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고 느슨한 연결, 함께 펼치는 꿈

‘문화기획협동조합 별책부록’이 만드는 사회적 상상력

경기도 원당의 오래된 주택가에 노란 벽화가 그려져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꽤 넓고 따뜻하고 유쾌한 공간이 나온다. 18년간 사립 어린이 작은도서관 ‘책놀이터’가 있었고, 2018년부터 ‘상상공간 별-짓-’이라는 이름으로 문화기획협동조합 별책부록(이하 별책부록)이 운영하는 곳이다. 기획자 박미숙이 마련하여 운영하고, 여러 사람의 힘이 모여 20년 넘게 한 공간을 꾸리고 있다. 다양한 ‘별짓’이 지어지는 곳, ‘별책부록’의 이야기가 끝이 없다.
함께 애쓰는 사람들의 힘
재일조선학교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이 협동조합을 꾸렸다. 음악가, 사진가, 그래픽디자이너, 공예가, 도서관 관장, 연구자 6명이 “나이 들어서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서로를 돕자”라는 즉흥적이고, 낭만적인, 하지만 끝내 실행하고야 마는 행동력으로 포문을 열었다. 그래서 이름도 ‘별책부록’이다. “너는 문화기획자야. 기획 공부를 해”라는 동료의 말에 책놀이터 박미숙 관장(현 별책부록 기획이사)은 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도서관보다 확장된 개념의 다양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과감히 어린이 작은도서관을 정리했다. 때마침, 고양시에서 만든 공립도서관으로 책놀이터 프로그램과 사서가 옮겨가서 가능했다. 대신 경기문화재단 창생공간으로 지원을 받아 어른들의 활동 공간으로 변신했다.
공간은 ‘까망이’라는 책놀이터 그림자 자원봉사단 10명과 2016년부터 함께한 ‘수작부리다’라는 생활문화활동 그룹 10명의 요구를 모두 반영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서너 번의 토론, 두 번의 워크숍, 한 번의 강의에 참여하며 의견을 모아갔다. 그 결과 폴딩형 가변 기능을 활용한 공연장, 대기실, 개인 작업실, 가변형 전시 공간, 햇빛이 드는 오븐을 갖춘 주방, 발표와 온라인 방송을 위한 시설, 따뜻한 물이 나오는 화장실, 여러 명이 함께 재봉틀로 작업하고,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는 공간, 메이커 공간으로 재구성되었다.
사람들과 일상을 함께 하려면 공간이 있어야 하고, 일상을 만드는 힘은 공간에서 나온다. 공간을 운영하기 위해서 돈을 벌어 월세를 내고, 후원도 받는다.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좋아해서’ 어려움이 있을 때는 발 벗고 나서서 돕는다. 돈이 생기면 주기도 하고, 바자회도 한다. 후원 행사는 ‘밀린 도시가스비를 벌기 위한 바자회’ ‘장판을 바꾸기 위한 돼지 저금통 나누기’ 등 구체적인 제목으로 진행한다. 동네 아이들이 저금통에 모은 돈을 가져오기까지 다양한 동네 사람들이 이 공간에 대한 감각이 생기는 효과도 있다. 이렇듯 공간을 매개로 다양한 활동을 경험한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힘을 보탠다. 20년 넘게 한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건, 같은 건물에 사는 좋은 주인 할머니 덕분이기도 하다. 모두 사람의 힘이다. 협동조합원은 처음 6명을 유지하며 더 늘리지 않는다. 대신 준조합원 제도를 통해 활동비를 내는 이들이 있고, 별책부록은 그들의 활동을 지원한다. 한쪽에 마련된 아트 상품을 판매하는 가게는 준조합원을 중심으로 지역의 공예가들이 참여할 수 있다.
  • 상상공간 별-짓- 교육방
느슨한 연결 속 서로 배우며 나를 바꾸는
‘수작부리다’라는 생활문화 활동을 통해서 ‘개인’을 발견했다. ‘수작부리다’는 동아리도 아니고, 아주 느슨한 연결이 지속되는 형태로 10년을 함께 하고 있다. 각자가 잘하거나, 재미있어하는 걸 다른 사람을 향해 펼치는 작업을 한다. 최근에는 한 번도 자신의 것을 드러내지 않은 사람들 중심 활동을 하고 있다. 각자의 이름을 따서 ‘정희식당’, ‘미숙한 양조장’, ‘희석 고추장’ 같은 프로그램을 한다. 자신의 것을 내어줄 때 많은 절차와 과정, 촘촘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아가고, 한 명 한 명이 드러나는 경험의 중요성을 알아가고 있다.
그렇게 별책부록과 함께하는 많은 사람은 ‘느슨하고 안전한 공동체’에서 ‘내가 존재하고 싶은 방식’으로 존재하는 시간을 서로 돕는다. 여기서 ‘돕는다’는 말은, ‘성공’하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해봐! 괜찮아!”라며 서로의 시도를 응원하고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사람, 그 자체가 하나의 플랫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인이 하나의 매개체가 되어서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 개인이 하고 있고, 가장 소중한 것을 꺼내놓음으로써 자기 삶이 바뀌는 과정을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 공간, 기관, 조직이 아니어도 된다. 최근에는 ‘실험하는 도서관 별짓’을 시작했다. 4명의 사서가 월, 수, 목, 금 관장이 되어 ‘쓰는’ ‘읽는’ ‘만드는’ ‘연결하는’ 도서관을 연다. 개인들이 하나의 콘셉트를 가진 도서관이 되는 것이다.
작은도서관에서 만난 아이들을 통해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고, 그 과정을 즐겨야 변화하는 개인이 탄생한다는 걸 배웠다. 어떤 활동의 과정에서 자기 생각과 의미를 넣는 것이 변화의 핵심이며, 어떤 고민을 하는지 들여다보고, 자기 것을 구현하도록 서로를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나를 바꾸는 것이 제일 어렵다. 세상보다 내가 바뀌는 것이 힘들고, 내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 단 한 명의 지도자가 아니라 서로에게 배우는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바꿀 기회가 생긴다. 내가 바뀌면 다른 사람도 바뀌고, 세상도 바뀐다. 문화다양성 그림책 목록을 만드는 ‘환타(환상적인 타인)’ 역시 그렇게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4명이 시작했는데, 지금은 9명이 만들고 있다. 사람이 많아질수록 어렵다. 다수결로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에 지지부진한 토론이 계속되면서 개인이 못 보던 것을 보게 되고, ‘나’를 다시 보고 타인을 타인으로 다시 보게 된다.
‘수작부리다’
‘수작부리다’ 만드는 방법
[출처] 유튜브 ‘별책부록문화기획협동조합’
다양성이 세상을 살리고 세상을 바꾼다
일산 신도시에는 도서관이 많은데, 구도심에는 책 읽을 곳이 없었다. 당시 무상급식 대상자가 많은 지역이기도 했다. 박미숙 기획자는 아이들이 책으로는 차별받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어린이 도서관을 열었다. 열심히, 괜찮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원에서 ‘문화다양성’ 과목을 들으며, 스스로가 참 찌질(?)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과 책 읽고 글 쓰는 게 좋아서 했던 많은 시도가 시혜적 관점에 서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박미숙 기획자는 ‘사람은 서로 다르고, 그 다름을 존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문화다양성의 이야기가 크게 와닿았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이제 다양성이며, 민주주의나 한 명의 지도자가 아니라 개개인의 다양성이 세상을 살리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다양성 사업이 전개되고 있었지만, 거기에는 일상성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깊게 파고드는 문화다양성이 아니라 넓어지는 문화다양성에 관심이 생겼고, 그때 그림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책은 아이들만 보는 게 아니라 어른들까지 모두 볼 수 있는 책으로, 세상의 다양성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환상적인 타인’들을 만나 문화다양성 그림책 목록을 만들어오고 있다. 목록은 1, 2차에 걸쳐 총 5,000회가량 다운로드 되었고, PDF 파일로 더 많이 퍼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쇄본으로도 1,000부 정도 배포되었다. 목록 끝에는 독서 활동 교안도 포함되어 있는데, 모두 출판사에 저작권 관련 허락을 받고 만든 거라 잘 활용되기를 바라고 있다. 목록의 현장 활용은 개방되어 있어서 관련 사례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지만 어디서든 잘 쓰이고 있을 거라 믿고 있다.
문화다양성 그림책 목록을 처음 만들 때는 여성, 이주, 북한 이탈, 장애, 소수자 등 분야를 나누려고 했다. 그러나 그림책의 작품성까지 포함하려니 분야별 한계가 있었고, 목록을 구성하면서 “다양성이라더니 이렇게 나누는 게 맞아?”라는 의문이 생겼다. 분야를 나눠서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고, 소수성, 여성, 생명다양성 등은 자연스럽게 목록에 녹아들었다. 문화다양성 안에 어떤 장르 혹은 분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우리 삶이고, 곧 일상의 문제다”라는 걸 보여주는 목록이 되었다. 이 목록의 책을 읽고, 독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나 역시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인식을 하고, 더불어 자신의 소수성(이를테면 50대 여자지만 ‘어머님’이 아니어서 겪는 불편함, 젓가락질을 잘 못해서 타인과 같이 밥을 안 먹는 불편함, 비행기를 탈 수 없는 사람이라 겪는 불편함 등)을 인정하고, 그것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내보일 기회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문화다양성은 나의 사소한 것까지 인정하고, 상대의 그런 면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그냥 그렇게 존재하는 것 자체를 인식하고 존중하는 것에 다양성의 가치가 있다는 입장이다. 재작년에 발간한 『문화다양성 빨주노초 이야기』 시리즈는 각각 문화다양성 감수성, 미디어 속의 언어와 문화다양성 환경, 우리 안의 소수자성, 주체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워크북이다. 문화다양성이 우리의 삶 자체라고 하지만, 뾰족하게 보여주고 싶은 부분도 있어서 만들었고, 이 시리즈의 파, 남, 보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 문화다양성 그림책 동아리 ‘환타’
시작을 응원하는 안전한 관계 맺기
박미숙 기획자는 문화교육은 사람다움을, 예술교육은 창작하는 힘을 나누는 것이며, 두 가지 모두 백만 가지 답이 있다고 믿고 있다. 사람은 사람에게서 가장 많이 배운다는 걸 어린이들에게서 수도 없이 배웠기에,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말을 몰랐을 때부터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하면서 누구든, 무엇이든 해봐도 되고, 해도 된다는 것을 응원하고 알아가도록 다양한 활동을 기획해왔다. 그래서 문화예술교육의 핵심은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의 경계가 없는 ‘안전한 연결 만들기’라고 보고 있다.
그는 “많은 기획자와 예술가가 사람과 연결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관계를 맺으면 끊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연결되었다가 끊거나, 거리두기를 두려워하지 말았으면”하고 바란다. 느슨하고 안전한 연결 관계를 맺고, 안전을 확인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며, 안전하다는 생각이 드는 관계에서 비로소 개인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별책부록이 문화다양성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개인에 대한 인식과 존중에 대한 경험이 쌓인 결과인 것 같다. 문화다양성이라는 가치가 일상에서, 삶 속에서 넓은 배경으로 펼쳐지도록 하는 소중한 활동이 함께 하는 사람들 수 만큼 점점 더 많아지기를 응원한다.
  • <별책사람들>(2016), 김효은
문화기획협동조합 별책부록 ‘그림책, 문화다양성 목록’
문화기획협동조합 별책부록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조합원들이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기획하고 실험하는 문화플랫폼을 지향한다. ‘상상공간 별-짓-’이라는 거점 공간에서 도서관 관련 교육과 프로그램, 생활문화 활동 등 폭넓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문화다양성 프로그램을 기획‧진행하고 있으며, 그중 ‘그림책으로 배우는 문화다양성’ 프로젝트는 2020년 그림책 작가, 작은도서관 관장, 책 문화기획자가 5개월 동안 고른 문화다양성 관련 그림책 125권 목록과 그중 선정된 20권을 중심으로 만든 프로그램 활동 자료를 구성하였다. 2021년에는 총 150권이 담긴 목록을 완성했으며, 올해는 50권을 추가해 더 풍성한 자료를 마련할 예정이다. 올해는 그림책 동아리 ‘환타(환상적인 타인)’와 협력하여 목록을 만들고 있다.
강주희
강주희
문화예술기획자. 중앙, 광역, 기초 단위 문화예술기관에서 문화행정과 기획 일을 했고, 문화정책사업 연구에도 종종 참여했다. 문화예술교육은 2004년에 전국 지원사업 담당자로 인연을 맺었다.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는 예술가‧기획자와 일하는 것을 사랑하고, 문화다양성 주제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군불 같은 사랑을 가지고 있다. 하루하루는 게으르지만 5년 뒤, 10년 뒤를 상상하며 기획하는 것을 좋아한다.
jooheejoohee.k@gmail.com
영상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사진제공_문화기획협동조합 별책부록 www.ssstarbook.com
5 Comments
  • author avatar
    김희석 2025년 10월 01일 at 5:28 PM

    존경하는 박미숙관장님을 응원합니다.
    항상 열정적으로 생각하지 못한 일들을 만들어내십니다.수작부리다에 애정을 갖고
    지금까지 참여하고 있는 저는 한걸음씩
    발전해왔던거 같습니다 .
    항상 감사드립니다.

  • author avatar
    김수현 2025년 10월 02일 at 8:18 PM

    안전한 연결 속에서 함께 꿈을 키워가는 따뜻함이 느껴졌습니다.

  • author avatar
    김양남 2025년 10월 05일 at 12:26 PM

    안전하고 느슨한 연결, 함께 펼치는 꿈
    ‘문화기획협동조합 별책부록’이 만드는 사회적 상상력
    잘 보고 갑니다

  • author avatar
    안기현 2025년 10월 05일 at 1:25 PM

    안전하고 느슨한 연결, 함께 펼치는 꿈
    ‘문화기획협동조합 별책부록’이 만드는 사회적 상상력
    기대만점입니다

  • author avatar
    황윤성 2025년 10월 09일 at 10:13 PM

    뮌가 흥미롭내요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5 Comments
  • author avatar
    김희석 2025년 10월 01일 at 5:28 PM

    존경하는 박미숙관장님을 응원합니다.
    항상 열정적으로 생각하지 못한 일들을 만들어내십니다.수작부리다에 애정을 갖고
    지금까지 참여하고 있는 저는 한걸음씩
    발전해왔던거 같습니다 .
    항상 감사드립니다.

  • author avatar
    김수현 2025년 10월 02일 at 8:18 PM

    안전한 연결 속에서 함께 꿈을 키워가는 따뜻함이 느껴졌습니다.

  • author avatar
    김양남 2025년 10월 05일 at 12:26 PM

    안전하고 느슨한 연결, 함께 펼치는 꿈
    ‘문화기획협동조합 별책부록’이 만드는 사회적 상상력
    잘 보고 갑니다

  • author avatar
    안기현 2025년 10월 05일 at 1:25 PM

    안전하고 느슨한 연결, 함께 펼치는 꿈
    ‘문화기획협동조합 별책부록’이 만드는 사회적 상상력
    기대만점입니다

  • author avatar
    황윤성 2025년 10월 09일 at 10:13 PM

    뮌가 흥미롭내요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비밀번호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