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2000년부터 고령화사회로 접어들었고, 온갖 매스컴에서 그 말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그땐 크게 체감하지 못했고, 좀 더 다양한 음악을 배워 좋은 연주자와 교육자가 되어 보겠노라 두 번째 대학에 다녔던 시기이기도 하다. 노인이라는 대상을 관심 있게 보고, 연구를 시작한 건 2015년부터였다. 성인 플루트 취미반을 운영 중이었는데 3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회원 간에 실력 차이가 나면서 젊은(young) 팀과 나이 든(old) 팀으로 나눠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때 비로소 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누구나 늙는 것이 불변의 법칙인 것을, 다소 늦음이 함께 어울려 사는 데 있어 불편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면 이는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60대 이상의 노년이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어떤 문화예술을 향유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교육받고 있는지 연구했다.
노인복지관과 문화원, 주민자치센터 등을 기웃거리며 관찰한 노년 문화예술교육 현장은 생각보다 놀라웠다. 그 누구도 노년을 생애 한 주기의 대상자로 대하지 않고, “늙으면 애랑 똑같다”며 입증되지도 않은 자기 신념을 바탕으로 따라 하기식, 흉내 내기식 교육을 하고 있었다. 어린이집 발표회처럼 강사가 무대 앞에서 북을 치고, 율동하면 무대에 선 어르신들이 따라 하는 모습이 제일 큰 충격이었다. 강사가 노년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쉽게만 진행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치매가 진행되거나 기억하는 정도가 어려운 경우라면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참여자들과 문화예술교육만으로도 인지 증진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버리고 제일 쉬운 단계로만 접하게 하는 것이 좋은 방식일까? 그저 즐겁기만 하다면 성공한 수업인가? 여러 고민이 많은 시기였다.
  • 행복한 뮤직 퍼포먼스 (대전 동구행복한어르신복지관)
충격과 실패 그리고 도전
아직도 그날의 설렘이 사진만 보아도 느껴진다. 2019년 사회예술강사로서 대전 ‘동구행복한어르신복지관’에서 리듬퍼포먼스 수업을 진행했었다. 음악의 기본적인 3요소 중 리듬을 몸으로 즐기면서 무용과 우리의 활동이 무엇이 다른지 알려 드리고 싶었다. 이 프로젝트의 철칙은 ‘동작을 강사가 만들지 않는다’였다. 몸을 활용해 소리를 탐색하느라 탬버린을 여러 방식으로 소리를 내보며 강사의 의견보다 어르신의 생각을 끌어오게 하는 것이다. 창의성을 끌어내는 작업이다. 참여자가 만든 3~4개의 동작에 번호를 매기고 노래에 연결하고, 악보 대신 동작 번호로 움직이며 악기 소리를 내었다. 강사인 나는 박자가 흔들리지 않게 앞에서 지휘했을 뿐이다.
사실 이 프로젝트를 2018년 충북 진천에서 진행했을 때는 실패했었다. 참여자의 습득 차이와 참여도 차이가 프로젝트를 크게 좌우한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당시 선거도 한창이라 한두 달씩 수업에 빠지는 분이 많았고, 추석에 김장철까지 있어서 제대로 된 진행이 어려웠다. 강사가 알려주는 대로 습득하는 학습이 익숙했던 분들이라 동작을 만들고 악기를 재구성하는 프로그램 진행 과정을 이해하고 따라오는 데 오래 걸렸다.
같은 프로젝트여도 노년의 대상자는 지역과 문화 향유, 건강 등 다양한 이유로 매우 다른 과정과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이는 사업 실행 전에 사전 조사만으로는 확실히 알 수 없고, 매번 프로젝트를 실행하여 얻은 결과로 연구하기엔 시간적 어려움이 컸다. 그럴수록 노인과 노년을 더욱 잘 알고 싶었고, 노인 프로그램 개발 욕구는 커졌다.
  • <내 생애 피아노 한번>
건강한 노년, 로망을 현실로
2020년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오랫동안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는 노인 참여자들이 걱정되면서도, 한편으로 한가한(?) 이때 본격적으로 노년을 공부해 보려고 노인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했고, 지금은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다. 물론 공부한다고 내가 겪어 보지 않은 노년을 다 이해하고 알 수는 없겠지만, 신체적 노화 진행의 흐름과 심리적 흐름 등 다양한 데이터를 모으면서 또 하나 확고한 철학이 생기기 시작했다.
“모든 노인을 책임지려 하지 마라” 한참 음악교육을 할 때 한 선배가 해줬던 조언과 비슷한데, 기초를 잘 알려주는 선생과 이미 기초가 잘 다져진 아이를 더 성장시키는 선생이 있다면 혼자서 그 역할을 다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다 잘하면 좋겠지만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라는 조언이었다. 노인을 공부하면서 내가 관심 두고 연구하고 싶은 분야는 “건강한 노인의 건강함을 좀 더 연장해 주는 문화예술교육”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또 하나의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건강한 노년이 건강함을 유지하면서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은 무엇일까 고민하다 2021년 <내 생애 피아노 한번> 프로젝트가 나왔다. 어르신들의 로망인 악기, 피아노를 미술로 문학으로 연주로 끌어내면서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했다. 3년 차인 지금은 <내 생애 피아노 한번>으로 음악을 시작한 어르신들이 시니어 버스킹 연주단을 만들어 연주 여행을 다니고 있다. 어르신들이 노년에 문화예술의 깊이를 느끼며 인지나 창의를 넘어 삶의 질 향상까지 이어지는 문화예술교육 활동이 되었으면 한다.
<내 생애 피아노 한번>을 이끌면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음악 이론을 모르는 어르신들께 기술 습득처럼 느껴지지 않게 이론을 전달할 방법은 없을까? 기본적 이론 전달은 진행하지만, 깊이의 니즈는 서로 달라서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하다 유튜브를 선택했다. 유튜브 ‘오로지 노인생각’이라는 채널을 만들어 어르신들 활동 모습이나 자료 등을 업로드하여 언제나 필요하실 때 찾아볼 수 있게 해드렸는데, 전국을 넘어 해외 계신 노인까지 구독해 주시는 등 유튜브를 활용한 소통 가능성을 실험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통해 2023년 충북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거점 사업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문화예술교육>으로 노인의 가능성과 비대면, 유튜브 활동으로 얻어지는 문화예술교육의 한계와 가능성까지 연구하게 되었다.
노인은 모두 다르다
그동안 노인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노인을 한 집단으로 보기보다 개개인으로 보았다. 노인은 다 똑같지 않다는 나의 생각은 확고하다. 우리의 편견으로 그들을 한 그룹으로 묶었을 뿐. 다양한 개개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살다 보니 어쩌다 노인이 되었을 뿐이다. 살아온 세월이 있는 노인에게 있어서 예술교육가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 정도를 도와줄 사람이지 존경해야 할 대상은 아니다. 나의 경험상, 어르신 한 명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의 지식과 어르신의 지혜가 어우러져 만들었던 기획이 언제나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
최근에는 시니어 버스킹 활동과 함께, 앞서 문화예술을 배운 노인이 처음 배우는 노인을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할 기회와 역할분담, 그리고 방향성 제시 등을 할 수 있는 커리큘럼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노인 문화예술교육을 고민하는 전국의 예술강사들과 소통하고, 나름 더 빨리 겪은 나의 사례들을 공유하면서 노인을 전문으로 하는 예술강사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도 붙여본다.
이지혜
이지혜
예술가와 교육자 기획자를 넘어 지금은 연구자의 길을 가고 있다. 2015년 노인음악교육연구소 설립, 2017 지역문화전문인력 양성사업으로 본격적 기획을 익히고, 예술강사를 지나 기획자, 예술단체 공간운영을 하면서 노인전문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 유튜브 ‘오로지노인생각’을 운영하는 중이다.
jhjm002@ naver.com
인스타그램 @ilovezari
유튜브 오로지노인생각
사진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