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여 년간 우리나라는 문화예술교육에 필요한 법령, 지원조직, 예산 등을 마련하여 문화예술교육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다양한 사업을 기획, 추진해 왔다. 한국은 문화예술교육정책을 드물게 법령으로 제도화한 국가이며, 앞으로도 새로운 이니셔티브(initiative)를 계속 이끌어갈 수 있도록 전문가로부터 많은 자문과 조언을 구하고 있다.
한국의 문화예술교육 정책은 2003년 구성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직속의 문화예술교육 TF에서 시작되었다. 이 TF는 문화예술교육을 새로운 문화정책의 핵심 어젠다 중 하나로 설정하여 관련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고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을 수립하여 2004년 교육부와 공동으로 발표하였다. 종합계획은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을 망라하여 문화예술교육정책 방향을 설정하였으며, 이후의 정책은 이를 기반으로 초중고에 대한 예술강사 지원을 비롯하여 국방부, 법무부, 여가부 등 관련 부처와 함께 문화예술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사업으로 확장되었다. 이와 함께 정부는 「문화예술교육 지원법」을 제정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교육진흥원)을 설립하여 정책 추진체계를 갖추는 한편, 국제사회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해 왔다. 2006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제1차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를 시작으로 2010년 서울에서 열린 2차 세계대회에서는 95개 국가의 650여 명의 대표와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서울 어젠다: 예술교육 발전목표’를 발표했다. 이러한 국제적 흐름과 연계하여 국내에서는 교육진흥원과 17개 광역 문화예술교육센터를 중심으로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전개해왔다.
2018년부터는 종합적인 방향과 전략을 체계화하여 5년마다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였다. 1차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2018~2022)은 문화예술교육 경험의 양적 확대, 프로그램 다각화, 지역 거버넌스 구축, 정책기반 구축 등을 핵심과제로 설정하였다. 2차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2023~2027)은 ‘누구나, 더 가까이, 더 깊게 누리는 K-문화예술교육’이라는 비전을 수립하고, 일상에서 참여하는 문화예술교육, 지역에서 즐기는 문화예술교육, 문화예술교육 기반 고도화, 문화예술교육 협력 네트워크 구축 등을 주요 과제로 설정하였다.
변화 대응을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제안
이러한 종합계획의 구체적 실현을 위해 교육진흥원은 2023년 초 ‘미래 문화예술교육 포럼’을 조직하여 예술교육의 의미, 기술 변화에의 대응, 문화예술 향유 확대 등을 주제로 하여 세 차례 포럼을 개최하였다. 아울러 2023년 5월 유네스코와 함께 접근과 포용, 학습, 창의성과 창조경제, 회복탄력성과 웰빙, 디지털 기술과 AI 등을 주요 키워드로 하여 이해관계자 회의(UNESCO Multistakeholder Dialogue)를 개최하였다. 이와 함께 2022년부터 시작한 ‘미래전략 수립을 위한 전문가 라운드테이블’ 등 다양한 형태의 주제별 포럼을 통해 문화, 예술, 교육, 사회, 기술, 법률 분야를 망라한 전문가들로부터 의견을 수렴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그동안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견지해 온 철학과 가치, 미래방향의 내용을 6개의 제안으로 구성한 ‘K-문화예술교육 리포트’를 작성하여 유네스코에 제출하였다.
‘K-문화예술교육 리포트’에 담긴 내용은 먼저 문화예술교육 환경 변화에의 대응 측면이다. 거시적인 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역설적으로 수요자 개개인의 여건과 수요에 맞춘 프로그램 확대, 동네 생활권에서의 참여기회 제공, 평생교육 관점의 프로그램 개발 등 개개인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미시적인 방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점이 중점 전략으로 제시되었다. 아울러 문화예술교육 프레임워크 이행을 위한 성과 지표 개발을 제안하였다. 각국에서 공통으로 적용하여 조사할 수 있는 지표 개발을 통해 전 세계적인 문화예술교육의 현황과 생태계 및 국가별, 지역별 차이를 파악하고, 부족하거나 보완이 필요한 영역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처해나가자는 것이다. 나아가 국가·지역별 정보 허브(플랫폼) 및 데이터베이스의 구축과 활용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각국의 문화예술교육 정책과 제도, 중장기 전략, 주요 이니셔티브 및 프로그램 현황과 사례, 주요 활동 주체(기관/사람) 정보 등 문화예술교육 생태계를 국제적 시각과 지역적 범주에서 파악해 보자는 것이다.
K-문화예술교육 리포트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 발전에의 대응이다. AI 기술의 활용을 위해서는 다학제적 연대가 중요하며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사회적 네트워크 구축과 자원의 확보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기술매체 활용에서 기회의 편차와 리터러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취약계층의 디지털 역량 교육과 용어집, 사례집 등을 통한 기본 개념 습득을 비롯하여 장애인이나 노인 등 문화적 취약계층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에서 AI를 활용한 인터랙티브(interactive) 교육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예산 제약 등의 여건을 고려하여 직접적인 예술강사 지원이 어려운 영역에 대해 전통적인 예술강사의 역할을 비인간 강사(non-human instructor), 즉 AI 강사로 일부 대체하거나 보완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디지털 기반 교육에서도 또래 그룹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온라인 교육과 더불어 오프라인을 통한 상호 접촉과 의사소통이 병행되는 블렌디드 러닝이 필요하다는 점도 언급하였다. 또한 새로운 방향의 문화예술교육 확대를 위한 예술강사 육성 시스템의 개선을 비롯하여 교육프로그램과 자료의 디지털 아카이빙 및 서비스 플랫폼의 필요성도 강조하였다.
나아가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테크놀로지 활용을 위한 국제적 담론화를 제안하였다. 급격히 변하는 디지털 전환 시대에 적응하기 위하여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국가의 문화예술교육학자, 인문학자, 미래학자, 뇌과학자, 기술자 및 문화예술교육 현장 전문가들이 ‘디지털 전환 시대 문화예술교육 발전을 위한 국제패널’(가칭)과 같은 협의체를 구성하여, 디지털 전환 및 AI 등으로 촉발된 문화예술교육 관련 이슈들을 검토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적극적으로 함께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문화예술교육 프레임워크 이행을 위한 가이드라인 마련 및 이행 촉구를 위한 국제 협의체 구성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글로벌, 지역별, 권역별 협의체를 통해 어젠다의 구체적 실행을 위한 부문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실질적인 대안을 모색해 가자는 것이다.
세계 문화예술교육을 이끌어갈 새로운 어젠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K-문화예술교육 리포트를 적극적으로 작성하여 제출한 이유는 우리나라가 그동안 전 세계 문화예술교육 발전을 위해 담당해온 역할을 더욱 공고히 하고 아울러 향후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환경에 대응한 전략의 수립과 추진에서도 능동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제안을 비롯하여 각국에서 제기한 여러 이슈를 바탕으로 2024년 2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3차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에서는 인공지능(AI)과 디지털, 리터러시, 접근성, 격차 해소 문제 등을 핵심적인 이슈로 논의한 후 프레임워크 형식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문화예술교육의 발전 목표와 지향점을 재설정하기 위해 제시한 우리나라의 제안은 2월 아부다비에서의 심층적 논의를 거쳐 향후 전 세계 문화예술교육을 이끌어갈 새로운 어젠다의 핵심 내용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김보름
김보름
한성대학교 창의융합대학 문학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재)서울문화재단에서 서울시 문화예술 사업과 정책개발을 담당하였으며, 런던대학교에서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옥스퍼드 사이드경영대학원에서 AI과정을 수학하는 등 디지털 플랫폼과 기술융합에 관심을 두고 콘텐츠산업 변화에 관한 교육과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brkim@hans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