궁동 문화슈퍼의 이야기를 시작할까요?
세계문화유산 ‘화성’ 안에 있는 동네인 행궁동. 도심 한 가운데 낮은 지붕, 골목길들이 남아있어 방문객들에게 갈수록 인기가 높아지는 곳입니다. 행궁동은 다른 동네에 비해 문화 예술적 자원이 풍부한 편이지만, 그 속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은 오히려 적습니다.
이런 여건을 아쉽게 생각하던 지역 문화예술가들과 지역 행정가들이 지역주민들이 문화예술을 매개로 만나고 활동하는 ‘지역주민’들의 마을문화공간을 만들자는 뜻에서 철거될 주택 한 채를 마을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하여 문을 연 곳이 바로 행궁동 문화슈퍼입니다.
이 공간은 ‘생태교통수원2013조직위원회’로부터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일상생활창작공방, 마을문화교실로서 문화슈퍼는 어떤 곳일까요? 문화슈퍼의 기획부터 운영까지 참여하고 있는 노영란 씨를 통해 들어보겠습니다.
우리 생활 가까이 있는 종합문화예술 공간- 행궁동 문화슈퍼
“이곳 행궁동에서 슈퍼마켓은 동네 사랑방이기도 합니다. 주민들 곁에 가까이 있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다양한 문화예술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란 의미에서 행궁동 문화슈퍼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행궁동 문화슈퍼의 기획 단계부터 운영까지 참여하고 있는 노영란님은 우리의 일상을 즐겁고 보다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공간이란 점에서 ‘문화 super’라는 이름을 명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술가와 동네 주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 슈퍼
독특한 이름으로 호기심을 자아내는 문화슈퍼는 주민들의 문화예술 요구와 혜택이 판매됩니다. 동네에서 오가며 만나는 주민들로부터 듣는 의견을 최우선으로 하여 사업을 기획한다고 합니다. 또한 일상에서 필요한 것들을 손수 만들어보고, 버려지는 물건들을 재활용함으로써 덜 소비적으로 우리의 생활습관을 만드는 프로그램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또한 주민들이 스스로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재능 있거나 열정 있는 동네주민들을 만나는 일에도 행궁동 문화슈퍼 운영진이 빼놓지 않고 하는 주요 업무랍니다.
더 알차게 슈퍼를 운영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프로그램 기획운영자들 간의 운영회의를 하고 있는데, 이 회의에서 각 프로그램 활동에 대해 서로 공유하며, 보다 많은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사업 등에 대해 논의됩니다.
재능나눔으로 즐겁게 가르치고, 누구나 배우는 즐거운 문화슈퍼의 강좌
문화슈퍼에서는 주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 강좌를 개설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상생활창작 강좌에는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이 함께하고 있으며, 재주 있는 주민들께서도 문화강좌를 스스로 마련하여 재능 나눔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수원 전통시장인 못골 시장에서 지역주민, 상인들과 함께 4년째 생활창작공방프로그램을 기획했던 송은지 작가가 마을창작공방을 운영하고 있으며, 동네청년인 박호철씨가 매주 일요일마다 ‘수원을 기록하는 사진가회’ 사진 작가분들과 함께 동네 골목길 풍경 및 주민 사진들을 찍는 ‘움직이는 사진관’을 맡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민들이 스스로 재능 나눔으로 통기타교실, 클래식기타교실을 열었고, 동네사람들과 함께 영화 보는 금요영화관도 개설했어요. 생태교통수원2013사업에서 주민들의 일상을 다큐멘터리로 작업하고 있는 류승진 감독도 지역주민들과 함께 ‘다큐영화교실’소모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슈퍼 맞는데, 왜 안 팔아요?
슈퍼라는 이름 때문에 간혹 운영진을 당황시키는 일도 있다고 합니다.
“ 슈퍼라니까 가끔 늦은 시간 술을 사러 오는 분들이 있어요. 얼마 전에도 한밤중에 동네 아저씨가 들어오시더니 소주 한 병 달라고 하셨어요. 또 한낮에 휴지를 사러 온 분도 있었답니다.”
하지만 이젠 주민들에게 행궁동 문화 슈퍼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인식이 확산되어, 단골손님도 생겼답니다.
“행궁동 문화슈퍼가 문을 연 지 얼마 안 돼 동네 어린 친구 2명이 찾아왔어요. 슈퍼 옆에 올해로 117년 된 신풍초등학교가 있는데, 학교 마치고 들른 거예요. 며칠 뒤에는 동네 친구들 세 명과 함께 오더니, 매일매일 참새 방앗간 들리는 것처럼 오고 있어요. 풍금도 치고, 스케치북에 그림도 그리고, 기타도 만져보고, 20분 정도 슈퍼에서 놀다 갑니다. 목공예교실에서 나오는 자투리나무토막에 아이들과 색칠하고, 자기만의 그림방명록을 만들어 한쪽 벽면에 붙였어요. 자기가 만든 방명록을 보며 아이들이 참 좋아하더라구요.”
이런 단골손님들은 밤늦은 운영회의나, 프로젝트 준비의 어려움을 잊게 하는 에너지가 됩니다.
일상 속의 소소한 행복을 주는 문화슈퍼
“주민들께서 이런 공간이 생겨 정말 좋다고 말할 때 보람되고 행복해요. 50대 중반의 한 분은 그동안 사느라 바빠 자신을 위해 한 번도 투자한 적이 없었는데, 동네 안에서 친구도 사귀고 좋아하는 것도 만드니 요즘은 매일매일 행복하다면서 눈시울을 붉히더라구요. 얼마 전 시작한 목공예교실에는 40대 아주머니가 찾아왔어요. 아이가 장애가 있어서 어디를 가든 꼭 함께 다니고 있어요. 개학해서 아이가 학교에 가는 시간 짬을 내 슈퍼에 오셨어요. 무엇보다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게 행복하다고 하셨어요. 늘 똑같은 일상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다른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고, 삶이 좀 더 행복해지는 것, 그것이 행궁동 문화슈퍼가 있는 이유예요.”
주민들의 참여와 관심이 활발해지면서 재능기부를 하는 사례도 생겼답니다.
“지난 5월 중순쯤 클래식기타교실을 만들고 싶다면 동네 젊은 주민이 찾아왔어요. 직장생활 하느라 바쁘긴 한데, 일주일에 한 번 동네주민들에게 클래식 기타를 가르쳐주고 싶다고요. 올 겨울 송년회파티에서는 아마도 클래식기타반의 멋진 연주를 들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재능 있는 주민이 찾아오셔서 직접 문화교실을 만들고 운영해 주니 정말 고마웠습니다.”
주민이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놀고 즐기며 소통하는 진정한 사랑방
같은 동네에 살면서 서로 몰랐던 주민들이 행궁동 문화슈퍼를 통해 만나게 되고,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주민들 간의 인적네트워크가 확장되고 있는 것이 문화슈퍼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합니다. 특히 최근 생태교통수원2013페스티벌로 동네가 많이 변화되면서, 이곳 행궁동 문화슈퍼에 모인 주민들 사이에서 동네의 비전에 대해 함께 이야기도 나눈다고 합니다. 바로 행궁동 문화슈퍼를 중심으로 산업화로 잃어버린 마을 공동체가 도시문화공동체로 재탄생하고 있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지역주민의 마을 문화 공간으로 지속되길
행궁동 문화슈퍼가 한시적인 프로젝트로 시작됐으나 지역주민들이 마을문화공간으로 지속하기를 바라고 있는 운영진은 앞으로 동네 아이들을 위한 영화만들기 프로젝트인 ‘나만의 5컷 영화 만들기’강좌를 비롯하여 남녀노소 행궁동의 주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동네 가게처럼 편안하게 올 수 있고,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곳. 일상이 좀 더 생기 있고, 행복해지는 곳이 되고 싶은 행궁동 문화슈퍼. 골목길 한구석에 있는 슈퍼처럼 누구나 편하게 문화예술을 배울 수 있는 행궁동 문화슈퍼와 같은 공간이 동네 골목마다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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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따듯해지는 소식입니다^^
좋은 글이네요
요즘같은 시대에 도심에선 같은아파트에살면서 단 옆집까지도 제대로 인사하지못하는데 저렇게 동네분들과 마주하여 오손도손 얘기를나누며 문화생활을 즐길수있다니 마음한켠이 따듯해지는 소식이네요~
행궁동문화수퍼가 동네마다 있는 주민센터, 문화센터 등과 구별되는 분명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누구나’와서 쉬고가라, 놀고 가라.. 라고 하는 공간은 이전부터 항상 있어 왔지만, 실제로 주민들이 기꺼이 찾아와서 참여할 수 있지는 않았지요. 특정 기관에서 만든 ‘관공서’의 분위기가 강해서였을까요? 행궁동문화수퍼를 직접 보지는 않았았지만, ‘수퍼’라는 이름에서부터 문턱을 낮추었음을 알 수 있네요. 부디 주민들의 편안하고 자발적인 문화공간으로 오래오래 사랑받기를 기원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최근 미국 워싱턴 디씨에 위치한 non-profit 기관인 Sitar Arts Center (www.sitarartscenter.org)와 DC Youth Orchestra Program 에서 인턴으로서 약 1년 6개월간 프로그램을 경험한 백은별입니다. 문화슈퍼의 취지와 운영적 측면이 특히 시타 아트 센터와 많이 닮은 것 같아, 그와 관련해 궁금한 점이 많습니다. 문화센터의 운영 비용은 어떻게 조달되는 건지, 문화 수업 프로그램은 무료로 진행되는 것 인지, 참여하는 교사들은 자원봉사로 급여를 받지 않고 일을 하는 것 인지 등의 여부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혹시 이와 관련해 추가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요? 더 나아가 이러한 문화 프로그램들이 미국의 non-profit 시스템처럼 운영되고 있는 것인지, 혹 그러한 사례가 있다면 관련 기관을 알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행궁동 문화슈퍼에 많은 관심이 있으시군요~! 번거로우시더라도 arte365@arte.or.kr 로 질문을 보내주시면 메일로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