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닮은 두 세계는 춤이 되고, 말이 되고

모두의 예술교육④ 탈춤과 수어의 맞장구

천하제일탈공작소(이하 천탈)는 2020년부터 장애와 접근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무장애 공연을 꾸준히 시도해왔다. 무장애 공연을 만들 때는 장면이 완성될 즈음 수어 통역사, 문자 통역사, 음성해설가가 함께 후반 작업에 들어간다. 연습실에서는 각자의 역할에 집중하느라 미처 보지 못했는데, 공연장에 들어서자 창작진 모두의 언어와 감각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협업의 순간이 펼쳐졌다. 예술을 통해 자연스럽게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질문과 답을 찾아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천탈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러한 감각을 이어가며, 과거 탈춤 속 장애 캐릭터의 의미와 사회적 인식을 함께 탐구했고, 이를 오늘의 감수성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을 해나가며 무장애 공연의 경험을 넘어 새로운 접근 방식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 2023년 3월, 천탈은 농인 대안교육기관인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이하 소보사)을 만나게 되었다.
<춤이되고 말이되고>(2024)
“수어를 배워본 적 없는데”
천탈의 탈꾼과 PD를 포함해 10명, 그리고 소보사에서 청인 교사 1명과 농인 교사 2명이 처음으로 마주했다. 먼저 소보사에서 총 5회에 걸쳐 농문화와 농정체성을 바로 알고, 수어를 배우는 수어 워크숍을 진행했다. 첫 번째 워크숍에서 농문화와 수어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었다. 그동안 알고 있었던 지식이 대부분 잘못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어릴 적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노래에 맞췄던 수어가 사실 ‘수지 한국어’였다는 점이다. 수어는 크게 한국 수어와 수지 한국어가 있다. 한국 수어는 농인이 제1 언어이고, 수지 한국어는 수어의 표현을 사용하지만 한국어 문법과 동일하다는 차이가 있다. 우리는 그 차이를 몰랐다. 노래에 맞춰 수어를 한다는 것은 결국 수어의 공간성과 리듬, 비수지 신호(표정, 머리의 움직임, 시선, 입 모양, 몸의 움직임 등-편집자 주)가 사라지는 일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그래서 수어 본연의 리듬과 문법이 약화 되어 농인이 그 언어를 알아볼 수 없다는 것도.
첫 워크숍 이후 ‘이제 제대로 된 한국 수어를 배우고 알아갈 수 있다’라는 설렘을 안고, 연습실에 도착했다. 그러나 큰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 워크숍에서는 수어 통역사 없이 농인 교사와 워크숍이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어 통역사가 오더라도 음성언어나 글 없이 수어로만 소통하는 규칙이 생긴 것이다. 청천벽력이었다. 수어를 배워본 적 없는데 어떡하나? 흐르는 정적… 눈을 멀뚱멀뚱, 몸은 내 몸이 아닌 듯 뚝딱거렸다. 다행히 워크숍은 따라갈 수 있는 수준으로 진행되었다. 도형, 여러 그림과 그림책, 전래동화 이야기를 수어로 보여주면 자세히 보고, 수어로 천천히 말하는 연습을 반복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손 모양을 쫓아 좁게 보고 있었던 시야가 점차 넓어져 상대의 눈을 바라보고, 표정(비수지 신호)을 읽고, 몸짓과 리듬을 따라가게 되었다. 만약 음성언어와 함께 수어를 배우려 했다면 소리에 이끌려 전체를 보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워크숍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배워간 것이 있었다. 각자 ‘얼굴 이름’이 있다는 것과 상대를 부를 때는 어깨를 톡톡 두드리면 된다는 것, 수어는 마임이 아닌 ‘언어’라는 것, 그리고 이야기 나눌 때는 서로의 얼굴이 잘 보이도록 원을 만들어 앉는 것도 농문화의 방식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서로의 차이와 다름을 발견하고 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함께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농인은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 잘 보고 수어로 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탈춤과 수어 워크숍
장단과 음악 없이도 흥이 넘치는 춤판
강렬했던 수어 워크숍을 시작으로, 천탈과 소보사는 탈춤과 수어를 배우는 <탈춤과 수어의 맞장구> 예술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탈춤과 수어를 기반으로 창작한 <춤이 되고 말이 되고> 공연 제작까지 이어지며 긴 호흡으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은 시간이 쌓여 서로 장난치고 농담도 주고받을 만큼 가까워졌지만, 처음 농인에게 탈춤을 나눌 때는 고민이 많았다. 장단을 어떻게 알려줄지, 여럿이 춤출 때 박자를 어떻게 맞출지, 탈을 써야 할지, 벗어야 할지? 그 고민을 돌이켜보면 철저히 청인의 기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막상 탈춤 수업이 시작되자 농인 청소년들과 교사들은 처음 해보는 몸짓이 조금 어색하면서도 각자의 리듬으로 춤을 만나고 있었다. 특히나 탈춤 수업을 몇 차례 이어가며 깨달은 건, 탈춤에서 장단과 음악은 중요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장단과 음악 없이도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장단을 만들고, 덩실거리는 것으로 아주 조용하지만, 신명 나고, 흥이 넘치는 춤판을 함께 만들고 있었다.
탈꾼은 농인에게 수어를 배우고, 농인은 탈꾼에게 탈춤을 배우며 두 언어가 점차 하나로 스며들고 있었다. 물론 처음엔 상체는 수어, 하체는 탈춤처럼 명확하게 반이 나누어진 형태였지만 농인의 문학 형식인 ‘시각적 구어’(Visual Vernacular, 이하 VV)를 접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VV는 반복과 운율, 시각적 이미지의 변주를 통해 언어를 넘어서는 서사적 확장을 보여주는 농인의 예술 형식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단순한 결합이 아닌, 수어의 시각적 리듬과 탈춤의 동작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예술의 감각을 체득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이런 말을 나눴다. “능숙한 수어는 춤처럼 보이고, 잘 추는 춤은 마치 언어처럼 보인다.” 이는 단순한 결합이 아니라 수어의 고유한 특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탈춤과 만나는 확장된 새로운 표현, 그것이 바로 탈춤과 수어의 ‘맞장구’의 진정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찾은 움직임과 이야기로 수어 통역이 없이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들게 되었다.
<탈춤과 수어의 맞장구> 공유회(2025)
일상에 스며든 탈춤과 수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청인과 농인이 만나 서로를 알아가고,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언젠가 소보사에서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농인들은 불빛만 있으면 엄청난 수다가 시작된다” 그때 문득 떠올랐다. 과거 탈춤도 모닥불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둘러앉아 춤판을 벌이던 예술이었다는 것 말이다. 이 두 세계가 닮아있는 듯하다.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일은 결국 자주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상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올해 천탈X소보사의 <탈춤과 수어의 맞장구> 프로젝트를 시민과 함께 나누었다. 소보사의 농인 청소년들은 이제 탈꾼보다 먼저 청인에게 춤을 알려주고, 장면을 만들 때 아이디어를 쏟아낸다. 그리고 탈꾼들은 자연스럽게 수어로 인사를 나누는 것이 편해졌음을 체감한다. 그렇게 쌓인 시간 속에서 서로의 언어가 닮아가고 있다. 탈춤과 수어, 단순한 기술의 습득이 아니라 서로의 문화와 세계를 배우며 성장한 시간이 준 선물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정체성’이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누구인지 찾지 못해 흔들리지만, 농인들은 수어를 통해 자신을 인식하고, 농인답게 살아가는 농정체성을 확립한다. 그 당당함은 나에게도 큰 울림이었다. 소보사와의 만남을 통해 농문화와 수어를 배우며, 나 역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예술가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 글만으로 온전히 다 알 수는 없지만, 글을 읽고 난 뒤 또 다른 물음표를 던지고, 언젠가 느낌표로 바뀌는 순간으로 만들어지길 꿈꿔본다.
<춤이되고 말이되고>(2024)
장해솔·이정동·김시은
장해솔·이정동·김시은
천하제일탈공작소 동인. 탈춤과의 인연으로 천하제일탈공작소에서 만나 <추는 사람> <탈 너머의 천탈> <춤이되고 말이되고> <탈춤과 수어의 맞장구> 등의 작품과 교육프로그램을 함께 준비하고 공연했다. 탈춤을 추는 것이 좋아하고, 사람들과 함께 추는 것을 더 좋아한다.
사진제공_천하제일탈공작소 @greatest_masque
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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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창규 2025년 10월 22일 at 12:47 AM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져 춤과 수어를 공유하고 하나로 어우러지는 과정 인상깊게 보았습니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창의성을 나누며, 공동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상호작용을 통해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새로운 감각을 함께 일깨우는데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진정한 예술교육의 가치가 무엇인지 천하제일탈공작소가 잘보여주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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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10월 23일 at 11:07 AM

    다른 듯 닮은 두 세계는 춤이 되고, 말이 되고
    모두의 예술교육④ 탈춤과 수어의 맞장구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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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10월 23일 at 12:40 PM

    다른 듯 닮은 두 세계는 춤이 되고, 말이 되고
    모두의 예술교육④ 탈춤과 수어의 맞장구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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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창규 2025년 10월 22일 at 12:47 AM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져 춤과 수어를 공유하고 하나로 어우러지는 과정 인상깊게 보았습니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창의성을 나누며, 공동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상호작용을 통해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새로운 감각을 함께 일깨우는데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진정한 예술교육의 가치가 무엇인지 천하제일탈공작소가 잘보여주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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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10월 23일 at 11:07 AM

    다른 듯 닮은 두 세계는 춤이 되고, 말이 되고
    모두의 예술교육④ 탈춤과 수어의 맞장구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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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10월 23일 at 12:40 PM

    다른 듯 닮은 두 세계는 춤이 되고, 말이 되고
    모두의 예술교육④ 탈춤과 수어의 맞장구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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