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열정만 가지고 예술가, 그리고 예술교육가로 활동을 시작하여 무엇이든 해보는 ‘무한도전’을 한지도 어느덧 열 손가락을 접고, 다섯 손가락이 더 접히는 해가 흘렀다. “오늘 만난 오늘이쌤입니다. 오늘! 상상 가득한 재미난 연극여행을 함께 떠나요!” 이 인사말로는 속사포 랩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프로젝트로 다양한 참여자를 만났고, 그 시간은 차곡차곡 쌓여 나에게 ‘빛나는 구슬’이 되었다. (나는 어릴 적 구슬을 정말 좋아해서 소중한 것 하면 구슬이 떠오른다) 그러나 해가 가며 수많은 프로젝트를 반복적으로 수행해가며 지쳐간다고 느낀 나에게 더는 구슬이 채워지지 않았고 가지고 있던 구슬도 그 빛이 희미해져 갔다. 누구에게나 온다는 슬럼프인지 번아웃인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멈춤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고 느꼈을 때 자연스럽게 삶의 역할을 하나 더 갖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엄마’였다.
그렇게 잠시 예술교육 현장에서 한걸음 떨어져 분유를 타는 시간을 맞이하는 동안에 이 구슬을 어떻게 갈고 닦아 정리하여 다시 재미난 연극여행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했다. 아기의 웃음소리와 함께 2년이 훌쩍 지나갔고 예술교육 현장에 다시 돌아간 그 순간, 구슬이 다시 반짝거리며 대답을 해줬다. ‘오늘이쌤! 공부를 다시 해보자.’ 바로 초심으로 돌아가 예술교육과 관련한 공부를 시작하는 거였다. 그동안 아웃풋이 많은 활동을 해왔고 잠시 멈춤이 있었으니 다시 인풋이 필요한 시기라 생각했다.
혼자 말고 함께, 온책 읽기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목표는 어떤 면에서는 스스로에 대한 불안을 치유하려는 의도가 담겨있었다. 경력 단절을 경험한 엄마 예술가가 흔히 겪는 혼돈 속에서 발견한 탈출구였다. 하지만 혼자서 시작하기엔 넘어야 할 장벽이 많았다. 당장 해야 할 프로젝트에 우선순위가 자꾸 밀렸고 읽고 싶은 책은 많았지만 쉽게 끝까지 읽히지 않았다. 그때 고민을 하며 구슬을 이리저리 굴려보니 또 하나의 대답이 나왔다. ‘혼자 말고, 함께 해보는 거야!’ 사람들을 만나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현재 자신의 상태에 관심을 기울이고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예술로 예술교육으로, 나는 사람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지 알고 싶었다. 늘 해왔던 습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싶었다.
‘재미난 스터디’(이하 ‘스터디’)의 첫발은 온라인에서 내디뎠다. 모임이 부담스러운 코로나 시국이라는 점과 워킹맘이라는 현실은 시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온라인 비대면 방식이 딱 맞춤이었다. 스터디는 예술, 교육, 철학을 키워드로 관련 분야 책을 읽고 토론하는 ‘온책 읽기’ 형식으로 다섯 번 진행하기로 하였다. 스터디 운영에 가장 핵심인 책 선정은 평소 존경하고 좋아하는 예술교육자이자 교육철학자인 맥신 그린(Maxine Green)과 존 듀이(John Dewey) 저서로 정했다.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 계정에 홍보하니 예술교육 현장에서 활동하는 6명의 동료가 모였다. 참으로 고맙고 소중한 출발이었다.
같은 생각 다른 경험을 나누며
‘재미난 스터디’라는 이름 그대로 딱딱한 학문적 토론을 하는 게 아니라 재밌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길 원했다. 매주 책을 읽고 각자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낭독한 후 그 부분을 고른 이유나 이에 관련된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것과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할 것을 과제로 공지하였다. 그리하여 스터디 1부는 자신을 탐구하는 ‘나를 나누기’, 2부는 책의 내용에 대한 서로 같거나 다른 경험을 나누는 ‘책 나누기’로 진행했다. 초반에는 서로를 모르는 참여자들을 위해 스토리텔링 기반의 재미난 연극 놀이를 하면서 다양한 감정을 나누고 공감했다. 어색함 없이 ‘아이스 브레이킹’이 된 상태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고 대면으로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 사이에 친밀한 ‘연결고리’가 생겼다.
가장 재미있었던 점은 수십 장의 책 내용 중 똑같은 부분을 골라온 동료들이 있었고, 또 밑줄 친 내용은 같아도 그에 관한 전혀 다른 경험을 나누기도 한다는 거였다. 세상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을 이해할 수 있었고 함께 공부하는 재미가 있었다. 이렇게 스터디 첫 시작이 잘 이뤄지자, 바로 시즌제로 이어가기로 결심했다. 처음부터 ‘성장과 지속’이라는 목표가 있었기에 일회성이 아닌 꾸준히 함께 공부하고 싶었다. 나이를 떠나 배우려는 자세만 있다면 ‘빛나는 구슬’은 언제나 마음속에서 반짝인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엄마 예술교육자들의 빛나는 아지트
이 스터디의 처음 시작이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에서 온 혼란이었기에, 나와 같은 예술가이자 예술교육자인 엄마들이 떠올랐다. 더욱이 코로나로 예술교육 현장과 더욱 멀어진 엄마 예술교육자들에게 손을 내밀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재미난 스터디_엄마’ 편이었다. 곧바로 7명의 참여자가 모였다. 서울, 부산, 안성 등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동료들이 모여 온라인 스터디의 장점이 더욱 부각되었다. 두 번째 스터디의 책은 육아와도 연계가 있는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의 『발도르프 아동교육』과 유아의 감정 이해도를 넓히기 위한 책으로 『감정코칭』을 선정하였다. 이 책들은 정말 전체에 형광펜을 칠할 정도로 모든 문장이 주옥같았다. 예술교육자로서 아동에 대한 이해와 엄마로서 아이에 대한 이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성장시킬 수 있는 스터디가 되었고 얼마 전 시즌 2를 마무리했다. 내게 구슬이 또 하나 채워졌다.
앞으로 재미난 스터디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연간 4회, 각 다섯 차례의 온라인 모임으로 진행할 계획이며, 시공간의 장벽 없이 동료들을 만나리란 기대감이 있다. 함께 한 동료들이 경력 단절에서 오는 심리적 고립감에서 벗어나 세상과 연결고리를 만든 스터디가 된 것 같아서 다른 무엇보다도 큰 보람을 느꼈다. 사람은 서로 경험과 감정을 말하고 들어주며 공감을 나누고 서로가 더 나아지길 바라는 행위에서 마음의 치유와 자신과 세상과 연결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스터디를 진행하며 어쩌면 이런 ‘함께 이야기함’이 삶의 전부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재미난 스터디가 앞으로도 오래 지속되어 저마다에게 유의미한 아지트로 존재하면서 삶의 작은 원동력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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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은주
- 마음이 이어지는 곳, 재미난 이야기 마을 ‘예술고리 해보리’에서 모두를 위한 예술교육과 아동청소년 공연을 만들고 있다.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 연극하는 사람,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hohohosej@naver.com
예술고리 해보리 www.instagram.com/artscircle_haeb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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