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로 뒤덮인 지구. 이미 인간은 지구를 탈출하였고, 수백 년 동안 묵묵히 폐기물을 처리하는 로봇만이 지구에 홀로 남아 있다. 2008년 디즈니/픽사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월-E>의 이야기이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에서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려고 대기 상층권에 살포한 인공냉각제 CW-7으로 인해 빙하기라는 기상이변을 맞게 된다. 또 다른 영화에서는 핵전쟁 이후 파괴된 지구에서 살 수 없어지자 인간은 식민지 개척을 위한 다른 행성과의 위험한 전투에 복제인간을 대신 내보낸다. 영화의 제목과 같은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에게 반기를 든 복제인간을 없애는 역할을 수행한다. 영화에서 상상한 미래의 지구는 온통 이기적 인간에 의해 파괴되어 빛조차 남아있지 않은 어두컴컴한 디스토피아이다.
죽은 고래들
영화는 상상이 아닌 또 다른 현실이다. 해양 생물이나 조류의 사체 안에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견되는 사례는 적잖이 발견되고 있으며, 심지어 스페인 남부 무르시아 해변에서는 향고래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 젊은 수컷 고래의 사인은 바로 플라스틱 쓰레기 때문으로 밝혀졌는데, 무려 29kg에 이르는 쓰레기가 위장과 창자를 가득 막고 있었다. 이 때문이었을까? 환경단체인 그린피스 필리핀은 ‘세계 고래의 날’ 마닐라 해변에 대형 고래 조형물을 설치하였다. 바다 쓰레기로 만든 <죽은 고래>(Dead Whale)는 필리핀 광고회사인 덴츠 제이미 시푸가 예술가와 협력하여 제작하였으며, 이 작품과 작품이 지닌 의미는 급속도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유사한 작품이 또 하나 있다. 벨기에 브루게 역사 지구에는 약 4톤가량의 버려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9.4m의 대형 고래 작품인 <마천루: 브루게의 고래>(Skyscraper: the Bruges Whale)가 설치되었다. 이는 대규모 현대예술·건축 전시인 2018 브루게트리엔날레(Bruges Triennial 2018)의 작품 중 하나이다. 제이슨 클리모스키와 리들리 창으로 구성된 스튜디오KCA는 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하와이 해변에서 많은 자원봉사자와 함께 쓰레기를 모았을 뿐만 아니라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운송과 제작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였다. 따라서 작품은 단순히 두 예술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참여로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예술은 단순히 정크아트나 업사이클링 예술로만 이해할 수는 없다. 이는 예술이자 하나의 실천적 행위인 것이다.
지구의 문제를 직감하다
같으면서 다른 작품들을 살펴보자. 미술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인 루시 리파드는 《일기예보: 미술과 기후변화》(콜로라도 볼더현대미술관, 2007)라는 전시를 기획하였다. 전시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과학자들과 공동 작업을 통해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이러한 학제 간 예술작품은 숲의 파괴, 지구온난화, 멸종, 오존층 파괴, 해양오염과 같은 문제를 드러내면서 기후변화를 주목하였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 헬렌 해리슨과 뉴턴 해리슨은 생물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지구온난화에 의해 식물들의 서식지가 줄어드는 현상을 담은 영상 작품 <온실 속의 산>(The Mountain in the Greenhouse)을 전시하였다.
2017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프랑스 까르띠에 현대미술관 소장품전인 《하이라이트》에서도 유사한 작품 두 점이 전시되었다. 버니 크라우스의 <위대한 동물 오케스트라>(The Great Animal’s Orchestra)와 딜러 스코피디어 렌프로의 작품 <출구>(Exit)이다. <위대한 동물 오케스트라>는 음악가이자 생태음향 전문가인 버니 크라우스가 몇십 년 동안 채집한 사라져가는 소리를 시각화된 영상으로 보여준다. 50년 가까이 전 세계 육지·해상 동물 1만 5천여 종의 소리를 포함하여 총 5천 시간이 넘는 자연서식지의 사운드를 녹음한 버니 크라우스는 지구의 환경 변화를 시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채집하고 전달한다. 아마존 등의 열대우림에서 산림이 점차 줄어듦에 따라 멸종되는 동물의 개체들과 이에 따라 달라지는 산림에서의 소리가 사운드와 영상으로 제시되는데 청각은 아마존과 같은 원시림의 느낌을 제공하고, 시각은 우주적, 미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녹음된 데이터를 빛 분자로 변환하여 제시된 작품의 시각화는 자연의 웅장함과 더불어 우리에게 닥칠 미래, 즉 실제의 자연은 사라지고 데이터로만 존재하는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과 같을 뿐임을 암시하는 듯하였다.
  • <위대한 동물 오케스트라>, 버니 크라우스, UVA. 비디오 및 사운드 설치, 84분, 필름: 레이몽
    드파르동. ‘위대한 동물 오케스트라’ 전시 커미션 작품,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파리, 2016.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2017년)
    [영상출처] 유튜브
<출구>는 지구 환경 오염에 대한 메시지로 인구의 변화, 정치 난민과 강제 이주, 해수면의 상승과 침몰 등의 시각화된 데이터가 돌아가는 지구본의 모습과 함께 보여준다. 이 작품은 미국 미술가와 건축가 그룹인 딜러 스코피디오 렌프로가 미술가-건축가인 로라 커건, 통계학자-예술학자인 마크 한센, 과학자와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하여 제작한 작품이다. 두 작품은 모두 압도적인 스케일로 관람자로 하여금 지구 환경 변화와 환경오염의 문제를 온몸으로 체험하게 한다. 특히 <출구>는 지구의 환경오염의 문제가 정치, 노동 등의 인간의 삶의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목도하게 한다.
  • <출구>, 딜러 스코피디오 렌프로. 몰입형 6채널 비디오 및 사운드 설치, ‘원주민의 땅, 추방을
    멈추라’ 전시 커미션 작품,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파리, 2008.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2012년). 딜러 스코피디오 렌프로, 마크 한센, 로라 커건, 벤 루빈. 로버트 제라드 피에트루스코
    및 스튜어트 스미스 협업
    [영상출처] 유튜브
인간 중심의 발전에 던지는 질문들
이 외에도 유전자 변형 생물과 복제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작품들도 있다. 패트리샤 피치니니의 작품은 포스트-휴먼 시대에 정체성과 차이, 존재와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실리콘과 아크릴 수지, 혼합 매체로 만들어진 그의 작품들에는 가축의 형상과 인간의 피부를 지닌 기이한 생명체가 육아 등 인간의 노동을 대신 하기도 하며 함께 살아가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유전자 변형 등의 윤리적 문제뿐만 아니라 인간 중심적 사고에 도전하며, 동물권과 생명의 존엄성 등의 문제를 제기한다.
마지막으로 2017년도 유럽의 그랜드투어에 소개되었던 몇몇 작품을 소개한다.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된 일본 작가 시마부쿠는 1972년에 텍사스에 간 일본의 설산에 사는 원숭이들이 설산을 기억하는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작품을 시작한다. 작가는 직접 원숭이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 눈을 쌓아놓고 그들의 반응을 촬영하였다. 문제 제기에 작동한 상상력에 대한 경탄과 더불어 작품은 동물의 삶과 이 지구 환경에 가한 인간의 폭력에 대해 반성하게 하였다. 작가 코키 타나카는 자신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핵발전소까지 나흘 동안 걸어가는 여정을 작품에 담았는데, 작품은 바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상기시킨다. 차로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를 걸으면서 작가는 우리의 일상과 아주 가까이에 놓여있는 핵 위험을 아주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디스토피아, 파괴된 도시와 그 안에서의 인간. 처참한 이미지는 영화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1986년의 체르노빌과 2011년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시리아 내전, 그리고 난민……. 셀 수도 없이 많은 사건과 도시의 이미지들은 SF영화 속 미래의 한 장면이 아닌 우리의 현재이다. 그래서 그런지 피에르 위그의 <앞선 삶 이후>(After ALife Ahead)는 더욱 울림이 있다. 뮌스터 서북부에 위치한 폐장한 아이스링크는 지구 종말 이후의 어느 순간의 모습이다. 파괴된 도시 어디쯤, 새어 들어오는 빛에 기대어 여기저기 꺼진 바닥 사이사이로 조심조심 탐험을 시작해 본다. 바닥은 거대하게 파괴되었고 콘크리트 바닥 밑으로 거친 땅조차도 움푹움푹 패여 있다. 곳곳에 물웅덩이도 있다. 한참을 탐험하니 생명의 초록이 보인다. 폐기물로만 가득한 쓰레기 행성이 된 지구에서 끝까지 자기 임무를 지키던 ‘월-E’가 발견한 초록색 식물처럼 모든 것이 다 파괴된 어느 먼 미래에 스스로 탄생한 생명체들. 피에르 위그는 2016년에 폐장한 아이스링크를 해체하고 재구축하여 작가가 실험해온 바이오아트를 펼쳐 보였다. 작가의 실험은 확장되어 인간 중심의 도시에 경종을 울린다. 우리가 사는 이 도시, 이 지구는 인간의 것의 아님을, 인간이 사라져도 이 지구는 다시 스스로 살아날 수 있음을 알리는 것일까? 2017 뮌스터조각프로젝트는 피에르 위그의 작품에서와같이 우리가 사는 이 지구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파괴와 지속’의 문제로 연결 짓는다.

문명의 역사는 파괴의 역사이다. 이 지구는 인간에 의해 끊임없이 파괴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해, 그리고 ‘합리적 이성’과 과학으로 인해, 이기적 존재자인 인간에 의해. 이러한 지구가 인간만의 것이 아님을 예술가들은 여러 가지 표현의 언어로 우리에게 알려준다. 2017 뮌스터조각프로젝트를 비롯한 여러 예술작품은 인간의 폭력성을 고발하며 함께 거주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비단 동물, 자연, 지구라는 생명과 환경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지구 환경 파괴의 문제는 문명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개발과 발전이라는 이념 아래 소수에 의한 다수를 향한 폭력이 깃들어 있다. 그 폭력은 다수의 인간, 동물, 자연 모두를 위협하는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이기적’ 사고방식에 있다. 과학 문명이 눈부시게 발달한 21세기에서조차 인간은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생명체의 도움을 통해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너무나 이기적이어서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듯, 또는 ‘함께 사는 것’에 대한 방법을 모르는 듯 행동하는 것에 예술은 경종을 울린다.
최창희
최창희
최근 「랑시에르 사유에서 예술과 노동의 문제」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그간의 은둔자 생활을 마치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려고 시동을 걸고 있다. 이론과 현장의 가교 역할을 하는 실천적 이론가의 부푼 꿈을 꾸고 있다. 학술, 예술정책 및 행정, 전시기획 및 미술비평 등 매우 포괄적인 활동이 장점이자 단점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다.
mediaaur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