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맥락을 찾아 다시 처음으로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향수>(Nostalghia, 1983) 끝부분에는 주인공 고르차코프의 촛불의식이 나온다. 8분 30초 동안 이어지는 이 무의미해 보이는 롱테이크 장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은유와 상징이 가득한 이 장면을 지금 우리의 문화예술교육 맥락에서 다시 떠올려본다. 우리는 무엇으로 어떻게, 어디에서 언제 다시 시작해야 할까.
  •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
    (현병호, 민들레, 2020)
  • 『청소년을 위한 철학교실』
    (알베르 자카르, 동문선, 1999)
교육은 만남, 소통, 사건이다
교육은 곧 만남이다. 교육의 장에서 학생과 교사, 부모는 만난다. 서로 알게 되고 존중하면서 함께 자란다. 눈빛을 교환하고 표정을 살피면서 몸짓과 말에서 드러난 뜻을 파악하고 숨은 뜻을 헤아리는 연습을 한다. 프랑스의 과학자 알베르 자카르(Albert Jacquard)는 『청소년을 위한 철학교실』에서 “인류의 문화적 연속성은 교육체제에 의해서만 이어진다”(82쪽)고 했다. 그런데 지금, 미래의 문화를 구현할 현재의 교육이 위태롭게 되었다. 교육의 전제조건인 ‘만남’이 너무 어려워졌다. 얼굴을 마주하고 만나려면, 많은 규칙과 절차, 필수 제약조건을 받아들이고 따라야 한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늘 이래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온라인 수업’에만 의존해야 할까. 지금의 한계를 보완할 방법은 없을까. 새로운 교육체제에 관한 아이디어가 필요하지 않을까.
현병호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딱 맞는 길잡이 책이다. 3부로 구성되어 열다섯 꼭지의 글이 실려 있다. 각 부의 제목은 교육에 관한 저자의 정의다. 교육은 만남이고, 소통이며, 사건이다. 출판사에 스스로 찾아온 아이들과 함께 ‘민들레’를 키워온 저자의 헌신과 공력이 책 곳곳에 배어난다. 한 해 두 해 키워온 생각의 씨앗과 열매들이 가득하다.
“진심으로 학교가 바뀌기를 바란다면, 더 나아가 세상이 바뀌기를 바란다면 먼저 중고등학교에서 우정이 싹틀 수 있는 여지를 넓힐 일이다.”
– 현병호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 (34쪽)
친구를 사귈 시간과 장소와 마음을 부모와 교사, 학교가 앗아가고 있다. 아이들의 자발성을 억누르고 있다. 어른들이 여건을 열기만 하면, 좌충우돌하면서 아이들은 충분히 스스로 자라난다. 아이들의 우정을 어른들이 빼앗을 권리는 없다. 어른들이 기회를 열면 아이들은 기꺼이 우정을 베푼다. 우정은 현재에 와 있는 미래다.
“아이들이 온몸으로 발산하는 신호를 온몸으로 들을 줄 아는 교사가 늘어나는 만큼 교사 집단에 대한 신뢰가 살아날 것이다. 그 신뢰가 교육의 질을 결정한다.”
– 현병호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 (133쪽)
저자는 교사의 수신 능력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교육은 듣기에서 시작한다. 이 책은 오래 익혀낸 상식과도 같다. 처음엔 그 맛이 밍밍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래 씹으면, 잊었던 풍경이 떠오른다. 우리가 지니고 있던 지혜가 상기되어 힘이 난다.
작은 철학 사용서
알베르 자카르(1925~2013)는 프랑스의 집단유전학자다. 우리에겐 어린이와 청소년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철학책과 과학책 저술가로 알려져 있다. 자카르는 주거권 운동에 앞장선 피에르 신부의 운전기사였고, 세네갈과 프랑스에 자신의 이름을 딴 학교 세 곳을 만들기도 했다. 현병호의 책을 읽으면서 자카르의 『청소년을 위한 철학교실』이 생각났다. 책의 원제는 ‘비-철학자의 작은 철학 사용서’(Petite philosophie à l’usage des non-philosophes, 1997)다.
프랑스의 라스콜고등학교 철학 교사인 위게트 플라네스와의 문답집인 이 책은 구성이 재밌다. 알파벳 순서로 서른 개의 낱말을 정해 주제로 삼았다. ‘타인’(Autrui), ‘생물학’(Biologie), ‘행복’(Bonheur), ‘의식 그리고 무의식’(Conscience et inconscient)의 단어로 시작해 ‘엘레아의 제논’(Zenon d’Elée)으로 끝난다. 자카르는 머리글에서 “이 책은 1995년 1월에 있었던 알비의 졸업반 학생들과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라고 말한다. 철학 교사 위게트 플라네스의 초청을 받아 ‘성년이 된 인류를 향하여’라는 주제 강연을 한 다음, 학생들과 오래 이야기를 나눈다. 머리글에서 자카르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이 다시 생각되어야 하고, 다시 만들어져야 하며, 다시 방향을 잡아야 하는 이 인간들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당신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가? 그러나 행동하기 이전에 지식을 구해야만 하고, 언제나 유쾌하지만은 않은 이 현실을 명철한 의식을 가지고 바라보아야만 하고, 또한 이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과 어려움에 대해 자각해야만 한다. 우리들 각각은 이러한 일에 기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내일의 세상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것이다.”
– 알베르 자카르 『청소년을 위한 철학교실』(10쪽)
플라네스는 감사의 글에서 “이 책은 실제로 있었던, 또는 상상으로 이루어졌던 수많은 만남의 결과”라고 말한다. 현병호 역시 자신의 책이 “수많은 사람들의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서로 닮았다.
『청소년을 위한 철학교실』에서 흥미로운 건 문답의 형식이다. 플라네스가 물을 때, 자카르는 언제나 즉답하지 않는다. 그의 긴 답변은 ‘질문’을 점검하는 데 쓰인다. 질문 자체를 되묻기도 한다. 제한된 시간 내에 깊은 데까지 이야기가 흐르려면 첫 지점부터 자리를 잘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뭔가 제대로 배우려면 귀납법보다는 연역법이어야 한다는 현병호의 교육론과 상통한다. 현병호는 “부분의 합이 전체는 아니”라고 말한다. 전체 속에는 부분에 없는 것이 있는데, “부분들 사이의 관계, 맥락, 순서”(현병호, 88쪽)가 있다. 자카르의 답변은 언제나 A와 B의 관계, 맥락, 순서를 알린다. A를 물으면 B와의 관계, C라는 맥락, D라는 순서까지 감자 줄기처럼 모두 딸려 나온다.
위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신호다. 돌아가서 낡은 형식을 새 형식으로 바꾸고, 끊어진 맥락을 다시 이으라는 신호다. 현병호와 자카르의 책은 다시 시작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소종민
소종민
문학평론가. 충남 공주의 공산성 기슭에 살고 있다. 문학과 책을 주제로 한 글을 쓴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지붕과 천장 사이에 길고양이와 멧비둘기와 물까치가 무상으로 입주해 있는데, 이들로 인해 소란한 하루를 나며 지낸다. 쓴 책으로 독서 에세이 『어제의 책, 내일의 책』(무늬, 2016)이 있다.
messai@empas.com
이미지 제공 _ 동문선,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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