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플라스틱 시대에 살고 있다. 1950년대에 처음 개발된 플라스틱은 현재까지 약 83억 톤이 만들어졌다. 버려진 플라스틱은 57억 톤, 그중 49억 톤이 묻히거나 자연으로 배출되었다. 세계경제포럼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연간 11억 2400만 톤에 이를 것이고, 이때가 되면 바다로 배출된 플라스틱의 양은 바다에 살고 있는 물고기의 전체 무게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했다. 이 말은, 이 넓은 바다에 많고 많은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많아진다는 말이다. 플라스틱이 썩는 데 500년이 걸린다고 한다. 70년 전 세상에 처음 나온 플라스틱이 어제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과 함께 이 지구를 떠돌고 있다. 떠돌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작아지고 작아져 인간의 몸에 쌓인다. 세계자연기금(World Wide Fund for Nature, 약칭 WWF)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 사람이 일주일간 섭취하는 미세플라스틱은 약 2천 개, 무게로 환산하면 5g으로 신용카드 한 개를 일주일마다 꼭꼭 씹어 삼키고 있는 셈이다.
작은 실천이 만든 새로운 순환
한국인 1인당 플라스틱 사용량은 2015년 기준으로 132.7kg, 미국의 1.4배에 달한다. 일회용품 대량소비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보다 많은 플라스틱을 사용하는데, 국내 플라스틱 쓰레기의 재활용률은 34%에 그친다. 색이 화려하거나 라벨이 떨어지지 않거나 다른 소재와 재질이 붙어있으면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화장품 용기가 대표적이다. 온라인 쇼핑으로 택배를 받으면 박스의 테이프를 뜯고 비닐을 벗긴 후 뽁뽁이를 걷어내야 내가 산 물건이 보인다. 과대포장으로 사용되는 비닐도 모두 플라스틱이다. 일회용품의 남용은 이전에도 심각했지만 코로나19로 더욱 심각해졌다. 공장의 기계에서 만들어지자마자 비닐로 포장된 일회용 빨대가, 물로 세척한 다회용 빨대보다 깨끗할 거란 믿음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플라스틱, 종이, 캔, 유리 등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으면 한데 모아 선별장으로 보내진다. 선별장의 커다란 컨베이어벨트 위로 쏟아져 빠르게 흘러가고, 사람 손으로 플라스틱을 일일이 골라낸다. 이때,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플라스틱은 골라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작은 플라스틱은 결국 일반 쓰레기로 버려져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자꾸 사고 자꾸 버리게 되는, 이렇게나 심각한 플라스틱 중독에서 우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플라스틱방앗간은 시작되었다.
플라스틱방앗간은 이름에서도 보이듯 곡식을 빻아 떡을 만드는 방앗간처럼 재활용이 되지 않는 작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시민들과 함께 모으고, 모인 플라스틱을 빻고 녹여 새활용품을 만드는 자원 순환 프로젝트이다. ‘참새클럽’이라는 자원 순환 캠페인에 참여하는 1만여 명(2021년 4월 기준)의 시민들은 생활 속에서 나오는 플라스틱 병뚜껑, 병목 고리와 손바닥만 한 크기의 PP 재질 플라스틱 쓰레기를 모으고, 플라스틱방앗간에서는 그것을 재료로 튜브짜개와 같은 물건을 만들어 다시 돌려준다. 이러한 활동에 참여하며 발생하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을 직접 확인하고,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한 지속적인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플라스틱방앗간 프로젝트의 목표이자 배경이다.
추적-기록-질문-재탄생

작년 연말 플라스틱방앗간은 2020 고3 수험생 대상 문화예술교육 ‘상상만개-We are Golden EXPRESS’에 참여했다. ‘반짝반짝 열아홉, 나의 취향이 닿는 세계로’라는 문장으로 시작된 상상만개 수업은 성격유형 검사 결과에 따라 16개의 그룹과 콘텐츠, 아티스트가 나뉘어 매칭되었다. 플라스틱방앗간이 만난 참여자들은 ‘정의의 사회운동가’ 유형으로, 넘치는 카리스마와 영향력으로 청중을 압도하는 리더형 그룹이었다. 국내 2%밖에 없다는 희귀한 우연으로 묶인 14명의 참여자는 춤을 추고,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드는 다른 그룹과는 달리, 주머니와 집게를 들고 플라스틱 쓰레기를 졸졸 쫓아 추적하기에 나섰다. 반짝이는 취향을 찾아보고자 참여한 활동에서 이 친구들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찾아 동네 뒷산을 오르거나, 생수병 뚜껑 다섯 개를 소중하게 모으고, 아침으로 먹은 두부 용기를 깨끗이 씻어 사진을 찍었다. 이런 활동이 과연 취향에 맞았으려나, 하는 걱정이 조금 드는 것도 잠시, 참여자들은 각자의 플라스틱 추적기를 꼼꼼하고 정성스럽게 기록해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참여자들의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이제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니었다. 아무런 멈춤 없이 분리배출 통으로 버려졌을 플라스틱을 멈춰서 다시 보고, 누가 어떻게 사용해 버려지게 되었는지 추적했다. 동생과 함께 먹은 과일주스 컵, 부모님이 드신 맥주의 병뚜껑, 쿠키와 함께 먹은 우유의 병뚜껑들이 모였다. 한 참여자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변화무쌍함에서 따내어 플라스틱에 ‘무진이’, ‘무쌍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수학여행에서 샀던 주스 병의 모양이 귀여워 보관하고 있었는데, 이 병을 구매했던 관광지 주변에서 판매되고 있던 수많은 낱개 포장과 과대포장의 플라스틱이 떠올랐다던 참여자도 있었다. 상상만개 참여자들에게 발송된 활동 키트의 포장재가 플라스틱인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진행단에게 그와 관련된 피드백을 전하기도 했다. 역시, 큰 영향력으로 주변을 이끄는 ‘정의의 사회운동가’ 유형다운 모습이었다. 그렇게 각각의 재밌는 역사를 가진 플라스틱들이 플라스틱방앗간으로 도착했고, 업사이클 물품으로 재탄생되었다. 어쩌면 일반 쓰레기가 될 수도 있었을 무진이와 무쌍이는 튜브짜개가 되어 참여자에게 다시 전해졌다.
열아홉, 불안보다 도전으로
성격유형 검사의 16가지 중 ‘정의의 사회운동가’ 유형은 언변능숙형으로, 타인의 성장을 도모하고 협동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참여자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심화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 앞서 이 유형에 대해 찾아보니, ‘공동의 선에 대한 관심이 크며, 정말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에 대해 헌신이 강하다.’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노트에 크게 적어둔 뒤 참여자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비록 비대면으로 화면을 통해 만날 수밖에 없었지만, 병뚜껑에 이름을 붙이고 집에서 만들어진 플라스틱 쓰레기 하나하나의 삶을 되밟아 기록한 참여자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은 정말 특별했다. 참새클럽에 참여하려 했으나 신청 시기를 놓친 아쉬움, 플라스틱 일기 챌린지에 참여해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다회용기를 가져가 음식을 포장했던 기분 좋은 경험, 자신이 아르바이트하는 패스트푸드 체인점에서 자꾸만 발생하는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가 눈에 밟혔던 불편함을 나눴다. 환경운동가가 되고 싶은데, 어떤 학과를 가야 하는지 대학 진학에 관해 물어본 참여자도 있었다. 열아홉과 스물의 사이, 10대를 마치며 20대를 맞이하는, 어쩌면 붕 떠다닐 수도 있고 어쩌면 어딘가에 꼭 묶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는 시기다. 플라스틱방앗간을 만난 참여자들은 이렇게 반짝이는 경험과 생각으로 이 시기를 꼼꼼히 채워나갔다.
플라스틱방앗간과의 만남이 참여자들의 삶에 얼마큼의 크기로 남을지는 모르지만, 어찌 됐든 즐겁고 뜻깊은 활동이었음은 분명해 보였다. 상상만개 참여자들을 만나며 대학 진학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던 불안한 열아홉의 내가 떠올랐다. 지금의 자신과 지금의 세상이 혹시나 불안할지도 모를 참여자들에게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잠깐 멈춰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다고 말해주고 싶다. 실패할까 두려워 시도하지 않는 것들이 남기는 후회의 크기가 실패했을 때의 아쉬움보다 크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 자리를 빌려 이렇게나마 전한다.
김자연
김자연
서울환경운동연합 ‘플라스틱방앗간’ 프로젝트 매니저. 대안교육기관에서 문화기획자 일을 하다가 유학을 다녀온 뒤 플라스틱방앗간의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었다. ‘지구의 생태계 퍼즐 속 인간의 자리는 어디일까?’라는 궁금함을 항상 가지고 있다.
yona@kfem.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