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입장에선 ‘예술하기 좋은 도시’, 시민 입장에선 ‘예술을 품고 사는 도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문화예술 사회적협동조합 컬처75. 이 이름을 소개하면 늘 받는 질문이 “75년생이세요?”이다. 당연히 아니다. ‘75만 안산시민 누구 하나 빠짐없이 문화적 혜택을 누리는 도시를 만들자’는 취지로 ‘컬처75’라는 이름이 생겼다. 안산에서 예술하는 청년예술인들과 이제는 청년을 넘어버린 중년의 예술인 130명이 모여 있는 예술인 협동조합을 만들며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지향하는 방향이었다. 우리 조합원들의 예술활동이 정확히 시민을 향하자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다. 컬처75는 예술인들이 서울로 떠나지 않고 안산에 머물면서도 더 좋은 예술 활동을 벌일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좋은 문화정책을 연구하고 토론회도 열면서 행정과 협의하는 활동도 한다. 또한, 안산의 시민들이 컬처75가 기획한 문화놀이터에서, 컬처75가 마련한 공연 및 전시콘텐츠에서 일상의 피로를 풀고, 안산이라는 도시에 대한 즐거운 기억을 품을 수 있도록 한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맞물려야 양쪽 모두에서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있는 구조이기도 하다.
누구나 문화를 누리는 도시를 꿈꾸며
어느 도시나 그 도시가 품고 있는 결핍이 있다. 또한, 그 결핍을 채울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결핍을 발견하고 어루만지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기획하느냐가 결핍으로 인해 범죄나 삭막한 도시 분위기로 향해가는 걸 막을 수 있다. 그리고 도시가 가진 가능성을 잘 발견하고 그 가능성을 결핍과 만나게 해야 도시 전체의 역동성으로 발전할 수 있다. 여기에서 문화의 힘, 예술의 힘이 매개로서 자기 역할을 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컬처75는 문화의 힘, 예술의 힘으로 도시의 결핍을 가능성과 만나게 하여 역동적 도시로 만드는 일에 관심이 크다. 그것이 문화와 예술이 가진 주요한 공공재적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산은 결핍이 많은 도시다. 다른 곳에서 이사 와서 조금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이주 비율이 아주 높은 도시다. 반월, 시화공단에는 이제는 저물어가는 제조업 사업장이, 그것도 하청의 하청 노릇을 하는 직원 10명 이하 영세사업장이 굉장히 많다. 그리고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도시다. 최근에는 세월호 참사라고 하는 대참사를 겪은 도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산은 가능성 또한 높은 도시다. 여러 지역의 서로 다른 문화가 다양하게 모였기 때문에 새롭고 역동적인 문화를 만들어낼 시너지가 충분하다.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한국이 경제적으로 뿐 아니라 외교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세안 국가 출신의 외국인들이 많아 그들의 문화를 배우고 교류하며 다양한 문화를 대하는 관점과 태도를 배우기에도 아주 좋은 도시다. 게다가 서울예술대학이라는 대한민국 굴지의 예술대학이 있어서 문화와 예술의 힘이 매개가 되어 도시가 가진 결핍을 역동성으로 바꿔줄 역량 또한 큰 도시이다. 컬처75가 안산의 결핍을 어떻게 어루만지려고 하는가에 대해 간략하게 말해보고자 한다.
이주민의 도시에서 찾은 역사의 자긍심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도시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다. 안산은 이주민 비율이 정주민 비율에 비해 현저히 높다. 경기도의 다른 도시들도 그렇겠지만, 안산은 정주민 비율이 8-9%에 그칠 정도로 그 정도가 심하고 정주의식이 굉장히 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산의 숨겨진 문화재나 안산이 품은 이야기를 연극이나 뮤지컬로 만들어서 보여주면 시민들은 흥미진진하게 그 콘텐츠를 접하면서 도시를 다시 바라보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가 주목한 것은 도시의 역사성과 다양한 이야기이다. 역사적 전통성이 있는 도시로 인식하게 하고, 그 역사성이 현재와 재미있게 만나는 지점을 찾는 일이다. 예를 들면, 안산에는 청문당이라는 400년 된 고택이 있다. 이곳은 중앙정치로부터 밀려난 젊은 선비들이 모여 실학을 연구하는 공간이었다. 1만권의 서책이 모여있는 조선의 대표적 도서관이기도 했다. 컬처75는 이곳의 선비들이 서적 속에서가 아닌 백성들의 삶에서 진리를 찾은 학습태도를 포인트로 뽑아 30분짜리 연극을 만들었다. 그리고, 30명의 시민을 모아 청문당에서 하룻밤 자면서 즐기는 문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연극을 통해 청문당이 어떤 곳이었는지 흥미롭게 만나고, 미니강좌를 통해 청문당의 역사를 이해하며 백성의 삶에 천착했던 선비들의 마음을 현대화시켜 모두가 함께 한 권의 그림책을 만들고, 맛있는 저녁 식사를 나눈 후 고택에서 음악회를 즐기고 하룻밤을 잔다. 다음날 오전엔 청문당 곳곳을 다니며 이곳을 알리는 유튜브를 제작한다. 안산의 숨은 문화재 청문당이 소문나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시민들은 우리 도시에 대한 자긍심을 한껏 안고 간다. 문화재가 시민들의 현재적 삶과 쉽고 흥미롭게 만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연극 작품이 한 편 탄생되었고, 총 9번의 프로젝트 속에서 안산의 예술인들은 더 많은 예술활동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세월호의 아픔을 생명과 안전 도시로
컬처75가 바라본 또 하나의 결핍은 5년 전 모든 국민을 안타깝게 만들었던 세월호 참사다. 250명의 아이들을 통째로 잃어버린 이 도시는 적절한 문화기획으로 위로하고, 의미 있는 예술 콘텐츠로 어루만지지 않으면 참사도시, 피해도시, 희생도시로 남아버리게 된다. 문화와 예술이 자기 역할을 통해 생명도시, 안전도시, 공동체의 도시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무척 소중하다. 이를 위해 컬처75는 세월호 가족들로 구성된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을 만들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직접 출연하여 전국을 돌며 수많은 대중들에게 세월호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 극단 노란리본은 연간 40~50여 회의 공연을 펼치고 있다.
더불어 주목하고 있는 곳은 단원고가 있는 지역이다. 손에 꼽을 정도로 예쁜 길이었던 단원고 가는 길이 어둡고 무거워졌다. 컬처75는 이 길에서 유쾌한 문화난장이 벌어질 수 있도록 ‘소중한 생명길 아트로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단원고 학생들이 하교하는 길에서 인디밴드와 마임이스트가 공연하는 프로젝트다. 그리고 컬처75 소속 극단 동네풍경이 제작한 이동형 연극공연 <학교가는 길>도 기획하여 많은 시민들에게 관람 기회를 제공해왔다. 이밖에도 세월호 참사 5주기 ‘천인합창단’ 공연, ‘4월연극제’ 등 다양한 문화기획으로 도시의 결핍을 생명안전도시로 가기 위한 역동성으로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
시민과 함께 숨쉬는 문화놀이터
세 번째로 주목한 지점은 문화적으로 놀만한 놀이터가 없다는 것이다. 직장인들은 퇴근 후 유흥문화로, 친구들끼리는 주말에 홍대와 강남으로, 가족 단위로는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서울랜드로 가서 노는 형편이다. 그렇기에 안산에도 시민들이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편하게 찾아와 문화적으로 쉬고 즐기며 놀 수 있는 문화놀이터가 필요했다. 컬처75는 거의 활용되지 못했던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야외공연장을 마켓으로, 창의놀이터로, 테마 전시장으로, 푸드트럭 존으로, 공연장으로 변모시켜 시민들이 기다리고 즐겨 찾는 문화놀이터 ‘마켓 포레스트‘를 만들었다. 이곳은 시민들의 문화놀이터이기도 하지만, 청년예술인들의 예술터, 즉 일자리이기도 하다. 공연팀은 공연으로, 공예가는 마켓으로, 공간 디자이너는 공간 디자인으로 문화기획자는 기획으로 자기 예술 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올해로 2년째 지속되고 있는 ‘마켓 포레스트’는 많은 시민들의 인식 속에 정확히 자리 잡아 자기 브랜딩을 이룬 상황이다.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며 공존하는 도시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문화 다양성이다. 안산에 등록된 외국인 주민 수가 8만 명이 넘는다. 대한민국 기초자치정부 중 가장 많다.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 가보면 한국인 비율이 20%가 안 된다. 그만큼 다양한 문화가 모여 살아가고 있다. 어떤 문화적 접근과 기획을 하느냐에 따라 안산이라는 도시가 서로 다른 문화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공존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 믿음으로 컬처75는 문화 다양성을 확산하기 위해 몇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첫 번째는 앞서 거론한 문화놀이터 ‘마켓 포레스트’를 통해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일이다. 아시아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결혼 이주여성들이 많아 올해 마켓 포레스트의 첫 테마는 ‘아시아 축제’였다. 현지인이 소개하는 아시아 나라의 숨겨진 여행지라던가 의상 및 음식 체험, 아시아의 전통연희 공연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정식 명칭이 ‘다양성 문화놀이터 마켓 포레스트’인 만큼 매월 안산이 품고 있는 다양한 문화가 쉽고 즐겁게 소개되는 장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두 번째는 고려인 동포와 함께 하는 문화 프로젝트이다. 안산에는 고려인 동포들이 2만 명 넘게 살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고려인 거주인구의 20%가 넘는다. 하여 안산에서는 매년 고려인 동포들의 축제인 ‘고려아리랑’이 열리고 있는데 올해는 컬처75와 안산문화재단이 함께 힘을 합쳐 축제를 기획했다.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와 독립운동 역사, 음식체험 및 고려인 끼 페스티벌로 구성했다. 전국 유일의 ‘고려인 문화센터’는 일상에서 고려인 동포들과 안산 시민들의 행복한 공존을 위해 컬처75와 함께 다양한 문화기획을 준비하고 있다. 이 밖에도 안산의 여러 공공 기관들이 다문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문화 다양성 확산’이라는 본래 의미에 맞게 잘 진행되도록 여러 차원에서 노력하고 있으며 향후 적절한 기회에 ‘문화 다양성 조례’ 제정 프로젝트도 진행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더 즐겁고 안정적으로 예술 활동을 하기 위해 서로가 가진 다양한 경험과 정보, 가치를 나누는 ‘예술인 공유 토크’도 지속하고 있다. 예술인들 스스로 지혜를 모아 함께 도닥이며 예술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당면해서 중요한 문화정책이 무엇인가 함께 연구하고 토론하며 행정과 협의하는 활동도 진행 중이다.
문화와 예술은 공공재이다. 예술인들은 자신의 창작물이 시민에게 어떤 위로와 감동을 주고, 새로운 문화적 감수성을 전하는 힘이 있는지 더 세세히 돌아보며 예술의 공공재적 가치를 높여야 한다. 문화기획자들은 도시가 가진 결핍과 가능성을 동시에 발견하여 우리가 사는 도시의 결핍을 가능성으로 채워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컬처75는 앞으로도 도시와 시민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으로 문화와 예술의 힘을 적절히 발휘하여 도시의 결핍을 가능성으로 채워 결국 역동성이 만들어지도록 열심히 기획하고 예술하려고 한다. 예술가가 가진 따뜻한 시선이 사람을 얼마나 위로할 수 있는지, 문화와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한눈에 보게 하는 시구로 부족한 글을 마치고자 한다. 대한민국 예술인들, 문화기획자들 모두 응원한다.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릅답다”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릅답다”
– 이생진 시인, ’벌레 먹은 나뭇잎’ 중 일부
사진_필자제공
-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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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사회적협동조합 컬처75 이사장. 2005년 극단 걸판을 창단하여 지역 기반 연극 활동을 만들어왔고, 2013년 극단 동네풍경을 창단하여 지역의 이야기를 연극과 뮤지컬에 담는 활동을 했다. 2014년 세월호 이후 문화와 예술의 힘을 통해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만들기 위한 문화기획을 하고 있다. 2017년 안산의 청년예술인들이 대거 모인 문화예술 사회적협동조합 컬처75를 창립했다. 그리고 2017년부터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에서 ‘문화와 창의성’ 강의를 하고 있다.
culture75.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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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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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거리극축제 때 가 보았었는데 다양한 축제도 열고 하는군요 신기하네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선생님 글에 안산을 사랑하는 마음, 안산이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즐길 줄 아는 시민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는 마음 모두를 느낄 수 있네요. 긴 글에 군더더기가 없음도 탁월하십니다. 언제나 응원합니다. 선생님의 행보.
글 속에서 75만 안산 시민 모두를 위한 문화예술을 꿈꾸는 컬처75의 마음이 느껴졌어요. ^^ 저희도 최운경 선생님과 같은 마음으로 컬처75와 김태현 이사장님을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