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개인적으로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다리를 삐끗한 후 무릎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쉽게 낫지 않아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퇴행성 관절염이란 진단을 받았다. 통증으로 일상생활이 힘들어지면서 자존감도 하락했다.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실내 자전거를 타보라는 권유를 들었다. 하지만, 실외 자전거를 배워 함께 바람 쐬러 다니자는 남편의 설득과 지지로, 처음 배우기 시작한 자전거가 이제는 함께 라이딩을 나가는 수준이 됐다. 이는 나에게 다시 도전할 여유를 되찾아줬다.
여전히 조금은 힘든 시기를 보내던 중, 문화센터에서 만나 인연이 된 선생님의 소개로 양산마을 문화사랑방을 알게 되었고, 이는 일상의 회복과 삶의 전환점이 되어준 예술과의 만남이 되었다. 찾아간 문화사랑방 ‘마음여행학교’에서는 강사와 주민들이 모여 함께 놀고 그림 그리고, 책을 추천받아 읽기도 하는 등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을 경험할 수 있었다.
처음엔 서먹서먹하기도 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때도 있었지만 먼저 시작한 분들의 지지와 친절한 선생님, 소속감을 느끼고 싶은 내 마음이 함께 모여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예술가들과 평범한 이웃들이 모여, 각자가 읽었던 책 중에 함께 읽고 싶은 책을 소개하면 다 같이 읽고 자기가 겪었던 일을 접목하여 에세이를 썼다. 소설책만 읽던 내가 여러 분야의 책을 읽게 되었지만, 글은 학교 다닐 때 이후론 써본 적이 없어 난감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과 책 내용을 접목하여 나의 이야기를 써보라는 조언을 받고 일단 부딪혀봐야겠다는 생각에 첫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억을 하나씩 되살려보며 잊고 지내던 옛 기억들과 마주했다.
가령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함께 읽고 내 삶의 궤적에 아버지가 화두가 될 때 무뚝뚝하고 일밖에 모르시던 아버지와 그 나이가 된 나의 삶이 연결되기도 했다.
나의 아버지는 아이디어가 샘솟듯 다양한 일을 하셨다. 양잿물로 빨랫비누를 만들어 판매도 하셨고, 소도 3마리 키우시고, 방앗간도 운영하셨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을 하다 보니 일손이 부족했고, 가족 모두의 일터가 되었다. 일밖에 모르셨던 아버지는 생전에 아들들 물려줄 몫은 미리 다 정해두시고 혹여 딸들이 욕심부릴까 봐 너희 몫은 없다고 못 박았던 아버지셨다.
그런 아버지셨는데 입사 첫날 타인을 통해 아버지의 다른 행보를 알게 됐다. 청탁을 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면접 보고 울고 들어오는 내 모습을 보고 딸이 혹여 불합격할까 지사장에게 신문지에 싼 소고기 들고 어려운 발걸음을 내디뎠던 것 같다. 그 순간 당혹스러움을 느꼈고, 또 한편으론 아버지에게 이런 면이 있었다는 새로운 발견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가슴 한쪽이 뭉클했던 기억이 소환되기도 했다.
– 김미경,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이렇게 각자 써온 글을 낭독할 때면 그 내용에 동화되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어떨 땐 함께 분노하기도 하면서 어느새 오래 보았던 이웃처럼 편안해졌다. 집에서 싸 온 맛난 여러 반찬과 찬합에 꾹꾹 눌러 담은 밥들을 뷔페처럼 차려놓고 도란도란 모여 앉아 먹을 때는 정말 또 다른 식구가 된 것 같기도 했다.
중형 승합차를 빌려 전주로 떠나는 여행도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다. 주인의 감성이 살아있는 작은 책방에서 책도 한두 권 구입하고, 문화와 예술이 공존하는 도서관에서는 아름다움에 절로 탄성이 나오기도 했다. 예쁜 골목길과, 아기자기한 서점, 커피 한 잔을 사서 나눠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천변 징검다리를 건너며 재잘재잘 수다를 떠는 우리들의 모습이 한편의 그림 같았다. 고택도 찾아가 보았다. 시원한 바람과 고즈넉한 분위기, 병풍처럼 드리워진 산들과 푸른 하늘이 주는 배경에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다 함께 찍으면 좋을 장소를 발견했고 사진을 찍기 위해 한 명씩 걸어 나와 줄줄이 의자에 앉는 모습을 누군가 영상으로 찍었는데 한 편의 영화 같았다. 멋진 영상과 사진에 가족들과도 한번 찾아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한 해를 지내면서 함께 책 읽고 그림 그리고 노래 부르던 주민들이 어느덧 뗄 수 없는 이웃이 되었고, 그들과 함께 나눈 결과물을 발표회를 통해 가족들에게 보이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무대에 선 나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노력했지만, 막상 내 차례가 오니 어떻게 했는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발표회에 참석한 남편이 다른 사람 말은 잘 들리는데, 내 말은 너무 빨라서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역시 긴장하면 빨라지는 말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나타났던 것 같다. 결과는 조금 아쉬움이 남았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함께 기획하고 협업하는 모습에 더 큰 즐거움을 느껴 뜻깊은 경험이었다.
시간이 쌓이고 쌓여 이제는 소소한 일상까지 공유하는 이웃들이 생겼다. 더 자주 보고 싶고,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 양산동으로 이사를 왔다. 멀리 있을 때는 꼭 필요할 때만 만났는데 근처로 오고 자주 얼굴을 보다 보니 더 친밀해질 수 있었다.
눈 오리를 만드는 게 버킷리스트라던 한 분의 말을 기억하고, 눈 오는 주말에 가족을 뒤로하고 이웃들이 모여들었다. 그중 한 분이 지인의 부동산에서 공수해 왔다며 눈 오리 틀을 여러 개 가져왔다. 각자 마음에 드는 걸 꺼내 들고 어떻게 하면 예쁘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해 가며 만든 눈 오리로 공원을 장식하는 동화 같은 시간을 보냈다. 방탈출을 꼭 해보고 싶다는 내 소원도 이루어준다며 모두 기꺼이 시간을 내어준다. 이렇게 주민들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 노년이 된 후에도 ‘그땐 우리가 재미난 시간을 많이 보냈지’라며 추억을 되새김질할 수 있을 것 같다.
혼자서는 불가능할 거로 생각했던 일들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주민들과의 유대로 완성되기도 했다. 내가 그린 그림이 전시회 한쪽에 걸리고, 에세이와 그림일기를 모아 소책자를 발간하는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왠지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이런 많은 경험이 쌓이면서 예술은 나와는 거리가 먼 세계라는 생각도 바뀌었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주민들과의 교류로 전업주부로 생활하며 좁아졌던 나의 무대가 점차 확장됨을 느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최근엔 낯선 나라에 가서 계획에 없던 미술 전시관을 찾아가 몰랐던 화가의 작품도 보고, 새로운 분야인 시 낭송도 배워 발표회에 서보기도 했다. 그동안 따로 놀던 배움들이 잘 버무려지고 조금씩 스며들어, 또 다른 나를 발견하도록 이끈 것 같다.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 나아가는 이 길이 지금처럼 계속 이어지길 소망해 본다.
- 광주 양산문화사랑방은 광주 북구 양산동 옛 시장 골목 한켠에 위치한 마음놀이터와 양산마을공동체가 함께 운영하는 마을커뮤니티 공간이다. 일상의 공간인 삶터(마을)에서 문화예술로 사람과 사람을 잇고 마음을 나누는 평상 같은 곳이다. 마음놀이터가 운영한 문화예술교육 ‘마음여행학교’는 중년의 이웃들이 모여 읽고, 그리고, 쓰는 과정을 통해 함께 삶의 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이다.

- 김미경
- 1969년생. 광주 양산문화사랑방 4년 차 이웃. 인생의 즐거움을 배우는 중.
kimmk3737@naver.com - 사진제공_김옥진 마음여행학교 강사(마음놀이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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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은 글이네요~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글을 읽는 내내 그 자리에 함께한 것 같았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아름다운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작은 도전과 이웃과의 따뜻한 교류가 삶에 큰 변화를 주는 모습이 감동적이에요. 문화예술이 진정한 치유와 성장을 돕는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술교육이 단지 지식 전달을 넘어, 삶 자체를 풍요롭게 만드는 여정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함께 읽고, 놀고, 그리고 나누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과 어른 모두가 관계를 맺고, 서로를 이해하며, 일상 속 예술을 경험해나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함께 읽고 놀고 그리고 나누며, 삶을 여행하기
나의 문화예술교육 이야기③
공감이 갑니다
함께 읽고 놀고 그리고 나누며, 삶을 여행하기
나의 문화예술교육 이야기③
기대만점입니다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예상치 못한 아픔과 변화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신 용기, 그리고 그 여정을 함께한 이웃들과의 끈끈한 관계가 참 인상 깊었습니다.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위로하며 함께 성장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마음여행학교가 단순한 문화 프로그램을 넘어 한 사람의 인생에 긍정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런 따뜻한 이야기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아픔 속에서도 포기하지않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신 용기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네요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위로하며 함께 성장하시는 모습이 큰 울림을 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