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교, 학습자,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 등이 다양한 형태로 협업하여 문화예술교육의 장을 학교 밖으로 확장하는 마을교육공동체 기반의 문화예술교육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개인 삶의 질을 향상할 뿐만 아니라 마을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할 수 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지만, 동시에 다양한 주체가 모두 연대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기도 하다. 따라서 학교와 마을을 연결하는 매개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며, 특히 학생들이 지역사회 프로그램과 연계하여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적 환경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문화예술교육환경을 학교와 마을에 모두 제시해줄 수 있는 가장 최적의 매개자는 바로 교사일 것이다.
교사가 뿌리고 아이들이 꽃피우는
2019년도에 신규교사로서 마주한 학교의 첫인상은 ‘삭막하다’였다. 학교 건물은 약간의 논밭과 공단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내부도 따뜻한 느낌보다는 차갑고 딱딱한 느낌이 더 강했다. 아이들 역시 문화예술과 관련된 경험이 부족하여 예술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나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이벤트 같은 일회성 수업이 아닌 지속성이 있는 수업으로 아이들의 디자인적 사고력과 시각적 문해력을 높여주고 싶었다. ‘나만의 수업 브랜드는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예술 활동으로 학교 환경을 변화시키고 학생과 교사, 더 나아가 마을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을 하던 중 ‘예술꽃 씨앗학교’를 알게 되었고, 동료 교사들과의 논의 끝에 이 사업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예술꽃 씨앗학교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고민했던 것은 우리 학교가 마을의 문화예술 중심지 역할을 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지역 자원이 무엇인지, 기존의 문화예술교육과 어떤 차별점을 둘 수 있을지였다. 그리고 나는 학교의 인적 자원과 마을의 이야기에서 그 답을 찾았다. 먼저 여러 교과를 융합하여 기초, 시각, 환경디자인으로 묶고, 학년별 디자인 프로젝트형 수업을 계획했다. 아이들이 주제에 맞는 디자인 아이디어를 내고 협력을 통해 해결방안을 직접 찾아내는 수업이다. 단순한 디자인 기능 습득보다는 함께 융합 수업을 진행하는 각 교과의 목표에 맞는 디자인 이해와 활용에 초점을 맞췄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 따라 사고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 1학년은 자신의 이야기를, 2, 3학년은 학교와 마을의 이야기를 프로젝트의 큰 주제로 선정하였다.
학교 환경 중 개선하고 싶은 점을 찾고 디자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주제를 제시한 적이 있다. 아이들은 학교 앞 버스정류장을 꼽았다. 학교 앞 버스정류장은 신호등과 안내판도 없고, 차가 빠르게 지나다녀 위험한 곳이다. 아이들은 무지개 색깔의 천을 활용하여 통학로를 꾸미면 시각적 아름다움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차와 행인들의 주의를 환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리고 학교 앞 구름다리에 직접 천을 감았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학교가 보일 때마다, 정류장에서 학교로 들어올 때마다 스스로 뿌듯해했다. 나 역시도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학교의 인적 자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다. 우리 학교의 진정한 인적 자원은 교사가 아니라 아이들이었다.
마을의 이야기를 디자인하다
문화예술교육의 장을 넓히기 위해서는 학교 외부와의 소통도 중요했다. 충청남도교육청 평생교육원과 연계하여 중등 문해 교육을 받는 어르신들과 학생들이 함께하는 활동을 진행했다. 어르신들이 쓴 일기와 어릴 적 이야기를 학생들이 재구성하여 만화로 제작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그린 스케치에 어르신들이 색칠하기도 했다. 어르신들이 마을을 생각하며 쓴 글을 활용해서 달력이나 메모지 등 마을 기념품을 만들어 나누기도 하였다.
여러 해 동안 진행된 공동교육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다양한 삶을 이해할 기회를 얻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읽고 들으면서 깊이 생각하고 시각적으로 표현하면서 세대를 넘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어르신들도 자신의 이야기가 만화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살펴보고 아이들과 작품을 매개로 소통하며 잠시나마 경험하는 학교생활에 즐거워하셨다. 그리고 작품이 평생교육원에, 학교에 전시되는 것을 보면서 뿌듯함과 문화예술교육의 소중함을 전하셨다.
2022년에는 코로나19로 침체된 마을과 학교에 활기를 주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비대면 활동이 많아지고 가상공간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는 사회적 현상에 착안하여 메타버스와 영상을 활용한 온라인 홍보관을 만들었다. 우리 마을의 문화적, 역사적 장소를 찾아가서 인터뷰하고, 이를 토대로 주제별 지도를 만들어 나누기도 했다. 아이들은 디자인 수업을 매개로 학교 밖의 마을 사람들과 소통했다. 언어적 정보를 시각적 정보로 재구성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디자인 요소가 무엇인지 서로 이야기했다. 예술꽃 씨앗학교 3년차, 목표로 삼았던 ‘디자인적 사고력’과 ‘시각적 문해력’이 아이들에게 점차 뿌리내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2022 우리 마을 가상공간(천안 목천, 병천, 성남, 수신 일대)
[출처] 메타버스 ZEP-천남중학교
[출처] 메타버스 ZEP-천남중학교
마을의 예술 거점, 학교
새 학년도가 시작되기 전, 융합 수업을 위한 회의를 하면서 문득 우리가 지난 3년 동안 가장 가까운 마을 교육공동체인 가정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해는 가족을 주제로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어와 기술·가정, 미술 교과를 융합하여 충남의 특산물을 활용한 레시피북을 만들고 있다. 아이들이 직접 요리를 하고 과정과 결과를 책으로 만드는데, 각 가정의 요리법을 담은 특색있는 요리책을 기대하고 있다. 가족 구성원의 이야기를 인터뷰하여 부모님의 러브스토리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만화로 재구성하거나 전교생의 사연을 받아서 한 컷 만화로 제작하고 있기도 하다. 완성된 작품은 12월에 열릴 ‘제4회 천남, 마을을 품다’에서 전시하고, 영상으로도 제작하여 천남중학교 유튜브에 탑재할 예정이다.
올해는 예술꽃 씨앗학교 4년 차로, 사업을 마무리하는 해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마을의 이슈를 발굴하고 이를 디자인적으로 재구성하는 문화예술교육이 지속되기는 쉽지 않다. 또한 한 학교가 마을 내에서 문화예술교육의 거점으로 자리 잡고, 마을교육공동체가 함께 하나의 색을 지닌 예술적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 또한 힘든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4년 동안 예술꽃 씨앗학교를 함께 만들어 온 천남둥이들과 열정 가득한 교사들, 마을교육공동체 구성원의 마음에 피운 작은 예술꽃이 지역과 오랫동안 함께하면서 새로운 문화예술교육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이영심
- 충청남도교육청 천남중학교 미술 교사로 재직 중이다. 예술꽃 씨앗학교, 천안 미술교과연구회 등을 운영 중이며, 교과 융합 수업, 마을 교육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예술교육뿐 아니라 다문화 교육에도 관심이 많아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 석사과정을 이수하였다. 삶 속에 예술이 녹아들어 학생과 교사 모두가 학교를 놀이터처럼 느낄 수 있는 행복한 학교 환경을 디자인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y2k1533@gmail.com
인스타그램 @simi_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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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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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꽃씨가 날아가 온 마을이 함께 문화 예술 꽃을 피웠네요.
정말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