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변화를 추구하는 삶’으로 살아온 나는 늘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고, 가만히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러다 보니 내 삶에는 늘 변화에 대한 기대감과 동시에 두려움이 함께 한다. 변화를 원한다는 것은, 지금 이 모습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다. 좁은 방을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 숨겨진 재능을 마음껏 펼쳐보고 싶은 뜨거운 욕구가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또한, 변화는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게 하고, ‘왜 그때 시도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약속도 오래되다 보면 변화의 기대보다 안정감을 원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다양한 주제에 관심이 많았고 여러 형태의 작업을 해왔다. 그것을 미술에 국한된 작업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미대를 졸업했기 때문에) 기술을 배우는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아는 것을 남에게 가르쳐주는 일일 수도 있다. 새로운 것을 계속 알아 가는 그러한 삶이 나에게는 작업의 일부였다. 그러나 내 삶의 영역은 적당히 안전한(안락한) 삶을 원하는 어떠한 테두리에 있는 것이 사실이고 그것이 삶의 결과적인 목표(목적)라는 것은 부인하고 싶지 않다. 특별히 ‘안전한 삶’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유는 세상이 복잡해지고 안전하지 않은 삶의 이야기가 많이 들려오기 때문일 것이다.
동시대의 안전한 삶이란 무엇일까
2016년, 필리핀 타클로반에 갔던 경험은 마치 꿈같은 기억이 되었다. 2013년, 거대한 태풍 하이옌이 모든 것을 휩쓸고 간 곳이었다. 도시 전체가 재난의 상처로 가득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폐허 속에서, 부서진 장난감 조각을 만지작거리는 아이들을 보았다. 내가 예술가로서 거창한 기념비를 세우는 것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고민했다. 그래서 몇몇 작가(강제욱·신기운·임도원·하석준)들과 함께 3D 프린터를 가져가 아이들의 부서진 장난감을 하나하나 고쳐주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수리’가 아니었다. 기술을 이용해 아이들의 부서진 일상과 마음을 조심스럽게 꿰매는 과정이었다. 나중에는 아이들에게 직접 3D 프린팅 기술을 가르쳐주었는데, 스스로 무언가를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아이들의 눈빛이 빛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두 번의 기회로 필리핀을 다녀왔다. 그것이 마지막이다. 꿈이었을까? 그러나 태풍은 매년 발생하고 커지고 있다. 2025년 11월, 필리핀에 태풍이 와서 120만 명이 대피했다. 기후 변화로 인해 태풍의 위력이 더 세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재난 취약 지역의 빈곤층은 더욱더 삶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기후 재난이라는 거대 담론보다 작은 상실감이 마음에 꽂혔다. 2016년의 경험을 통해, 예술이 단지 보여주는 것을 넘어, 누군가의 삶에 구체적으로 개입하고 작은 희망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어렴풋이 깨닫고, 기술이 가장 연약한 곳에서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사실 나는 어떤 것도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상실감이었다.
어쨌든 타클로반에서의 경험은 내 작업에 계속 영향을 미쳤다. 재난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난이 벌어지는 ‘원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 ‘대안’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기후 위기’라는 무거운 주제를 어떻게 하면 절망이 아닌 희망의 언어로 풀어낼 수 있을지 생각했다. 2021년 벨기에 브뤼셀 뮤스광장에 설치한 <수행자 5(The performer No.5)> 작업은 친환경(적)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태양광을 이용해 스스로 빛을 내는 조각상을 만들었다. ‘친환경’이나 ‘지속가능성’이 사람들에게 ‘불편함’이나 ‘의무감’으로만 다가가지 않기를 바랐고, 코로나로 힘든 사람들을 위해 자연의 에너지를 받아들여 밤의 어둠을 아름다운 빛으로 바꾸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설치 중간중간 휴식을 위해 근처 도시를 걸어 다녔는데, 백신주사를 맞은 증명서가 없이는 쉽게 도심 여행을 못 하는 시기였다. (한국에서 맞은 백신은 인정되지 않았다.) 어딜 가도 안전함을 느끼기 어려운 시기였기에 그때의 작업을 꽤 긴장하며 했던 기억이 크게 남았다.
변화의 소용돌이
2016년의 타클로반과 2021년의 브뤼셀은 내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당신의 기술과 당신의 예술로 무엇을 할 것인가?’ 타클로반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은 예전의 질문보다 지속 가능한 안전한 삶에 대한 의문과 ‘가능할까’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2018년에 참여한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전체 주제는 ‘좋은 삶’이었는데 지금은 ‘안전한 삶’이 더 적합한 주제 같다. ‘안전한 삶’이 우리 삶의 주제가 될 수 있을까? 기후 변화, 기술의 변화, 권력의 변화, 옳음의 변화 등 각종 변화로부터 우리의 향후 10년은 ‘안전한 삶’이 가능할까? 왜 우리는 안전하지 못할 것인가?
이러한 다양한 질문은 창작의 고민이라기보다 삶의 고민으로 다가오는데 이번에는 좀 쉽지 않은 10년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변화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확장현실(XR) 공연 작업으로 XR 판소리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를 시작하면서 이러한 변화의 현실을 가상으로 옮기고 음악적 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관객과 만나고 있다. XR 공연은 XR의 특성으로 가상과 현실을 오갈 수 있는 자유도가 있다. 가상과 현실을 오가는 시점에서는 색다른 경험을 만들 수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안전한 삶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기후 변화가 주는 엄청난 파괴력부터, AI를 통해 참기름 짜듯이 억지로 만들고 있는 문화 기술적 파괴력까지의 모든 변화가 작품의 주제가 될 수 있다. 네 발도 좋고 두 발은 더 좋을 수 있는 동시대의 다양한 변화는 가끔 무섭기도 하지만 자연의 변화 앞에서의 안전함은 의미가 없다. 변화의 시대에 안전함은 무슨 의미일까? 가상공간에서 만나보길 기대한다.

- 하석준
- 2015년 월간 [퍼블릭아트] ‘뉴히어로’ 대상 수상을 시작으로, 경기창작센터, 국립현대미술관 고양 창작 레지던시에 참여했다. 2018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21 브뤼셀 브라이트 페스티벌, 최근 KOFICE 지원으로 튀르키예에서 몰입형 VR 작품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예술&기술기반 시각·다원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이머시브 뮤직 창제작 회사인 ‘아키버스 스튜디오’의 대표 디렉터로, XR 기반 작품을 통한 글로벌 진출을 모색하며 이머시브 공연 및 LBE VR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www.archiverse.kr - 사진제공_하석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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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담론보다 작은 위로와 안심을 구하는
오늘부터 그린㊶ 안전한 삶은 가능할까
공감이 가네요
거대한 담론보다 작은 위로와 안심을 구하는
오늘부터 그린㊶ 안전한 삶은 가능할까
기대만점입니다
안전한 삶, 안정된 삶, 안심되는 삶, 안녕을 위하는 삶, 안식이 되는 삶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을 추구합니다. 저의 교육방향도 그렇습니다. 좋은 스토리 감사합니다
변화를 좇는 내 삶이 결국 가장 연약한 곳에서 희망을 다시 만들어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어져 있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