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의 색을 지키며 변화하는 삶터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시골 마을, 결핍이 만들어 낸 변화
지역의 결핍은 인구감소를 초래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떠나고, 출생인구가 준다는 것 그 자체로도 엄청난 결핍이다. 이런 결핍은 사람들의 힘을 빠지게 한다. 하지만 가끔 결핍은 또 다른 에너지로 전환되기도 한다. 가미야마 마을이 그랬다. 마을의 결핍을 외부에서 채우기 위해 가미야마 사람들은 스스로 변화를 택했다.
『마을의 진화』는 일본 작은 산골 마을이 새로운 사람들을 불러들이며 멋진 변화를 만들어낸 이야기다. 가미야마 마을은 인구소멸지역이었다. 산골 마을을 세계적인 예술가 마을로 만들자는 누군가의 무모한 구상은 마을의 빈집을 활용한 예술가 레지던시 사업을 탄생시켰다. 낯선 예술가들과의 사업 경험은 주민들에게 자신감을 주었고, 이어 젊은 창업자들을 불러 모으게 된다. 다양한 사람이 모이면서 생겨난 마을의 역동성과 개방성은 첨단 IT 기업까지 산골 마을로 사무처를 옮기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마을 사람들이 이주자에게 매우 개방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역성을 지키고 키워가는 방법은 마을에 소속된 사람들이 강하게 연결되는 것이라고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가미야마는 정반대의 선택을 통해 인구 소멸을 막고 활력 넘치는 마을을 만들어냈다. 우리나라에도 매우 개방적면서, 활력 넘치는 지역성을 지닌 멋진 마을들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풀무학교가 있는 충남 홍성군 홍동면과 전북 완주군 고산면이다. 가미야마와 홍동면, 고산면에는 공통점이 있다. 열정 있는 한 사람이 있고, 곧이어 의기투합한 여러 사람(리더)이 등장한다. 이들은 함께 상상한 밑그림을 지니고 있다. 이 밖에도 외지인을 환대하고, 다양성을 수용하는 개방적 문화, 친절함, 따뜻함, 지역과 연결된 교육 등이 특징이다. 이와 같은 공통적 특징은 지역의 결핍을 오히려 변화의 기회로 만들어내고야 만다.

  •  『마을의 진화』
    (간다 세이지, 반비, 2020)
     

  •  『이제, 시골』
    (임경수, 소일, 2020)
     

  • 『우리가 사는 마을』
    (이승훈,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
    학교도서관저널, 2016)
대도시, 서울에도 로컬이 있다
‘표준화의 시대를 넘어서 다양성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들 한다. 예술·교육·문화·경제·행정 등 삶의 전 영역에서 마을, 지역이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요즈음 사람들이 말하는 마을, 지역은 물리적 공간만을 설명하는 언어가 아니라 한 마을의 정체성, 분위기, 지역성, 곧 ‘지역 고유의 색’을 담은 로컬리티(locality)를 말하는 것이다.
가미야마처럼 지역 고유의 색을 지키며 변화하는 마을 사례는 들을 때마다 가슴 뛴다. 하지만 우리 모두 인구소멸지역으로 귀향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임경수는 『이제, 시골』에서 ‘로컬리티가 살아있는 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는 농촌과 도시를 구별하지 않는다. ‘대도시의 골목길, 아파트 단지에서도 귀향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대도시 서울에도 로컬이 있다’ 이 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로컬이라 하면 서울을 상징하는 중앙이나 대도시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로컬을 국토계획이나 행정구역으로 구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태도, 생활방식, 문화적 공감, 사회적 관계, 경제적 연결성 등이 획일화되어 있지 않고 상호 의존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고 있다.”
– 임경수, 『이제, 시골』
우리가 사는 마을, 공릉동
서울 노원구 공릉동은 인구절벽을 경험하고 있는 시골 지역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있다. 서울 변두리지만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아파트로 둘러 쌓이고 있다. 인구 소멸이 아니라 오히려 과밀이 문제가 되는 지역이다. 대도시의 결핍은 사람이 아니라 관계에 있다.
노원구가 설립한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이하 공터)는 내가 일하는 공간이다. 이곳은 도서관과 청소년문화의집이 융합된 마을 공용 공간이다. 이름이 길어서 사람들은 ‘공터’라고 줄여 부른다. 공릉동은 공터가 만들어지면서 한마을에 살지만 서로 낯선 사람들이 우연처럼 연결되었다. 이들은 매일 같이 마을 우물터가 된 공터에 모여 둘러앉아 지역의 변화를 궁리했다. 우리 마을에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우리 마을이 가진 자산과 기회는 무엇인지, 우리는 어떤 마을에 살고 싶은지, 서로 질문하며 마을의 변화를 만들어갔다.
지난 10년간 동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마을잔치를 해마다 열었다. 주민이 스스로 운영하는 마을카페와 되살림가게, 마을상점, 독립서점 등으로 활동 공간은 확장되었다. 함께 모여 마을을 공부한 사람들은 마을 여행을 만들어 지역학교와 연결하고, 마을협동조합은 주민과 예술가, 청년과 청소년이 참여하는 꿈길장과 마디상회로 경제활동 구조를 갖춰가고 있다. 주말이 되면 경춘선 숲길 공원 작은 무대로 사람들이 모이고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파편화된 사람들의 관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임경수의 말처럼 공릉동 골목과 아파트에서도 로컬리티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공릉동 사람들은 확인하고 있다.
로컬리티와 문화예술교육
가미야마에는 지역의 리더를 키우기 위한 학교-마을 연계교육 활동이 펼쳐진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을 실천하며 지역에 공헌했다는 성취감을 얻는다. 충남 풀무학교의 교육과정은 마을과 연결되어 지역발전을 이끌고, 학생 축제는 홍동 마을의 잔치가 된다. 전북 고산마을에는 청소년센터 ‘고래’에서 청소년 자치활동이 활발하다. 서울 공릉동에는 마을의 변화를 위한 청소년 프로젝트 ‘시작된변화’ 활동이 있다. 청소년들은 마을 축제를 직접 기획하고, 동아리로 참여한다. 가미야마, 홍동, 고산, 공릉, 이들 마을에는 무엇인가 새로운 일이 생길 것 같은 창조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로컬리티를 바탕에 둔 문화예술교육은 좋은 작품을 지역에 남기는 결과가 아니다. 지역의 주민과 청소년이 참여하는 과정 자체에 목적이 있어야 한다. 예술가들은 해당 지역의 로컬리티를 이해하고, 참여자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예술가’라는 낯선 존재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에도 부응해가면서 말이다.
  • 2018년 공릉동 청소년 축제 ‘꿈나르샤’
이승훈
이승훈
별명 덴마크. 마을형 미남. 청소년센터이면서 도서관이 융합된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공터) 센터장을 맡아 청소년과 마을을 잇고, 마음을 모아내는 일을 하고 있다. 공터를 중심으로 주민들과 마을교육공동체를 꾸린 과정을 『우리가 사는 마을』로 기록했다.

2psalm@hanmail.net
www.gycenter.or.kr
이미지 제공 _ 반비, 소일, 학교도서관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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