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변화에 따라 교육과정은 변화한다. 작년 12월,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이 발표되었다. 이번 교육과정은 ‘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을 비전으로 내세우고 있다. 팬데믹과 인공지능의 발전 등 오늘날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교육과정은 한 개인으로서 갖춰야 하는 역량인 창의성과 더불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지향해야 할 방향을 ‘포용성’이라는 낱말로 표현하고 있다.
  •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사계절출판사, 2018)
  • 『입 없는 아이』
    (박밤, 이집트, 2020)
존중의 관계를 맺는 최선의 방법
학교와 사회는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 정체성을 품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단적으로 16만 8,645명, 10만 3,695명이라는 2022년에 집계된 다문화 학생과 특수교육 대상 학생의 숫자만 봐도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학교 공간에 모여있는지 알 수 있다.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다양성은 더 많다. 다양성 존중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감각이 중요한 까닭이다. 이러한 감각이 결여된 학교나 사회는 누군가를 쉽사리 괴물로 부르거나 소외시키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공동체 감각, 다양성 존중의 가치를 어떻게 가르치고 확산할 것인가에 있다. 존중은 그저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고 존중하자’라는 구호를 외친다고 해서 실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존중은 오히려 한 개인과의 구체적인 만남을 통해 드러나고 완성된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 저자는 존중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존중이란 개별자로서 그 사람을 대우하고 승인한다는 의미다. 잘 쓰인 소설일수록 우리는 그 주인공을 현실 속의 인물보다 더 쉽게 하나의 인격으로 인정할 수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극도로 지질하지만, 작가의 천재성과 치열한 노력이 빚어낸 현실감 넘치는 배경과 생생한 심리 묘사는 우리가 그들을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생동감 넘치는 존재로 인식하게 한다. 우리는 그들을 한 사람의 실존적 인물처럼 여기며 존중한다. –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p.14.
학교에서 학생들은 여러 가지 교육을 통해 누구나 평등하고 존엄하며, ‘장애인이나 이주민을 차별하지 말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하지만 이 모든 말과 구호보다 더 강력한 것은 교실이나 마을에서 장애인이나 이주민을 포함하여 다양한 특징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본 경험이다. 처음엔 이미 갖고 있는 편견 어린 시선으로 다소 실수하기도 하고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부딪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개개인의 고유한 매력을 발견하게 되고 서로를 인격적인 존재로 대우하고 세심하게 존중할 수 있게 된다. 김원영은 이러한 과정을 ‘상대방의 초상화를 그리는’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스냅 사진처럼 순간적인 이미지에 따른 판단이 아닌, 오랜 시간을 들여 한 사람을 들여다보는 것이야말로 존중의 관계를 맺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넌 내게 다가오지 못하잖아!”
솔직한 고백 하나를 꺼내본다. 새 학년을 시작하고 담임 학급이 정해지면 학급 학생들의 이름이 적힌 출석부를 받게 되는데, 이름 옆에 때때로 ‘학습 부진’ ‘특수교육 대상’ 등의 정보가 적혀있는 경우가 있다. 몇 년 전, 새로 맡게 된 학생 명단 중 한 명의 이름 옆에 ‘학교폭력 가해자’ ‘생활지도 어려움’이라는 정보가 적혀있었다.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학생인데 머릿속에는 온갖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고, 그 학생은 만나기도 전에 이미 최대 요주의 학생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시작된 새 학년의 첫날부터 그 학생의 행동은 사사건건 눈에 거슬렸고, 결국 한 달 만에 크게 부딪히게 되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과 마주 앉아서 대화하던 중, 그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그냥 제가 싫은 거잖아요. 제가 뭘 하기만 하면 화를 내면서!”
학생의 말에는 틀린 것이 없었다. 실제로 나는 그 학생이 무엇을 하든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지 않았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었다. 초반에 통제하지 않으면 또다시 학교폭력을 저지르거나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편견 때문이었다. 학생에게 한 방 먹고 난 뒤, 학생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 노력했다. 편견을 걷어낸 눈으로 본 학생은 쾌활하고 명랑했으며, 재치 있고 눈치가 빠른 친구였다. 학년이 끝날 무렵에는 우리 반 최고의 개그맨으로 인정받았다. 사고뭉치라는 편견에 갇혀있었다면 절대 발견하지 못했을 매력이다. 개정 교육과정에서 말하고 있는 ‘포용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이질적인 존재와 오랜 시간 어울려 봐야 한다. 동시에 자신의 편견을 깨뜨리고 다가가려는 작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한 용기를 이야기 해주는 또 한 권의 책을 소개해 본다. 박밤 작가가 지은 『입 없는 아이』라는 제목의 그림책이다.
재인이라는 이름의 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재인의 짝꿍이 된 폴은 그날 결석을 했고, 친구들로부터 ‘입 없는 아이’로 불리고 있었다. 입 없는 아이에 대해 생각하던 재인은 밤에 꿈을 꾸게 된다. 꿈속에서 재인은 눈이 없는 사람, 귀가 없는 사람, 코가 없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재인은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지르거나 어색한 표정을 지었고, 그들은 “넌 내게 다가오지 못하잖아!”라며 눈물을 흘린다. 마침내 재인은 꿈속에서 입이 없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앞선 경험을 바탕으로 ‘놀란 표정을 짓거나 괴물이라고 소리치지 않았으며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죽을 용기를 내서’ 입이 없는 사람의 손을 잡고 방을 빠져나온다.
짧은 글과 간단한 그림으로 이루어진 이 그림책을 학생들에게 읽어주면 처음엔 그림체를 보고 웃다가도 이내 이야기에 빠져든다. 누군가를 향해 ‘괴물’이라 외치거나 선뜻 다가가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동시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죽을 용기’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하고 말한다. 교실에서 혼자 있는 친구에게 말 걸기, 누구에 대한 헛소문 퍼트리지 않기, 놀리는 사람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하기 같은 행동을 하면 좋겠다는 학생들의 대답은 단순하지만 반짝반짝 빛난다.
자신의 편견을 인정하고 공존과 존중의 태도를 선택하는 것이 때로는 죽을 만큼 두렵고 힘들게 느껴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작은 용기를 내고 작은 한 걸음을 더하는 것 아닐까? 당신이 있는 그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보자. 그리고 ‘죽을 용기를 내어’ 손을 내밀어 그들의 손을 마주 잡자.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포용성을 갖춘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일 것이다.
이은진
이은진
평화로운 관계와 인권친화적인 교실을 꿈꾸는 초등교사. 다양한 어린이들과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thecall1@hanmail.net
이미지제공_사계절출판사, 이집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