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문화예술교육 분야 역시 큰 도전의 시간을 보냈지만, 그와 동시에 근본적인 질문이 이어지고 관점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제 새로운 10년을 만들어갈 2021년을 열며 [아르떼365]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연속 좌담을 통해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변화와 전환을 모색하고 새로운 도전 과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① 아르떼365 편집위원
    
② 학교‧사회 예술강사
    
③ 교육연수센터 신규 코스워크 개발자
좌담 개요
• 일 시 : 2021년 1월 12일(화) 오후 6시
• 장 소 : 온라인(Zoom)
• 참석자 : 제환정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정체성’ 코스워크 기획, 좌장
               양혜정 연극놀이전문가, ‘장르 융복합’ 코스워크 기획
               전지윤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교수, ‘비대면’ 코스워크 기획
               허승환 서울 강일초등학교 교사, ‘교수법’ 코스워크 기획
               신예린 교육진흥원 교육연수센터 주임
제환정 : 2020년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교육연수센터에서 ‘정체성’ ‘교수법’ ‘장르·융복합’ ‘비대면’이라는 네 가지 주제로 신규 코스워크를 연구하고 기획했다. 기획자로서 모두 각자 연구 주제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저는 ‘정체성’을 주제로 코스워크를 기획하고 있다. “우리가 가르치는 것의 80%는 우리 자신이다”라는 명제 앞에서 정체성은 우리가 하는 활동, 자기규정, 지향가치, 관계 설정, 성찰과 평가 등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다. ‘역량개발’이라는 연수의 목적성 앞에서 ‘정체성’은 익숙하지만 낯설고, 모두에게 중요하지만 개별적일 수밖에 없는, 매우 다이내믹한 주제였다. “왜 정체성이 지금 유효하고 중요한 이슈인가”에 대해서 많은 토론과 각성이 가능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각 주제는 어떤 면에서 중요했고, 어떻게 주제에 접근했는지 말씀해 달라.
전지윤 : 저는 비대면 시대에 문화예술교육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예술강사의 역량을 강화하고자 하는 연수를 개발했다. 저 또한 예술가이고 증강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예술 콘텐츠 개발과 작업을 하고 있다. 이미 기술사회가 도래했고, 문화예술교육 가치가 사회가 요구하는 변화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 그것과 내가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 것인가 고민했다. 예술가, 예술강사의 주체적인 인식으로부터 중심을 잡을 필요가 있기에 ‘정체성’ 프로그램과 유기적으로 연계하려고 노력했다. 사용 툴(tool)을 설명하는 것을 포함하여 자신이 발상하고 표현한 것을 교육 콘텐츠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코스를 설계했다. 이러한 것이 기술사회에서 문화예술교육 콘텐츠를 개발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논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양혜정 : ‘장르 통합, 융복합’이라는 주제를 받았는데 쉽지 않았다. 저는 연극과 미술을 결합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러면서 과연 여러 매체를 섞는 것이 다양성에 기여하고 있는가, 통합은 이 시대에 정말 유용한 주제인가 하는 질문에 봉착했다. 5년 전쯤에 교육진흥원에서 5개의 장르를 함께 모아서 통합 프로젝트를 연구한 적이 있다. 그때 우리가 두 가지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했다. 실제로 장르를 불문하고 예술교육가들이 해당 장르교육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현재 문화예술교육이 예술의 기술교육이 아닌 삶의 성찰이나 질적인 의식을 고양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면서 학생들에게 장르 자체를 배우게 하기보다는 자기 삶을 통합시키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예술가가 예술에 접근하는 데 있어 다양한 매체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그것이 통합적 접근인가 질문하게 되었다. 그래서 예술교육이 장르가 아닌 예술가를 통한 예술교육이라는 측면에 오히려 집중하였다. 현재 우리나라 예술교육 분야에서 ‘예술가 중심’이라는 부분이 ‘콘텐츠’로 많이 오도되지 않았나 싶다. 예술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은 예술교육이라기보다 예술가 중심의 예술 프로그램이며 그 프로그램의 독특성에 주목해야 한다. 두 번째는 경험자가 이질적인 서로 다른 경험을 어떻게 자기 안에서 내적 통합을 이룰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 경험의 주체성, 예술가의 주체성에 포인트를 두었다. 작년에 짧은 기간 동안 예술가들이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언어를 갖고 학생들과 만나는지 인터뷰했다. 청소년과 함께 연극과 무용 프로그램을 하는 것을 라이브로 촬영하며 참여자의 내적 통합 과정을 기록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허승환 : 저는 29년 차 교사이다. 예술강사와 달리 학교 교사는 전문적 학습 공동체를 통한 모임이 활발하다는 장점이 있다. 전국 18만 명의 교사가 인디스쿨이라는 교사 커뮤니티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검인정 교과서를 썼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한 최선의 ‘교수법’을 공유하고 있다. 4~5년 전부터 아르떼 아카데미에서 ‘동기유발 및 발문 기법’ 강좌를 하고 있다. 교수법이라는 테두리 안에 예술강사는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부족하니 서로를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예술강사의 경우 학생들이 어느 정도를 받아들일지 모르고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학교와 학생에 대한 이해, 학생 중심 참여 수업에 대한 이해, 그림책을 활용한 비주얼 리터러시에 대한 이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접촉 시대의 놀이 수업의 실제가 이번 코스워크에 포함되었다. 실습이 필요한 문화예술교육이 언택트(untact) 상황에서는 가장 어렵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어떻게 학생들과 소통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과정이었다. 정답은 아니지만 나름 방향을 찾아가는 실마리라고 생각한다.
신예린 : 코로나19 이후에 너무나 달라진 교육 환경의 변화로 이 시대에 필요한 예술강사의 역량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했다. 비대면 전환 역량에 대한 부분이 가장 비중이 높을 것으로 예측하고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최대한 예술강사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조금 더 정확하고 면밀하게 조사하고자 참여할 예술강사를 모집해서 그룹별로 의견을 수렴하는 시간을 가졌다. 비대면에 대한 주제는 당연히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이와 함께 학교에 대한 이해, 교수법에 대한 수요 역시 줄어들지 않았다. 변화한 환경에서도 여전히 이것에 대한 갈망이 크다고 느꼈다. 예술강사들이 ‘융복합’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타 장르로부터 어떤 자극을 원한다는 새로운 지점을 발견했다. 마지막으로 지속적으로 예술강사 활동을 하기 위해서 소명의식을 깨울 수 있는 연수가 개설되기를 바랐다. 예술강사의 의견에 공통의 키워드를 뽑아서 이번 프로그램 개발의 네 가지 주제가 나오게 되었다. 교육진흥원과 전문가가 함께 예술강사의 의견을 듣는 것도 중요했다. 1차로 교육진흥원이 먼저 의견 수렴을 하고 주제를 선정한 후 네 분 선생님과 함께 예술강사의 의견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의견 수렴 결과를 기획회의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했던 이전과 달라진 점이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제환정, 양혜정, 전지윤, 허승환, 신예린
제환정 : 이번 코스워크를 기획하면서 예술강사의 필요와 요구를 어떤 식으로 반영했는지 얘기해보자. 코로나 이후, 연수 방법 역시 영향을 받았지만 본질적인 질문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향후 필요한 역량이나 사유에 대한 부분도 있을 것이고, 완결된 답은 없지만 질문 자체가 갖는 의미나 시의적절성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정체성이라는 키워드 앞에서 당사자성을 전면에 두려고 많은 예술강사와 토론하고,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기존 연수에서 진행한 적용 가능한 콘텐츠 중심, 사유화되는 노하우나 활동보다는 자신의 역할, 정체성에 대한 자긍심, 동료와의 연대감, 자기 돌봄의 필요성을 많이 읽을 수 있었다. 제가 생각했던 정체성이라는 것은 복수일 수밖에 없고 계속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들여다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연약한 것이 아니라 필수적이고 건강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예술강사의 니즈를 어떻게 읽으셨고 또 어떻게 접근하고 풀어가셨는지 궁금하다.

전지윤 : 처음에 실질적인 비대면 역량 강화를 요청받았다.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단순히 도구를 설명해주기보다는 비대면 상황에서 교육 콘텐츠를 자신 있게 만들 수 있게 돕고자 시작했다. 예술과 디자인 통합 과정에서 시각화하는 체계는 단계별로 커리큘럼이 설계되어 있다. 이를 본 프로그램에서는 ‘발상-구조화-시각화-인터랙션’의 구조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접근하였다. 코스워크를 설계하면서 비대면 시기에 문화예술교육 콘텐츠를 설계하기 위한 방법적 접근을 주체적으로 시도해 볼 수 있도록 시각화 방법을 모듈화하여 설계하였다. 발상의 구조화에서 시작하여 이를 콘텐츠로 기획하고 시각화할 수 있으며 콘텐츠의 인터랙션을 고려한 활용성을 실질적으로 시도해 볼 수 있도록 코스워크를 개발하였다.
코스워크 설계하면서 온라인 간담회를 통해 예술강사를 만났다. 예상대로 비대면 시대에 문화예술교육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기존의 문화예술교육 콘텐츠로는 온라인 환경에서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또한 온라인 환경에서 효율적으로 문화예술교육 콘텐츠를 만들고자 하는 의욕은 높았으나 현실은 의외로 그렇지 못한 듯했다. 따라서 전략적으로 단계별로 ▴1단계:설계형 단계(발상의 구조화/콘텐츠의 기획), ▴2단계:시각화 단계(콘텐츠의 시각화), ▴3단계:소통형 단계(콘텐츠의 인터랙션/콘텐츠의 활용성) 설계하였으며 동영상 강의를 모듈화하여 손쉽게 반복하여 학습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간담회 이후 기존의 어려운 프로그램을 대체하여 문화예술교육 콘텐츠를 구현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으로 부분적으로 진행하였으며 난이도를 대폭 수정하였다.
양혜정 : 네 가지 주제 중 ‘비대면’ 주제가 가장 기대되었다. 우리는 비대면 시대에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질문을 다시 던지게 됐다. 사실 현장에서는 라이브 경험이 온라인 콘텐츠라는 시각적인 요소를 통한 예술 경험으로 대치되는 상황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만들어갈 것인가가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언택트 시대에 저희가 도전했던 주제는 오히려 ‘콘택트(contact)’였다. 언택트 시대에 어린이·청소년의 신체, 몸의 경험이 굉장히 제한되고 소통도 온라인을 통한 시각적 경험에 한정되어 있다. 초반에 줌(zoom)으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예술교육을 많이 시도했다. 실제로 감각은 0.1초 차이에 따른 디테일에서 일어난다. 결국에는 장르를 어떻게 뒤섞을 것인지의 문제에서 벗어나서 어떻게 이질적인 것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을지, 본질적인 만남과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하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현 비대면 시대에 가능한 만남을 통한 예술교육이라는 측면에서 균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무모한(?) 도전을 했다. 코스워크를 4단계로 구성하고 그중 하나가 원초적 감각과 놀이성의 회복이라는 주제이다. 고대 악기를 복원해서 연주하는 예술가와 놀이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예술가를 매칭했다. 지금 어린이·청소년에게 필요한 감각의 첫 번째는 창조적인 움직임, 음악, 원초적인 것을 건드릴 수 있는 작업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충동과 도전이라는 주제로 연극과 무용 예술가와 함께 신화를 탐구해보는 시간, 그리고 영상매체로 리터러시가 바뀌고 있는 현시대에 영상매체와 문학의 통합으로 신체적 경험을 확장하는 것 등이다. 하지만 방역단계와 맞물려 있어서 이러한 접근방식이 얼마나 유효할 것인지 현장의 니즈를 더 반영한 것인지 등 숙제를 안고 있다. 어찌 되었든 대면을 통한 감각 치유와 회복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중요하다. 변화하는 시대에 예술의 현장성과 본질을 어떻게 계속 유효하게 할 것인가. 예술가들이 마지막 최전선을 지킬 수 있을까. 비무장 지대를 지키고 있는 기분으로 도전하고 있다.
제환정 : 무용처럼 인간의 몸, 집체와 대면이 필수적이면서, 기본적으로 로우테크에 가까운 예술의 경우 기술적 접목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기술을 기술로만 바라보지 않고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 인상적이다. 연수를 진행하면서 그런 ‘충동과 도전, 원초성’을 사전 녹화 형식으로 기획해야 하는 어려움도 깊으셨을 것 같다. 사실 전통적으로 학습, 검증되고 안전한 것을 지향하는 학교와 실험, 의심, 해체를 시도하는 예술의 지향가치는 충돌한다. 그리고 그런 충돌이 예술가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아이러니 때문에 매개자로서의 학교예술강사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
허승환 : 저는 제일 먼저 전국 초등학교 교사 커뮤니티에서 교사가 예술강사를 맞이하면서 느꼈던 것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다. 이후 교사와 예술강사가 함께 회의하면서 서로 간 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서로 가지고 있는 불만이 많았다. 학교예술강사로부터 수렴된 의견 중에서는 학교가 경직된 조직이라는 견해가 많았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복불복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정말 좋은 예술강사가 오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거다. 예술강사가 학생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싶어 하는 욕구가 크다는 것과 예술강사가 학교에 와서 정말 외롭겠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예술강사가 학교에서 수업에 대한 지원과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고민했다. 두 번의 회의가 끝나고 교사도 예술강사도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코스워크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학생과 학교에 대한 이해이다. 내가 어떤 수업을 대신해서 들어왔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인지 이해하는 것이다.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표방하는 인재상은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추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간이다. 아들러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길러주어야 하는 두 가지로, 첫째 자신이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도와주어야 하며, 둘째 친구들은 나를 돕는 존재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것을 자존감과 소속감이라고 이야기한다. 수업을 통해서 자아가치감과 자기 효능감까지 갖춘 인간으로 키우기 위해 예술강사의 역할이 정말 크다. 언택트 상황에서 학교에 오지 못하는 아이들에게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친구들과의 교류도 없고 교사가 일방적인 수업을 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같이 얘기 나누면서, 가르치는 입장이 아니라, 아이들의 내면에 갇힌 유전적인 능력을 믿고 연극, 무용, 디자인 등 자신의 예술 분야를 통해 그것을 끌어낼 수 있도록 러닝 퍼실리테이션(Learning facilitation) 과정에 담았다.
신예린 : 문화예술교육을 매개하는 예술강사에게 자기 질문을 가지는 것과 자신의 소신을 견고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만나게 된 예술강사님들을 보며 에너지가 많이 고갈되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감정적으로 많이 공감했고, 이런 부분도 어루만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새롭게 깨닫게 된 기회였다.
제환정 : 학교라는 생태계에서 아이들의 내재적 자발성을 끌어내는 것, 교육자처럼 계획을 구축하고 예술가처럼 그 안을 빠져나오는 자율성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이다. 여러 관계성 속에서 소진되기도 쉽다. 그럴수록 예술활동가들 간의 소통과 협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기획하신 연수 중 일부분은 영상으로 제작되었는데, 진행하면서 새롭게 발견했거나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달라.
전지윤 : 비대면 상황에서 최대치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과 표현하려는 생각과 무게감을 연결할 수 있는 연수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비대면 시대 문화예술교육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온라인에서 진행되는 이러닝과 같은 유형이다. 그러나 이러닝 교육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와는 달리 기술적 진보로 인하여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한 환경이다. 온라인은 비대면 학습을 진행하는 단지 수단이기 때문이다. 스마트 러닝 또한 마찬가지이다. 스마트 러닝 또한 비대면 학습 도구이지만 이러닝과 같이 퍼블릭 미디엄(Public Medium)이라 하기엔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 서로 다른 공간이지만 동시에 접속하여 언택트이지만 온라인을 통하여 온택트(Ontact) 유형의 학습과는 차이가 난다. 그러나 온라인은 광장처럼 모두를 모이게 할 수 있는 매개체다. 그래서 모듈화 이야기가 나왔고, 대면 수업을 염두에 두고 코스워크를 설계하였다. 비대면이긴 하지만 온택트할 수 있는 학습방법을 고민했다.
양혜정 : 많은 예술강사가 두 가지 아이러니한 질문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연극을 하더라도 문학이 들어있고, 문학을 하더라도 움직임이 있고, 움직임을 하더라도 텍스트를 많이 활용하니, 이미 통합예술교육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예술매체의 결합은 단순하지 않다. 경험자의 입장에서 실제 예술이 만들어내는 신체적인 모드는 완전히 다르다. 프로그램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몸을 통해서 예술을 경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물어야 하지 않을까. 또 하나는 많은 예술강사가 자신의 예술과 예술교육은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예술교육에서 학습 방법론을 가지면 역량이 강화될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정말 그렇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인 언어나 추구하는 방식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참여자, 경험자들과 만날 수 있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선행될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꼭 어느 장르에 속해야 하는 카테고리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 속에 매몰되는 경향도 있고 5년 차, 10년 차가 넘어가면 매너리즘이나 루틴 안에서 움직인다. 연구하고 인터뷰하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통합예술교육이 정말 그 통합인가, 이 시대가 통합을 원하나, 성찰하는 인간을 원할 수는 있지만 굉장히 개별적인 시대와 무수한 ‘나’가 모여 있는 독특성과 독창성의 시대 속에서 과연 일괄적인 교수-학습법이나 모델이라는 것이 유효한 개념인가를 다시 묻게 되었다.
한편, 저와 함께 하는 청소년들에게 들어보니, 그들에게 온라인은 자기가 원하는 재밌는 콘텐츠를 만나는 곳이었다. 놀이 매체이지 학습 매체가 아닌 것이다. 좋아하는 게임을 하고 영화를 찾아보는 곳이지, 학습을 위해서 강제로 하는 일은 없었는데, 언택트 시대가 오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매체를 빼앗긴 느낌이라는 것이다. 많은 청소년들이 만남을 기다린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1년 동안 묵혔던 감각적인 만남과 소통에 대한 열망. 멈칫거리던 두려움이 어떤 방식으로 분출될지 기대가 많이 된다. 오히려 미디어를 통한 놀이와 만남을 확장시키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감각과 그것을 통해 알게 된 사실, 경험한 것을 어떻게 예술로 계속 유지해줄 것인가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늘 예술가 중심이라고 당연한 듯이 얘기하지만 정말 예술가 중심이 무엇인지, 참여자 중심이라면 예술가와 어떻게 만날 것인지, 장르 안에서 어떻게 얘기할 것인지, 결국 자신을 어떤 예술가라고 정의 내릴 것인지의 문제이다. 우리가 서로 다른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 것 같지만 통합적으로 ‘정체성’과 만나게 되는 것 같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제환정, 양혜정, 전지윤, 허승환, 신예린
제환정 : ‘연수’라는 단어 자체에 역량개발이라는 공학적 의미가 담겨있지만, 이번 연수를 준비하며 ‘이래야 한다’는 당위의 강조보다는,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결핍을 읽어주고, 감정적으로 연대하고,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인문학적 혹은 윤리적 관점을 들여다보았던 점에서 유효한 것 같다. 이번에 다루었던 주제 중에서 개인적으로 ‘예술강사의 물성’과 ’창의적 불복종’을 키워드로 다룬 차시가 기억에 남는다. 예술강사 두 분께 실제 수업에 들고 들어가는 준비물을 스튜디오에 가져와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가 활용하고, 때로는 의존하는 물성들이 정체성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궁금했다. 나 역시 초행이거나 예측 불가능한 환경일 때 이런저런 준비물을 더 챙기게 된다. 이들이 가져온 이국적이고 감각적인 악기, 인형, 세트, 의상, 도구 등 물성은 콘텐츠 개발의 일부일 수도, 준비성과 성실성의 증명수단이기도 하였다. 예컨대 학교에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을 것도 같고 학생들을 홀리는 마법의 물성일 수도 있는 반면, 나의 불안감을 드러내고 정체성을 혼탁하게 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창의적 불복종’이라는 키워드도 굉장히 재미있었다. 학교로 가는 예술강사는 어쩐지 초대받은 손님 같아서 학교의 규칙이나 요구를 다 따라야 할 것 같다는 압박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어느 현장이든 협의와 때로는 맞섬이 필요하지 않나. 무조건적 수용이 주는 소진과 상처는 우리를 무기력하게 한다. 철학이나 방향성이 없으면 계속 모든 것을 양보하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런 뜻밖의 요소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허승환 :작년에는 4월에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온라인으로 만났다. 적지 않은 예술강사가 동영상 하나만 만들거나 다른 이들이 만든 자료를 활용하기도 했다. 올해는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중 하나가 ‘교사 실재감’이다. 아이들은 멋진 성우 목소리보다 나와 연결된 선생님의 목소리를 훨씬 좋아한다. 실제로 올해는 콘텐츠 탑재형 수업이 아니라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할 가능성이 크다. 온라인 수업의 가장 큰 장점은 시공간의 자유이고 대면 수업의 장점은 활발한 상호작용이다. 줌(zoom)은 그 반대다. 시공간은 강제성이 있고 상호작용 없이 일방적으로 보여주면 두 수업 방식의 단점만을 모아놓은 수업이 될 수 있다. 실시간 쌍방향 수업이 1학기에는 17%였다가 2학기 때는 60%까지 올라왔다. 올해는 예술강사도 줌으로 만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온라인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거꾸로 학교로 돌아올 것을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다. 딱 필요한 공부만 하면 되니 효율적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다. 학습에 관심 없는 아이들은 영상을 대충 넘겨버리면 된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이러다가 학교에 와서 앉아있는 것이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이런 고민을 이번 온라인 연수 과정에 담았다. 줌이 단점도 있지만, 아이들과 마스크를 벗고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점이 매력이다. 같은 반 아이들 얼굴을 모르고 한 학년을 보낸 아이들이 33%라는 설문 결과가 중앙일보에 실렸다. 줌에서는 친구들의 얼굴을 다 볼 수 있다. 소회의실 기능을 활용해서 예술강사가 학생들과 연극을 준비할 수도 있다. 관객인 학생들은 비디오를 끄고 출연하는 아이들만 비디오를 켠 상태로 공연하는 것이다. 실제로 만나는 것보다는 부족하겠지만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신예린 : 장르 융복합에서 흥미롭게 발견한 지점이 있다. 초반에 양혜정 선생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융복합이 장르와 장르가 만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누군가의 만남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면밀히 들여다보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환정 : 예전에는 미래인재의 필수 역량에서 창의성, 문제해결 능력과 더불어 협동력, 사람 관리 등이 높은 순위였는데, 2025년 기준에서는 분석적 사고와 혁신, 능동학습(Active Learning), 테크놀로지의 활용능력, 탄력회복성과 스트레스 내성 등이(출처: 월드이코노믹포럼)핵심역량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학생들이 원격수업을 하면서 신체적 물리적 노력이 사라지는 것뿐 아니라, 의사 표현이나 감정공유 등 ‘감정노동’이 사라지는 나 홀로 학습의 편리함을 익숙해한다. 개인적으로도 학교에서나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자기화면을 차단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소통과 자기표현의 부분에서도 예술교육의 개입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
양혜정 : 지금 시대에 우리가 같이 지향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급변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너도나도 계속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며 피로도가 높아졌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몸과 변화하는 관계망 속에 있다. 학교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인재를 만들고자 한다고 했는데 정말 우리가 그것을 지향할 수 있을까. 그것을 지향한다면 예술은 어떤 언어를 가지고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지, 우리는 사회적으로 어떻게 자리하고 있으며 또 어떻게 자리하게끔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사회적인 협의가 필요하다.
전지윤 : 예술은 굉장히 물리적(physical) 이다. 기술, 데이터는 중력이 없기 때문에 인간과 인간이 만나서 나오는 것 이상의 무엇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술은 물질적인 것에서 기인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인문학적 관점 없이 어디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비대면 상황에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모델을 만들기는 했지만, 그것이 발상하고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연수를 듣는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고, 자신이 중심이 되어 뭔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어떻게 소통할지에 집중해서 고민하면 좋겠다.
허승환 :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6개 교육역량을 제시했는데, 그중 교사들이 가장 취약한 게 심리적 감성 역량이다. 교사들이 가장 자신 없는 영역에서 예술강사 분들이 큰 역할을 해준다. 학생들이 수업 평가를 하면 가장 즐거웠던 수업이 예술수업으로 나온다. 예술강사가 아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느꼈으면 좋겠다. 저는 교사가 성장하는 비결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기록하는 것, 또 하나는 기록이 퇴색되지 않기 위해서 공유하는 것이다. 예술강사 역시 기록하고 서로간에 공유하면서 준비한다면 아이들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길이 더 확실히 열리리라 생각한다.
신예린 : 2021년도 아르떼 아카데미 연수를 위해 작년에 약 130개 차시를 녹화했다. 지난 12월까지 촬영을 마무리했고 1월 말부터 순차적으로 연수가 오픈될 예정이다. 짧은 기간에 많은 영상을 만들어야 해서 딜레마가 있었다. 개별성에 대한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하는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바쁘다 보니 자꾸 놓치게 된다. 이번 코스워크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 성찰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저는 그동안 감각을 다루는 연수를 주로 맡았었다. 대면과 감각하는 것 없이 어떻게 연수가 진행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동영상 연수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제가 얻은 해답은 구체적인 사례였다. 정체성에 관한 추상적인 질문을 동영상으로 다루기 너무 어렵지 않나. 그래서 실제로 활동하는 예술강사가 나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구조로 구성했고, 그렇게 동영상 연수의 한계를 조금씩 보완을 해나갔다. 동영상 연수를 수강하시는 분들이 내용뿐 아니라 방법적인 부분도 익힐 수 있을 것 같다.
제환정 : 말씀을 듣다 보니 이번 코스워크에 참여한 예술강사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예술강사’는 나의 포지션에 대한 타이틀이고 나의 정체성은 ‘문화예술교육 활동가’이다. 아이들과 함께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작은 것들을 실천하려고 노력할 때 건강한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셨는데, 마음에 와닿았다. 오늘 함께 의미 있는 말씀을 나누어주셔서 감사하다.
제환정
제환정

‘모든 인간은 무용수’라는 믿음으로 춤과 춤추는 인간을 독려하고 탐구하며, 세상 구석구석 예술이 있기를 도모하고 있다. 예술교육자, 창작자, 해설자, 저자로 학교, 병원, 무용단 등 춤이 필요한 곳에서 활동 중이다. 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ITAC5) 프로그래밍 위원으로 참여했다. 템플대학교 무용학 박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객원교수.
양혜정
양혜정

연극놀이교육가. 1999년도부터 어린이, 청소년들과 학교와 도서관, 미술관 등에서 연극놀이를 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감각을 깨우는 수업과 연극놀이교육가를 양성하는 강의를 하고 있다. 2013년에는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주관으로 전국도서관에 ‘책 읽는 놀이터’ 강의를 하여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하였다. 소리감각극 <구구셈과 물방울과 씨앗>,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소리극 <손끝 소리탐사대>를 연출했으며 초·중·고등학교 교사와 예술교육가를 위한 연극놀이 프로그램 교육을 계속하고 있다.
전지윤
전지윤

미디어 아티스트. 창의적이고 차별화된 시각적 방법론을 모색하고자 예술, 디자인 그리고 기술의 영역에서 융합적인 시각적 언어를 연구한다. 컴퓨터 비전 기반 기술, 센서/인터페이스를 이용한 학제간 연구를 진행하여 문화예술교육 콘텐츠, 디지털 문화유산 콘텐츠, 모바일 아트와 같은 AR 기술 기반으로 한 인터랙티브 미디어 콘텐츠를 주로 연구 개발하고 있다.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작품을 선보여 왔으며, 현재 SMIT(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에서 시각적 요소의 기본적인 분석을 포함한 매체별 시각적 방법을 모색하는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허승환
허승환

서울 강일초등학교 교사. 놀이수업 연구모임 ‘놀이위키’와 꿀잼교육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다. EBS 〈최고의 교사〉,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출연했다. 30여 개 교육연수원 자격 및 직무연수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국 6학년 교사 밴드(회원 17,000여 명), 5학년 교사 밴드(회원 14,000여 명) 대표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허쌤의 비접촉놀이』『허쌤의 수업놀이』『짬짬이 교실놀이』『허쌤의 참여수업1,2』외 다수가 있다.
신예린
신예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교육연수센터 주임. 2021년 신규 연수 프로그램 개발과 함께 아르떼 아카데미의 중장기 발전방향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프로젝트 궁리
정리 _ 프로젝트 궁리 주소진·남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