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삼오오 모여 있는 아이들 손에 스마트폰이 들려있다. 서로를 보고 있지 않지만, 이들은 같은 온라인 게임에 접속되어 있다. 뭐하냐고 물으면 당연한 것을 왜 묻냐는 눈빛이 되돌아온다. “놀고 있잖아요.”
#2. 쉬는 시간,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켠다. 잠금화면을 열고 SNS에 접속하고 사진첩에 들어가 스크롤을 오르락내리락한다. 이들은 쉬고 있다고 말한다.
접촉의 세계를 벗어난 우리는 접속을 통해 수많은 정보와 그리고 타인과 끊임없이 연결되고자 하는 열망에 불을 켠다. 한 학기를 만난 학생들이지만 식당에서 마주친 마스크를 벗은 얼굴은 낯설다. 이제 곧 마스크를 벗고 대면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마치 개인정보를 공개하라는 요청처럼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는 말도 들린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미팅-수업이 익숙해진 우리에게 엔데믹이 선포될지라도 일상의 풍경은 이미 달라졌다.
적응과 전환, 온택트의 난관
3년간의 코로나 블루는 변이를 거듭해가며 일상에 만연해졌다. 디지털 미디어 접속을 통한 연대의 모색 등 팬데믹 환경에의 적응은 새로운 영토에 이주한 인간의 지역적응(local adaptation)과 같은 신체적인 진화 기제와도 유사하다. 다른 문명은 다른 신체로의 전환이다. 그러나 이 격변은 지난 3년간의 전환에 그치지 않고 이제 메타버스 시대의 도래와 맞물려 삶의 시공간에 대변혁을 일으킬 것을 전망하고 있다. 이 가상현실의 등장은 예술에서 상상이라는 아주 고전적이고 근본적인 주제와 밀접해 있다. 인류의 출현 이래 아주 오랫동안 놀아왔던 정신세계가 마치 물질화되는 듯한 시점이다.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그리스어 어원 테크네(techne)는 ‘기술’이라는 뜻만이 아니라 “진리를 빛나는 것의 광채 안으로 끄집어내어 앞에 내어놓는 것”(하이데거)을 뜻하기도 했다. 그래서 미술의 포이에시스(poiesis, 밖으로 끄집어내어 앞에 내어놓음)도 테크네라 불렀다. 진리와 참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지만, 표면적으로만 보면 상상의 세계의 시각적 변환과 감각적이고 물리적인 세계로 진입은 반길만한 예술 정신의 진보가 아닐까 낙관해본다.그러나 지금 문화예술계에서 온택트(virtual contactless communication)로 급부상한 예술교육 콘텐츠 개발 붐은 어쩌면 예상한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첫 번째는 프로그램이 매뉴얼로 고정되거나 키트화되는 현상이고 다음은 예술로 놀이를 표방하고 있으나 놀이가 일어나지 못하는 현장이다.
지적한 첫 번째 현상의 요인은 다양하다. 화면이라는 매끈한 창을 사이에 두고 감각적인 순간의 교류를 발생시키기에는 접속 플랫폼들에서 소통이 제한적이다. 냄새나 진동, 호흡의 미세한 변화를 통한 소통의 부재나 정면을 주시하지 않은 채 일어나는 의식적이지 않은 움직임의 뉘앙스들이 그것이다. 만남의 화학적인 변화를 주도할 수 없는 환경에서 언어를 중심으로 한 소통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라이브 환경에서 예술적 경험, 미적 체험이 일어나는 순간은 감각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특성을 지녀왔다면 온라인을 통한 소통은 참여자에게 사전에 키트로 배송된 물질 도구가 매개되더라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경험을 의도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긴급하게 비접촉과 비대면을 마치 창조적인 대면으로 바꿔가기 위해 여느 분야보다 발 빠르게 움직여야 했던 3년이었다. 아직은 충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기술환경에서 감각을 배제한 채 미적 체험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모색은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머지않아 출시될 다양한 증강현실 기기들이 빠르게 대중화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언뜻 무한히 확장되고 상상이 실현되는 자유로운 공간의 확장처럼 보이지만 규칙은 존재한다. 그리고 표현과 소통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해당 세계의 재화를 구매해야 한다. 상상을 펼쳐내기 위한 소비가 일어나는 시장이다.
플랫폼 안에서 발휘하는 놀이 정신
우리는 새롭게 열리는 세상 앞에서 창의성의 필요를 감지한다. 새로운 문명의 도래를 두려워하는 어른세대가 어린아이들이 더 직관적으로 디지털 기기를 다루더라는 놀라운 인상을 떠올리는 이유이다. 새로운 문명의 상품들 속에서 소비자로 잠식되지 않고 창조자로 존재하기 위해서 창의적인 태도가 요구되리라는 시대의 부름, 플랫폼의 규칙을 빠르게 이해하고 적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새로운 규칙을 더하며 과감히 실험하고 도전하는 놀이 정신을 발휘해보라고 부추긴다. 우리는 그 창조성에 대한 힌트를 놀이하는 본성의 회복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어린이’이다.
디지털로 증강된 가상현실이 마치 내 의식과 하나처럼 흐르게 되어 종국에는 무엇이 진짜 현실인지 가름할 수 없는 영화 <매트릭스>의 환상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것과는 다른 놀이의 세계를 나란히 세워 들여다본다. 출생 이래 어린 시절이라 부르는 한 시기에 우리는 창조적인 상상 놀이를 통해서 물리적인 현실 위에 자신의 내적 인상을 펼쳐왔다. 상상 놀이를 즐기는 이들에게 부여된 능력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이며 이 고도의 정신기능은 심지어 타인과도 공유된다. “이 책상을 집이라고 하자” “저 문 뒤에 괴물이 살고 있어” 상상의 세계를 타인과 공유하는 기본 공식은 ‘만약에’라는 가정과 ‘~라고 하자’라는 약속이다. 그리고 창조한 세계에 대한 진실한 믿음을 형성할 수 있으면 그 세계에 바로 들어갈 수 있다. 이 고전적인 상상 놀이를 시각적 인상으로 변환시키는 기술이 개발될지라도 결국 이 판의 중심에 누가 주도권을 갖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우리는 던져야 한다.
놀이의 진정한 규칙은 고정되지 않고, 그 주체인 놀이자에 의해 끊임없이 변형되고 발전되는 속성을 지닌다. 예술교육 프로그램에서 ‘놀이’가 게임 같은 활동으로만 고정될 때 행위자의 주체성은 사라진다. 놀이 세계에서 경험의 주체성은 몸의 감각과 연결된다. 그러나 증강현실과 같은 기술에서 내 감각으로 알게 되는 세계의 진실은 희미해지질 수 있다. 뇌를 완벽히 속일 수 있을 만큼 진화된 기기가 현실의 상상 놀이에서처럼 수많은 도구를 즉흥적으로 제시할 수 있고 감각의 미묘한 차이를 감지할 수조차 없이 곧바로 디지털화되는 날이 온다면 어쩌면 우리는 영화 <매트릭스>의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때 우리는 경험의 주체와 인간의 존엄과 시스템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납작해진 감각의 기본기 되찾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감각적 경험을 사고판다. 그래서 유형화되는 내 감각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느끼는 감정이 몇 개의 이모티콘으로 납작해지듯이 표현을 빠르게 대체시키는 상품들과 플랫폼의 규칙에 순응하는 일상 속에서 씁쓸한 삶은 달콤하게 위장된다. 내면에 예술성을 깨우면 어린이성이 살아난다.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던 감각적 사유의 기본기를 되찾는 것이다. ‘어린이’라는 존재는 팬데믹 시대에 갇힌 마음이 원초적인 자연공간을 그리워하게 되듯이, 이 시대에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저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 세계를 주체적으로 바라보는 존재, 놀이는 자신이 이해하고 바라보는 세계에 대한 시각을 담고 있는 놀라운 형식이며 직접 창조한 질서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놀이를 통해 자신의 깊은 내면세계와 조우하게 된다. 예술은 내면의 질서를 찾는 독특한 형식이다. 놀이는 한 사람 안에 다른 우주를 창조하는 일이며 그 창조의 경험은 평생의 시간 속에서 자기 질서를 창조해내는 감수성의 원천이 된다. 예술가가 만들어내는 규칙이자 예술이라는 언어이며 예술교육이 선사해 온 치유이다.
이 시대는 우리에게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놀이자로 깨어나라는 알람을 보내고 있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내일을 예측하는 시대는 끝났다. 그러나 감각적인 본성을 통해 내일을 살아가는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빛나는 것의 광채’ 앞에 끌어낼 진리는 인간의 놀이성과 창조적 본성의 정신이다. 기술의 세계가 인간의 표현과 연대적 소통을 뒷받침하는 도구로 기능할 수 있도록 가장 인간다운 것에 대한 사유를 그치지 말아야 한다. 언제나 문화예술교육은 다양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창조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경험에 초대해왔다. 기술은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어린이처럼 정말 놀이하고 있다면.
- 양혜정
- 연극놀이전문가. 크리에이티브 드라마를 중심으로 어린이, 청소년과 작업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예술전공생들을 가르치며, 영유아를 위한 연극작품을 연출하고 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감각과 상상, 예술 하는 몸과 어린이에 관한 연구와 실천을 하고 있다.
momplay@daum.net
썸네일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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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세상, 내면에 잠든 어린이를 깨우며
포스트코로나 시대, 예술교육의 역할
정말 너무나도 잘 보고 갑니ㅏㄷ
“저 문 뒤에는
빛나는 것의 광채 앞으로 끄집어내는 것을 방해하는
괴물이 살고있어.”
읽고나니 요런 문구 조합이 만들어져서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됩니다 😀
어릴적 나는 친구들과 자연과 접촉하고 놀며 자랐는데 …
내 아이는 핸드폰과 접속하며 놀고 있어서 정말 안타까워요…
가정에서도 함께 놀이를 통해 다양한 경험과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부모 교육도 필요한 듯 합니다.
달라진 세상, 내면에 잠든 어린이를 깨우며
포스트코로나 시대, 예술교육의 역할
기대만점입니다
달라진 세상, 내면에 잠든 어린이를 깨우며
포스트코로나 시대, 예술교육의 역할
공감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