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들이 하얀색 우비를 입고, 학교 운동장 구석에서 잡초를 뽑고 있다. 어린 시절, 모난 돌을 줍고 잡초를 뽑던 벌칙을 떠오르게 하는 이 장면이 생경하면서도 재미있어 웃음이 났다.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교육일까? 교사도 아닌 내가 예술꽃 씨앗학교 ‘씨앗가꿈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충북 영동 부용초등학교)에서 기획하고, 진행하는 활동을 무엇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까?
  • 모두의 정원
학교로부터 시작되는 모두를 위한 예술
장마가 시작되던 늦은 6월, 학부모 대상으로 ‘모두의 정원’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자녀들이 스스로 가꾸어 놓은 공간을 체험하고, 봄꽃이 저문 자리에 새로운 식물을 보식하는 활동이었다. ‘모두의 정원’은 부용초등학교의 <예술꽃나비 프로젝트> 중 하나로, 지역의 조경전문가이자 식물을 매개로 교육 활동을 하는 홍덕은 작가와 함께 구상하고 만든 특별한 장소이다. 2022년 겨울부터 학교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하여 학생들과 함께 땅을 일구고, 꽃과 나무를 심어 다양한 생명이 공생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직접 돌을 깔아 길도 만들고, 쉬는 시간 식물에 물을 주며, 식물의 피고 지는 순환의 과정, 계절의 변화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장소로도 활용된다.
‘모두의 정원’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만든 정원이 생태환경을 위한 특별한 장소라서가 아니라, 이 공간에서 하는 활동과 추억을 잇는 힘을 생각해 보고 싶어서였다. 더운 날씨에 잡초를 뽑고, 식물을 심으면서 부모님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집에 돌아가서 아이들과 정원에 대한 어떤 대화를 나눌까 몹시 궁금해졌다. 4학년 하은이 어머니는 아이가 자기가 만든 정원에 꼭 가보고,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월차를 내고 왔다고 하셨다. 그리고 하은이에게 엄마가 심은 꽃 이름을 찾아보라 하고 싶다며 사진을 찍어 가셨다. 이러한 작은 대화를 통해 ‘모두의 정원’이 단순히 교육 현장으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가족 대상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순기능은 가족이 함께 마주 보며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한데, 활동을 통해서 서로 간에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수직적 관계가 친구처럼 될 수 있고, 다채로운 예술교육 경험은 소통할 수 있는 소재도 될 수 있다. 도시의 아이들은 인접한 많은 문화예술 공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활동을 선택하고 참여한다. 하지만 지역의 작은 학교 아이들이 일상에서 문화예술교육을 즐기기 위해서는 ‘학교’가 거점의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처음 내가 학교예술교육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공간’ 때문이었다. 같은 기획, 같은 주제, 같은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학교에서 실행한 수업과 미술관에서 실행한 수업은 학생들의 참여도와 활동 규모의 차이를 확연하게 느꼈다. ‘왜 학교에서 진행하는 예술교육은 한계에 부딪힐까?’ ‘혹시 학교 공간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 때문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보았다. 학교 공간은 학생들의 삶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아이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장소’와 관련된 활동을 만들어 보고 싶었고, 충북문화재단 ‘헬로우아트랩-교강사랩’ 사업을 통해 영동 부용초등학교와 연을 맺게 되었다. 당시 전국적으로 ‘학교’라는 공적 공간을 새롭게 탈바꿈하는 공간혁신 사례가 유행처럼 생겨났다. 우리는 ‘아지트메이커스’라는 이름으로 학교의 유휴공간을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활동을 진행하였다. 완성도가 떨어지고, 부족하더라도 아이들 스스로 공간을 채워보고, 직접 다양한 물성을 경험하며 완성해 나간 것에 의미가 있었다. 이는 공간에 대한 주인의식과 더불어 예술에 대한 융합적 사고력을 키워나갈 수 있는 과정이 되었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 것이다”(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라는 말처럼 학생들은 수업과 창작 활동 과정을 통해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함께 사용하는 친구들,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여갔다.
  • ‘모두의 정원’을 가꾸고 있는 학생과 학부모
어떻게 예술을 향유할 것인가?
예술꽃 씨앗학교 4년 차로 접어들면서, 학생들의 예술 활동은 과감하고, 창의적으로 바뀌어 갔다. 학교 공간이 갤러리가 되어 설치미술 작품을 만드는 것도. 뮤지컬을 위해 무대, 소품, 의상을 만드는 것도 가능해졌다. 이러한 아이들은 예술을 어떻게 생각할까? 얼마 전 6학년 1학기 마지막 수업. 3학년 때부터 예술꽃 수업에 참여했던 학생들에게 예술 수업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인터뷰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서로를 위한 질문을 만들고 생각을 이야기하며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인지, 어떤 점이 힘들고 즐거웠는지,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활동은 무엇인지, 가감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미술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였다. 머뭇거리고 망설이다 피상적으로 대답하는 아이들에게 아직 감상을 위한 공간은 아이들의 삶으로 흡수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곳, 충북 영동군은 인구가 4만 5천 명밖에 되지 않으며, 그 흔한 미술관도, 갤러리도 없는 지역이다. 전시를 보기 위해서는 한 시간 이상 걸리는 대전이나 청주로 가야 했고, 체험학습이나 소풍으로 전시장을 찾는 것도 코로나로 인하여 소극적이었다. 평소 교육자료를 통해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부터 최근 논쟁거리가 되는 현대미술 작품까지 다양한 작품을 예술꽃 수업을 통해 보여주고 이야기하였지만, 아직 아이들에게 미술관은 삶과 맞닿은 자연스러운 공간이 아니고,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예술꽃 씨앗학교 전시 준비
부족한 거점을 위한 해법 찾기
주제 중심 학교문화예술교육 ‘예술로 탐구생활’의 이번 주제는 ‘우리의 일상이 영화로 <마이로그 프로젝트>’이다. 예술은 특별하고 어렵다고 접근하지 않고, 예술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청주 창리초등학교와 영동 부용초등학교 4학년 학생 대상의 수업을 진행하였다. 동시대를 살고 있지만, 지역이 다른 학생들의 일상과 생각은 어떻게 다를까? 한 학년에 한 학급밖에 없는 영동 아이들은 같은 나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어디에서 듣고 사회성을 키워나갈 수 있을까? 이러한 관점에서 다른 학교 대상 프로젝트는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사회를 구성하는 ‘삶, 관계, 자아, 문화, 사회, 지혜’라는 대주제에서 나의 관심과 맞닿아 있는 소재를 선택하고, 며칠간의 고민과 토론 끝에 주제 선정과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어색하지만 캐릭터의 특징을 고민하며 몸소 연기를 하고, 카메라로 담아내어 6주 만에 짧은 단편 영화를 완성하였다. 이 영화는 학교와 가족, 친구 관계 등을 깊이 있게 고민해 볼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고, 영화제작 이후 감상을 위한 질문지를 만들어 다시 한번 타인을 이해하고, 일상을 탐구해 볼 수 있는 시간도 갖게 되었다.
또 한 가지 의미 있는 지점은 공유회에 있다. 2022년도는 100km 정도 떨어진 학교 아이들을 만나게 하려고, 온라인 화상 플랫폼 줌(ZOOM)으로 상영회를 했고, 올해는 메타버스 플랫폼 게더타운에서 공유회를 진행하였다. 사실 메타버스에서 공유회를 한 이유는 프로젝트가 끝난 후 학생들의 창작 활동을 보여줄 기회가 없다는 아쉬움에서 시작되었다. 또한 게더타운의 상호작용(Object Interaction)을 통해 활동 자료를 아카이브 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미지, 제작과정 영상, 교육자료 등을 볼 수 있도록 구성하였고, 방명록에 참여 소감이나 다른 학교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길 수 있었다. 이 온라인 공간은 같은 학년 친구를 사귈 수 있는 만남의 장소이자 교육을 위한 확장된 교실,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장이자 자료실이 될 수 있다. 또한 참여 가정에서도 자녀의 활동과 작품을 보고 소통할 기회를 만들어 주리라 생각한다.
  • 예술로 탐구생활 온라인 공유회
가정에서 아이들의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대화가 몹시 궁금해진다. 나는 특별하지 않은 순간에도 행복을 느끼고, 그 속에 예술이 가득하기를 꿈꾼다. 사소한 것이지만 나만의 의미를 담을 수 있다면, 평범한 일상도 특별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학교 공간, 활동, 그리고 일상의 소재가 맞물려서 서로를 지탱하는 힘이 되길 바란다.
이선희
이선희
입체 미술을 전공하고, 시각예술작가이자 예술교육가로 활동한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 교육사들과의 협업하고 도전하는 것에 관심이 있으며, 2018년부터 삶과 예술, 생활문화의 ‘바른 엮음’을 고민하며 전시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실험하는 ‘오직o.zig’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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