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내 안의 예술가를 깨운다

나의 문화예술교육 이야기②

일렁일렁, 마음이 일렁인다. 어느새 사람들은 도서관으로 들어오고, 나는 긴장되는 마음을 추스르려 입고 있던 노란 빛 셔츠를 만지작댄다. 곧 사람들은 내가 나눠준 쪽지에 적힌 자리를 찾아가 궁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것이다. 정말 바라왔던 순간인데,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천천히 호흡을 다잡는다. 그리고 내 몸 안에 요동치고 있는 조그만 충동을 찾아 따라가기 시작한다. 지금 나는 앉고 싶은지, 달리고 싶은지, 숨고 싶은지. 천천히 자리를 잡고 퍼포먼스 시작을 알리는 종을 울린다. 지금 이곳은 나의 <예술로 탐구생활> 발표 공간이다.
예술과 나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따라 그리고, 상상 속 캐릭터를 만들어 온갖 설정을 붙이는 게 취미였던 한 아이. 종이접기나 색칠 공부는 별로인데 유독 흰 종이에 선을 그려나가는 재미에 빠져서, 종이가 생기면 만화며 그림이며 무언가를 끄적였다. 그것뿐이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이야기에 마음대로 음을 붙여서 노래를 부르고, 오래된 피아노를 똥땅거리고, 노래에 맞춰 막춤을 추는, 그런 아이였다고 한다. 나는 내 세상 안에서 ‘꼬마 예술가’로 불리었다. 생일에는 그림 도구를 선물 받고, 엄마와 아빠는 내가 음악을 연주하거나 그림을 보여줄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걸 하는 게 더 재미있었다. 그때, 예술은 내 삶의 일부였다.
모호하던 예술이 명확하고 분류된 단어로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생 때부터다. 나는 방과 후 수업과 학원을 통해 정말 다양한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풍물과 방송 댄스, 우쿨렐레와 피아노, 연극까지. 멀뚱멀뚱해 있는 나에게 각 분야의 선생님들은 악보와 대본과 새로운 악기를 쥐여 줬고, 그것은 또 나름 재미있기도 했다. 점차 혼자 하던 인형 놀이는 대본을 읽는 연극이 되고, 마구잡이로 똥땅거리던 피아노는 정돈된 곡으로 바뀌었다.
중학교 때는 처음으로 미술학원에 다녔다. 열심히 그림을 그리다가 주위를 살펴보니, 세상에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작은 민화 공방에서 소묘와 수채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핑계 대고 빠지는 빈도가 잦아졌고, 결국에는 그만두게 되었다. 그 후에도 미술학원을 몇 번 더 다녔지만 비슷한 결과가 되풀이되었고, 마지막 학원을 그만둘 때쯤, 나는 그림 그리는 게 전만큼 재미있지 않았다. 사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치던 피아노에 대한 열정은 점차 식어갔고, 춤도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것이 되었다. 음악을 듣고 전시를 보며 감동하는 것은 전과 같았지만, 점차 내 삶에서 예술은 ‘만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접하고 보는 것’이 되어갔다.
예술로 탐구생활의 시작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안학교에 진학했다. 중학교 때는 경험하지 못했던 자유로운 분위기에 취해 쉴 새 없는 나날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2학년이 되었다. 어느 날, 학교 게시판에 ‘예술로 탐구생활’ 모집 글이 붙었다. 평소 ‘예술=재미있는 거’라고 정의하고 있는 나로서 지나칠 수 없는 이름에 더해, 단순한 이벤트가 아닌 것 같아 눈길이 갔다. 들어보니 예술을 업으로 삼고 있는 졸업생들과 만나 무언가 하는 프로그램인 듯했고, 호기심에 첫 강의를 들어가 보기로 했다.
첫 모임 장소인 도서관에 들어가자, 강의를 들으러 온 아이들 앞에 예사롭지 않은 예술가 아우라가 풍기는 세 사람이 보였다. 무언가 새로운 게 시작될 것 같다는 기대감에 찬 상태로 강의가 시작되었고, 앞에 있던 세 사람은 돌아가며 자신과 자신이 하는 예술 활동에 관해 소개했다. 그래픽 디자인을 하는 소리 님부터 연희 집단 활동을 하며 몸짓과 전통적인 것을 탐구하는 기영 님, 현대미술로 작품을 만드는 다현 님까지. 내가 전시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을 우리와 같은 공간을 거쳐 간 졸업생들이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리고 동시에 심장이 뛰었다. 이후 계속될 예술로 탐구생활(이하 ‘예탐’)에 본격적으로 참여해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 두 번째 움직임 워크숍
움직임의 감각을 깨우치다
예탐은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워크숍을 진행하고, 마지막에는 개인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삶의 큰 기억을 따라가 보는 소리 님의 물길지도 워크숍, 움직임을 탐구하는 기영 님의 움직임 워크숍, 주변의 소재를 이용해 하나의 전시를 완성해 보는 다현 님의 소재 워크숍. 모두 기존의 상식을 깨는 놀라운 경험이었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두 차례 진행된 움직임 워크숍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첫 번째 움직임 워크숍에서는 두 손을 이용해 나와 상대의 몸을 감각하는 활동을 했다. 먼저 기영 님은 각자가 편한 자리에 가서 손으로 자기 몸 이곳저곳을 터치해 보라고 했다. 아기 볼 만지듯이 부드럽게, 길게 머물러보기도 하고 쓸어 넘겨보기도 하며 손이 가길 원하는 곳을 찾아가 보라고. 다음에는 짝을 지어주며 서로의 몸을 터치해 보라고 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손을 움직였는데, 점점 몰입하면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 피어올랐다. 평소 느끼던 나의 몸과 상대의 몸을 완전히 다르게 감각 하는 시간이었다. 이때 처음 ‘몸’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
두 번째 워크숍에서는 단순한 동작 몇 개를 통해 나와 사람들의 움직임을 인식하는 활동을 했다. 모두가 함께 걷다가 ‘눕는다’와 같은 동작들이 하나씩 추가되면 자신이 원하는 순간에 해당 동작을 하는 것이다. 돌고, 걷고, 멈추고. 재밌어서 계속 동작을 바꾸다 보니 어느 순간 ‘지금 멈추고 싶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때가 바로 내 안에 숨어 있는 움직임 욕구를 발견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때 나는 ‘몸’을 지나 ‘움직임’에 대한 관심이 솟아올랐다.
<이끌리는 대로>
즐거웠던 워크숍이 모두 끝나고, 개인 프로젝트 준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무슨 형태일지는 모르겠으나, 몸을 사용한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 생각은 멘토 분들과 면담을 하며 ‘움직임 퍼포먼스’라는 형태로 구체화 되었다. 장소는 도서관, 주제는 ‘충동에 따른 움직임’으로 정해졌다. 움직임 워크숍 때 느꼈던 욕구에 다시 한번 귀 기울여 보고 싶었다.
도서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공간에 익숙해지고,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움직이며 내 안 충동에 귀 기울이는 연습이 진행되었다. ‘움직임’과 ‘퍼포먼스’. 생소한 두 개가 합쳐지니 너무나 어렵고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흐릿했지만, 멘토분들과 대화하며 어떻게든 만들어 갔다. 그렇게 프로젝트 발표 날이 되었고, <이끌리는 대로>가 탄생했다.
많은 고민과 연습을 거쳤던 <이끌리는 대로> 발표는 눈 깜짝하니 끝나버렸고, 그렇게 예탐도 끝이 났다. 모든 일이 그렇듯, 조금 더 노력하고 준비할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나에게는 그걸 이길만한 큰 벅참이 남았다. 나 자신을 몸치라고 정의하고 사람들 앞에 내놓는 것을 부끄러운 일이라고 여겼던 내가, 많은 이들 앞에서 나만의 움직임을 보여준 것이다.
어느 순간 나는 예술을 잘하지 않으면 시도하지 못하는 것으로 정의 내리고 있었다. 그림이 그랬고, 춤이 그랬다. 그런데 예탐을 통해 주체적으로 예술을 탐구하게 되면서, 나도 예술을 할 수 있고, 해도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을 스스로 탐구하고 내놓는 행위가 ‘잘해야 한다’라는 벽을 허물어뜨렸다. 또,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예술을 탐구하고, 함께 나누는 과정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자신의 안에 있는 것을 탐구하고 그것을 표현하고 싶은 형태로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 <이끌리는 대로> 김시우
    우리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 짜여진 일과대로, 가야만 하는 곳으로 갈 뿐이고 어떤 작업을 행하기 위해 움직일 뿐이다. 몸은 사회의 ‘정상적’이라는 틀에 갇혀 뻣뻣하게 굳어간다. 하지만 우리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갇혀진 움직임에서 벗어나 충동에 귀 기울여보자. 발을 시끄럽게 구를 수도, 바닥에 한없이 늘어질 수도 있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다. ‘이끌리는 대로’는 한 사람이 7분 동안 충동을 따라 움직이려 하는 모습을 담은 프로젝트이다. 도서관이라는 공간 안의 요인들과, 인물 내면의 요인들이 움직임을 만들 것이다. 움직임을 따라가며 내 몸의 충동을 함께 느껴보자.
예술을 탐구한다는 것
문득 의문이 든다. 이때까지의 거쳐왔던 수많은 예술교육과 예탐은 대체 뭐가 달랐기에 이렇게 느끼는 것이 다른 것일까. 정답은 알 수 없지만 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예탐은 개인에게 어떤 정보를 습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던 것을 꺼내주는 방식이었다. 미술학원에 다니는 동안 많은 그림을 그렸음에도 내 그림이라고 인식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나는 진짜 내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예술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예술이 대체 뭔지 아직 모르겠으나, 예탐을 통해 예술은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개인 프로젝트를 모두 끝낸 뒤, 우리는 피드백을 하는 대신 서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것이 ‘예술은 답이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예탐이 끝난 후, 나는 춤과 퍼포먼스에 관심이 생겨 무용 공연도 열심히 보러 다니고 안무의 매력에 빠져 좋아하는 노래에 마음대로 춤을 짜보기도 하는 나날을 보냈다. 가장 최근에는 녹색연합에서 진행하는 ‘공생’ 퍼포먼스에 참여해 광화문 한복판에서 자연의 권리를 외쳤다. 예탐의 경험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평생 이런 재미를 잊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부정하고 숨겨가며 그렇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 시절 내 안의 예술가를 기억한다. 흰 종이에 마음껏 낙서하고, 막춤을 추며 느꼈던 재미를 다시 감각한다.
‘예술로 탐구생활’은 예술가와 교사가 한 팀이 되어 학생들의 삶을 둘러싼 주제를 탐구하는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학생들과 함께 실행하는 자율 주제 중심의 학교 문화예술교육이다. 학생들은 탐구 주제를 중심으로 스스로 창작하고 사고하는 과정에 참여하며 예술을 통한 즉흥적, 융합적 문제 해결 경험을, 예술가와 교사는 예술과 학교, 지역 등 다양한 경계 허물기를 시도했다. 주제 중심 학교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예술로 탐구생활’은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진행했으며, 총 693개 프로젝트에 예술가 1,641명, 교사 1,014명, 학생 42,136명이 참여했다.
김시우
김시우
5살에 귀촌해 지리산 함양에서 쭉 살다가, 대안적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17살에 산청 외송리에 있는 대안학교로 떠났다. 그곳에서 ‘잘 자고, 잘 먹고, 가끔은 사유하라’는 학교 철학을 성실히 수행하다가 현재는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중. 해 보고 싶은 것도 많고, 좋아하는 것도 많은 사람이다.
friendofpoetry@naver.com
사진제공_김다현 예술로 탐구생활 멘토
3 Comments
  • author avatar
    후루룩 2025년 06월 10일 at 6:41 PM

    이야…정말 멋진 내용입니다. 예술이 당장이라도 우리를 구원할 것 같은 힘이 솟는 글과 프로그램이었군요. 이야, 우리나라 교육이 이 정도라니…감탄할 따름입니다.

  • author avatar
    김양남 2025년 06월 15일 at 12:41 PM

    있는 그대로, 내 안의 예술가를 깨운다
    나의 문화예술교육 이야기②
    잘 보고 갑니다

  • author avatar
    김민찬 2025년 06월 19일 at 11:52 AM

    예술이 우리 주변에 가까이 좋네요
    앞으로도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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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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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루룩 2025년 06월 10일 at 6:41 PM

    이야…정말 멋진 내용입니다. 예술이 당장이라도 우리를 구원할 것 같은 힘이 솟는 글과 프로그램이었군요. 이야, 우리나라 교육이 이 정도라니…감탄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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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06월 15일 at 12:41 PM

    있는 그대로, 내 안의 예술가를 깨운다
    나의 문화예술교육 이야기②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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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찬 2025년 06월 19일 at 11:52 AM

    예술이 우리 주변에 가까이 좋네요
    앞으로도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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