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시민기획자들의 기획을 컨설팅할 때 기억에 남은 요구사항이 있었다. “기획이 더 문화적이었으면 좋겠어요.” 이 요구사항을 듣고 한참을 고민했다. ‘문화적’ 기획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아니, 문화기획이란 무엇일까? 나름 문화기획 교육을 받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때로는 다른 이들의 프로젝트에 조언하며 활동해오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문화기획이 뭔지,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아직도 문화기획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설명하지 못하겠지만, 문화기획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선 청년협동조합 뒷북의 활동이 어떤 깨달음을 줄 수 있겠다.
청년협동조합 뒷북(이하 뒷북)은 의왕시에 작은 공간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2014년 공간을 만들고, 2016년 협동조합을 설립한 이래 지금까지, 여러 기획을 만들어 오고 있다. 행사와 더불어, 교육, 출판, 커뮤니티 활동까지 활동 범위도 다양하다. 뒷북의 기획과 활동을 살펴보면 소위 ‘문화적’이다. 뒷북의 기획은 소소하지만 개성 있고, 개인적이지만 공감 가며, 참여 인원이 많지 않아도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자 한다. 7년간 기획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뒷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올해 부임한 구가온 이사장과 만났다.
욕구에서 출발하는 기획
욕구. 뒷북이 중시하는 키워드 중 하나이다. 개인의 욕구, 조합원의 욕구, 더 나아가 사회의 욕구까지. 뒷북의 기획은 이 욕구를 바탕으로 한다. 뒷북의 시작도 지역 대안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의 욕구로부터 출발했다.
“저희 구성원 중에 대안학교 졸업생이 많은데요. 근처에 대안학교가 있거든요. 우리가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랐고, 그럼 이 동네에서 돈도 벌고 일도 하고 놀거리를 만들어서 지낼 수는 없을까? 이런 생각에서 뒷북이 출발했어요.”
– 구가온 청년협동조합 뒷북 이사장
대안학교 졸업생을 중심으로 출발했지만, 활동을 이어오면서 행사에 참가한 동네 청년들, 졸업생의 친구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하며 현재는 59명의 조합원과 16명의 후원회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합원 중에 20대가 많다보니 뒷북의 활동엔 청년들의 욕구와 고민이 많이 담겨있다. 지역 내에서 다양한 놀거리를 위해 기획한 ‘작은무대’와 청년들이 자신이 가진 소소한 기술을 주변과 나누고, 더불어 강사로서의 역량도 쌓고자 했던 ‘적당기술’ 교육, 조합원들과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 청년잡지 [뒷구르기] 출간 등 어찌 보면 보편적인 고민과 기획일 수 있지만, 그 시작은 생각보다 개인적이다.
개인적 욕구에서 사회적 욕구까지
“제가 튀김을 좋아해서 기름에 풍덩 빠진 돈가스를 먹고 싶은데 집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어렵잖아요. 이런 기름 요리는 항상 뒤처리가 문제니까. 그래도 뒤처리는 혼자 하는 것보다 같이하면 더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이렇게 탄생한 기획이 작은무대로 진행한 ‘프라이데이’ 행사이다. 튀김을 먹고 싶었고, 마침 금요일이어서 시작한 기획이었다. 뒷북 공간에 버너와 냄비, 기름을 제공하고 참여하는 조합원들은 원하는 재료를 준비해 자유롭게 튀김을 만들어 먹었다. 큰 행사는 아니었지만 이러한 경험은 뒷북이 기획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자신감일 수도 있어요. 어쩌면 내가 뭔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뭔가를 해보고 싶은데 뒷북에서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좀 더 쉽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개인적인 욕구로 시작하는 뒷북의 기획은 이외에도 많다. 동네에서 산책하는 강아지와 인사가 너무 하고 싶어서 기획한 ‘내손 산책’, 할로윈 파티를 꼭 ‘호박잔치’라는 이름으로 하고 싶어서 기획한 ‘의왕 호박잔치’ 등. 이렇게 쌓아온 기획 경험은 외부와 연결되고, 개인적인 욕구로 시작하여 사회적인 욕구를 담은 기획까지 이어진다. 그중 하나가 발달장애인 친화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인 ‘쉐어블 프로젝트’이다. 뒷북은 지역의 발달장애인 청년과 비장애인 청년들이 모두 모여 즐길 수 있는 보드게임방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역 내 여러 단체가 함께하는 ‘갈미문화마을’ 사업에 참여해 [내손동]이라는 동네 잡지를 만들고, 문화기획 워크숍 ‘문화기획 찍어먹기’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했다. 또한 의왕시 청년 기본조례 제정을 위한 활동, 비진학 청년 네트워크 파티를 여는 등 개인에서 시작한 단단한 기획의 뿌리는 이제 지역사회로까지 확장해나가고 있다.
만나고 소통하고, 기획이 탄생하는
욕구만 있다고 누구나 쉽게 기획할 수 있을까. 뒷북에는 작은 기획이 생겨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그중 하나가 커뮤니티 활동이다. 커뮤니티 활동은 일종의 동아리로, 뒷북 내에는 여러 커뮤니티가 생겨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풋살을 하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공부모임, 대화모임을 열기도 한다.
커뮤니티는 누군가 무언가 하고 싶은 사람이 조합원에서 먼저 제안을 한다. 해보고 싶은 게 있을 때 간단하게 제안하고 서너 명이 모이면 진행한다. 재미있을 것 같은 커뮤니티가 있다면 서로 추천을 하거나 조합원 단톡방에 공유하기도 한다. 현재는 ‘활어회’라는 드로잉 모임과 풋살 모임인 ‘FC 뒷북’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오리너구리 소셜클럽’이라는 살롱모임도 운영 중이다. 이러한 커뮤니티는 새로운 제안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비조합원이 참여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환경이 조성되는 데에는 조합원과 소통하고 욕구를 파악하고자 하는 뒷북의 노력이 있다.
“최근에 조합원들에게 뭐 하고 싶은 게 있는지, 아니면 조합에 바라는 것이 있는지 이런 것들을 계속 그냥 물어봤어요. 편하게 방문하는 조합원도 있지만 그중에는 뭔가 건덕지가 없으면 갑자기 방문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그냥 다 같이 밥을 먹는 날을 만들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뒷북으로 놀러 오고 대화를 나눴죠.”
서로의 고민을 궁금해하고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뒷북에서는 조합 차원으로나 개개인들 간에 다양한 대화가 오고 간다. 조합원 개개인 간에 소통하며 하나둘 모임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귀찮아하면서 실행되지 않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다수의 마음을 끄는 주제가 낚인다. 그리고 이 낚인 주제를 잘 가꾸어 나간다. 그렇게 하나의 기획이 탄생한다.
우리답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욕구를 통해 기획이 탄생했다면, 이를 어떻게 실행할까? 뒷북의 기획은 화려해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단단한 뿌리가 있어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자신들답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를 실행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잘 살펴볼 수 있는 것이 ‘스마트폰도 잠이 필요해’(이하 스잠필) 프로그램이다. 스잠필은 청소년들이 스마트폰 사용을 잠시 멈추고 스마트폰과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미디어교육과 함께 스마트폰이 쉴 수 있는 이불을 직접 바느질해 만든다. 왜 이들은 일반적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아닌 바느질을 택했을까?
“사실 저도 맨날 밤마다 새벽 2,3시까지 핸드폰으로 웹툰 보고 유튜브 보는데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할 처지가 아닌거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거, 너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고민이라고 얘기해요.”
스잠필에서 뒷북은 교육자의 입장이 아니다. 교육을 통해 서로의 스마트폰 사용과 그에 관한 감정을 나눈다. 유튜브를 보았을 때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 게임을 했을 때, SNS를 했을 때 감정은 어떠한지를 물어보며 수업을 진행한다. 이러한 방향성을 유지하기 위해 직접 교안을 만들었다.
‘문화기획 찍어먹기’라는 프로그램도 뒷북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운영된다. 일종의 문화기획자 양성 프로그램인데, 프로그램 소개에는 ‘두 문화기획자의 본격 동료 찾기 프로젝트’라고 되어 있다. 실제로 문화기획 찍어먹기는 문화기획을 1부터 10까지 가르쳐 주는 것보다는 일상에서 가지고 있는 고민을 어떻게 잘 풀어나갈 수 있을까에 관하여 뒷북의 진행자들과 동료로서 함께 고민하고 생각을 풀어나가는 프로그램이다. 2021년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어 현재 2기까지 진행된 상태이다. 자신의 고민을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풀어나가는 것, 뒷북의 이런 자세로 인해 뒷북이 하는 모든 활동은 문화기획이고 문화적이다.
변하는 욕구, 뒷북의 미래
어느덧 뒷북은 7년 차를 맞이하고 있다. 처음에 20대 초반이었던 조합원들도 이제 20대 후반이 되었다. 조합원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누군가는 뒷북 활동으로 커리어를 쌓았고, 누군가는 취업을 했다. 각자의 상황이 바뀜에 따라 조합원들의 고민도 예전과 달라졌다.
뒷북의 현재 고민은 조합원들의 생애 주기에 따른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다. 그리고 뒷북은 다시 자신들의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 첫 번째는 전 조합원 인터뷰다.
“변화하는 조합원들의 욕구를 잘 알아차려야죠. 우리가 이전과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데, 이를 각자 고민하게 되면 너무 위험한 것 같아요. 조합원들이 이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합원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뒷북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조합원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려고 준비 중이에요.”
변화에 맞추어 뒷북은 다시 조합원들의 욕구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 소통의 시간이 끝난 후, 다시 그들만의 방법으로 또 다른 활동을 시작할 것이다. 이번엔 어떤 기획이 탄생할까. 그들의 활동을 기대한다.
- 강우진
- 관점에 따라 경험하는 세상은 얼마든지 바뀐다고 믿고, 세상을 즐겁게 볼 수 있는 색안경을 만든다. 현재 티들랜드(일상속테마파크)의 대표로 문화기획, 라이브롤플레잉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yourkmk@naver.com
인스타그램 @tidlland - 영상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 사진제공_청년협동조합 뒷북
경기도 의왕시 오리나무로 22, 1층
doitbu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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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놀 줄 아는 뒷북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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