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를 피해갈 수 없었던 세계 곳곳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2월부터 강제로 문을 닫으며 관람객의 발걸음이 멈췄다. 여러 미술관·박물관에서는 온라인 채널을 운영하며 무료 관람을 유도하였으나, 실제 방문하는 만큼의 만족을 주지는 못했다. 다행히 바이러스의 기세가 조금씩 꺾이기 시작한 5월경부터 각국의 사정에 맞추어 재개관을 기획 및 시행하고 있으며, 일명 ‘뉴노멀(New normal)’을 새로운 현실로 받아들여 사회적 거리두기, 입장 시 체온 검사, 입장 인원 제한, 의료용 장갑 착용, 개관 시간 단축 등 관람객과 박물관 직원 모두를 안전하게 지키는 규칙을 준수하고 있다.
안전지침부터 기획전시까지, 재가동하는 유럽의 박물관
독일 브란덴부르크 주립 현대미술관(Brandenburg State Museum for Modern Art)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독일에서 재개관한 첫 번째 미술관이다. 5월 1일에 재개관하면서, 다른 관람객과의 거리 유지를 위해 1.5m 길이의 막대와 리본을 제공하고, 전시관 내부 바닥에도 길이를 표시해서 거리감 유지에 대한 경각심을 강조했다. 한 번에 입장 가능한 인원을 100명 이하로 제한했고, 2020년 가을까지 단체관람을 금지했다. 티켓 부스에는 가림막을 설치하고 손 세정제도 비치했다. 또한 팬데믹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모아 ‘악수’(5.20~7.5), ‘마스크’(7.11~8.30), ‘장갑’(9.5~10.11)을 테마로 한 시리즈 전시를 연다.
폴란드 바르샤바에 위치한 박물관 ‘로열 캐슬’(Royal Castle)은 문화기관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완화된 후 5월 4일에 박물관 중 첫 번째로 재개관하면서 관람객의 마스크 착용과 2m 거리 유지는 필수이고, 시간당 100명으로 입장을 제한했다. 전시장 내부에는 관람객을 유도된 동선으로 안내하도록 디자인했고, 제한된 공간만 관람할 수 있게 했다. 관람 시에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활용한 오디오 가이드 사용을 권장하고 단체관람을 금지했다. 바이러스를 확산시킬 수 있는 에어컨 가동도 중지하고 엘리베이터 가동도 최소화했다.
프랑스에서는 지역의 작은 박물관 재개관을 허가하면서 5월 15일에 자코메티연구소(Institut Giacometti)가 재개관을 했다. 코로나19에 대응한 안전 조치는 프랑스 보건부의 규정, 베이징에 소재한 파트너 기관 그리고 독일 박물관의 재개관 지침을 적용했다. 모든 관람객의 마스크 착용은 필수이고, 박물관 외부에는 안전선을 설치해서 간격을 유지하고, 가림막이 설치된 안내 데스크와 손 세정제를 구비했다. 입장권은 20분 간격으로 최대 10명까지 온라인 예매를 할 수 있게 하고, 개관 시간을 1시간 늦춰 11시부터 7시까지 운영해 이용객을 분산했다. 전시는 인쇄본 안내 책자를 스마트폰을 활용한 오디오 가이드로 대체해 접촉을 최소화했다. 한편, 전시는 새로 교체하지 않고 기존의 《잃어버린 작품을 찾아서》(In search of Lost Works)를 연장 전시했다.
오스트리아는 3월 11일 모든 문화예술공간을 6월 30일까지 폐관하기로 하였으나, 4월 17일에 발표한 새로운 법령으로 5월 중순에 재개관이 가능해졌다. 빈에 위치한 벨베데레 궁전(Belvedere Palace)은 5월 15일에 가림막이 있는 매표소를 설치한 후 재개관했다. 오스트리아 정부의 관람객당 10㎡의 공간 지침에 따라 일일 방문객 수를 1,750명으로 제한했다.
3월 8일부터 문을 닫았던 이탈리아의 미술관·박물관, 유적지 등은 5월 중순부터 안전규정을 시행할 수 있는 자원이 준비된 곳을 중심으로 재개관하여 보르게세미술관(Galleria Borghese), 리볼리 궁전(Castello di Rivoli), 폼페이 고고학 공원(Pompeii archaeological park) 등이 다시 문을 열었다. 관람객은 마스크를 필수로 착용해야 하며, 책을 보기 위해서는 일회용 장갑을 착용하여야 한다. 바닥에는 동그란 모양의 스티커를 부착하여 1m 간격을 유지하도록 했고, 오디오 가이드를 위한 QR코드를 제작해서 안내했다.
유럽에서 코로나바이러스의 타격이 심한 국가 중 하나인 영국은 모든 미술관·박물관의 재개관을 7월까지 미루어 놓은 상태이며, 이에 따른 고용안정지원정책(Furlough Scheme)은 10월까지 지원될 예정이다. 영국박물관협회(Museum Association)의 총책임자인 샤론 힐(Sharon Heal)은 “박물관이 일반 대중에게 다시 개방되기 위해서는 뚜렷한 지침과 지원이 필요하며, 현재 최우선 과제는 직원, 자원봉사자 그리고 대중의 건강과 안전이다. 정부에서 제안된 재개관 규정은 각각의 기관별로 언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지원이 필요한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폐쇄 조치(Lock down)에 점점 지치고 답답해하던 시민에게 박물관·미술관 재개관 소식은 더 없는 설렘과 기대를 주기도 하지만, 아직은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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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호주 「관람객 인식조사 결과」 보고서
호주, 관람객 인식조사 실시
호주에서는 문화예술기관의 재개관을 정부의 판단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관람객의 반응을 살피고 그 결과를 각 분야에서 참고하고자 하였다. 호주예술위원회(Australia Council for the Arts)는 문화연구단체 패턴메이커스(Patternmakers), 울프브라운(WolfBrown)과 협업하여 ‘관람객 인식조사’(Audience Outlook Monitor)를 진행했다. 팬데믹 사태 속에서 문화예술 프로그램 운영에 도움을 주기 위해 시작한 이 공동연구는 2018년부터 박물관, 갤러리, 페스티벌 등 159개 문화예술기관의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관람객 23,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지를 배포하였다. 그 결과, 응답자의 85%는 팬데믹 현상이 나아지면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할 것이라고 답하였으며, 그중 8%는 평소보다 더 많이 찾아다닐 것이라고 응답했다. 또한 응답자의 67%는 이동에 대한 위험부담이 줄어들면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할 의향이 있으며, 그중 11%는 완전히 바이러스의 위험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참여할 의향이 없다고 밝혔다. 응답자 대부분은 1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공간에 모이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지만, 75%는 현재 온라인 문화예술 활동-예술 관련 영상 시청(52%), 라이브 방송 시청(42%), 온라인 문화예술 강좌 수강(36%) 등-에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예술가 및 작품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답했다. 설문조사 결과 및 자세한 내용은 ‘관람객 인식조사’ 웹페이지를 통해서 열람할 수 있다.
미국, 자원봉사 인력의 재발견
미국박물관연합(American Alliance of Museums)에서는 박물관 자원봉사자(docents) 인력을 낭비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관리 및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네 가지로 정리하였다.
팬데믹 기간 중 자원봉사자와의 지속적인 교류
자원봉사활동이 사회교류 활동으로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여, 온라인으로 지속적인 만남을 유지하며 박물관과 봉사자들과의 유대를 이어나가는 것을 권유하였다. 미국 볼티모어에 위치한 월터스미술관(Walters Art Museum)의 경우, 매주 월요일마다 화상회의 앱(app)을 이용하여 자원봉사자와 박물관 직원들의 온라인 회의를 진행했다. 온라인에 익숙하지 않은 자원봉사자나 직원들에게는 이메일이나 전화로 화상회의 방법을 안내했다.
자원봉사자들의 활동 조정하기
박물관이 휴관에 돌입하면서 쉬게 된 자원봉사자 인력을 최대한 의미 있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으로 디지털 자료 및 이미지들의 기록과 태그 작성 등을 제안하였다. 박물관 관련 업무 외에도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와 스트레스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한 전화상담 업무,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동을 위한 온라인 수업 진행 등 다양한 방면으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하였다.
적은 수의 자원봉사자에 적응하기
비영리단체 메릴랜드(Maryland Nonprofit)는 자원봉사자들이 위에 언급된 여러 가지 활동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고, 적게는 10% 내지 20%부터 많게는 75%의 자원봉사자를 잃게 되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평소 자원봉사자들이 했던 업무를 박물관 직원이 맡게 될 것이며, 지금까지 자원봉사자가 맡아온 각각의 업무가 박물관 운영에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다양한 업무 중에 어떤 부분을 보류해야 하는지, 또는 이 모든 업무를 위해서 도리어 유급 직원을 더 채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적은 수의 자원봉사자 인력에 적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했다.
새로운 자원봉사자 양성하기
박물관이 재개관을 한다고 해서 자원봉사자들이 바로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긍정적 신호를 읽기도 했다. <하버드 경영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에서는 바이러스에 취약한 고령 자원봉사자들이 아닌 현재 팬데믹으로 인해 학교, 일, 여름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젊은 사람들이 자원봉사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박물관에서는 이미 디지털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는 많은 젊은 사람들을 발굴할 수 있다면서 박물관의 사업파트너, 후원자 그리고 회원들 위주로 새로운 자원봉사자를 양성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제안했다.
국가별 미술관·박물관의 재개관에 대한 대응은 세부적으로 조금씩 다르지만,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이 완화되면 맞이하게 될 관람객과 자원봉사자의 안전을 위한 노력은 모두 같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온라인 대체의 한계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문화예술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장인 미술관·박물관이 하루빨리 재개관할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 국제협력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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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는 달라져야겠지요. 전시회 보러 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쉽지 않아진 거 같아요. 조심해야 할 일도 늘어가는 중에 더 어려운 현실에 맞춰서 달라지네요,
자원봉사자와 문화예술기관의 밀접한 연관성을 잘 알 수 있는 기사였습니다. 팬데믹 이후로 전시와 공연 정말 많이 가고싶네요. 올해는 특히 영화관 한 번을 마음 편히 가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예술계도 힘내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