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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집에 손을 넣으면

모두의 예술교육⑪ 감각의 경계를 확장하기

어릴 때 두꺼비 집을 만들어본 적 있는가. 손등 위에 흙을 올리고 조심조심 두드려 집을 짓고, 완성되면 손을 빼내어 작은 구멍을 남긴다. 그 구멍 속으로 누군가의 손가락이 들어올 때의 감각. 서로의 세계가 처음으로 맞닿는 그 순간. 나는 감각을 나누는 일이 꼭 그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흙집은 모양이 다 다르고, 들여다봐도 잘 모르고, 손을 직접 넣어봐야만 비로소 무언가를 알게 된다. 나는 보청기 없이 일상을 보내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 눈에는 멍때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나는 그 시간에 관찰하고 있다. 내 몸에서 발생하는 움직임이

차별하지 않는 법보다 함께 웃는 법을

모두의 예술교육⑩ 서로의 다름을 배우는 교실

최근 서울연극협회 정회원 면접 과정에서 장애예술을 향한 차별을 야기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로 인해 연극·예술·장애·인권 연대가 형성되었고 차별 발언을 한 당사자의 사퇴를 요구하는 일까지 이어졌다. 사실 차별적인 발언과 행위는 자주 일어난다. 다만 특정 인물이나 공적인 자리에서 드러날 때 비로소 사건이 된다. 지금 이 원고를 쓰기 위해 앉아 있는 카페에서도 나는 차별을 겪었다. 키오스크 앞에서 점프하며 음료를 고르는 나를 보며 키득거리는 커플의 웃음을 들었다. 누군가에겐 찰나의 해프닝일지 모르나 당사자에겐 일상에 늘 존재하는 혐오의 한 장면이다. 40여 년을 그렇게 살아오며 내린 결론은 그

함께 서는 예술가들

모두의 예술교육⑨ 같이 만들어가는 무대

예술가란 무엇일까? 예술을 하는 사람을 예술가라고 하지. 예술의 정의가 있던가 그렇다면 정의된 예술이란 무엇인가? 아니 그보다 예술을 정의할 필요가 있던가? “그저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예술가로서 전하면 그것이 예술가고 예술이 아니던가.” 2025 프로젝트 예술단 옴니버스의 ‘?공연’ <다다다닷>(읽다 추다 그리다 노래하닷)은 이런 생각에서 시작한다. 세상은 수많은 예술가가 살아가고 있고 대중은 그들의 예술을 보며 살아간다. 그리고 예술가와 예술을 보는 대중들 속에는 장애인도 있다. 2023년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에서 진행한 미디어 오페라 <메마른 땅 위의 동물왕국>을 진행할 당시, 비장애인 배우로 참여했던 나는

표현의 길 위에 경사로 놓기

모두의 예술교육⑧ 예술교육에서의 접근성

발달장애 또는 자폐 스펙트럼, 신경다양인으로 불리는 아동, 청소년들과 경기도 북쪽 연천군에 창작공간을 마련해 함께 시각예술 작업을 하고 있다. 2025년에는 경기문화재단 지역문화 활성화 사업으로 다양성을 담는 넉넉한 예술이라는 의미의 시각예술 교육 프로그램 <넉넉>을 진행했다. <넉넉>에는 이미 자신의 그림 언어를 가지고 있는, 시각예술 분야에서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한 사람과 아직 그렇지 않은, 자신만의 무엇을 발견하지 못한 또는 크게 흥미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 같이 지원했다. 후자의 그룹을 관찰하게 된 이야기다. 창작공간ㄴㄴ(니은니은) 외부 우재만의 가을 감각하기 우재(가명)는 초등학교 5학년이다.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첫날, 부모님과

접근성 수단이 예술로 자리 잡기까지

모두의 예술교육⑦ 서로 다른 속도로 함께 걷기

지난해 6월, 나의 첫 개인전 《터치투어⠁⠢마음씨》가 태어났다. 터치투어는 시각장애인이 전시나 공연을 이해하는데 촉각을 통해 돕는 수단으로, 미니어처 공간 모형이나 무대 위 소품을 직접 만져보고 배우의 동선을 경험하는 방식이 있다. 퍼포먼스와 지도 작업을 이어온 나에게 터치투어는 자연스러운 형식이자 작업 주제로 다가왔고, 이를 전시 제목으로 내거는 순간 나는 저시력자임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세계에 안겼다. 사전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부제로 ‘⠁⠢(‘그러므로’의 점자표기) 마음씨’를 붙였다. 당시 나의 가장 중요한 작업은 ‘내가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자’였다. 시각, 체계, 분석과 같은 단어로 가득 찬 나의 작업은, 나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선택할 권리, 멈출 자유, 안전한 시간

모두의 예술교육⑥ 각자의 방식을 인정하는 미술 수업

나는 장애인복지관에서 발달장애 아동 및 청년들과 미술 수업을 5년여 진행해 왔다. 나는 이 시간을 ‘가르친다’라고 표현 안 한다. 그러고 싶지 않다. 대신 함께 ‘논다’ ‘작업한다’라고 얘기한다. 수업 시간은 늘 조금 소란스럽고 예측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붓을 잡자마자 종이를 벗어나 바닥까지 물감을 흘리고, 누군가는 한 가지 색만 집요하게 반복한다. 또 누구는 가만히 머물며 다른 세상을 꿈꾸는 듯하다. 나는 이 모든 장면을 ‘지도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 흥이 오르는 순간으로 바라보려 애쓴다. 예술교육이란 결국, 잘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자기 방식으로 존재하도록 허락하는 일이라고 믿기

나와 우리부터 시작하는 턱 없는 세상

모두의 예술교육⑤ 접근성에 관한 오해와 이해

휠체어 타는 딸이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장애를 무의미하게’ 무의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휠체어 이용자들의 눈높이로, 시민 200여 명이 모여 만든 「서울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는 그 지도를 쓸 필요가 없는 현장을 만드는 게 최종 목표였다. 그 후 10년이 지나, 무의는 서울지하철에서 휠체어 눈높이의 표지판 디자인인 ‘모두의 지하철’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접근성이 필요함을 설득하고 솔루션을 찾아가는 과정은 이렇게나 지리하고 길다. 접근성은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속해야 할 과정’이기도 하다. 장애는 장애인 수만큼 다양하고 시대에 따라 요구사항이

다른 듯 닮은 두 세계는 춤이 되고, 말이 되고

모두의 예술교육④ 탈춤과 수어의 맞장구

천하제일탈공작소(이하 천탈)는 2020년부터 장애와 접근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무장애 공연을 꾸준히 시도해왔다. 무장애 공연을 만들 때는 장면이 완성될 즈음 수어 통역사, 문자 통역사, 음성해설가가 함께 후반 작업에 들어간다. 연습실에서는 각자의 역할에 집중하느라 미처 보지 못했는데, 공연장에 들어서자 창작진 모두의 언어와 감각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협업의 순간이 펼쳐졌다. 예술을 통해 자연스럽게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질문과 답을 찾아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천탈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러한 감각을 이어가며, 과거 탈춤 속 장애 캐릭터의 의미와 사회적 인식을 함께 탐구했고, 이를 오늘의 감수성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모두의 예술교육③ 저시력 당사자와 함께 감각의 경로 그리기

‘감각 너머’는 리움미술관의 접근성 프로그램으로, 해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 한 해 동안 워크숍, 강연, 포럼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간다. 2025년의 주제는 ‘미디어’이다. 여기서 말하는 미디어는 단순한 기술적 매체라기보다, 감각과 감각 사이를 잇는 매개로서의 가능성을 탐색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탐색의 연장선에서 기획된 워크숍이 바로 <보자보다보니까>이다. 이 워크숍은 시각장애인, 그중에서도 ‘저시력’이라는 넓고 다양한 감각적 스펙트럼을 지닌 관객들과 함께 ‘접근 가능한 전시 감상’에 대해 고민하고 실험한 리서치 기반의 프로젝트다. 기존의 접근성 장치들이 주로 시각 정보를 전달하거나 대체하는 데 집중해왔다면, 이 워크숍은 ‘감각의 대체’를 넘어

기다림에서 피어나는 시

모두의 예술교육② 느린학습자와 함께하는 시 창작

시는 인칭의 장르다. 정확히는 인칭의 범위를 새롭게 재고하는 장르다. 직접 선택한 낱말들과 그 배치를 활용해 ‘나’의 마음을 설명하고, ‘너’와 닮아 있는 것을 찾고, ‘우리’라고 불러보고 싶은 공동체의 범위를 새롭게 모색해 보는 일. 그렇게 인칭과 명사를 탐구하고, 우리를 부르는 이름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지 묻는 일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을 새롭게 배치하는 과정과도 분명 맞물릴 것이다. 결국 시 쓰기는 호명의 역학 안에서 주체성을 새롭게 고민할 수 있는 굉장히 정치적인 수행이 될 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우리 중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통하는 모양이야

모두의 예술교육① 보완대체의사소통 AAC

까치발을 들고 활짝 웃음을 띠며 손 흔드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누구나 그의 반가움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맞추는 사람을 보면 그가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느낀다. 조심스레 누군가의 어깨를 토닥이는 손길에서는 따뜻한 위로가 전해진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말로는 다 전할 수 없는 마음이 있다는 것까지도. 전시 《말하지 않아도 : Without Words》우리가 통하는 모양이야: 함께 만드는 AAC 그림상징 보완대체의사소통이란 보완대체의사소통(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 이하 AAC)은 말(구어)과 글(문어)로 의사소통하기 어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