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 1993)을 기억하는가? 호박 화석에 들어있던 공룡의 DNA를 추출해 부활시킨 공룡이 인류를 위협하는 재앙이 된다는, 전성기 스필버그의 SF 블록버스터 작품이다. 1993년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는 영화가 보여준 상상력이 언젠가 현실이 될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일하던 2018년, 영화제 개막작으로 <창세기 2.0>(Genesis 2.0, 2018)이라는 영화를 선정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쥬라기 공원>이 더이상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에 충격받았다.
예고된 위협
<창세기 2.0>은 지구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인 기후변화에 관한 다큐멘터리이다.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인간이 지구에 가해온 폭력은 궁극적으로 ‘지구 온난화’라는 형태로 인간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영화는 기후변화가 시베리아 영구 동토층에 미친 영향을 보여준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영구 동토층이 해빙되면서 그 아래 매장되어 있던 매머드 사체가 잇따라 발견되고, 엄청난 돈벌이가 되는 매머드 상아를 찾아 전 세계 사냥꾼들이 시베리아로 몰려든다. 카메라는 매머드 사체 사냥에 나선 헌터 중 한 팀을 따라가는데, 어느 날 그들은 혈액까지 완벽하게 보존된 매머드 사체를 발굴한다. 매머드 사체는 전 세계 과학자들에게도 지대한 관심거리로 떠오르고 그들은 사냥꾼들에게서 얻은 매머드 샘플을 이용해 매머드를 부활시키는 실험을 진행한다. 머지않아 상상 속의 쥬라기 공원이 현실의 매머드 공원으로 태어날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기후변화란 무엇인가? 과학자들에 의하면 지난 12,000년간 지구는 평균 온도 변화 1도에 불과할 만큼 안정적 상태를 유지해 왔지만, 인간이 지구 환경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인류세(anthropocene) 이후 2~3백 년 동안 2도 이상의 기온 상승을 경험했다. 과학자들은 이번 세기에 대략 4도의 온난화를 예상한다. 기온이 2도 오르면서 전 세계 바다 산호초의 50%가 죽어버렸고, 가뭄과 홍수, 기상이변, 이로 인한 난민 문제 등은 이미 해결 불가능할 만큼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문제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에 기반한 현재 산업문명과 그것이 제공한 라이프 스타일을 지속하는 한 이러한 재앙의 페달을 도저히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이 파멸의 시계를 더이상 멈출 수 없게 되는 임계점, 티핑 포인트가 머지않았다는 것이 과학자들과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의 두려움이다. 현재의 삶의 방식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지구가 최소 4개에서 6개 정도 더 필요한데, 그건 불가능한 얘기다. 그렇다면 대답은 명확하다. 우리의 현재의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또 쉽지 않다.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 공감하지만, 누가 먼저, 누가 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다.
공감하고 실천하는 예술가
국가 간 책임 있는 실천이 더디기만 한 상황에서 개인들의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의 노력이 더욱 절실해진다. 파멸을 향해 가는 지구를 아파하고 그 해결을 노래하는 개개인의 실천과 예술가들의 작업, 윤리적인 기업가들의 느리지만 꾸준한 노력 속에 그 지난한 해법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미국 전 부통령 앨 고어가 지난 수십 년 동안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 1, 2편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해 준다. 세계적인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자신에게 아카데미상을 안겨준 <레버넌트>(The Revenant, 2015) 제작에 참여하면서 기후변화, 환경 파괴의 심각성을 깨닫고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이후의 활동 역시 주목해야 한다. 디카프리오는 UN 평화대사로 활동하면서 <비포 더 플러드>(Before the Flood, 2016)라는 다큐멘터리를 직접 제작하고 출연해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세계적인 사진작가인 크리스 조던은 북태평양 미드웨이섬에서 8년을 머물면서 몸속에 플라스틱 쓰레기를 가득 채운 채 고통 속에 죽어가는 알바트로스에 관한 다큐멘터리 <알바트로스>(Albatross, 2016)를 만들었다. 우리가 편리함을 위해 사용해온 플라스틱이 지구의 아름답고 연약한 생명을 얼마나 참혹하게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는지 더없이 아름답고도 충격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일본의 세계적인 뮤지션 사카모토 류이치 역시 후쿠시마 죽음의 해안에서 방사능에 오염된 피아노를 건져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준 다큐멘터리 <사카모토 류이치: 코다>(Ryuichi Sakamoto: Coda , 2017)를 통해 예술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지구의 아픔에 공감하고 해결하기 위해 개입하는지 보여주었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
여기서 한가지 질문을 하자. 기후변화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 석탄, 석유, 천연가스로 상징되는 화석연료 의존형의 산업구조. 이윤 극대화, 이동의 용이함, 편리성을 위해 확대되는 플라스틱 제품들, 팜유 등 저렴한 식품 생산을 위해 지구의 허파인 열대 우림을 무차별 벌목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비윤리적 행태 등 많은 문제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문제를 개개인이 제어할 방법은 많지 않다. 그렇다면 개인은 신음하는 지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불편한 진실이 하나 있다. 사실 기후변화의 가장 큰 원인, 탄소 배출의 50%는 다름 아닌 농축산업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다.
현대문화에서 육류 섭취는 풍요로움의 대명사이다. 고기 없는 서구 식문화는 상상할 수 없고, 경제 성장의 과실을 맛보기 시작한 중국, 인도 등 대형 인구 국가 역시 빠른 속도로 육류 소비국가로 편입되고 있다. 그런데 육류의 다수를 차지하는 반추동물이 뿜어내는 메탄가스의 양이 전 세계 탄소배출의 50%을 차지한다면? 심지어 미국 곡물산업의 90%가 사람이 아닌 동물 사료를 위해 재배되고 있다는 사실에 이르면 육식문화는 이제 단순히 개인의 취향 문제를 넘어선 윤리의 문제가 된다. 한국에서 이 문제를 고민해 온 이가 있다. <잡식가족의 딜레마>(2014)를 만든 황윤 감독이다. 오래전부터 환경영화를 만들면서도 돼지, 소, 닭 같은 동물들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던 황윤 감독은 어느 겨울, 구제역 파동을 겪으며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환경, 생명권의 관점에서 오랜 육식 생활을 포기한다.
지구는 인간뿐 아니라 지구의 모든 생명이 공유하는 집이다. 인류는 이 공동의 집을 마치 제 것인 양 맘껏 파괴해 왔다. 하지만 이제 그 종말을 향한 무모한 질주는 멈춰야 한다. 그 브레이크를 거는 일에, 이 아름답고 연약한 행성을 위해 더 늦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남아있다.
메인 사진 출처 : www.beforetheflood.com
맹수진
맹수진
영화평론가. 동국대 영화학 박사. 전주국제영화제, DMZ국제다큐영화제, EBS국제다큐영화제, 서울환경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쳐 현재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학생들도 가르친다. 저서로 『진실 혹은 허구: 경계에 선 다큐멘터리』 역서 『모크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가 아닌 다큐멘터리』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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