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도모하는 오늘의 방식

이모저모 도모소 〈슬로우슬로우 탭탭-지팡이 탭댄스〉

“일정 시대”에도, “6.25 사변”에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100세 인생 시대에 머지않아 그 높다란 산등성이의 9부 능선에 도달할 필자의 조모는 요즘 들어 자주 “징역 같은” 매일에 대해 수화기 너머로 토로한다. 정부의 거리두기 단계 격상이 곧 일상의 기준을 시시각각 정립하는 과정 속에서, 조모는 직접 대면에 대한 거리낌을 상쇄하고자 얼마 전 오랫동안 써오던 2G 폴더폰을 고화질의 영상통화가 가능한 스마트폰으로 바꿨다. 덕분에 울퉁불퉁하게 솟은 곳들을 눌러야만 누군가에게 가닿을 수 있던 감각을 매끈한 평면 위에 놓인 불분명한 경계의 터치감으로 전환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 중이다. 눈도 침침하고 손도 자꾸 떨려서 터치가 어긋나기 일쑤지만 그게 대수랴. 코로나 팬데믹에 가장 취약한 초고령 층으로 분류된 마당에 이마저도 노년의 능력으로 갖추지 못한다면, 위기의 상황 속에서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발신마저도 불가할 수 있다는 극도의 불안이 그사이 더욱 잦아진 조모와 필자 사이의 통화 연결음을 타고 진동 중이다.
이처럼 불안의 전이가 관계의 속성을 규정하게 되어버린 지극히 예외적인 2020년의 끝 무렵, 문화예술과 관련한 이모저모를 다양한 예술 장르의 협업 방식을 통해 도모해온 ‘이모저모 도모소’(이하 ‘도모소’)를 방문했다. 도모소가 올 한해 진행한 프로젝트〈슬로우슬로우 탭탭-지팡이 탭댄스〉(이하〈지팡이 탭댄스〉)의 기획을 맡은 이미화 이모저모 도모소 대표, 안무를 맡은 이한선 안무가와 이야기를 나눠보기 위함이었다.
올 한해를 ‘살아낸’ 대부분의 문화예술 프로젝트가 그러했듯이,〈지팡이 탭댄스〉프로젝트 역시 코로나 상황이 급변함에 따라 초반의 기획 방향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만 했다. 이에 더해 지역의 홀몸 어르신을 춤의 주체로 상정하는 프로젝트의 특성상 어르신들 개개인의 건강상태까지도 기획 방향에 지속적으로 반영해야 하는 등 예기치 못한 여러 고충이 있었다고 한다. 나이 듦의 문제는 한 해 한 해 더해가는 시간의 축적을 시나브로 몸의 상태로 치환시킨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다른 시점에 도래할 수 있지만,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찾아오지 않던가. 얼마 전까지는 아니었으나 지금은 이렇게 변해버린, 혹은 지금은 괜찮으나 부지불식간에 괜찮지 않을 수도 있는 노년의 몸에 대해, 그와 같은 몸의 상태와 함께할 수 있는 춤의 가능성에 대해,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필연적 상태로서의 나이 듦에 대해 과연 프로젝트의 참여 작가들은 어떻게 그려내고자 했던 것일까.
〈지팡이 탭댄스〉의 소박한 구심점과도 같았던 참여 노인들의 “밥맛”과 “살맛”을 도모하려던 시도는 지역 어르신들과의 관계 맺기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이미화 대표의 일상에서부터 드러났다. 프로젝트 전후 혹은 안팎 구분 없이, 프로젝트 과정 중에도 그리고 과정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맺어지는 이러한 관계의 연쇄를 통해 도모소의 창작자들은 궁극적으로 동정(Mitleid)이 아닌 공감(Mitgefühl)을 매개로 하는 소셜 커뮤니티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춤추는 몸, 춤추는 탭
사실 도모소가 진행 중인 〈지팡이 탭댄스〉의 시작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4년부터 시니어 문화예술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이미화 대표는 당시 ‘예술지팡이’라는 이름으로 공간을 만들어보려고 했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지팡이라는 오브제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지팡이라는 것은 어르신들이 꼭 나중에 지지하게 되는, 팔다리를 대신해서 마치 제2의 지체처럼 지탱하게 되는 도구잖아요. 대개 어르신들은 쇠약하고 할 일도 없는 존재로 규정되곤 하는데, 어르신들이 사용하는 지팡이를 어르신들에 대한 인식을 활발하게 전환할 수 있는 도구로 써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 이미화 이모저모 도모소 대표
그러던 중, 2016년에 경기문화재단에서 낙후된 구도심, 농촌 지역 등의 공간을 발굴하여 새로운 문화 거점 공간으로 조성하고자 만든 ‘창생공간 조성사업’에 선정되어 안양시 안양8동에 지금의 ‘이모저모 도모소’를 개소하게 되었다. 이로써 지역 커뮤니티 기반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 셈이다. 그 일환으로 이미화 대표는 2018년에 마침내〈슬로우 슬로우 탭탭-지팡이 탭댄스 2018〉을 기획하기에 이른다. 시각예술 작가로 오랜 기간 활동해온 그녀에게 있어 이 같은 생각을 발전시키기 위한 최초의 시도는 다름 아닌 ‘프로덕트 디자인’의 방식을 통해 이루어졌다. “노년의 나약함을 상징하는 도구인 지팡이에 지름 4cm 크기의 탭댄스용 굽을 장착해 춤의 도구로 활용된 소셜굿즈”를 고안해낸 것이다. 평소에는 목걸이 등의 생활 도구로 활용하다가 춤출 때는 간편하게 지팡이에 부착할 수 있는 탭댄스용 굽을 디자인한 후,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으로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춤’을 생각해냈다.
그러나 “춤에 있어서는 문외한”이라는 이미화 대표의 고백이 암시하듯, 지팡이에 부착된 탭을 실제 춤의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탭이라는 오브제의 특성에 대한 지식과 감각만큼이나 ‘춤추는 몸’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선행되어야만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한선 안무가의 프로젝트 합류는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또한 전문 안무가의 합류를 통해 춤을 매개로 삼는 동시에 노년의 삶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들이 드러내곤 하는 문제점, 즉 노인을 대상화하는 경우에 대한 경각심과 문제의식을 팀 내부적으로 공유하고 이를 지양하기 위한 노력을 더 세심하게 기울일 수 있었다.
한편, 이한선 안무가는 도모소와 처음으로 협업한 2018년 프로젝트 마지막에 참여자와 함께 공연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던 만큼, 음악에 맞춰 어르신들과 함께 움직임을 만들어나가면 되겠다고 비교적 간단하게 생각하며 작업에 임했다고 한다.
“처음엔 무용과 관련해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쪽으로 집중했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예술적인 사유가 깊어지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제가 움직임을 제시했을 때 어르신들의 삶에 따라 다양한 움직임이 나오고 그 움직임에 따라서 제 안무가 또 바뀌고. 어르신들이 성취감을 느끼는 모습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저의 예술적인 시각이 굉장히 확장된 작업이기도 했어요.”
– 이한선 안무가
가르침의 교육에서 공감의 교육으로
성공적으로 공연까지 마친 2018년 〈지팡이 탭댄스〉가 도모소 인근에 거주하는 10명 정도의 어르신들과 만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면, 지난 작업의 연장 선상에서 이루어진 2020년 작업은 도모소 인근의 명학공원 등지에서 더 확장된 방식으로 진행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코로나 상황 속에서 기획 방향은 불가피하게 전반적으로 재고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대면해서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일종의 차선책으로 어르신들의 일상 속에 깃든 시간의 패턴과 움직임의 패턴을 면밀히 살펴보는 쪽으로 작업 방향을 선회하게 되었다.
잠에서 깨어나는 모습,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는 모습,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모습 등등 어르신이 살아가는 하루의 일상 속에서 발생하는 일거수일투족의 패턴을 따라가며 하나씩 촘촘히 그려본 것이다. 일상적인 움직임과 즐거움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이것은 왜 이렇게 움직여야 할까, 질문을 나누며 소통했고 시간과 공간의 패턴에 있어서 어르신들을 차근차근 이해하려고 했다. 동시에 “이 감옥 같은 시대에 어르신들의 살맛을 위해서” 어떤 방법으로 움직이는 게 좋을지 고민했다. 그런 점에서, 경기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번 프로젝트의 경우, 코로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점진적으로 변해가는 문화예술교육의 지향점, 즉 가르침[敎]과 기름[育]의 합성적 개념으로서의 ‘교육’이 아닌, 공감과 상호이해를 실천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으로서의 교육이 지닌 단면을 드러낸다.
〈지팡이 탭댄스〉의 참여 작가들은 어르신들과의 만남을 통해 도출된 움직임과 현장 리서치 결과를 바탕으로 일상 속 워밍업 동작을 안무하고 이를 일러스트 이미지로 디자인했다. 운동 요소와 율동 요소가 결합한 움직임들은 어르신들이 즐겨 보는 달력 크기(40cm×50cm)와 동일한 천에 프린트하여 일종의 키트로 어르신들께 보급될 예정이다. 이는 어르신들이 자가격리의 상황에서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특히 어르신 중에서도 백내장으로 고생 중이거나 디지털로부터 소외되어있는 8,90대를 유독 참여대상으로 집중 연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랜선 안의 프로젝트들이 포착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와 아날로그적 표현방식에 주목하게 되었다.

“어르신들이 보는 큰 달력 있잖아요. 그 크기여야 읽히고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림도 글씨도 크게 만든 거죠. 예쁜 쓰레기가 되지 않고, 정말 일상 안에서 쓸모 있게 도모된 작품이기를 바랐거든요.”
– 이미화 대표
생의 시간을 긍정하는 방법
예측불가능했던 2020년을 어르신들과 함께한 이미화 대표와 이한선 안무가에게 각자가 생각하는 ‘나이 듦’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오랫동안 예술이 제 삶에서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예술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잘 늙어서 내 시간을 잘 마무리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제는 정리 단계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정말로 하거든요. 앞으로는 갖고 있는 재능이 좀 쓸모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갖고 있는 재주를 쓰면서 내 삶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제 나이 듦을 깨닫고 그것을 온전히 내 삶에 결부시키며 살아보자, 하는 생각도 들고요. 나이 듦은 철드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 이미화 대표
“2018년〈지팡이 탭댄스〉작업을 하며 어르신들에 관해서 관심이 생겼고, 작년에는 데이케어센터에서 치매 노인분들과 함께 하는 교육프로그램에도 참여하면서 어르신들을 통해 삶의 주기를 보게 되었어요. 저에게 있어 나이 듦은 조금 더 이해하게 되는 어떤 게 아닐까 싶어요. 시간에 대한 이해나 개념에 대한 이해처럼 말이죠. 노쇠함에 따라 몸의 기능은 떨어질지 몰라도, 시간을 통해 습득되고 응집된 이해력이 제 안에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 이한선 안무가
코로나 시대에 다시금 마주하게 되는 나이 듦이란 결코 피상적일 수 없다. “나도 곧”이라는 예측과 “나라면”이라는 가정 속에서 나이 듦의 과정을 경험하고 있다는 이미화 대표의 말처럼, 예측과 가정을 불허하는 현재 상황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과 공감과 이해의 가능성을 이어가기 위한 이모저모를 도모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구체적인 예술적 실천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주어진 환경과 조건 안에서 생의 시간을 긍정하는 방법으로서의 예술 프로젝트, 결과가 아닌 지속적 과정으로서의〈지팡이 탭댄스〉가 맞이한 2020년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손옥주
손옥주
공연학자.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연극학, 무용학 전공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무용 오리엔탈리즘에 관한 포스트닥터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현재 학술 연구와 동시에 리서치 파트너, 드라마터그로 공연 현장에서의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춤의 감수성과 문학적 상상력은 서로 맞닿아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춤을 닮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 중이다.
okjuson@gmail.com
영상 _ 박영균 영상작가 infebruary14@naver.com
사진제공 _ 이모저모 도모소 www.facebook.com/domoso2016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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