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평화'

최신기사

아무렇지 않고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가족

새로운 고향과 보금자리를 만드는 ‘우리들의 성장이야기’

약속시간 보다 일찍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대문이 열려있는 집이 약속한 장소다. 이곳은 서른 살 첫째부터 중학생 막내까지 열 명의 아이들과 ‘총각엄마’가 함께 사는 곳이다. 아이들 등교를 도와주고 돌아오는 길이라며 차에서 내리는 총각엄마를 만났다. 이야기를 나눌 주방의 커다란 식탁으로 안내받아 앉자마자 총각엄마는 접시에 가지런히 담은 롤 케이크와 차를 내어주었다. 에어컨과 선풍기를 내 쪽으로 틀어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초면의 어색함도 잠시, 예전에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 친구 어머니를 만났을 때 같은 익숙한 안정감을 느꼈다. 그래서 이곳이 더욱 궁금해졌다. 식탁에

시간을 좇다 땅을 좇다

분단의 경험을 기록하는 비무장사람들

‘비무장사람들’은 DMZ권역을 중심으로 사회문화리서치 기반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분단을 가시화하고자 하는 작가·기획자들의 모임이다. 이러한 ‘비무장사람들’을 제안하고 조직한 비무장사람들 대표, 작가 진나래를 만나보았다. 보라색 별을 얼굴에 담고 다니는 사람 진나래 작가를 처음 만난 건 2019년 겨울이었다. 그해 경기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에코뮤지엄 사업에 참여하고 있던 진나래 작가는 경기도 내 다양한 지역 현장을 탐방하던 중 내가 있던 의정부 빼뻘마을을 방문하게 되었다. 경기 북부지역에서 비슷한 주제로 작업하고 있는 동료 작가를 만나니 반가웠을 뿐만 아니라 이후에는 경계의 땅이기도 한 의정부 빼뻘과 연천 신망리에서 각자 작업하고 있는

평화의 감각, 일상에서 깨우다

협동조합 청풍 평화프로젝트

평생 따뜻한 남도에서 살다 올해 1월, 추위가 매서운 강화도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매서운 추위만큼이나 경색된 남북관계를 말해주듯이 해안선을 따라 설치된 철책선과 검문하는 군인들, 지척에 있으나 갈 수 없는 북한 땅의 모습은 생경함 그 자체다. 하지만 처음 접하는 이 생경함도 이곳에 머물러 살다 보면 평범한 ‘일상’이 될 거라는 걸 안다. 특별했던 것들도 일상이 되면 무던해진다. 무던해진다는 것은 무감각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각 하지 못하는 어떤 것들은 우리의 의식에서 배제되고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감각은 다시 무뎌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런 관점에서 ‘평화’라는 말을 다시

불안 아닌 평안, 고립 아닌 공존

예술로 연대하는 공존-솔리다르코

모든 것이 멈추고 고립된 상황에서 힘없는 존재들의 삶은 더 큰 위협을 받는다. 예술가라는 존재 역시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언어가 자유롭지 않은 낯선 삶, 신분이 보장되지 않은 불안함 속에 있는 난민 예술가에게 코로나19로 인해 벌어진 여러 상황은 더욱 심각하게 다가왔다. 2021년 팬데믹 시기를 통과하며 한국 예술가와 한국에 살고 있는 난민 예술가들이 만남과 교류를 위해 ‘예술로 연대하는 공존(Solidary Art of the Coexistence)-솔리다르코’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불안한 시절, 예술이라는 공통의 언어를 찾고자 노력하는 이들의 삶은 어떻게 지속되는가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한 이 만남의 기원은 10년이라는

어디에나 있는, 그러나 쉽게 오지 않는

평화를 느낀다는 것

평화란 무엇일까? 누구나 평화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평화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평화에 대한 정의는 하나로 말할 수 없다. 평화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요한 갈퉁이 전쟁이나 직접적인 폭력의 부재 상태를 소극적 평화로, 그리고 그러한 전쟁, 폭력, 갈등을 유발하는 구조적이고 문화적이며 간접적인 폭력까지 사라진 상태를 적극적 평화로 명명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사회가 지닌 복잡하고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폭력까지도 사라진 상태가 평화라고 한다면 한 사회의 평화는 그 사회의 맥락에서, 또는 개개인의 관점에서 다르게 정의될 수

변화를 창조하는
예술의 사회적 실천

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ITAC5) 주요 발표 소개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열리는 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The 5th International Teaching Artist Conference, ITAC5, 아이택5)가 9월 14일부터 나흘간 디지털 컨퍼런스로 세계 예술교육자들과 교류와 논의의 장을 펼친다. 전 세계 참가자가 한자리에 모이는 개막식 기조발제를 시작으로 매일 세부 주제 중 하나에 집중하여 발제자 발표 및 토론, 라이브 워크숍, 역량강화 프로그램 등 다양한 세션이 펼쳐진다. 첫째 날인 9월 15일(화)의 주제 ‘언러닝으로 이끄는 예술, 예술교육가의 언러닝’(Unlearning)를 시작으로 16일(수) ‘고유성과 보편성’(Local and Nomadic Practices), 17일(목) ‘포용, 화해 그리고 공존’(Peace and Reconciliation)에 대하여 논의한다. 19개국 64명의 발제자가 참여하는

포용, 화해, 공존을 위한,
현실을 대면하는 힘을 찾아서

ITAC5 사전프로젝트 <추후공지: 지연된 현실>

2020년의 ‘뉴노멀(New Normal)’은 동의와 예견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전혀 익숙해질 것 같지 않은 괴이쩍은 새 일상에 적응했다 싶은 순간, 일상의 안도와 방심을 등에 업고, 이 질병은 우리 사이의 가장 느슨하고 취약한 곳을 파고 찌른다. 그 술래잡기에서 지친 사람들은 일상의 결핍을 위로받고 싶어 하고, 멈춤과 격리의 시간에도 창의적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예술가들 역시 현실을 마주하는 법을 자습(自習) 중이나, 무용이나 연극 같은 공연예술의 타격감은 더욱 깊다. 멈춤과 재개, 지연과 취소, 예정과 추후 통지, 통보와 권고사항이라는 롤러코스터를 매일 탄다. 무력감과 언러닝 사이, 연대와

예술은 어떻게 세상의 눈을 바꾸어 가는가

[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 ②] ITAC5 주제 소개

우리는 어떤 예술교육과 참여적 예술 실천을 통해세상의 경계를 긍정적 미래로 전환해나갈 시민을 깨울 수 있을까? 오는 9월 서울에서 열리는 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The 5th International Teaching Artist Conference, ITAC5, 아이택5)는 사회에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경계에 대한 예술가와 예술교육가의 능동적 역할과 도전적 실천을 함께 나누는 자리로 마련된다. 예술교육과 사회 참여적 예술 활동으로 사람들의 삶과 사회에 밀접하게 호흡하는 세계의 예술가들이 모여 서로의 활동에서 각자의, 또 공동의 비전과 성찰을 나누어 가는 자리이다. 특히, 모두의 더 나은 삶을 추구하며 지속 가능한 시민사회를 구성해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분단된 현실의 평화부터 개인의 평화까지

문아영 피스모모 대표

피스모모 문아영 대표와는 구면이다. 아니, 그냥 구면이라는 말로는 부족하겠다. 지난해 초 인스브루크대학 평화학 석사 과정 입학을 기다리면서 전부터 눈여겨보아 왔던 피스모모 평화대학 프로그램에서 자원활동가인 피스 액티비스타(Peace Activistar)로 일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자원활동을 하면서 문아영 대표의 강의를 접했고, 마지막 날 뒤풀이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얼마 후 나는 오스트리아로 떠났지만 언젠가는 피스모모와 다시 만나게 되리라 생각했는데, 이번에 인터뷰 요청을 받게 된 것이다. 단숨에 승낙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랜만의 만남에 반가움을 표시한 후 자리에 앉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시 뵙게 되어 반갑다. 요즘 피스모모가

예술과 교육, 마을이 순환하는 생태계

편집위원이 만나다② 안석희 마을온예술협동조합 이사

최근 웹진 [아르떼 365] 편집위원회의에서 주요하게 논의한 것은 공간을 구획하는 새의 조망보다는 땅에 무늬를 내며 기어가는 벌레의 포월(匍越)에 있었다. 사람들은 주저 없이 안석희 마을온예술협동조합 이사를 추천했다. 다양한 지역에서 터의 무늬를 몸소 새겨온 그는 신촌에선 꽃다지를, 구로와 부산에선 노리단을, 성북에선 마을온예술을, 도봉에선 평화문화진지를 이끌며 문화예술현장의 시대적 진화를 개척한 최적의 인물이었다. 터의 고유한 무늬, 지역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문화예술교육을 발굴하는 것이 최근 우리의 주 관심사다. 선생님께선 다양한 지역에서 선구적인 프로그램을 이끌어 왔다. 지역마다 터의 무늬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 고유의 정체성을 풍성하게 드러내는 것이

[부산 센터] 2019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공모

부산문화재단은 2019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인큐베이팅 를 한다. 이번 공모는 지역사회가 마주한 다양한 사회문제를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창의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새로운 기획자(단체)를 양성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심험할 수 있는 교육활동을 지원하고자 한다. 교육 주제로 인권, 평화, 환경 또는 기타 지역사회가 마주한 사회적 이슈를 하나 선택해 20인 이상 아동·청소년 및 가족을 위한 주말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최소 30시간 이상 기획하고 운영하면 된다. 교육형태는 강의·체험형, 여름방학 캠프형, 공공예술(프로젝트 기획형)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형태의 예술창작 프로젝트도 제안 가능하다. 인큐베이팅 사업은 2년 연속형 지원사업으로 첫 해 시범 운영단계를 거쳐, 평가와

평화를 위한 상상력

평화를 향한 예술교육

필자가 뒤늦은 나이에 평화학을 공부하겠다며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로 떠난 것은 지난 2018년 6월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줄곧 문화예술과 관계된 영역에서만 일을 해왔기 때문에, 전혀 낯선 학문인 평화학 공부를 잘 따라갈 수 있을까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나보다 한참 어린 다른 학생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책상 앞에 앉아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는 각오로 인스브루크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시작된 과정은 나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한국의 대학이라면 “평화학이란 무엇인가?”부터 배우게 될 것 같은데, 첫날 오리엔테이션 시간부터 학생들이 모두 어울려 몸을 움직이는 워크숍이

평화의 봄이 왔다

책으로 만나는 문화예술교육

이른바 ‘평화’의 시대다. 북한이 남한에서 열린 겨울 올림픽에 참가하더니, 남북한의 정상이 말 그대로 ‘수시로’ 만나고 있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핵 단추를 자랑하던 북한과 미국이 대화를 시작했다. 이런 평화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전에도 우리 주변에 ‘평화’는 흔한 말이었다. 동대문 평화시장이니, 임진각 평화누리니, 평화공원이니 심지어 평화장(필자가 해인사 인근에서 실제로 목격한 여관 이름이다)이니 하는 식으로 ‘평화’는 늘 곁에 있으면서도 가질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그러니 너도나도 평화의 시대를 말하면서도 대체 평화란 무엇인지, 어떻게 평화를 바라보아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하다. 현재 세대들이 경험하지 못한

기술의 진보 속에서도 존중되어야 할 예술의 가치

라미로 오소리오 폰세카 콜롬비아 초대 문화부 장관

라미로 오소리오 폰세카. 왠지 낯익은 이름이었다. 2001년 겨울, 나는 멕시코 과나후아토 거리 위에 있었다. 당시 중남미 여행이란, 모두가 뜯어말리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겁도, 두려움도 없던 창창한 한 때였으므로 혼자 거리를 걷다가 세르반티노 페스티벌 지역 참가단체를 선발하는 오디션 광고를 보고는 무작정 축제 본부로 찾아갔다. “쎄울, 꼬레아, 국제무용축제에서 일한다.”고 말하자, 유쾌한 멕시코 축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심사를 같이하자고 제안했다. 얼떨결에 함께 하게 된 오디션에서 축제 심사위원들은 오디션 참가자들에게 열광적으로 환호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을 같이 즐기는 것이 아닌가. 한국식이라면

차이의 시대, 평화의 가능성_정수경 미술이론가

6월 6일 10시가 되면 어김없이 귀를 파고드는 사이렌 소리가 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을 추도하고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는 1분간의 묵념 시간을 알리는 사이렌이다. 한반도를 휩쓴 전쟁의 달 6월은 그렇게 전쟁과 평화를 되새기하며 시작되곤 한다.   평화를 뜻하는 영어단어 ‘peace’의 어원은 로마어 ‘pax’다. 자연 ‘pax romana’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이 말이 가리키는 바, 고대 로마제국 역사상 가장 평화로웠던 시기의 원리는 두 가지다. 정복전쟁의 최소화, 그리고 이민족에 대한 적극적인 동화정책. 하지만 이 팍스 로마나가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평화의 상태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아우슈비츠 이후’의 음악 – <피아니스트>
최유준 음악평론가의 무지카시네마(1)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는 나치의 유태인 집단학살이 이루어진 “아우슈비츠”를 상징적 기준점으로 삼아 예술과 문명의 전후를 나누었다. 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아도르노의 이 같은 명언을 떠올려보면 유태인 집단학살을 다룬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2002)에서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쇼팽의 피아노곡들이 전편에 깔리는 것은 얄궂기까지 한 일이다. 이는 물론 실존인물을 모델로 한 영화 속 주인공 피아니스트 스필만이 쇼팽과 같은 폴란드인이라는 점을 고려한 설정일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영화라는 시청각적 체험의 도구를 통해 아도르노의 비관적 예술관을 실험해 보기라도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