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에 이름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삶의 터전을 쉽게 옮기는 현대인에게 우문일 수 있는 이 질문은 나에게 새로운 해답을 주었다. 바로 내가 살아가는 동안 머무는 이곳이 지금 나의 뿌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해답은 나의 터전에서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우리의 터전을 알리고 익히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발전하였다. 그렇게 나는 지역특성화교육을 개발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뿌리 찾기
막상 준비를 시작하니 잦은 이주로 주민등록초본이 3장에 달하는 내게 이 사명감은 정말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왔다. 육하원칙에서 ‘누가’와 ‘왜’를 빼고는 나머지를 채울 콘텐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막막하던 차에 책장에서 예전에 공부하던 설화 관련 자료들이 눈에 띄었다. ‘아! 모든 지역에는 설화가 있겠네!’ 기특한 생각을 했다며 스스로 머리를 쓰다듬은 나에 대한 칭찬은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탄식으로 바뀌었다. 비슷비슷한 설화가 너무 많을 뿐 아니라 교육에 적합하지 않은 소재투성이였기 때문이다. 한숨만 푹푹 쉬고 있는 내게 글쟁이 딸이 한마디 한다.
“엄마, 아날로그야? 인터넷을 좀 활용해봐!”
괜한 부아가 치민다.
“누가 그걸 몰라?”
“엄마, 지자체 홈페이지도 있고 문화재단 홈페이지도 있잖아. 거기부터 들어가 보는 건 어때?”
순간 부아가 사라졌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부터 탐색을 시작했다. 경기도청, 고양시청, 고양문화재단…. 세상에! 이런 신세상이 있다니! 책을 읽어도 찾을 수 없었던 설화들과 지역 문화까지 가득한, 말 그대로 정보의 보고였다.
자료 리서치
자료 정리와 구성
다음 단계는 모은 자료를, 그 많은 자료 중에 필요한 내용을 선별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했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교육에 적합한가?’ 였다. 교육의 수준도 내용도 ‘학습’에 어울려야 했다. 교육적 의미가 있어야 하고, 내재화가 가능해야 하며, 교육 현장에서 적용 가능해야 한다. 위의 모든 조건에 부합한 재료를 가지고 교육과정과 학습 수준에 부합하는 내용을 다시 선별하였다. 마지막으로 마을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지리적 위치, 동명, 인구, 크기, 역사 등의 요소를 추가하였다.
자료의 양과 내용을 고려하여 초등학교 고학년 2시수 씩 12차수, 총 24차시로 구성하였다. 도입과 전개, 정리단계로 구분하여 주제를 정하고 교육목표를 설정한 후 목표에 맞는 활동을 배치하는 순서로 진행하였다. 이때 교육의 수준과 양을 조절하는 작업이 의외로 까다로웠다. 지역 관련 교육에 관한 유사사례가 많지 않고, 문화예술교육과의 접목은 더더구나 선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겪다 떠오른 생각은 아예 지역특성화교육에 대한 ‘틀’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의 교육을 계획하고 구성할 때 사용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면 지역을 담은 문화예술교육을 더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 ‘기준’이 어느 지역에서나 적용 가능해야 했다. 역사는 어느 지역이나 있으며 역사의 변화에 따라 지역의 변화 역시 필연적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그 기준이 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지역 역사’를 기준으로 설정하였다.
접목하고 적용하기
큰 틀은 완성되었지만 커리큘럼을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또 다른 틀(?)에 넣는 과정이 새로운 난관으로 다가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국악’과의 접목은 많은 한계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형 문화재 검색이었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와 경기도 문화재, 고양시 문화재 등을 검색하여 그중 음악 관련 콘텐츠를 선택하였다. 고양시에는 경기도무형문화재 제22호 ‘송포호미걸이놀이’가 있었다. 호미걸이놀이는 김매기를 마치고 호미를 깨끗이 씻어 걸며 노는 민속놀이이다. 이 놀이는 제례 문화, 타악 연주, 민요, 연희가 종합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하나씩 놀이를 넣어 구성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을 완성하고 나니 뿌듯하면서도 뭔가 불안했다. 다른 지역도 접목 가능하다는 증거가 아무 곳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수 차원에서 인근 지역인 파주시와 김포시의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보기로 하였다. 중간에 막히는 것은 없는지, 필요 없는 단계가 있지는 않은지 등 확인해야 할 것들이 많기는 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제 현장에서 적용만 남은 것이다.
  •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개발 교안
  • 고양시 캐릭터와 지도를 활용한 수업 교안
역사 속 이야기와 놀이를 찾아서
현장 적용은 생각보다 빨리 가능했다. 음악 교과서에 내 고장의 음악 문화유산을 찾아 써보는 제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1시간 수업으로 책정되어 있었으나 1시간 안에 진행하기 어려운 프로그램으로 학교와 협의해 시간을 늘려 진행할 수 있었다. 개발한 모든 프로그램을 적용하기엔 부족했으나 전체를 한 번 훑어 나갈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저 놀이터에서 자주 보던 돌덩이에 우리 마을을 대표하는 문화재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다는 사실에 학생들은 흥분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애향심과 문화 자존감 향상에 도움을 주었다. 집에 가서 가족에게도 설명해주었다는 아이들은 눈은 자랑스러움에 반짝였다.
학교 교육에서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은 어쩌면 중요한 내용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교육이다. 잦은 이사와 핵가족화로 심리적인 뿌리가 약해진 우리에게 굳건한 자아존중감을 위한 영양제는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교육은 참 재미있다. 참여자뿐만 아니라 교육자도 배우는 것이 있으니 말이다. 틀이 갖춰진 교육만을 기획하고 개발해 온 내게 이번 도전은 새로운 자극이 되었을 뿐 아니라 다시 도전할 힘을 주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또 끊임없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기획하는 과정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짜릿함을 선사하니까.
최현주
최현주
국악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연구원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2001년부터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하여 문화예술교육이 세상을 바꾼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몽상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몽상가는 환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마라토너가 되기를 오늘도 희망한다.
사진_필자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