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8일부터 실내외 마스크 착용 의무를 제외한 모든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되었다. 약 2년 1개월 만의 일이다. 이제 위드-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본격화되겠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내재화된 두려움과 이미 달라진 일상의 어려움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로 인해 예술교육 현장 역시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예술교육가에게 요구되는 역량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각자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마주친 고민과 문제들, 운영상의 어려움과 해결 과정 등에 관해 생생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좌담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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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시 : 2022년 4월 13일(수) 오전 10시
• 장 소 : 온라인 ZOOM
• 참석자 : 박성진(알투스통합예술연구소 연구원), 윤석현(이파리드리 대표), 이미화(이모저모도모소 대표). 이화진(이룹빠! 구성원)
코로나 시대의 예술교육
박성진 처음에는 분노하고 좌절했다. 지역에서 장소를 탐구하고 만남이 기본인 일을 하는데, 활동도 중단되고 만나지 말라고 하니까 그럼 내가 하는 일은 종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해석할 요소가 있다고 느낀 건 만남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정의하는가를 들여다보게 되면서다. 예를 들어, 그전에는 구름떼같이 인파가 모이면 성공한 프로젝트고 그게 아니면 실패한 것 같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자유로워졌다. 이런 이야기를 사업이 취소되거나 수업이 없어져서 한가해진 동료들과 많이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예외적으로 연구와 대화와 기록이 많았던 시간이었다.
이화진 우리도 아이들과 작업할 때 몇 명이 모였는지 그 친구들이 얼마나 활발하게 활동했는지를 통해 평가받는 면이 많아서 공감된다. 지난 2년 동안은 우리가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소모적인 작업이 아니라 의미 있는 만남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록 중심으로 살펴보며 연구하는 시기였다.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언젠가 마주해야 할 환경을 일찍 맞이했다는 느낌이 든다. 비대면 수업이나 메타버스 환경을 어떻게 활용하고 그 안에서 어떤 작업을 할 수 있을까 연구했다.
윤석현 우리는 창작활동으로 예술교육과 문화 경험을 제공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코로나19로 인해 뭔가가 달라졌다기보다는 이미 있었던 문제가 더 명확히 보였다. 거리두기로 형식적인 제약이 크게 생겼지만, 전에도 힘들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꽤 오래 해온 일이 비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확실히 느끼게 됐다. 비전이나 지속성이란 문제는 당연히 경제성과 엮인 것 같다. 연극이라는 장르가 과연 경제적일 수 있는가부터 시작해서 고민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시간이었다.
이미화 2020년에는 계획한 프로그램을 소수의 참여자와 제한된 상황에서 진행했다. 주로 어르신과 만나는 작업을 하다 보니, 고령 어르신의 경우 디지털 소외 현상에 놓인 분이 대다수라 만남의 방식에 제약이 많았다. 2021년 역시 어르신들을 이전처럼 대면하는 일은 어려웠다. 민간 소규모 공간이 감당할 수 있는 감염 위험에 따른 책임에 한계가 있어 작년과 올해는 우리 공간으로 참여자를 초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외부 기관(공간)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협력 기획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활동했다. 또, 비대면 방식으로 디지털 소통이 가능한 60대 초반의 참여자를 만나서 개개인의 내적인 사유에 몰두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집중했다. 팬데믹 이후에 만들어지는 문화정책의 시류에 따라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급급하게 프로그램을 생산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 활동을 아카이브하고 되새김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시간이었다.
위기를 건너는 방식, 지탱하기 위한 동력
이화진 그동안 작업하며 쌓인 피로 같은 것들이 코로나를 마주하면서 터져버린 순간이 있었다. 개인 작업하는 작가들이 모인 그룹이라서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까 고민이 생겼다. 외부 작업이 자연스럽게 멈췄던 해이기도 했지만, 동력을 외부에서 끌어 당겨오기에는 우리에게도 한계가 있었다. 당분간 지원사업은 하지 않고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이 우리한테 어떤 의미가 있는지와 그 안에서 우리가 찾았던 즐거움을 살펴보려고 했다.
윤석현 코로나19로 인해 동료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면서 우리끼리 예술이라는 단어를 붙여놓고 동굴 안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이 더 강화됐던 것 같다. 우리가 하려는 게 공간 특성을 가진 문화 체험이었기 때문에 다른 형태의 상업적인 전시를 많이 다녔고, 사람들은 뭘 재밌어하고 뭘 하고 노는지 찾아봤다. 보드게임 방에 가고 방 탈출 게임도 해보면서 ‘우리가 하려던 걸 이미 다 너무 잘하고 있구나’ 이미 있는 세상인데 내가 몰랐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처음에는 괴로웠다가 우리 스타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비상업과 상업 그 중간 어딘가에 점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다. 동료들도 새로운 자극에 재밌어하고 거기서 동력을 얻었던 것 같다.
박성진 힘들다는 얘기를 솔직하게 할 수 있었다는 게 가장 의미 있었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상이 돼서 질문을 던질 계기가 없는데 코로나로 인해 ‘이렇게 힘든데 왜 해야 하지?’ 같은 질문을 하게 됐다. 예술은 좋고 필요한 것이지만, 사실 정당성이나 당위성만으로는 사람이 움직일 수 없다. 2020년을 지나며 멤버 중 한 명이 더 이상 함께하기 어렵겠다고 했다. 그래도 대화의 시간이 있어서 서로 이해하고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10년 넘게 현장에서 함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표면적인 말 그 뒤에 가려진 맥락이나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다.
이미화 예술교육은 작가가 전시 외 참여자와 만나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참여자와 상호교류하는 방법을 주로 온라인으로 전환하여 진행했었고, 대체적으로 지난 프로젝트를 되새기며 아카이브 자료를 정리하는 일에 시간을 투자했다. 더불어 그간 몰두해오던 프로젝트 에디션 구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프로젝트 에디션은 일반적인 굿즈와는 다르게 경험을 디자인하는 사물이라고 생각하는데, 틈틈이 드로잉으로 구상하며 차기 에디션 제작 기회를 대비해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러한 작업은 참여자와 대면 교류가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달라진 환경과 새롭게 관계 맺기
이미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2020 비대면 문화예술교육 아트프리즘’ 사업을 통해 <나의 마무리 그림 자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60대 후반부터 70대 후반 참여자와 온라인 안에서 만나 영정 사진을 대신할 영정 자화를 그리는 시간이었다. 개별 주거 공간에서 줌으로 만나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참여하는 프로젝트로 재난 위기 사회에 좀 더 일상화된 죽음에 관해 많은 이야기와 생각을 나눴다. 스마트폰 활용도가 현저히 낮은 분들이었지만 끝까지 프로젝트를 완주해내셨다. 대면 만남이 어려워진 시기에 디지털 소통은 어르신들이 사회에 존재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다. 이것에 무지해지면 사회화가 어려워진다. 복지기관에서도 관련한 수업을 제공하고 있지만, 예술가와 함께 디지털 환경에 접근하는 프로그램은 완전히 차별적일 것이고 꼭 필요한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이화진 어린이들은 미디어 환경에 더 직관적으로 반응한다. 앱을 활용하거나 미디어 매체를 이용해서 작업을 할 때에도 아이들은 바로바로 눌러보며 쉽게 놀이처럼 받아들인다. 그런 걸 보고 우리와는 정말 다른 세대임을 실감하게 됐다. 이럴 때면 메타버스나 미디어를 활용한 예술교육 지원사업도 많이 생기고 있는 만큼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자 하는 기대도 있지만, 우리가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것처럼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것 같아서 고민도 된다. 올해는 스마일게이트에서 운영하는 ‘퓨처랩’에서 개발한 앱을 활용해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퓨처랩’의 IT 활용에 관한 기술적 도움과 ‘이룹빠!’의 놀이방식에 관한 고민이 만나 코로나 시대에 일종의 꼼수(?)를 개발하는 재미가 있었다. 우리도 새로운 매체에 대해 좀 더 두려움 없이 다가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환경이 변해도 아이들과 만나서 직접적인 시선을 교류하고 활동하며 서로 배움의 과정을 즐기는 것이 이 일을 하는 큰 이유가 아니었나 생각도 들었다.
윤석현 작년에 온라인 문화예술교육 추진단에 참여했는데 기술과의 융합이나 온택트가 주를 이뤘다. 우리는 오히려 “줌이나 기술과의 융합은 하지 않는다”로 시작했다. 다만,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여러 명이 모이는 방식이 아닌 형태로 바꿔야 했다. 전시나 박물관, 도서관처럼 경험이 축적되고 그 흔적이나 매개체를 수용자가 뒤늦게 접하는 방식으로 어떤 연극적인 교류가 일어나도록 시도하고 노력했다. 공간에서 하는 건 변함없지만 이전에 안 하던 걸 하니까 재밌었다. 아는 분이 앞으로 모든 콘텐츠는 결국 게임화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연극을 재밌게 게임처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면서 앞으론 연극 하나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못 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시대의 흐름에 휘둘리지 않고 내 분야를 더 공고히 하면서 모르는 분야는 전문가를 만나는 방식으로 가야 할 것 같다.
박성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건 좋은 점인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실제의 만남이 굉장히 귀하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코로나 기간에 가진 소수의 작은 모임이 의미가 있었다. 함께 재난을 겪은 사람들이 느끼는 동질감이나 이해를 바탕으로 깊고 몰입하는 관계가 되어 참여자들과도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단적으로 2021년 여름에 운영하던 그림책 수업에서 한 아이가 확진됐다. 함께 한 사람들이 밀접 접촉자로 2주간 고립되어야 했고, 그 시간이 끝나고 만나서 격리의 경험을 나누는 글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격리하면서 느낀 무서움, 죄책감 같은 일종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시간이었다. 무지한 상태일 때는 두려움이 생기는데 미지의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도전이 되기도 하고 앞날을 기대하게 된다. 대체로 혼자 있거나 방 안에 있을 때는 무지하다고 느끼고, 밖에서 걷거나 의미 있는 만남을 할 때는 미지한 세계를 향해 간다고 느껴진다. 함께 일했던 예술가, 예술교육가와의 네트워크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됐고 개인적으로 직접 만남의 가치에 좀 더 몰입하고 연구하는 게 흥미롭고 매력적인, 앞으로의 과제인 것 같다.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며: 계획과 다짐
윤석현 창작연극집단으로서 연극을 할거고, 코로나로 느꼈던 문제의식을 꾸준히 연구하고 실험해볼 생각이다. 너희는 뭘 잘하냐고 물어봤을 때 우린 이런 거 잘한다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화진 곧 마스크를 벗는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또 하나의 미지의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시기 계속된 변화처럼 자유롭게 만나더라도 이 또한 변화의 연속일 것 같다. 우리는 계속 변화에 맞춰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예술가의 일인 것 같다.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내실을 다지려고 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것도 재밌어서 다른 분야와 만나보며 미지의 세계를 탐구해보는 한 해를 보낼 것 같다.
박성진 알투스라는 단체로서는 교육과 연구와 창작 콘텐츠를 잔잔하게 진행하고 싶다. 개인으로는 나를 잘 돌보고 주위 사람에게 좀 더 친절하고 주변을 잘 관찰하며 작업을 해야겠다.
이미화 일단 지난 작업과 프로젝트를 웹사이트에 아카이빙하는 것이 목표다. 어르신들과 직접 만나는 건 아직 조심스러워서 디지털로 만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고민하려고 한다. 사람과는 디지털 교류에 중점을 두고, 프로젝트 에디션을 제작하며 경험을 전하는 사물 고안에 좀 더 집중할 생각이다.
박성진
작가, 알투스통합예술연구소 연구원. 미술과 문학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한편 새로운 예술교육을 고민하고 실험한다. 앤솔로지 소설집 『안녕을 말하는 방법』(공저)에 참여했고 때때로 번역을 한다. 요즘의 관심사는 지역에 기반한, 일상 속 문화예술교육의 가능성이며 알투스(altus) 멤버들과 함께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altuslab@gmail.com
인스타그램 @altus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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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현
창작집단 이파리드리 대표. 연출, 배우, 작가 등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들을 하며 동료들과 함께 예술창작과 교류에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 중. 팬데믹 이후 무대공연 창작자로서의 생존 방향과 시대 적응에 대해 고민하며,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할 수 없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yoonsh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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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화
문화예술과 삶의 방식에 대해 자문하며 참여형 프로젝트를 기획, 미래 노년의 삶을 연구하는 예술가 모임이자 공간인 이모저모도모소를 운영한다.
emdener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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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진
일상에서 숨겨진 단서와 이야기들을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어린이 스튜디오 이룹빠! 에서 ‘두부’란 이름으로 활동 중인 작가이다. 이룹빠!는 말을 처음 배우는 아이가 우연히 만들어 낸 음성에서 따온 이름으로 현대미술을 어린이들과 함께 탐색하기 위해 작가그룹 플라잉시티가 기획한 미술 워크숍으로 2010년 출발했으며 2017년 이후부터 ‘구부요밴드’라는 그룹명으로 활동 중이다.
irubba.arworksho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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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정리 _ 프로젝트 궁리 주소진, 김도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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