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연고도 없이, 면 소재지도 아닌 깊숙한 마을에 이주하여 살아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농사짓는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오래 버틴다는 것은 좀처럼 상상할 수 없다. ‘익명성’이란 존재할 수 없이 온전한 삶을 보여주며 맞부대껴야 하기 때문이다. 자계예술촌이 2001년부터 지금까지 마을 초입에 상징과도 같은 학교 부지를 임대해 이토록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은 상호 존중과 배려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관계에 욕심내지 않고 스멀스멀 스며들며 살그머니 번져 나갔다. 마치 동틀 무렵 번지는 햇살처럼, 해 질 무렵 은은하게 스미는 노을처럼 그러했다.
짐작했겠지만, 자계예술촌은 구불텅 구부렁한 산길을 한참 가야 나오는 빽빽한 숲을 헤치고서야 나오는 곳이다. 영동에서도 한참 오지인 용화면은 충북 영동군과 전북 무주군의 경계에 있다. 변방에서 변화가 시작되고, 경계에서 꽃이 핀다고 했던가. 영동과 무주의 문화다양성은 그들이 이짝저짝을 돌아댕기며 신명 나게 놀 수 있는 무대가 되었다. 무엇보다 유랑하지 않고 거점 공간에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는 그것 자체로 자계예술촌은 평가받을 만하다. 매년 ‘산골공연예술잔치’를 열어 지도상에도 찾기 어려운 조용한 동네를 사람들이 시끌벅적 드나드는 곳으로 만들었으니 자계예술촌의 내공이 어마어마한지 예측할 수 있다.
  • 산골공연예술잔치 포스터
  • 자계풍물패 수업
마을의 일원으로 화합하며
자계예술촌 박연숙 대표와 만났다. 그는 한결같은 설렘을 간직한 채 늘 새로움으로 사람들과 만나는 듯 보였다. 그것이 오래 갈 수 있는 장수의 비결이 아닌가 싶었다. 올해는 자계마을에 자리를 잡은 지 거의 20년 만에 처음으로 자계리 마을회와 ‘감고을 자계마을 연희풍경’이란 축제를 기획했다. 자계예술촌의 설립자이자 예술감독인 박창호 씨가 공을 들여 자계마을 풍물패를 만들었고, 이 풍물패가 기둥이 되어 작은 축제를 열었다. 왜 지금에서야 했느냐고, 누군가는 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삶의 거처가 있는 마을에서 무언가 시작하기란 쉽지 않다. 잘못 엉키다간 삶 전체가 서로 불편할 수 있으니 말이다. 가까운 만큼 조심조심 한 것이다.
“농가들이 워낙에 일이 많고 바쁘세요. 봄부터 가을, 겨울 오기 전까지 농사일이 계속 이어져요. 그래서 마을 분들에게 같이 하자는 말을 하는 게 못내 부담스러웠어요.”
정작 다른 마을에서는 연희를 가르치며 풍물패를 일찌감치 조직했으면서도 자계마을에서는 그만큼 늦었다. 천천히 기다린 만큼 결속력은 강했고, 신뢰의 관계가 바탕이 된 만큼 응집력도 놀라웠다.
“올해 8월에 열아홉 번째 산골공연예술잔치를 열기 전에 마을 잔치를 하면서 겸사겸사 풍물패도 만들었어요. 마을 분들이랑 같이 처음 무언가를 한 해예요. 감동적이더라고요. ‘오래전부터, 숱하게 다른 마을에서 같이 했던 것을 이제야 우리 마을하고 하는구나.’ 첫 수업을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더라고요. 사실 마을에 지원사업이 들어오거나 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가 들어와서 잘 되는 데도 봤지만, 갈등이 생기기도 하잖아요. 이 부분이 너무 걱정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마을을 조심조심 아껴뒀어요.”
하지만, 너무도 자연스럽게 흘렀다. 왜 이걸 이제야 했는지 타박도 했지만, 기쁨도 컸다.
“마을에서 악기도 다 샀어요. 박창호 감독님이 지도하면서 상쇠를 맡을 때도 있지만, 마을 분 중에 풍물패 대표이자 상쇠를 맡으신 분이 따로 계세요. 저희도 자계리 주민이잖아요. 자계풍물패에서 저는 징을 해요. 우리의 풍물패가 만들어진 거죠.”
마을 이야기를 하니 신이 나고 흥이 나는 모양이다. 말이 자연스레 이어진다.
“풍물패는 10명이고, 올해 8월 12일 마을 잔치 공연 때는 박창호 감독님이 공연을 연출하면서 마을 어르신 중에 다듬이질하시는 분, 노래하시는 분을 섭외해 꽤 알차고 재미있게 첫 공연을 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주인공이 된 그런 행사였다. 김덕규 자계리 이장이 작은 팸플릿의 인사말로 다음과 같이 아뢴다. ‘무더운 날씨지만, 바쁜 일손을 잠시 멈추시고 한동안 가까이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보며 옛 학교 터에서 환한 웃음을 지으며 옛정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자리가 되길 빕니다. 모쪼록 이 잔치가 옛 선조부터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온 분들과 새로 이주해 온 분들이 서로 인사도 나누며 함께하는 공동체임을 확인하는 주민화합의 장이 되길 소망합니다’ ‘함께하는 공동체’라는 말이 가슴팍에 퍽 와닿는다.
  • 학교 연극 수업
문화 소외지역의 소외 없는 연극
오로지 연극만 고집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만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멈췄다. 관의 사업도 융통성 있게 받아들이고 인근 예술가와 협동과 연대의 기술을 익혔다. 충북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 거점 지원사업을 하면서 영동 각 마을에 들어가 마을의 활동을 기록하고 풍물패로 마을을 활성화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다른 예술인들과 협업하여 다양한 공예 수업도 하고, 영동교육지원청과 협력하여 학기 단위로 연극을 테마로 수업을 하고 있다.
“영동에서는 이수초, 영동초, 황간초등학교 등 3개 학교 5, 6학년 17개 반이 참여해요. 1학기에 7개 반은 끝났고 2학기에 10개 반을 진행하느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계속 수업이 있어요. 무주에서도 1, 2학년 아이들하고 연극 만들기 수업이 있거든요. 교육청과 같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수업이 많아졌어요. 제가 원래 아침형 인간이 아닌데 1교시 수업을 하느라 요즘 정신없네요.”
올해는 연극제작을 하거나 배우로 공연하는 것에서 연극을 매개로 교육하는 활동이 더 많아지면서 느끼고 배우는 것들도 많다.
“올해 학교 수업을 준비하면서 현장에서 배운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어요. 또 교사 연수까지 겸하는 수업을 하다 보니까 그동안 수업했던 것을 되돌아보면서 다른 마음으로 준비하게 되더라고요.”
보통 ‘연극’하면 무대에 서는 배우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배우만 주인공이고, 나머지는 보이지 않으니 중요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배우로 무대에 섰던 그는 연극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력이 깃들어 있는지 알리고 싶었다. 게다가 모든 학생을 참여시키려면 각자의 성향에 맞는 일을 주어야 했다. 모두가 무대에 서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연극 수업은) 좋은 퀄리티의 결과물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과정이 중심이에요. 이 수업이 교과과정을 담은 것이지만, 저는 학교 밖에 있는 전문가이니만큼 더욱 현장성 있게 전해주고 싶었어요. 보통 ‘연극 한번 해볼래?’ 하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배우이고, 그걸 즐겁게 기대하는 친구가 있는 반면에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친구도 있어요. 학생 수가 많아도 다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요. 그래서 배우 외에 학생 연출과 미술팀, 홍보팀 기록팀 등을 두었어요. 연극 발표가 끝난 뒤 마지막 시간에는 반별로 기록한 친구들의 영상을 같이 보고 프로그램 북을 만들어요. 우리 공연이 어땠는지, 각자 역할을 하면서 느꼈던 점 등을 적고 한두 장씩 사진을 붙여요.”
그렇게 일을 배분하고 서로의 역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성격과 능력에 무관하게 각자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통해 모두를 위해 기여하게 만드는 것, 보는 연극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하는 공동체의 역할극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그는 어떻게 이런 생각으로 확장하고 깊이 있게 나가게 되었을까?
“전 배우이기도 하지만 자계예술촌 대표로서 연극을 제작하면서 연출, 무대 소품, 미술 쪽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연극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졌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연극 공연을 보기 전에 뭐가 가장 기대되는지 물어보면 ‘배우가 대사를 잘할까? 잘생겼을까?’ 하면서 배우 중심 이야기만 나와요. 사실 공연은 연출의 의도를 중심으로 다양한 것들이 모인 거잖아요. 제 수업 후에는 아이들이 공연을 감상할 때 조금 다른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무대 조명을 보거나 음악을 들을 때, 공연 포스터를 볼 때도 만든 사람, 작품의 의도 등을 생각할 수 있게 되길 바라요.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게 되면 연극을 더 재미있게 느끼고 좋아하는 관객이 더 많아지겠지요.
한 학기 동안의 수업을 끝내고 받는 감동적인 피드백은 또 다른 에너지가 됐다. 이쯤 되면 연극은 예술의 한 장르를 넘어서 관계를 치유하고 공동체를 응집시키는 힘을 가진 사회적 기술이란 생각이 들었다.
“연극 수업을 하려면,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관계가 잘 이루어져야 해요. 연극같이 서로 협력하고 양보해야 하는 장르가 드물거든요. 수업이 끝날 때 후기처럼 하고 싶은 말을 쓴 짧은 편지를 받는데 ‘1학기 때 덜 친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잘 몰랐던 친구의 이런 면을 알게 됐어요’ ‘나에게 이런 면이 있는 것을 몰랐어요’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아졌어요’ 같은 얘기를 하더라고요. 이런 피드백이 예술교육을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해요.”
  • 제19회 산골공연예술잔치(2022)
  • 예술강사 연구모임
조금 더 가까이, 조금 더 새롭게
시골 깊숙하게 있는 것이 사색과 성찰에 큰 장점이 있다면, 사람들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불편함도 있다. 더 많이 더 자주 만나서 연극이 가진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싶은데 그게 어렵다. 특히나 연극이란 장르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시골 지역에서는 더 그렇다. 마음속 바람이 있다면 읍내에 작은 소극장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영동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며 연극에 대한 못다 이룬 꿈을 꾸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계예술촌이 영동군에 등록된 유일한 소극장이에요. 우리 극장이 읍내에 있으면 좀 더 다양한 것을 할 텐데, 아쉬운 면도 있어요. 접근성 좋은 옥천이나 영동에 2호를 만들어볼까요? 소극장이 읍내에 있으면 동아리 활동도 하고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충청북도에서 남부권은 특히 문화 소외지역이다. 중부권이 도청소재지인 청주 중심으로, 북부권이 충주, 제천 같은 시 단위 중심으로 문화 활동이 비교적 활발하다면, 고만고만한 농촌 군 단위가 모여 있는 남부권은 열악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계예술촌에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많다.
“자계예술촌은 행정 구역을 떠나서 실제 접근하고 교류하는 관객이 영동, 보은, 옥천, 무주 등 여러 곳에 있어요. 우리가 문화예술교육 거점으로서 남부권을 아우르는 활동을 하기를 기대하는 분들이 많아요.”
문화예술교육 거점이 되기 위해서 연극이라는 장르만 고집하지 않고 다른 장르와도 연계하면서 품을 넓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연극은 여러 장르가 모인 종합예술이잖아요. 예술교육을 할 때도 프로그램에 연극만 넣지 않아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강사들과 각자 익숙한 재료와 방법을 가지고 서로 열어놓고 연구하는 모임을 하고 있어요. 예술강사 연구모임에 미술 분야 선생님이 계셔서 요즘은 아크릴을 가지고 놀아요. 오래전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긴 했어요. 아크릴과 한지, 아크릴과 보존화를 접목하기도 하고요.”
20년 넘게 연극, 그리고 자계예술촌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온 그가 요즘 고민하는 것을 듣고 싶었다.
“자계예술촌과 저를 잘 분리하지 못하고 살았어요. 그것이 저에게는 숙제예요. 최근 3, 4년 동안 ‘내년엔 쉬어야지’ 했는데 아직도 못 쉬고 있네요. 제가 쉬더라도 이 공간에서 지금까지 해 온 것을 기반으로 지역 중심의 프로젝트가 계속 이뤄지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선 같은 뜻을 가진 누군가가 정말 필요해요.”
그는 이제 자계예술촌을 젊은 예술가들에게 아낌없이 내어주고 싶다. 이제까지 일구어 온 유기농 토양에 많은 씨앗이 심어져서 뿌리가 생기고 새싹이 자라날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고 싶다고 했다. 연극에서 문화예술교육, 후배 예술가 양성까지 시간이 지나면서 시대가 바뀌면서 그에게 주어진 사명과 역할에 대해 묵묵하게 받아들이면서 여전히 자계예술촌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 꾸준함이 그도 자계예술촌도 끊임없이 살아내게 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앞으로 그의 여정이 더 궁금해졌다.
박연숙

박연숙

연극배우이자 기획자, 문화예술교육가. 심리학을 전공하고 사이코드라마에 흥미를 느껴 연극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게 되었고, 대전에 극단 터에서 배우로 연극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아동,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연극 교육을 하고 있으며, 2010년부터 지금까지 자계예술촌 대표를 맡고 있다.
teofriend@kakao.com자계예술촌 jagyear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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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호
황민호
옥천신문 대표. 대전에서 나고 자라 20대 후반 청년기부터 옥천 사람이 되었다. 반생은 옥천에서 살고 있고 그 파이는 앞으로도 더 커질 것이다. 옥천은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다. 도시와 농촌, 물과 환경, 자치와 자급, 순환과 공생, 협동과 연대의 가치를 알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작은 코뮌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 그것을 체감케 해주었다. 작은 코뮌들이 연대할 때 우리의 일상은 탄탄해지고 차별과 소외는 불식될 것이라 믿는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초석이자 보루라고 생각하는 풀뿌리 언론 옥천신문에서 일하고 있다.
minho@okinews.com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프로그램 사진 제공_자계예술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