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없는 질문을 품고, 살아있는 경험을 담아

예술가의 감성템⑦ 나무, 요리, 공동체

손바닥 너비의 작은 책으로부터 시작된 계기였다. 그 책은 우연히 눈앞에 나타나 예술이 주는 즐거움만을 추구하던 나에게 멈추어 생각해 볼 질문을 던져주었다. 1902년 독일, 카푸스라는 열아홉 살의 젊은 학생은 입대를 앞두고 대시인 릴케에게 자신이 쓴 시를 보내며 비평해 줄 것을, 자신의 앞날에 대한 조언을 청한다. 그리고 릴케는 답장을 보내온다. 이렇게 시작된 서신 왕래는 1908년까지 이어졌고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문학도들뿐 아니라 수많은 젊은이에게 영감을 주었다. 편지라는 형식은 당시 나에게 마음속 뒤편으로 미뤄두었던 답답함과 굳이 끄집어내어 고민하고 싶지 않던 현실의 상황을 살피는데

깊숙한 산골 폐교를 시끌벅적 거점으로

박연숙 자계예술촌 대표

아무 연고도 없이, 면 소재지도 아닌 깊숙한 마을에 이주하여 살아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농사짓는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오래 버틴다는 것은 좀처럼 상상할 수 없다. ‘익명성’이란 존재할 수 없이 온전한 삶을 보여주며 맞부대껴야 하기 때문이다. 자계예술촌이 2001년부터 지금까지 마을 초입에 상징과도 같은 학교 부지를 임대해 이토록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은 상호 존중과 배려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관계에 욕심내지 않고 스멀스멀 스며들며 살그머니 번져 나갔다. 마치 동틀 무렵 번지는 햇살처럼, 해 질 무렵 은은하게 스미는 노을처럼 그러했다.

시절인연 – 소중하게, 의연하게

만남과 헤어짐을 위한 다짐

프롤로그: 사랑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불교 용어 중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말이 있다. 업(業)과 연(緣)이 쌓여 만드는 인연으로 그때가 되면 일어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연이 닿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내게 묘한 마음의 힘을 갖게 한다. ‘시절인연’ 뜻대로라면 일어날 일은 언젠간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이고 그 결과 또한 본인의 의지만으로 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과를 위해 본인 딴에 했던 노력은 예상했던 결과나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기도 하며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행위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결과를 본인의 책임으로 전가한다면 밤마다 자신을 책망하고

‘요나’는 고래일까, 우리일까?

오늘부터 그린⑫ 지구와 다름없는 나를 위하여

아마도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언저리였을터다. 공연장에서 마주한 동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안톤 체홉도, 셰익스피어도 훌륭해. 그러나 나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땅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어.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이제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더러는 끄덕였고 더러는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리고 몇몇은 “당연해!”라며 손을 맞잡았다. 그렇게 ‘콜렉티브 지구숨숨’이 탄생했다. 그림 없는 그림책 <요나이야기> 프로그램에 참여해 어린이 작가들이 만든 작품 나와 고래, 그리고 요나 나의 스쿠버 다이빙은 순전히 고래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다이빙 용어로 50깡(50번)의 다이빙을 했지만 (아직도

맞이해야 쓸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

예술의 지속가능에 관한 단상

민○과 현○은 바닷가 마을의 무너져 내리는 멋진 공장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을 계기로 여차저차 그 지역으로 이주까지 하였다. 진지하지만 발랄한 이 작가들은 호기심 많은 친구들을 계속 끌어들여 동네에서 같이 놀고 좋은 곳을 진심으로 공유한다. 2년 지나니 동네 친구도 많이 사귀었는데, 밥집 술집 가게 주인들하고 친하다. 이들이 대단한 소비자는 아닐 텐데 만나면 눈에 콩깍지가 낀 것처럼 서로 ‘하트 뿅뿅’ 하고 지낸다. 굴러들어온 돌멩이들 “아니 왜 갑자기 염전에 진심이야?”“여기 염전이 많이 뜨거워요. 보기에는 정말 멋있는데 식민지 시절 간척사업으로 시작했고 지역 소작농의 토지

건강한 자아를 제안하는 다정한 마중물

예술가의 책방⑦ 다대포예술기지

“[아르떼365]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다대포예술기지, 기지대장 이든입니다.” 온라인을 통해 만난 분들에게 항상 위와 같이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색다른 점이 있다면, ‘대원님’이라는 호칭. ‘기지’는 대장이 혼자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대원들과 함께 기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탄생 : 자본주의로의 종속과 상실의 시대 “누가 미친거요? 장차 이룰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는 내가 미친거요? 아니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보는 사람이 미친거요?” – 『돈키호테』 부산의 남서쪽,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로운 이 다대포 어촌마을에 대도시나 작은 동네 모두 피해 갈 수 없는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의 지향점

제2차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 수립을 위한 의견수렴 결과

문화예술교육 정책지원에 관한 정부의 정책 방향과 목표는 문화예술교육지원법에 따라 5년마다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이하 종합계획)의 형태로 발표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1차 종합계획(2018~2022)에 이어 2차 종합계획(2023~2027) 수립을 준비하고 있다. 작년에는 1차 종합계획과 1차 지역별 종합계획에 관한 이행현황 분석 연구를 통해 1차 종합계획의 현주소를 점검하였다. 올해는 2차 종합계획 수립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해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지난 2월, 민관합동 협의체인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 수립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원회)를 발족하였고, ‘2차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 수립 정책연구’를 통해 1차 종합계획 이후 정책성과와 한계를 점검하고, 변화된 사회환경 분석을 통해 2차 종합계획의 방향을 도출하고 있다. 2차

호기심과 도전으로 시작하는 놀랍고 즐거운 예술 실험

어쩌다 예술쌤⑬ 융복합 문화예술교육 만들기

사람들은 내게 “참 열정적이다. 그런데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거냐?”라고 묻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대답한다. 내가 바라본 나의 모습, 나를 나타내는 단어들은 호기심, 열정, 실험정신, 도전정신이다. 여기에 좀 더 덧붙이자면, 아이디어가 뛰어나고, 참 잘 노는 사람이다. 대학 졸업 후엔 광고대행사에서 PD로 광고영상을 제작하기도 했고, 잠깐이지만 이벤트 기획도 했었다. 앞선 모든 경험은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밑받침이 되고 있다. 현재 나는 예술교육가이며 문화예술교육 기획자이고 시각미술 작가다. 요즘은 ‘예술교육가’로서 융합교육 기획에 빠져있다. 경기지역 학교예술강사지원 기획사업 – <무색유취(無色有臭) 예술과의 만남 :

상상과 몰입이 촉발하는 기획의 색깔

임성연 무소속연구소 대표

2020년대는 그야말로 문화기획의 시대이다. 공연, 전시, 축제와 같은 전통적인 문화기획의 영역부터 지역, 도시를 경유하는 새로운 영역까지, 문화기획자의 행보가 돋보인다. 지금 시대는 예술가에게 기획자로 거듭나기를 요구하며, 동시에 ‘예술적인’ 기획을 추구하고 있다. 무소속연구소는 2009년 독립 큐레이터를 중심으로 결성되어 현재는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장르와 주제를 전방위적으로 오고 가며 자신만의 기획적 색깔을 공고히 만들어나가고 있다. 무소속연구소의 임성연 대표를 만나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소속연구소만의 고유한 기획적 색깔을 유지할 수 있었던 전략과 방향성에 관해 이야기 나누었다. 이력을 보니, 조각을 전공했다. 어떻게 문화기획 일을 시작하게

학교와 예술, 교육을 엮는 예술적 모색

마포문화재단 <꿈타래엮기>

팬데믹이 3년 차로 접어든 지금 주위를 둘러본다. 코로나19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고, 학교문화예술교육 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그간 새로운 형태의 문화예술교육 방식이 소개되고 곳곳에서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위축된 분위기다. 학교문화예술교육에 관한 깊은 고민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공교육 시스템 내에서 청소년이 예술을 예술답게 만나는 데 중점을 두고 새로운 대면의 규칙을 모색하는 현장으로 마포문화재단 사업을 살펴보았다. 는 기량보다는 예술적 표현에, 정답보다는 발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기 위해 프로그램 실행 전에 먼저 단위별 논의와 협의 과정을 진행한다. 또 교육을 결정짓는

소비를 바꾸고 줄이는 개인의 실천부터 사회의 전환까지

오늘부터 그린⑪ 온실가스를 줄이는 시민행동

매년 전 세계적으로 기후재난 발생빈도가 증가하고 있다. 올해만 하더라도 유럽과 미국은 최악의 가뭄으로 강물이 말라가고 있는데, 파키스탄에는 최악의 폭우로 국토가 물에 잠겼다. 우리나라도 얼마 전 수도권 지역 폭우로 서울 강남이 물에 잠기는 피해가 발생했다. 기후 위기는 우리 일상으로 들어오고 있다. 앞으로 점점 더 기후재난의 발생빈도가 잦아지고 강도가 커질 텐데 걱정이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 세상을 살아갈지 끔찍하다.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인간 활동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한다.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2100년까지 1.5℃ 미만으로

한 사람의 욕구가 우리의 기획으로

청년협동조합 뒷북이 만드는 기획의 문화

예전에 시민기획자들의 기획을 컨설팅할 때 기억에 남은 요구사항이 있었다. “기획이 더 문화적이었으면 좋겠어요.” 이 요구사항을 듣고 한참을 고민했다. ‘문화적’ 기획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아니, 문화기획이란 무엇일까? 나름 문화기획 교육을 받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때로는 다른 이들의 프로젝트에 조언하며 활동해오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문화기획이 뭔지,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아직도 문화기획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설명하지 못하겠지만, 문화기획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선 청년협동조합 뒷북의 활동이 어떤 깨달음을 줄 수 있겠다. 청년협동조합 뒷북(이하 뒷북)은 의왕시에 작은 공간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2014년 공간을 만들고, 2016년 협동조합을 설립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조금 덜 외롭기 위해

제6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ITAC6)에 다녀와서

당신은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가? 예술교육활동가와 예술교육의 변론인을 자처해온 나 자신과 이 글 너머의 독자들에게 가슴에 손을 얹고 질문해본다. 흠, 글쎄, 정말? 매일의 나의 노동 안에 녹아있는 유형·무형의 노력, 틈새 사이를 비집는 실낱같은 전문성, 인간에 대한 변덕스러운 애정을 굳이 들추어가며 의심해본다. 대면의 순간이, 노동의 결과가, 만남의 누적이, 정말 세상을 바꾸는 것을 본 적이 있나, 기획안에 쓰는 “예술교육의 목표”가 설득적인 수사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실질적 동력임을 경험하였나, 아니 바뀌어 질 거라고 애초에 스스로 믿고는 있나, 혼자가 어렵다면 나의 동료가,

규칙을 넘는 유연함, 도전과 확장의 감각으로

‘지금 여기’의 예술교육을 준비하며

얼마 전 코로나에 확진되었다. 검사 결과를 보자마자 드는 생각은 ‘(심각하게) 아프면 어쩌지’가 아니라 ‘잡혀있는 모든 일정은 어떻게 하지?’였다. 경제적 손실뿐 아니라 그동안 애써온 모든 것이 단 일주일 만에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모든 예술가, 예술교육가들이 겪는 두려움일 것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두려움이다. 기후 위기의 중심에 선 예술교육 모두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예술교육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새로운 대면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그러나 나는 분명히 말하고 싶다. 여전히 코로나의 중심에 우리가 있다고. 여전히 감염과 격리와 그에 따른 손실을 두려워해야 하고 변해버린 환경에서

게임의 룰에 따라, 현장의 질문을 따라

온라인 문화예술교육 저작권 가이드라인 활용안내서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은 예술교육을 온라인에서 이어갈 방안을 모색하도록 이끌었다. 예술교육에 관여된 예술가, 예술강사, 기획자, 여러 시설 및 기관 등 매개자들은 참여자들에게 비대면 학습 방법을 다각적으로 고안하는 가운데 온라인 환경에서의 예술교육이 그 중심에 놓여왔다. 온라인 환경에서 급속도로 확장된 실시간 화상 교육과 교육용 영상 콘텐츠 공유는 학습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예술교육 활동의 공공재로 활약했으나 교육콘텐츠 제작, 배포, 아카이브에 걸친 전 과정에서 고려되어야 하는 저작권 이슈가 주요하게 떠올랐다. 「2022 온라인 문화예술교육 동향 분석 리포트 1호 : 온라인 문화예술교육 저작권 가이드라인

그 자체로 충실하게, 전혀 낯설게

예술가의 감성템⑥ 돌, 돌, 그리고 돌

문득 특별한 감정에 휩싸여 이상한(?) 것을 줍거나 구입하거나 괜한 수고를 들여서 구하는 경우가 있다. 생활공간에 훌쩍 쌓여버린 그 이상한 것들을 마주할 때면 당시에 느꼈던 특별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치 모르는 이와 마주 앉아있는 것처럼 난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면 당시의 주변 상황과 환경을 상기하거나, 당시의 감정에 작용했을 여러 자극들을 떠올려서 그 의미를 다시 찾아보려고 시도한다. 이상한 것들을 폐기하지 않고 여기에 계속 두어야 할 마땅한 가치를 찾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일련의 되새김질 과정에서 당시의 추상적이고 모호했던 감정들이 현재의 시점에서 구체화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