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365]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다대포예술기지, 기지대장 이든입니다.”
온라인을 통해 만난 분들에게 항상 위와 같이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색다른 점이 있다면, ‘대원님’이라는 호칭. ‘기지’는 대장이 혼자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대원들과 함께 기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탄생 : 자본주의로의 종속과 상실의 시대
“누가 미친거요? 장차 이룰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는 내가 미친거요? 아니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보는 사람이 미친거요?”
– 『돈키호테』
부산의 남서쪽,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로운 이 다대포 어촌마을에 대도시나 작은 동네 모두 피해 갈 수 없는 삭막한 바람이 불고 있다. “부산에서 오션뷰를 가장 저렴하게 누릴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장소”로 유명해진 탓이다. 노을이 예뻐 아는 사람만 찾던 이곳에 거대한 자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2021년 2월, 한 가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실험 제목이자 목적]은 <상실의 시대 : 인류애를 가진 개인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모델이 될 수 있는가>, [실험 주체]는 ‘나’이고, [시험 대상]은 ‘자본주의 사회’이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고, 인간을 그저 노동력 단위로 전락시킨 사회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바라보는 눈을 가진 사회>로 만들기 위해 내 모든 인류애를 벼려, 나를 내어주기로 했다. 망할 것이 자명하지만, 나는 사람과 사랑을 얻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그해 8월, 다대포예술기지(이하 기지)가 설립되었다.
  • 음악공연
  • 홈파티
실험 : 모두를 예술가로 만들어보자
예술은 자연을 모방하며 출발했고, 문화는 인간의 인지로 시작했다. 다대포는 아름다운 노을과 잔잔한 바다, 수천 종의 동·식물 소리로 ‘충분한’ 예술이 숨 쉬는 어촌이다. 20여 개국을 다녀보았지만, 다대포 일몰을 뛰어넘는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 말인즉, 다대포 원주민에게는 이미 ‘충분한’ 예술이 있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억지로 쥐어짜낸 예술이 아니라 콘텐츠와 그것을 이어갈 문화의 물꼬를 터주는 사람이다. 지식에서 지혜, 지혜에서 용기를 제안하는 사람. 무감각해진 우리의 굳은 마음을 비틀어 질문하는 사람 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을 ‘예술가’라고 부른다. 그들은 타인과 자신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그 의도를 빚어낸다. 그래서 예술가는 생산자이다. 기지는 소비자로 전락한 인간의 삶을 생산자적 삶으로 전환하기 위해 과거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등불이자, 숨결인 ‘좋은 책’을 활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마중물로 ‘이든’을 등장시켰다.
  • 팝업 스토어
사라진 모든 것들에게
공간을 꾸리기 시작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3개월간 직접 인테리어를 했던 터라 속도는 더뎠지만, 시작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기지는 지난 8월로 딱 1년을 지났고, 이제 2년 차에 들어간다. 완벽한 목적 달성이 어디 있으랴. 이 모든 아쉬움을 덮을만한 진-한 사랑이면 충분하다. 사랑에는 실패가 없다. 기지는 이렇게 혼자 운영함과 동시에 많은 이들의 도움(사랑)으로 운영되는 중이다.
2층에 자리한 기지는 어떤 면에선 굉장히 위험하다. 기지대장 이든과 한 번이라도 대화했다간 더는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 없는 점이 바로 그렇다. 이곳은 알 수 없는 이데아의 세계다. 기지와 이든은 마중물 역할을 자청한다. 책의 마중물이자, 대원들 개개인 스스로가 내면세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마중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기지는 기본적으로 이사갈 때도 챙겨갈 만한 책을 추천하는 서점과 환경보건 연구원 출신으로서 더 나은 음식과 소비를 제안하는 비건 지향 카페로 운영한다. 특별하게는 자본주의로 무감각해져, 진정한 자유를 잃어버린 21세기 프롤레타리아에게 자아의 건강한 회복을 고무시키는 독서 모임을 진행한다. 다대포를 거닐며 대원들과 플로깅을 하고, 매달 열리는 홈파티와 음악공연으로 나이와 상관없는 축제를 벌이기도 한다.
그 외에도 기지 내부에서 작가들에게 북토크를 핑계로 대원들과 식사 자리를 만들고, 근처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만나 책으로 교류하는 등 지역 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기지 내부에서는 팝업스토어나 비주얼아트 전시회 등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러니 와서 경험해 보시라.
  • 다대중학교와 책을 통한 교류 활동
  • 독서모임
뿌리 깊은 나무: 그래서 과연 우리는 유토피아일까?
“불·휘기·픈남·ᄀᆞᆫ ᄇᆞ ᄅᆞ ·매아·니:뮐·ᄊᆡ 。곶:됴·코여·름·하ᄂᆞ ·니”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기에, 그 꽃이 아름답고 그 열매 성하도다.)
–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1447)
기지와 대원들은 성장하는 중이다. 우리는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딛고, 위를 바라본다. 각자의 생활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기지에 모여 삶을 나눈다. 이든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책을 통해 삶을 사랑하는 이유와 방법을 제안한다. 우리는 서로를 관용하고, 귀를 열어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사랑하고 존중해가는 법을 배워간다.
그 유명한 『자본론』의 저자 칼 마르크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여러 가지로 해석만 해왔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명상록』의 저자이자 로마의 오현제 중 한 명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동류의 말을 남겼다. 현생에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고, 할 수도 없지만, 우리는 무감각해진 마음과 생각을 끊임없이 뒤흔든다. 우리는 죽기 직전까지 삶을 사랑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삶을 살아가려 한다. 완벽하지 않지만, 바르게 사는 공동체. 사람을 사람답게 바라봐주는 공동체에 끝이란 없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문화예술의 뿌리이지 않을까.
그러니 기지대장 이든이 먼저 더 깊고 넓게 뿌리를 내려보려 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꽃은 열흘이면 저물지만, 나무는 그렇지 않다. 겸손하게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식물이 자라듯 기지 대원들의 마음에도 삶을 사랑하는 이유와 방법이 뿌리내리고 있다. 전쟁 같은 사회구조 속에서라도 붙잡을 수 있는 즐거움이 샘솟길, 예술가의 근간이 마련되길, 궁극적으로 생산자의 삶을 살길,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연스럽게 문화예술을 꽃피우리라.
기지대장의 추천: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우리 함께 당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당신의 삶은 안녕한가.” 전혀 공격의 의도가 없으니 나의 말씨가 잘 전달되길 바란다. ‘안녕’이라는 단어를 찾아보자. 그리고 무질서와 모순의 사회에서 질서를 찾겠노라는 함정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하자. 나를 통제하여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거친 노력에 발목 잡혀 있지 않은가. 최선/차선/차악/최악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하는 강박에 시달리지는 않는가.
다시 물어보겠다. 이번에도 나의 따뜻한 말씨가 전달되길 빈다. “당신의 삶은 안녕한가.” 혹시 마음이 어지럽거나 대답하기 어렵다면, 당신을 사랑하려 애쓰는 이든의 추천을 받아들여 보는 건 어떤가. 기지에 방문하셔도 좋다. 비록 글은 짧지만, 내 마음은 당신에게 충분히 닿았으면 한다. 소중한 하루 되시라. 이 먼 부산의 남쪽 끝, 기지에서 치열한 당신의 삶에 무운(武運)을 빈다.
“He who has a why to live, can bear with almost any how.”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이든
이든
2021년부터 다대포예술기지 기지대장 이든(Ethan)으로 불렸다. 배운 대로 살고 싶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쓸모없지만 가치 있는 일을 실험적인 공간인 ‘기지’에서 ‘책’을 통해 증명하는 중이다. 실험으로는 <인간을 인간답게 바라보는 눈을 가진 사회: 인류애> <돈과 권력으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부산 사하구 문화예술 살려보기> 등이 있다. 운영비가 부족하진 않지만, 식사비가 부족해 공연기획과 아울렛 카운터에서 하루를 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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