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득골북샵이 문을 연 지 벌써 5년을 맞았다. 20대부터 책 만드는 일을 해오며 늘 나를 허탈하게 만드는 생각이 있었다. 책만 만드는 ‘장이’일 뿐 책에서 얘기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출판기획을 할 때마다 만나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팔릴까?’ ‘어떤 책이 나와 독자의 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을까?’ 두 관점의 공생이었다. 피할 수 없는 진검승부의 외나무다리라 할까. 많은 신간이 매년 쏟아지지만 자비출판이 아니라면 모든 기획자는 이 질문을 놓고 외로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을 만난다.
삶 디자인을 위한 실험
나는 20대 때부터 명상과 불교에 관심이 있었다. 그 분야의 잡지를 만들고 뉴에이지라 불리는 미국의 명상 트렌드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당연히 그 분야의 많은 책을 세상에 선보였고, 무궁무진한 의식의 스펙트럼을 맛보고 체험했다. 2000년대 들어 ‘웰빙’이라는 문화코드로 한국 사회에 전파된 라이프스타일은 골방에서만 만지작거리고 즐기던 의식의 경험이 세상 밖으로 나와 사회화되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채식, 요가, 사회적기업, 가치투자, 대안교육, 여행, 타이니하우스(Tiny house), 텃밭, 유기농, 공정여행, 생애전환 등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시도가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나도 더 이상 꿈을 미루고 싶지 않았다. 이미 30대 초반부터 시골로 공간 이동을 결정하고 있던 터라, 거주지를 원주로 옮기고 지역출판의 가능성을 시험해오다 2005년에 드디어 오매불망 꿈꾸던 시골에 거점을 마련했다. 출판과 거주를 어우르면서 배우고 익힌 것을 콘텐츠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강렬해졌다. 마음공부와 삶을 통합하는 방식 말이다. 우리가 경험한 제도권조차 광활한 의식의 영역에서는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전제에서 자율적인 삶을 디자인해보는 교육과 직업의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터득골북샵 전경
무의식을 길어 올리는 버킷리스트
2015년 『오냐나무』 그림책은 그렇게 탄생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화엄경의 핵심 사상이 콘텐츠의 중심이다. 마음이 모든 것을 창조하는 원천이니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꿈꾸고 살아갈 날을 결정한다. 나의 경우는 자연미가 훼손되지 않은 깊은 원시 자연에 살며 사람들이 ‘일주일 후에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삶’을 살도록 돕는 게 꿈이다. 『오냐나무』 그림책을 바탕으로 죽기 전에 살고 싶은 것을 결정하는 워크숍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코로나19로 많은 계획을 미뤘지만 ‘오냐나무 워크숍’ 축소판인 <오냐나무 Before I Die> 프로젝트를 올해 4월부터 시작했다. 일견 흔한 버킷리스트 정하기로 생각할 수 있지만 버킷리스트 이루기가 목적이 아니라 버킷리스트를 정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걱정과 두려움을 훨씬 더 소중하게 여긴다. 버킷리스트는 무의식을 의식의 표면으로 끌어올리는 두레박으로 사용된다.
터득골북샵에 오면 책방 초입에서 ‘Before I Die’ 보드를 만난다. 낙서판 같이 누구나 부담 없이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포스트잇에 써 붙인다. 그러고 나면 오냐나무 결정의 법칙을 간단히 숙지한 후 오냐나무 노트에 균형 있고 자세한 소원을 적는다. <오냐나무 Before I Die>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법칙은 현재형으로 소원을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이다. 현재 어떤 조건과 능력을 갖추고 있든,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마음으로 이미 이루어진 상태로 그것을 떠올린다. 그러고 나면 터득골북샵 뒷산에 있는 솔빛야외극장으로 올라가 발걸음에 소원을 이름 붙여 걷는 길 ‘오냐로드’를 걷고, ‘오냐의 집’에 이르러 커다란 윈드차임을 치며 온 우주에 선언한다. 둔중하고 긴 여운의 종소리가 뇌리에 새겨진다. 말이나 생각은 가볍게 사라지지만 종소리는 여운으로 남아 두고두고 마음속에 메아리를 울려줄 것이다. 소원의 타종이 끝나면 걱정을 날려 보내는 타종도 한다. 처음에는 너무도 강렬한 울림으로 존재하지만, 점점 작아져 마침내 사라진다. 걱정과 두려움도 소리와 함께 허공 속으로 날려 보낸다.
  • 책방 초입의 ‘Before I Die’ 보드
  • 오냐의 집 윈드차임
내가 결정한, 나를 위한 공부
<터득골인생학교>는 <오냐나무 Before I DIe> 실행 단계의 두 번째 프로젝트로 스스로 결정한 버킷리스트를 삶으로 가져오는 실용인문학 과정이다. 누구나 자율적으로 결정한 꿈을 일과 삶의 방식으로 가져올 자기만의 커리큘럼을 직접 짤 수 있다. 직접 만든 커리큘럼을 북클럽 형태로 재구성해 각 분야의 가장 실체적 경험을 가진 멘토와 멤버가 함께하는 대학원 수준의 끝장 토론을 본질로 한다. 7만 종 가까운 신간을 출간하는 한국의 거대 필자 군과 현장의 크리에이터들이 인생학교의 멘토다. 스스로 결정한 삶을 토대로 만든 커리큘럼으로 토론하고 공부한다. 철저히 자기 결정적이다. 태어난 목적을 수행하는 것이니 타율은 없다. 수십 수백 개의 북클럽이 <터득골인생학교>의 이름으로 활시위를 떠난다.
  • 『오냐나무』 그림책
  • <터득골인생학교> 첫 강좌 ‘파이낸셜 리터러시’
앎이 삶이 되도록
그러나 공부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공부만 하고 그렇게 살 수 없다면 학교는 또 무슨 소용인가. <터득골 장인포럼>은 공부를 일과 삶으로 연결하는 생동감 넘치는 만남의 자리다. 수백 년 동안 지역을 지탱해온 뿌리 기술을 새 인문학의 시각으로 새 직업의 영역으로 부활시키는 만남의 장이다. 도제로 인턴으로 수업으로 그 만남의 인연은 이어질 것이다.
‘오냐나무’는 17년 전 터득골에 씨앗을 뿌리고, 5년 전 그림책 『오냐나무』로 시작해 어린이 <오냐나무 캠프>, 성인 <오냐나무 워크숍> <터득골인생학교> <‘터득골 장인포럼>으로 성장의 여행을 거듭하는 중이다.
오냐나무야, 자유롭게 꿈꾸고, 꿈꾼 대로 살아보자꾸나 !
나무선
나무선
서점, 출판, 북스테이, 공연장이 있는 터득골 대표. 그림책 『오냐나무』를 중심으로 로컬 라이프스타일을 펼쳐가고 있다.
arthaway@naver.com
터득골북샵 www.blog.naver.com/borrysim25
사진제공 _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