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서로 관계가 없는 상황에서 먼저 말을 걸어오는 청소년을 본 적이 없어요. 혹시 공원이나 버스 안에서 대뜸 나에 대해 궁금해하며 말을 거는 청소년이 있던가요? 그리고 저는 ‘어른에게 말을 거는 법’을 궁금해하는 청소년도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그 반대의 궁금증을 가진 어른들은 아주 많이 보아왔습니다. 어른들은 청소년에게 말을 걸고 싶어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 글은 ‘청소년에게 말을 거는 방법’이라는 주제의 글입니다. 하지만 저는 답을 드릴 수는 없어요. 그 답은 여러분 각자가, 각자의 가치관과 역할 속에서 찾아가야 할 부분일 것입니다. 다만 저는 그 답을 찾아가는 길에 몇 가지의 질문으로 이정표를 제시해보고자 해요.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글을 써보기 위해서 ‘당신’ 등의 직접적인 지칭을 사용해 볼게요. 자, 그럼 함께 생각을 나눠 볼까요?
질문1: 왜 청소년에게 말을 걸려고 하세요?
당신은 왜 청소년에게 말을 걸려고 하시나요? 가끔 사람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청소년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나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되물어요. “왜 말을 걸려고 하시죠?” 그 뒤에는 이런 종류의 대답이 돌아오곤 합니다. “청소년들은 고민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니까요.” “어른의 역할이니까요. 뭔가 도움을 주고 싶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말을 걸어달라는 청소년이 있던가요? 제가 이 글을 쓰면서 옆에서 놀고 있는 청소년에게 물어봤어요. “어른들은 왜 청소년들에게 말을 걸고 싶어 할까?” 그랬더니, “젊게 살고 싶어서요.”라고 합니다. 혹시 정말 그런가요?
질문2: 대화를 위한 태도를 갖고 있나요?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충고를 하고 있어요. 자꾸 가르치려 합니다.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말을 하고 있지요. 말을 건다는 것은 대화이고,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청소년에게 어떤 것을 받으려 하시나요? 청소년들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저는 지역에서 다양한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런데 저는 ‘소통’으로 포장된 ‘공격’을 종종 경험해요. 대화가 아니라 자기 생각만 이야기만 하는 분들이 있지요. 요즘 우리 사회에서 ‘소통’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참 소통이 안 되는 사회인가 봐요. 소통이란 뭘까요? ‘소통의 기법 5가지’, 이런 책이나 블로그에 눈길이 많이 갈 것 같아요. 하지만 ‘소통’이란 기법이기보다는 태도인 것 같아요. 과연 우리는 적절한 태도로 청소년을 만나고 있을까요?
질문3: 당신은 누군가가 말을 걸고 싶은 사람입니까?
평소에 누구와 말을 하고 싶으세요? 끌리는 사람이 있겠지요? 아니면 말을 걸 목적이 있을 겁니다.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과는 괜히 눈을 마주치려고도 합니다. 그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도 신경이 쫑긋쫑긋하지요. 반면에 아무리 마주 앉아도 ‘할 말이 없는 사람’도 있어요. 심지어는 말을 섞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청소년에게 어떤 사람일까요? 우리는 아이들이 말을 나누고 싶은 사람일까요?
질문4: 당신은 청소년에게 무엇이 되려 합니까?
당신은 청소년에게 어떤 역할을 하고 싶으세요? 청소년의 주변에는 몇몇 어른들이 있습니다. 부모, 친척,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 종교가 있다면 그곳의 어른들, 피씨방이나 코인 노래방의 사장님…. 그다지 많거나 다양해 보이지는 않지요.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진 성인과의 관계망은 그리 넓지도 깊지도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혹시 당신은 이러한 역할만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저는 ‘제3의 교육’이라는 말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어요. 공교육과 사교육 외의 교육영역을 포괄하는 것으로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비영리 교육의 영역이랄까요? 아니면 기존의 방식과 대립되는 관점에서, ‘다른 교육’ ‘새로운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저는 당신이 청소년에게 무언가 새로운 역할로 다가가고 싶어 하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3의 어른’ 혹은 ‘제3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변화를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사실 저 자신도 청소년들에게 어떤 역할인지, 그것에 대해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길게 설명한다면, ‘청소년들의 성장 과정에서 부족해 보이는 부분을 채워주려 하는 사람’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을 듯 하고요. 짧게 제 식대로 말한다면 ‘제3의 교육자’ 혹은 ‘동네 삼촌’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해요. 저는 이러한 정도의 입장이 그다음의 ‘방법’을 결정해가고 있어요.
여러분, 우리는 안내자일 뿐입니다.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안내자일 뿐입니다. 그들의 삶에 정답을 가르쳐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요. 어른들의 역할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세상과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전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얘들아, 세상에는 이런 것도 있단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단다. 이런 방식의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단다’를 알려주는 역할인 것이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아이들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탐험해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청소년들은 자기 삶의 무게를 견디며 자신의 길을 찾아갈 거예요. 그리고 청소년기는 그러한 힘을 기르는 시기입니다. 어른들은 그 힘을 잘 기르고 단련할 수 있도록 보호해주는 것이 전부인 듯 해요. 그런 점에서 저 자신도 아이들을 대하면서 오만하지 않기 위해 항상 노력합니다.
결국은, ‘관계’ 입니다.
우리가 청소년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고 싶다면,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하나의 역할을 수행하고 싶다면, 우리는 말을 걸지 말고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신뢰받는 안내자가 되려면 시간을 들여 관계를 쌓아야 하겠지요. 당신이 신뢰받는 안내자로서의 관계를 쌓아 간다면 틀림없이 청소년들과 함께 즐거운 대화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저에게 이런 감수성을 길러준 세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그들의 교육관이 여러분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미지제공 _ 궁리출판, 한국슈타이너인지학센터
- 최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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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 동 대학원 예술학과를 졸업했다. 2013년 꽃놀이하러 왔다 반한 남산자락에 청소년과 청년들의 놀이터 달꽃창작소를 열었으며, 최근까지 대표직을 역임했다. 현재 용산구 마을자치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다.
ufonp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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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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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성 선생님의 글을 참 좋아합니다. 이번 글에도 따뜻한 시선과 청소년들을 향한 진심 어린 마음이 담겨있네요.
아이들을 만나면서 나는 어떤 마음으로 대화를 거는지 자문하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기사를 따뜻한 마음으로 담고, 그 마음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최규성 선생님의 청소년을 대하는 태도와 시선을 참 좋아한답니다.
다가오는 연휴에는 추천해주신 책을 살펴보려고 해요.
센터장님의 연재가 예정되어 있으니 계속해서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
아는 체하고 꼰대짓하는 제가 생각나 부끄럽습니다.
상담사로서 관계를 해치는 말들과 표정 혹은 행동을 했던것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독자님,
최규성 선생님의 질문이 많은 것을 되돌아 보고 성찰하게 하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그 시간을 함께 즐겨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