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극단(carbon-neutral theatre company)을 단체명 앞에 내세우는 연극단체가 있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피그풋시어터(Pigfoot Theatre, 이하 피그풋)이다. 헤티 혹손(Hetty Hodgson)과 비 유데일-스미스(Bea Udale-Smith)가 공동예술감독으로 이끄는 피그풋은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는 방식으로 기후에 관한 공연을 만들고 있다. 작품 안에서 전기를 스스로 생산하며, 재활용품을 이용해 무대 세트를 만든다. 작품을 계획할 때부터 작품을 구성하는 모든 재료의 공연 후 쓰임까지 고려하며, 모든 과정에서의 탄소 발자국을 계산하고 기록한다.
  • <How To Save A Rock>
    ⓒEd Rees | [이미지출처] 피그풋시어터 페이스북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극단의 도전
과연 가능한 일일지 궁금해 웹 사이트를 방문해 보니, 피그풋에서는 매달 극단의 탄소 영향력을 측정해 데이터를 공유하고 있었다. 기차, 자동차, 버스, 지하철 이동 거리, 배달되는 물건의 무게와 거리, 노트북 사용 시간, 화상 미팅 사용 시간과 참여자 수뿐만 아니라 직접 구입한 모든 품목을 기록하고 탄소 배출량을 계산한다. 영국에는 일상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예술 분야의 탄소 배출량을 계산할 수 있는 여러 도구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작품의 창작과 유통 전 과정을 꼼꼼히 기록하고 탄소 배출량을 기록하는 일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만 해봐도 엄청난 시간과 노동이 수반되는 일이라 이들의 노력과 실천이 놀라웠다.
피그풋은 왜 탄소중립극단을 운영하며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있는 것일까? 헤티와 비는 예술가로서 사회적 책임과 공감 능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영국 청년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를 보면, 56%가 기후변화로 인류가 끝났다고 답하고 있으며, 78%는 기후변화 때문에 미래를 두려워하며, 83%가 기후변화로 인해 부모 세대보다 모든 부분에 있어 기회가 적다고 답하고 있다. 또한 기후위기에 대해 개인적인 책임을 느끼고 있지만, 정부가 기후변화 감축 행동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 청년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다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헤티와 비는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 예술가로서 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으로 이러한 도전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 피그풋의 탄소 영향 2020년 5월~2021년 5월
    [이미지출처] 피그풋시어터 페이스북
함께 행동하는 무대
2016년 초연한 작품 <어떻게 록을 구할 수 있을까>(How To Save A Rock)의 창작 과정을 보면, 일 년 반 동안 컴퓨터 사용부터 리허설 중 사용한 전기까지 꼼꼼히 기록했다. 무대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공연자, 때로는 관객 그리고 태양열에 의해 만들어지며, 음악은 모두 라이브로 진행한다. 세트와 도구들은 재활용품이거나 재활용이 가능한 재료로 만들어진다. 작품은 스코틀랜드 북쪽 끝에서 온 지구의 마지막 북극곰의 편지를 받고 두 친구가 북극곰을 구하러 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이탄 습지와 홍수, 시위대를 뚫고 디스토피아적인 지구의 상황에서 스코틀랜드 북부로 향한다. 코미디 라이브 음악극이라는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 전 세계가 기후위기에 직면하고 있지만, 혼자가 아니라 함께 행동한다면 우리가 마주할 미래는 여전히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탄소중립 파티’라는 부제를 단 공연 <핫 인 히어>(Hot in Here)는 남반구와 적도 가까이 사는 사람들에게 불균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기후 정의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21년 1월 캄덴시민극장(Camden People’s Theatre)에서 제작 지원받은 작품으로 23개국의 관객이 참여했는데, 캄덴 지역 청년들과 전 세계 기후 활동가들의 인터뷰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며, 공연을 통해 전 세계에서 기후위기에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증폭하여 관객과 연결하며,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관객의 행동을 이끈다. 물론, 이 작품에서도 재활용 무대와 소품을 사용할 뿐 아니라, 전기 역시 공연자들의 신체적 협력이 모여 만들어진다.
두 작품 모두 지구의 디스토피아적인 상황을 보여주고 있지만, 심각하고 우울하지만은 않다. 피그풋의 작품은 연대와 지원, 협력이 중요한 키워드이다. 공연자와 관객이 함께 공연에 필요한 에너지를 발생하기도 하지만, 관객이 작품 안에 직접 참여하고 소통하며 서로가 서로를 지원한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들은 학생뿐 아니라 탄소중립적인 방법으로 창작을 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과 연극 만들기 워크숍을 하며, 창작 과정에 지속 가능한 방법을 도입하는 자신들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새로운 방법을 함께 찾아 나가고 있다. 기후변화와 환경에 관해 관심이 높은 아이들과 연극 만들기를 통해 기후위기로 인한 상실감과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해소하고 좀 더 지속 가능한 방법을 개개인이 찾아 나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한다.
  • 디지털 환경 연극 축제 ‘Lockdown: Green Up’ 프로그램
    [이미지출처] 피그풋시어터 페이스북
연극이 그리는 지속 가능한 미래
피그풋의 탄소중립 창작을 위한 노력과 방법론은 웹 사이트에 공유되어있다.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지, 전기 생산 방식과 이동, 조명과 음향 사용에 따른 탄소 배출을 고려하고, 종이 사용에서 노트북 사용까지 체크리스트를 볼 수 있다. 극단의 철학과 작업에 관객을 어떻게 참여시킬 것인지도 중요한 이슈이다. 영국의 한 자료에 따르면, 공연 한 편에서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의 78%가 관객의 이동에서 나온다고 한다. 이들은 지역 관객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고민하며, 공연 장소를 선택할 때도 관객의 대중교통 접근성을 고려한다.
2020년 여름에 진행한 축제 ‘록다운: 그린 업(Lockdown: Green Up)’도 피그풋의 지향점을 잘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축제는 예술가들과 공연 제작자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시작한 디지털 환경 연극 축제이다. 모든 프로그램은 디지털로 진행되며, 연극 연출가, 극장 감독, 극작가, 안무가, 배우·무용수, 무대감독, 조명 디자이너, 에코 디자이너, 에코 비평가, 환경활동가뿐 아니라 영국 문화예술 분야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민간 비영리 컨설팅 단체 ‘줄리의 자전거’(Julie’s Bicycle) 등 많은 전문가가 참여하였다. 위기의 시대에 연극이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친환경적인 미래를 위한 젊은 연극 창작자들이 해야 하는 일, 에코 무대미술, 공연의 디지털화, 친환경 창작, 과학과 생태 철학 접목을 통한 작품 만들기, 조명 디자인에 환경 지속가능성 통합하기, 기후 정의 등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연결을 통한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지향하는 미래를 볼 수 있다. 모든 프로그램은 피그풋시어터 페이스북을 통해서 볼 수 있다.
피그풋에게는 작품을 만들고 관객을 만나고 또 다음 작품을 계획하기까지 모든 과정이 도전일지 모른다. 기후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와 지역 사회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대화를 만들어 내고, 서로 소통하고 함께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기 위해 도전을 기회로 만들어나가는 이들의 예술 활동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액션! 그 자체이다.
박지선
박지선
연극, 무용, 다원,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걸쳐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로, 축제, 레지던시 기획, 공연예술작품 제작 및 국제 네트워크(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APP)를 기획,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도시, 경계, 기술과 예술 등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예술가와 새로운 탐험을 하며 예술의 동시대성을 탐구하고 있다.
jisunarts@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