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패 애호가 또는 실패 성애자로 워크숍 프로그램에 실패를 설계하는 사디즘의 취미가 있다. 참여자들이 정성을 들여야 하는 작은 허들을 만들고, 못마땅하거나 괴로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더군다나 수긍할 만한 설명도 없이 세상엔 해봐야 알 수 있는 것이 있다는 말만 내뱉고 나 몰라라 돌아선다. 이렇게 불친절한 아니 못돼먹은 워크숍의 정체는 ‘날달걀 세우기’인데, 게임의 규칙은 아주 간단하다. “알을 깨지 않고 평평한 바닥 위에 세우시오.” 미션을 받은 대다수 참여자는 하는 둥 마는 둥 건성건성 임하게 된다. 당연하게도 알 세우기는 얄미우리만치 실패를 반복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조금씩 오기가 생기고 집착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몰입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이때부터 참여자와 알 둘만의 실랑이가 희비극처럼, 고난 극복의 영웅 대서사시처럼, 성자의 고행처럼, 등반가의 발자취처럼, 물리학자의 연구 노트처럼, 놀이하는 인간처럼 뭔가를 의미하는 몸의 언어가 기록되어 간다. 멀찍이 떨어져 관망하는 나의 입꼬리는 비로소 실룩샐룩 춤을 춘다.
알 세우기를 시도하는 몸짓들에는 귀여운 투정이라 부르고 싶은 실패의 패턴들을 만들어낸다. 바닥에 금이 간 곳이나 홈 파인 자리를 찾아 분주한 사람, 알의 둥근 면을 갈아서 평평하게 만들어 보려는 사람, 모래가루를 쓸어모아 알의 뒷면에 괴어놓기를 시도하는 사람, 알이 이상하다고 푸념하는 사람, 자리에 수맥이 흐르는 것 같다며 투정 부리는 사람, 주변의 눈을 피해 알을 살짝 깬 후에 모른 척 세워 놓는 사람, 알이 놓인 상태 그대로가 세워진 거라며 생떼를 부리는 사람, 알은 검지로 누르고만 있을 뿐 이유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 등등 반칙의 기술이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된다. 뭔가 풀리지 않을 땐 이것저것 해볼 수밖에 없겠지만, 머리가 굴러가는 방향은 왜들 그렇게 어둠의 경로를 찾아가느냐는 질문이 남는다. 규칙을 따르기 싫은 저항감, 문제 회피라는 요상한 술수, 천연덕스럽고 뻔뻔한 연기력, 꼼수와 잔꾀, 야바위 같은 눈속임, 장난스러운 비아냥…. 공교롭게도 이 모든 기술은 예술에서 사용하는 어법과 닮아있다. 이상한 추론이지만, 실패가 야기한 위법적이고 탈법적인 사고가 예술의 경로를 더듬는 힌트가 되고 있다.
그러나, 실패의 사유는 당당함을 잃고 천대받는 이유가 있다. 성공의 아랫단에서 쭈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의 옆자리가 아니라 뒷자리로 숨어들기를 자처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실패를 이토록 비루하게 만들고 있는가. 기어야 할 때 걸으려 하고, 걸어야 할 때 뛰려고 하고, 뛰어야 할 때 날아오르려고 하기 때문이다. 건너뛰기가 우리를 망가뜨리고 있다.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라는 강박증은 짧아진 호흡, 숏츠로 우리의 리듬을 지배하고 있다. 이 문제를 꼬치꼬치 따지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이기에 여기서는 접어두기로 한다. 나의 관심은 숨기고 싶거나 숨겨왔던 그 무엇이다. 우리가 예술이라는 타이틀을 끌어안으려면 이것을 놓치면 안 된다. 여기가 맛집이다. 누구도 보채지 않았으나 조급증이 생기는 무대, 알 세우기 현장을 잠시 소개해본다. 시선과 응시의 교차, 대상과 의식의 충돌, 종교적 바람과 과학적 불신, 평평한 면과 둥근 알의 균형점을 찾으려는 탐사, 미세한 진동과 리듬의 하모니, 드러누우려는 귀차니즘과 일으켜 세우려는 애증의 충돌, 알과 자신만의 관능적이고 은밀한 대화, 텁텁한 중압감과 억눌린 비명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보게 된다. 알을 깨버리고 싶은 폭력성을 넘어 죽이고 싶기까지 한 극한 감정, 치밀어 오르는 구토처럼 쏟아낸 굉음,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일탈 충동, 한숨이 무한 리필되는 축축한 심연, 실패의 순간이 쏟아내는 의미들치곤 제법 그럴싸하지 않은가. 이 모습이야말로 실패가 무대의 장막 뒤에서 해오던 일이다. 알 세우기를 성공한 얼굴이 어떤지는 비밀이다. 내 정신머리의 그림자를 보고 싶다거나 자아의 찌꺼기를 쥐어짜고 싶다면, 날달걀 세우기를 시도해보길 권한다. 이것은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의지 재활프로그램이다.
임상빈(임체스)
임상빈(임체스)
교육이 예술의 경지에 도달하는 법을 탐구하는 미술작가. [아르떼365]에서는 예술강사 노조위원장의 탈을 쓰고 투덜이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출간물로는 체스의 예절과 이름에 관한 「귀띔 체스」, 탄소 저감 환경캠페인 동화 「방귀새에게 환경세 받기」가 있다. 그 외 교육예술연구팀 ‘잔꾀’ 머리말, 해양문화예술교육 거점 공간 ‘보물섬 영도’ 선장, 부천마을프로젝트 ‘볼록뽈록’ 참견쟁이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홈페이지 zanque.modoo.at
사진_백송이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