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문화예술교육 분야 역시 큰 도전의 시간을 보냈지만, 그와 동시에 근본적인 질문이 이어지고 관점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제 새로운 10년을 만들어갈 2021년을 열며 [아르떼365]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연속 좌담을 통해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변화와 전환을 모색하고 새로운 도전 과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① 아르떼365 편집위원
    
② 학교‧사회 예술강사
    
③ 교육연수센터 신규 코스워크 개발자

좌담 개요
• 일 시 : 2020년 12월 17일(목)
• 장 소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A.Library
• 참석자 : 고영직(문학평론가, 좌장), 정원철(추계예술대학교 교수), 조은아(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최보연(상지대학교 조교수)
고영직 : 지난 1년 동안 코로나19가 장기 지속 상태였다. 백신이 개발되었다고 하지만, 언제 종식될지는 감염병 전문가들도 선뜻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위드 코로나’ 시대를 보내는 세밑인 요즘 선생님들의 근황은 어떠한가? 한 해 동안 본인의 작업과 활동을 비롯해 문화예술(교육)과 관련해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덧붙여주시면 좋겠다.
정원철 : 한 공간에서 독립적으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몸의 정주시간이 늘어났다. 여전히 수업도 하고 여러 방식으로 교류도 하지만 몸이 한곳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것은 분명하다. 배고프면 밥 지어 먹고, 심심하면 음악 듣고 영화 보고. 이런 시간이 현저하게 늘어나면서 몸이 느끼는 자극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몸과 마음이 가까워지는 것 같다. 저에게는 이것이 제일 큰 변화다. 오늘 마지막 수업을 하고 왔다. 정년까지 5년 남았는데 올해 그만두기로 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었는데 코로나 상황이 좀 더 깊게 생각하게 만들었고, 결심하게끔 해주었다.
조은아 : 음악계에서 저의 생존은 무대 위 공연을 통해 증명된다. 무대는 음악가에게 생업의 현장이지 않던가. 그런데 코로나19로 수많은 공연이 무산되거나 취소·연기되고 말았다. 공연을 재개할 만하면 또다시 연기되어 희망고문처럼 반복되는 상황이 몸과 마음을 잔뜩 경직시키더라. 예전에 할 수 없었던 일을 지금은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했던 일을 시도해야 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최보연 : 개인적 변화로 최근 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코로나 상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학생들과의 만남을 비대면으로 준비하는 일이 가장 도전적이었던 것 같다. 이론을 넘어 실습수업까지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가운데 학생들과의 쌍방향 소통을 어떤 방식으로 더 잘 풀어나갈 수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고민했다. 문화예술교육을 포함한 교육 현장의 여러 변화를 몸소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 그 자체가 큰 과제였던 것 같다.
고영직 : 저는 희비의 쌍곡선이 있었다. 상반기에는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며 책도 보고 글도 썼는데, 2020년 6월 25일 『녹색평론』 발행인이자 저와 오랜 인연을 맺었던 김종철 선생이 돌아가셨다. 선생을 통해 글쓰기의 의미를 많이 배웠다. 선생이 아니었으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생각과 글쓰기가 아주 좁은 테두리 안에 갇혔을 것이다. 그분을 잃은 올해는 저에게 잊히지 않을 한 해가 될 것 같다.
한편, 2020년 상반기에는 지역과 현장에서 문화예술교육이나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하반기에 짧은 시간 동안 급격하게 진행된 것 같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문화예술 활동이나 교육 현장이 있다면 듣고 싶다.
코로나 시대에 만남의 의미
조은아 :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현상 중 하나가 모자이크 앙상블의 범람이다. 뿔뿔이 격리된 연주자들이 각자의 집에서 개인의 연주를 촬영한 후, 단원들의 이 영상들을 합성해 편집한 형식이 모자이크 앙상블이다. 코로나처럼 모자이크 앙상블도 음악계에 삽시간 퍼져 나갔다. 음악은 현장에서 생생한 소리를 듣고 조율하며 공명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디지털 랜선으로 연결되다 보니 전혀 다른 차원의 활동이 전개되었다. 현장의 앙상블을 조율하는 지휘자의 역할을 이젠 비디오 아티스트나 음향 엔지니어가 도맡으며 사후 합성과 편집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밀집, 밀폐, 밀접 등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공연장을 기피하고 대신 디지털 초연으로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유튜브나 SNS 등에 자신의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는 것이다. 2019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2020년의 독특한 음악적 현상이다.
최보연 : 일상에서 가깝게 문화예술교육을 바라보고 어떤 식으로 소통할 것인가 고민하는 분들이 있는가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관성적으로 대응하는 경우도 있어서 굉장히 양분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적인 방법뿐 아니라 학생, 주민과 어떻게 만날지에 관한 고민이 함께 이뤄져야 하는데, 코로나 상황을 이유로 만나지 않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는 태도를 봤을 때,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다.
정원철 : 며칠 전 저희 동네 세월초등학교 교사들을 만나보니, 코로나19 상황이 정말 진심으로 자기 역할을 하는 사람을 아주 잘 구별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느꼈다. 등교수업이 계속 미뤄지니까 교사들 모두 굉장히 어려워했다. 다른 초등학교는 대부분 콘텐츠 업로드 방식을 택했던 것 같다. 그런데 세월초는 주로 실시간 화상 수업을 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등교수업이 허용되었을 때는 몸과 몸이 만나는 소중한 기회가 주어졌으니 무조건 아이들과 뒹굴면서 놀았다고 한다. 굳이 안 만나도 할 수 있는 수업을 만나서까지 할 필요가 없고, 지금 아이들에게 결핍된 것은 뒹굴며 노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말 공감되는 놀라운 이야기였다.
최보연 : 올해 저의 키워드 중 하나는 ‘아이러니’다. 고무신 선생님의 놀이에 관한 책을 봤는데 아이들과 물, 불, 흙을 가지고 노는 것이다. 코로나 상황에서 특히 눈에 들어와서 읽게 되었지만, 이들 놀이는 사실 코로나와 아무 상관없다. 그런데 생태적 재료를 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놀이할 수 있다는 그 당연한 것이 마치 새로운 발견인 것처럼 느껴진 아이러니한 상황이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그동안 예술계에서 ‘결과물’이 아닌 예술가에게 믿음과 신뢰를 갖고 ‘과정’을 지원하자고 요청했지만 이뤄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코로나로 인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결국 예술지원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었다. 코로나 상황은 이렇듯 관점의 전환을 가져왔고, 선례를 만들어 주었다. 그런 측면에서는 굉장히 고무적이다.
고영직 : 지난 12월 은평문화재단 문화정책연구소가 주최한 <2020 은평 지역사회 심리 탐구>라는 온라인 포럼에 참석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은평구에서 니은서점을 운영하는 사회학자 노명우 교수가 서점이 있는 ‘서울 은평구 연서로26길’ 300미터 남짓한 거리에 자영업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전수조사하고 그중 여섯 명을 인터뷰한 결과를 발제했다. 결론은 사회적자본(social capital)의 형성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때일수록 ‘이웃’이 중요하다는 점을 환기한 연구였다. 넓은 의미에서 문화예술 연구의 범주에 속할 수 있는데, 생활권에 시선을 던지며 지역사회의 심리를 탐구하려는 활동이 매우 좋았다. 코로나19 시대에 더 많이 나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정원철 : 태백 철암역 근처에 근사한 판화 공방이 있다. 아주 외진, 탄광촌이 있던 곳인데 작년에 문화도시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었다. 거기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작업하러 오는 70대 어르신이 계시다. 광부로 정년퇴직했는데, 지나가다 이상한 공방을 발견하고 1년 넘게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너무 재미있다고 하신다. 공간의 힘이 있는 것 같다. 코로나 상황이 지속된다면, 프로그램만 지원할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가까이, 일상 너머의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자연스럽게 그곳을 사용하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영직 : 코로나19 상황에서 ‘한 번도 되어보지 않은 존재가 되어보는 것’(푸코)이 중요하다. 관성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전에 한 번도 안 해본 것에 도전하면서 다른 존재가 되려는 모험에 뛰어들어야 한다. 어찌 보면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와 여건을 만드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에 대해 정책, 현장은 잘 대응했는지 이야기해보면 좋겠다.




  • (왼쪽부터) 정원철, 조은아, 고영직, 최보연
본질이 가진 낯선 해법을 찾아
조은아 : 2020년에 난무했던 디지털 온라인의 순기능이 있다면, 음악의 경우 주로 수도권에서만 향유했던 공연문화를 전국적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연주자를 대거 섭외해 대규모 교향곡을 무대에 올리던 흥행 코드가 코로나 이후 전격 변화를 맞게 되었다. 무대에 오르는 연주자 수가 50명으로 제한되고, 연주자마다 1.5~2미터 물리적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예전엔 소외되었던 소규모 실내악 작품들이 새삼 각광 받았고, 단출한 협업이 활성화되었다. 2시간이 넘는 유장한 서사를 담은 교향곡 대신 7, 8분으로 압축된 디지털 온라인 콘텐츠들이 새로운 창작 경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공연장에선 청중을 객석에 붙들어 두며 쉼표의 여운을 들을만한 고요한 침묵과 기승전결의 서사를 따라가는 시간의 향유가 가능했지만, 온라인에선 클릭 한 번으로 튕겨 나가기에 십상이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여겨지니까 음악의 본질을 전면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
최보연 : 예술이 본질적으로 가진 회복력이 있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 상황이 되면서 ‘예술의 회복력’이 일종의 ‘운동’처럼 담론화되기도 했다. 원래 중요했던 것을 코로나를 빌어서 성찰하게 되는 이 상황 자체가 약간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네스코에서 현장까지 ‘예술의 회복력’이 전해오는 과정에서 결국 ‘우리가 놓쳤던 본질을 보자’라고 다들 얘기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화자들 각자의 의도는 서로 간극이 큰 것처럼 보여서 아쉽다.
정원철 : 문화예술교육 현장이 관행화되었던 측면을 [아르떼365]를 통해 우리가 여러 차례 지적했다. ‘언러닝(unlearning)’이 필요한 것 같다. ITAC5의 주제이기도 했는데 굉장히 시의적절했다. 낯선 상황은 그야말로 낯설게 받아들여야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 상황은 낯선데 우리가 겪은 것, 했던 것을 약간 변형해서 해법을 찾으려 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 태도를 버린다면 그래도 뭔가 새로운 것들이 발견되지 않을까. 정책, 지원, 실행의 모든 주체가 이제껏 경험을 통해서 쌓았던 것을 다 무시하고 잊어버리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나 자신도 내 고집과 경험을 소신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적으로 보려고 애쓰고 있다.
조은아 : 얼마 전에 경기문화재단의 요청으로 전염병의 역사가 음악에 끼친 영향을 강연할 기회가 있었다. 여러 자료를 찾으며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는데, 흑사병이나 스페인 독감 등 감염병이 인간의 삶을 옥죄어 올 때마다 음악이 유행처럼 몰두했던 주제적인 경향이 있더라. 불멸, 죽음, 유한한 시간, 자연의 두려움, 인간에 대한 신의 징벌, 장례식, 슬픔, 이런 주제에 관한 뼈아픈 성찰이 음표로 번역되어 온 것이다. 음악가 자신이 전염병을 경험하면서 느낀 신체적 고통을 음악에 담아내거나, 주위 사람들의 죽음을 목도하며 느낀 분노의 감정을 처절히 담아내기도 했다. 이런 음악들을 접하며 ‘코로나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자연을 파괴해온 인간의 이기심과 이 질병이 강하게 결속되어 있지 않을까. 인간 문명에 대한 겸허한 반성과 통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고영직 : 우리의 삶은 다 부서져 가고 있는데 모든 것은 예전처럼 계속되어야 한다는 관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 과감하게 결별할 필요가 있다. 삶의 관성이 바뀌지 않는다면 문화예술 현장의 변화나 태도의 전환, 활동의 전환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 문화예술교육이나 활동에서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얼마나 문제의식을 느끼고 자신의 예술적 역량이나 교육철학에 근거해서 활동을 모색하고 있는지 돌아보면 좋겠다. 어떻게 이 구조를 깨야 할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어주시면 좋겠다.
정원철 : 전 지구적이고 전 국가적인 걱정이 커지다 보니, 이 위기상황에서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오히려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순간적인 위안이라 하더라도 위기 상황에서 예술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언러닝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낯선 것을 철저하게 낯설게 보자, 겪지 않았으니까 해보지 않았던 것을 해보자. 엉뚱한 제안이나 시도를 예술계에서 하지 않으면 누가 한단 말인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계획은 최소한 여기서는 배제해도 되지 않을까. 이 정도로 극단적이지 않으면 예술계도 여전히 관행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을 조금 더 낫게, 인간적으로 인간답게, 결국 문화예술교육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 역시 같지만, 방법이 달라야 한다. 인문적인 지향점이 같다고 해서 예술계가 똑같은 방식을 취할 필요는 없지 않나.
최보연 : 그래서 어려운 것 같다. 현장성이 공연을 정의하는 핵심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 재정의할 것인가. 영상화된 공연, 모자이크된 공연, 영상의 합주는 또 다른 장르로 규정할 것인가? 저는 영상화된 공연이 아직 익숙하지 않다. 학생들에게 온라인 전시, 온라인 공연을 추천하고, 함께 보기도 하지만, 개인으로서 나 자신은 사실 아직 어색하고 불편함을 느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어쩌면 이 새로운 환경은 조금 일찍 왔을 뿐 어차피 올 것이었다. 과거 기준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낯선 환경을 새롭고 낯설게 보면서 다시 기준을 잡아가야 할 텐데, 그 기준을 어떻게 잡아가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에 대한 탐색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더 작게, 더 낮게, 더 새롭게
고영직 : 양천구 목2동에서 활동하는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김지영 공동대표가 양천문화재단 온라인 세미나에서 거버넌스에 관한 발제를 했다. 그중 톱다운(top-down) 방식에 관한 역발상은 최근 들은 얘기 중 가장 신선했다. 우리는 항상 톱(top)이 ‘중앙정부’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장을 톱으로, 중앙정부를 다운(down)으로 위치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가? 코로나 시대의 문화예술 지원정책에서도 이런 시도가 관철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관성이나 관행이나 틀을 깨는 것은 어렵다. 2021년에도 올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업이 이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가 환기시켜준 것은 결국 ‘지역이 살아나야 한다’는 생활권의 중요성이었다. 2020년 3월 코로나 1차 대유행 때 대구지역에서 소소하게 활동했던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활동하는 그룹들이 행정의 간극을 메워주었다. 오히려 관공서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동아리들은 공간이 문을 닫으니 활동을 중단했다. 어쩌면 더 작아져야 하고, 더 낮아져야 하고, 더 생활권 단위로, 지역으로 내려가야 한다. 이것이 코로나 시대에 환기해야 하는 문화예술 활동이나 문화예술교육 방식이 아닐까.
정원철 :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 철저하게 무한경쟁, 적자생존, 승자독식 같은 신자유주의 논리가 작동하고 규모가 큰 것들만 살아남는다. 그동안 블록버스터 전시나 옥션, 아트페어에서 매진된 작품만 언론에 노출되었고 더 작은 규모, 현재 작동하고 있는 미술활동은 주목되지 않았다. 코로나 상황에서 대규모 행사들이 열리지 못하니 굉장히 여러 규모, 여러 측면의 행사가 열리는 것을 볼 수 있게 됐다. 이제껏 어떻게 해볼 수 없었던 승자독식의 룰이나 기존의 상황에 균열을 내는 계기가 되었다.
조은아 : 공연계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국내 유수 오케스트라의 협연자는 외국인에 편중되었는데, 올해는 코로나 덕택에 재능 있는 국내 연주자들이 협연자로 대거 발탁되었다. 하지만 확진자가 1천 명 이상 상회하게 되면 모이는 회합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고립과 자기성찰, 하나의 점으로 살아가는 상황을 견뎌야 한다. 예술이 본디 갖고 있던 연결의 미덕이 거세된 상황에서 예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정원철 : 제가 자꾸 긍정적인 측면만 보는지 모르겠는데, 모든 연결이 차단되고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몸의 만남만 고립되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이 고립의 경험이 여러 분야에, 굉장히 많은 사람에게 어떤 생각지도 못했던 성찰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본다. 모자이크 앙상블 역시 직접 공연장에 모여서 관객과 만나는 것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가져다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발적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모은 것들이 하나의 커다란 것이 되는 사례가 음악계에는 많은 것 같더라. 사람들의 적응력이라는 것은 어마어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에 우리가 해오던 것과 비교하지 말고 새로운 눈으로 보자.
조은아 : 현재의 공연 영상은 무대에 올려진 공연의 재현에 불과하다. 이렇게는 살아남기 힘들다. 태생부터 온라인에 최적화된 본투비 웹(Born to be Web)의 공연들이 필요하다. 새로운 시도를 하려면 인재들이 모여야 하고 뒷받침해줄 수 있는 재원이 필요할 텐데, 개인이 수행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우후죽순 유행하고 있는 랜선 앙상블이 지속될 수 있을지 개인적으론 회의적이다. 시도 자체를 넘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
내 삶을 관통하는 성찰로부터
고영직 : 당위로서의 활동이 아니라 내 삶의 근간으로서 문화예술 활동이 중요해지는 것 같다. 내 삶의 근간이 되는 문화예술 활동이 되려면 어떻게 현장이 바뀌어야 할까? 바뀌려면 어떤 변화들이 필요할까?
정원철 : 그동안 문화예술교육은 우리끼리,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풀어내려고 애썼다. 지금은 그것으로는 안 된다. 기후위기, 일상적 재난의 시기에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제가 추구하려고 하는 것은 토착적 삶이다. 퇴행적으로 보이지만 내가 살고 있는 그곳에서 현지인, 지역민을 넘어서는 토착민으로서의 삶을 살아보자는 생각이다. 사실 토착민으로서의 삶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속도가 느려야 한다. 두 번째는 단조로운 삶이다. 몸의 움직임이 단조롭고 느릿느릿하다. 인간(人間)의 삶에서 세간(世間)의 삶으로 바꿔 가는 실천적인 행동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저 자신을 하나의 뿌리 내린 생명체로 인식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되면 인간 외의 다른 존재들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문화예술교육도 그런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은아 : 당위가 아닌 내 삶의 근간으로서 예술 활동을 하려면 생계가 해결되어 먹고 살 거리가 있어야 한다. 전염병의 위험으로 무대를 잃은 음악가들이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대면하지 않고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접촉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성장했을 때, 예술의 역할은 무엇일까 상상해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여태까지는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나무악기의 배음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디지털의 조작이 불가피한 시각, 청각에 편중된 영상이 부각되고 있다. 몸의 정주가 불균형하거나 결핍되지 않도록 잘 살펴야겠다.
최보연 : 코로나 때문에 잃어버린 일상이라는 말이 그야말로 ‘일상적’으로 쓰인다. 하지만 여기서 ‘일상’이 모두 같거나 평면적일 수는 없지 않을까? 저의 경우 일자리가 달라져 하는 일이 달라졌으나 조금 불편했을 뿐 망가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정말로 망가진 사람들이 있다. 사회적 약자들, 재난 약자들은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는 갈 수 없다. 그런데 모두 똑같이 일상을 잃어버렸다고 하는 것이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예술과 관련하여서는, 일단 예술계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어떻게 견딜지가 올해의 화두였던 것 같다. 예술이 할 수 있는, 다르게 볼 수 있는 감각이 살아난다면, 평면적으로 똑같이 취급했던 일상들을 한 단계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매일 뉴스에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 수가 나온다. 숫자로만 얘기된다. 세월호 때는 그래도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다 숨겨져 있고, 그들이 잃어버린 ‘일상’이 어떠했는지 주목하지 않는다. 그런 부분을 좀 더 성찰하고 바라보는 것이 문화예술의 역할이어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 때문이라고들 하지만, 무관심한 것은 무관심한 대로 관성적인 것은 관성적인 것은 관성적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보게 된다.
고영직 : 저도 저 자신을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삶의 근간에서 문화예술 활동이 가능하려면 ‘문체’(文體)가 달라져야 한다고 느꼈다. 요즘 후배들에게 많이 배운다.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유다원 대표가 어느 세미나에서 지역 기획자로서 3년 동안 맨땅에 헤딩하며 토양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결국 토양을 바꾸는 ‘지렁이 되기’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하더라. 뭔가 사심 가득하게 접근해야 할 것 같다. 필요에 의해서, 욕망이 차올라서, 사심 가득한 기획이나 활동을 해야 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쓸 때 좀 더 쉽게 쓰려고 노력하고, 좀 더 설득력 있는 언어를 던지려고 한다. 이런 태도가 정원철 선생님이 말씀하신 토착적 삶과도 약간 이어질 것 같다. 시선이 낮아지고 겸허해져야 하며, 태도가 더 겸손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담담하고 사소한 다짐으로
고영직 : 2020년 한 해를 결산하는 것도 어려운데, 2021년 새해를 조망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내일의 상황을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담담한 마음으로 하루하루의 일상을 사는 것이 아닌가 한다.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가짐을 간략하게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정원철 : 작가이지만 학교에 재직하다 보니 학생들 가르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썼다. 행동보다 말을 훨씬 더 많이 했다. 학교를 그만둔 후에는 내가 학생들에게 했던 말을 내 삶 속에서 실천해보기로 다짐했다. 학생들에게 용기를 주고 북돋우려고 저 높이 있는 이상적인 얘기를 정말 많이 했다. 고영직 선생님이 문체를 바꿔야겠다고 하신 반성과 거의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조은아 : 제 직업에 대한 자부심 중 하나가 지구에 민폐 끼치는 직종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음 세대에 좋은 삶의 터전을 넘겨주고 떠나는 삶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다. 음악과 함께 하는 삶을 전파하고 싶다. 내년에도 격리나 감염병의 위험에 여전히 노출되겠지만 열린 마음으로 몰입해서 음악에 침잠할 수 있다면 좋겠다.
최보연 : 저의 다짐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지금 저희 학과 학생 중에는 웹툰, 웹소설을 쓰는 등 창작을 하는 친구들도 많다. 이런 전 지구적인 변화의 상황에서 창작을 원하는 학생들과 함께 무엇을 시도해볼지 같이 고민해볼 계획이다. 이러한 고민을 작지만 하나씩 하나씩 시도해보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
고영직 : 저는 ‘동네 지식인’으로 살고자 한다. 2020년 동네 젊은 친구들과 프로젝트를 같이 하면서 즐거웠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술도 마시고 같이 고민을 나누는 역할을 했다. 동네 지식인으로서 삶을 더 내실화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그러다 보면 제 삶의 시선도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는다. 오늘 얘기가 다소 개인적이었더라도, 이런 때일수록 사소하고 작은 이야기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사소해 보이는 이야기들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인생은 단편적인 것이 모여 이루어진다”(기시 마사히코)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고영직
고영직 편집위원

문학평론가. 경기문화재단 전문위원을 지냈다. 한국작가회의 이사, 경희대 실천교육센터 운영위원, 춘천문화재단 [POT] 편집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삶의 시간을 잇는 문화예술교육』『인문적 인간』을 비롯해 『자치와 상상력』『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공저) 등을 펴냈다.
정원철
정원철 편집위원

홍익대학교와 독일 카셀종합대학교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했다. 문화연대 시각문화분과에 소속되어 시각문화교육 대안교과서 연구에 참여한 이후 문화예술교육에 관심을 쏟게 되었다. 추계예술대학교 판화과에 재직하며 미술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해 왔다.
조은아
조은아 편집위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 및 독일 하노버음대, 파리 고등사범음악원, 말메종음악원을 졸업했으며, 서울시향 토크 콘서트, KBS 교향악단 실내악 시리즈 진행, JTBC ‘차이나는 클라스’ 강연, KBS 클래식FM ‘실황연주&라디오 피아노 레슨’ 해설 및 연주 등 음악을 바탕으로 한 인문학 강연과 음악 해설을 하고 있다. 현재 더겐발스 뮤직 소사이어티 멤버,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예술감독,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보연
최보연 편집위원

정동극장, 아트선재센터, 세종솔로이스츠 등에서 공연기획과 마케팅 업무를 경험했고, 미국 뉴욕대학교 공연예술행정학 석사를 마치고 영국 워릭대학교에서 창의성 담론에 대한 연구로 문화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연구재단 지원의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연구위원으로 일했으며, 현재 상지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프로젝트 궁리
녹취·정리 _ 프로젝트 궁리 남은정·주소진
사진 _ 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