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와 억양이 부모자식, 그리고 세세로 이어지듯 말에는 그 세상이 깃듭니다. 부모가 유전자를 남기듯 세상은 문화 유전자를 시와 노래로 남겼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시도 노래도 아니지만 게송(偈頌)처럼 오래도록 읊어온 것이 있습니다. 바로 속담입니다. 속담은 운율을 입고 입으로 귀로 퍼지고, 귀에서 머리로 들어가 다시 입으로 전해 내려왔습니다. 귀에 쏙쏙 박히는 운율을 가진 게 한국 속담의 특징이라 생각합니다. 한민족만의 리듬감이 풍부하게 살아있죠.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의 속담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우리 속담만큼 ‘흥부자’로 붐칫붐칫 하지는 못하리라 봅니다. 그래서 속담은 랩과 힙합의 리듬과 매우 닮았습니다. ‘먹는 덴 감돌이 일하는 덴 베돌이’처럼 라임(rhyme)을 맞추거나, ‘간다 간다 하면서 애 셋 낳고 간다’ ‘핑계 핑계 도라지 캐러 간다’처럼 동어반복의 묘를 살립니다. 랩과 힙합이 말과 노래 사이에 있듯, 속담 역시 리듬을 타고 그 사이에 자리합니다.
웃음과 운율에 담긴 말맛
속담은 재밌고 개구지지만 뼈 때리는 말입니다. 골계(滑稽)라고 하죠. ‘개 팔아 한 냥, 돝 팔아 닷 돈이니 한 냥 반인가’라는 속담에선 같잖은 한 양반을 개돼지 값 ‘한 냥 반’으로 칩니다. ‘개 팔아 두 냥 반’이면 한량(한 냥) 품행이 개 같다는 뜻이 됩니다. 이렇듯 속담은 대놓고 못할 욕을 대놓고 알게 합니다. 요즘의 ‘국개의원’처럼 말이죠. “대한민국 학교 다 족구하라 그래!”처럼 ‘주옥같다’라든가 ‘조카 신발’ 같은 에두름이 옛날이라고 없었을까요? ‘삼치 한 배만 건지면 평안감사가 조카 같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조카의 어원이 족하(足下), 즉 ‘발밑’인 걸 알고 개그를 쳤지요. 빨리 발음하면 욕같이도 들립니다. 또한 속담은 같은 경험을 하나의 상황으로 공유합니다. 예컨대 ‘좁쌀만큼 아끼다 담돌만큼 해(害) 본다’ 말해도 ‘좁쌀만큼 아끼다 담 돌(廻) 만큼 해(爲)본다’를 알아챕니다. 흉년에 좁쌀 꾸러 온 이웃을 박대했다가 어느 흉년엔 자기네가 죽을 판이라 꾸러 가야 하지만, 무정했던 지난날이 떠올라 선뜻 못 들어가고 그 집 담만 뱅뱅 도는 상황이 담겼으니까요. 보릿고개 동지끼리라 피식 웃습니다. [담똘]과 [담돌] 발음 차이 하나로 나 혼자 살면 너 홀로 산다며 쿡 찌릅니다. 이렇듯 우리 속담은 우리말이 가진 막강한 조어력을 잘 살려 넣습니다. 그저 말장난 같지만, 닫힌 마음 부수는 건 늘 웃음에 담긴 뼈입니다.
속담은 운율을 살려야 해서 미루어 알 건 빼버립니다. 경제개발 시절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 들먹이며, 사람구실 하려면 응당 도회지서 큰일을 해야 한다고 너도나도 고향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 속담의 본모습은 ‘말은 (태어)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잘)나면 서울로 보내라’입니다. ‘난사람’처럼 ‘나다’에는 ‘잘나다’도 담겼으니까요. ‘늦게 잡고 되게 친다’도 그런 식입니다. 왜 아직 범인을 못 잡느냐고 상부에서 질책이 내려오면 애먼 사람 잡아다 때리고 겁주어 조작된 시나리오와 동선에 올립니다. 없는 죄를 만드는 ‘(죄가) 되게 치다’를 ‘심하게 때리다’로 들리게 숨죽여 표현한 것이죠. 예나 지금이나 사람 위에 사람 있으니 공권력 범죄가 벌어집니다.
여성이 지어 유통시킨 속담도 많습니다. ‘지붕의 박도 못 따면서 하늘의 천도복숭아를 따겠다’로 생활능력은 없으면서 포부만 큰 남편을 한심해하고, ‘횃대 밑 사내’로 수탉이 크게 홰치는 닭장의 ‘횃대’와 방 안에 매단 옷걸이 ‘횃대’를 가지고 고작 식구들한테나 큰소리치는 방구석 사나이를 비웃습니다. 민요 가사 “앞산에 딱따구리는 없는 구멍도 잘 파는데, 우리 집에 멍텅구리는 있는 구멍도 못 찾네”처럼, 속살을 속담에 거침없이 드러내기도 합니다. 요즘 중년 남자들끼리 “식구하고 하는 거 아냐” 한다면 옛 중년 여성들은 빨래터에서 ‘고추 붉어야 고추씨 받지’라고 했습니다. 뭐가 서야 애가 서죠.
우리 삶을 담은 풍자
속담에는 교훈만큼 풍자가 많습니다. ‘되지 못한 풍잠이 갓 밖에 어른거린다’에는 호박 같은 걸로 만든 반달형 풍잠(風簪)이 나옵니다. 갓은 쓰는 게 아니라 얹는 거라서 맞바람 치면 뒤로 홱 넘어갑니다. 그래서 망건 위쪽에 풍잠을 덜렁 매달아 갓모 안에 집어넣으면 갓이 걸려 뒤로 안 넘어갑니다. 풍잠은 매우 고가라서 대개 달 엄두를 못 냅니다. 그 비싼 걸 달았으니 스스로 얼마나 자랑스럽겠습니까. 풍잠이 저절로 빠져나온 척 갓모 밑에 내놓고 내가 제일 잘나가, 덜렁덜렁 재면서 다니겠지요(‘되지 못한’은 ‘돼먹지 못한’입니다. 풍잠은 졸부를 상징하고요). 그 시계 비싸 보인다? 물어봐주길 바라며 괜스레 머리 넘기고, 셀카 배경에 명품가방 둡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어디 안 갑니다.
사람은 어디 안 가기에 속담은 지금도 지금에 맞게 새로 만들어집니다. ‘남이야 전봇대로 이를 쑤시든 말든’처럼 ‘남이야 지게 지고 제사 지내건 말건’을 고쳐 쓰거나 ‘너나 잘하세요’처럼 반말도 존댓말도 아니게 대거리합니다(티아라 <전원일기> 가사의 ‘웬 참견이세요. 사돈 남 말은 딴 데 하세요. … 아, 너나 잘하세요~’처럼, 가사량 많은 요즘 노래들에 속담만 한 효자가 없습니다). 익히 아는 ‘똥차가 빠져야 쓰레기차가 나가지’ ‘세차는 기우제’ 같은 것도 있고 ‘할많하않(할 말은 많은데 하지 않겠다)’이나 ‘안물안궁(안 물어봤어 안 궁금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처럼 물씬 사자성어 같은 줄임말도 있습니다(저는 저렇게 운율과 대구 살린 줄임말도 속담으로 봅니다). ‘일한 공은 있어도 애본 공은 없다’를 요즘엔 뭐라 할까요? ‘직장이 전쟁터면 육아는 지옥이다.’
속담의 전파 속도는 점점 빨라집니다. 걸음 속도에서 시작해 우편, 전화, PC통신과 인터넷을 거쳐 이젠 SNS를 타고 눈 깜짝할 새 퍼집니다. 그리고 어쩌면, 맨 처음 말한(쓴) 사람도 알 수 있습니다(고깃집 단골 표어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를 처음 쓴 이를 저는 압니다). 이젠 누구나 재치만 있으면 속담을 만들고 유통시킬 수 있지요. 하지만 속담에서 이것 빼면 시체입니다. 바로 ‘우리네 삶’이죠. 저절로 끄덕이며 ‘햐~!’ 소리가 나와야 화면에서 화면으로 전파될 자격을 갖춥니다. 그 말이 오래 살아남자면 장치를 더 갖춰야 합니다. 지금껏 이야기한 운율과 대구, 중의(重意)와 비유, 상징 같은 것들입니다.
상상과 영감의 씨앗
스필버그는 <쥬라기공원>을 그려냅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작가는 미항공우주국(NASA)에 고문으로 초빙됩니다. 우리는 공룡을 본 적이 없지만 과학자들은 온전치 못한 뼈를 분석해 없는 뼈를 만들고 다시 상상을 입혀 근육과 살, 눈과 혀를 붙입니다. SF작가는 과학자가 아니지만 과학자가 상상도 못할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저도 속담을 연구하면서 가볼 길 없는 옛날은 상상으로 찾아갔습니다. 독장수가 손가락 구구셈에 정신 팔려 돌부리에 걸려 엎어지는 상상, 종로 관원이 발주 잘못해 욕먹고 송도 가서 개성상인한테 화풀이하는 상상, 정자 짓고 싶은 경친데 절터라 양반이 입맛만 다시는 상상, 훔치다 들키니 제 눈 가리고 야~옹 하는 상상, 불륜으로 생긴 애 낙태하고 갖다 묻으라니 종이 씨부렁거리며 가는 상상, 잠결에 달빛 봉창을 문으로 착각하고 북북 뜯는 상상, 몇 되 빌려주고 몇 말로 환곡하려는 탐관오리 상상. 이런 상상들과 그러모은 자료들을 대조해 그럴듯하게 맞아 떨어지면, 아니 생각지도 못한 생각이 떠오르면, 무릎 탁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를 느꼈습니다.
‘딸 셋이면 기둥뿌리가 흔들린다’로 박완서 『휘청거리는 오후』가, ‘봄 꿩이 제 울음에 죽는다’로 성석제 「이른 봄」이 나왔다고 믿습니다. 속담 하나로 한 작품 나온다면, 일 만 넘는 속담들에선 얼마나 많은 작품들을 뽑아낼 수 있을까요. 상상의 눈덩이 굴릴 첫 눈뭉치로 우리말 DNA, 어제 살았고 오늘 사는 세상 이야기, 우리 속담(俗談)을 권합니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입니다. 한 점이라도 더 먹으려고 꿀꺽 삼켜버리면 뭔 맛입니까. 고기는 씹어야 살(肉)맛 나고, 말은 털어놔야 살(生)맛나며, 속담은 곱씹어야 말맛 글맛이 살아납니다.
- 김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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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탐험가. 익숙한 말이 늘 낯설어 재미로 골머리를 앓는다. 관용구도 시쳇말에서 건지려 밤낮 곰파고 있다. 10년에 걸쳐 『우리말 절대지식: 천만년을 버텨갈 우리 속담의 품격』을 썼으며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트위터 (속담) @madeinyester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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