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아르떼365]는 ‘세상의 변화에서, 힘이 되어준 ○○○은?’이라는 주제로 독자들이 책, 영화, 음악, 전시, 공연 등 다양한 콘텐츠를 추천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급변하는 시대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는 무엇인지, 그에 맞서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일지, 문화예술교육 분야에 종사하는 우리들은 이러한 흐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가끔은 막연하고 난감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과 태도로 이 시간을 헤쳐가고 있을지 궁금할 때도 있다. 독자들의 추천에 앞서, 웹진 [아르떼365] 편집위원과 필자들이 추천하는 ‘변화하는 시대, 힘이 되어줄 콘텐츠’를 소개한다.
예술은 삶 속에서 작동해야 한다
<시>(이창동 감독, 윤정희 주연, 2010)
지금 현재를 시가 죽어가는 시대-예술이 삶 속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시대라는데 동의한다면 꼭 봐야 할 영화다. 서로 만날 것 같지 않았던 삶의 사건과 창작행위의 평행적 전개가 한 편의 시로 완성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진정한 예술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에 대한 감독의 확고한 관점을 만날 수 있다.
정원철 _ 추계예술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본지 편집위원
<내일을 위한 시간>(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감독, 마리옹 꼬띠아르 주연, 2014)
다르덴 형제의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은 이기적이고 비정한 사회에서 우리가 무엇을 붙잡아야 하며, 어디를 향해야 할지 생각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시대를 결코 낙관하지 않는다. 시대는 언제나 비열한 얼굴로 음흉하게 다가오며 우리는 결코 이겨낼 수 없음을 인정한다. 변화는 때로 너무나 신속하고 의뭉스럽게 찾아와 우리를 속수무책으로 몰아넣는다. 그에 비해 개인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하고 무력하지만, 나와 너를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조금 더 당당하고 외롭지 않게 버텨낼 수는 있다. 이길 수는 없지만 행복할 수는 있다.
“우린 다시 사랑할 거잖아.”
“잘 싸웠지? 행복해.”
박유미 _ 미술작가
모든 삶과 죽음, 생명은 소중하므로
<보헤미안 랩소디> OST(Bohemian Rhapsody OST, Universal Music, 2018)
지난해 개봉해 이른바 ‘뉴트로’ 열풍을 불러일으킨, 퀸의 전기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OST 음반은 복고를 새로이 해석하고 즐기는 문화 트렌드를 잘 엿볼 수 있는 음반이다. 특히 후반부에 수록된 ‘라이브 에이드(Live Aid)’의 공연 실황 라이브 트랙은 음반의 백미다. <보헤미안 랩소디> <위 아 더 챔피언> 등 주옥같은 퀸의 히트곡일 뿐만 아니라, 공연 자체의 의미도 크기 때문이다. <라이브 에이드>는 1985년 7월 13일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에서 열린 동시 생방송 라이브 공연으로, 에티오피아 난민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최근 자국의 이익만을 좇는 ‘이기적인’ 세계정세 속에서, 당시 음악을 통해 인류애와 박애 정신을 보여준 이 행사는 ‘세계는 하나’이고 모든 사람이 소중하다는 기본을 일깨운다.
류동현 _ 미술 저널리스트, 전시기획자
슈베르트 현악 4중주 14번 ‘죽음과 소녀’ & 『애도하는 미술-죽음을 이야기하는 98개의 이미지』 (박영택, 마음산책, 2014)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는 죽어가는 자로서의 소녀와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려는 사신의 대화를 묘사한 음악이다. 아름다운 예술들은 놀랍게도 죽음으로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죽음은 예술의 중요한 소재가 된다. 미술평론가 박영택의 『애도하는 미술』은 이러한 죽음을 담은 98개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책 속의 이미지(미술품)들과 슈베르트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아름답게’ 생각해볼 수 있다. 반드시 욕심내어 책과 음악을 동시에 장만하고, 여유의 욕심도 곁들여 반드시 같이 들으며 읽어볼 것. ‘죽음’이 예술에 ‘생명’을 불어넣는 소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송현민 _ 음악평론가
예술의 통찰, 상상의 역동성
『여자의 말 – 이바라기 노리코 시선집』 (이바라기 노리코 지음, 성혜경 옮김, 달아실, 2019)
“살아 있는 한 살아 있는 것들의 편(便)이 되어” 살고자 했던 전후 일본 최고의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1926-2006)의 시선집이다. 일본 현대시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비롯해 주요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한글을 사랑하고, 윤동주를 사랑했으며, 신경림·강은교·홍윤숙 등의 한국 시들을 번역해 소개했다. 특히 윤동주 시와 삶에 대한 수필 <바람과 별과 시>는 교과서에 수록되어 일본에서 ‘윤동주 현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평이한 시어 너머에 삶을 깊이 통찰하는 시인의 혜안이 느껴진다. 문화예술교육 또한 약하고 힘없는 ‘살아 있는 것들’의 편이 되는 것과 무관하지는 않으리라는 차원에서 이 시선집을 추천한다.
고영직 _ 문학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사계절, 2018)
1. 우리는 우리가 뇌성마비자라는 것을 자각한다.
2. 우리는 강렬한 자기주장을 행한다.
3. 우리는 사랑과 정의를 부정한다.
4. 우리는 문제 해결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5. 우리는 비장애인 문명을 부정한다.
1970년대 초반 활동한 일본의 뇌성마비 장애인 단체 ‘푸른잔디회’의 강령을 이 책에서 만났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장애인을 억압하는 현실을 기만하는 사랑과 정의, 비장애인 문명을 부정하며 비타협적 태도로 일관하는 이 강렬한 선언! 듣는 이를 몸서리치게 만드는 이 포효는 지금, 여기에서 극단적으로 기울어진 세계의 균형을 잡으려는 모든 타자의 안간힘에 고스란히 포개진다. 그저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축복받았던 당신이 무심히 지나쳐버리거나 외면해버린 질문들을 고스란히 만나고 나면 ‘다른 존재’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질 것이다.
안태호 _ 협동조합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이사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 (존 파웰 지음, 장호연 옮김, 뮤진트리, 2018)
작가는 물리학자이자 음악가란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음악학이나 연주자의 입장에서 서술한 여타 책과 달리 심리학과 자연과학의 연구방법론으로 음악 현상에 접근한다. 음악의 특징, 현상, 유용성 등을 과학적으로 풀어내며 음악적 주제들을 작은 단위로 나누어 가설을 세우고 실험과 관찰을 통해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다. 음악을 요소요소로 나누어 해체하고 분석하는 것이 예술의 아름다움을 총체적으로 경험하는 것에 도움이 될까 하는 비판도 있겠지만 음악의 아름다움은 다양한 통찰에서 드러날 수 있다.
조은아 _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본지 편집위원
『학교 공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 가고 싶은 학교 만들기 프로젝트』(홍경숙, 편해문, 배성호, 이승곤, 김태은, 이영범 지음, 창비교육, 2019)
‘공간’이 단순히 교육이 행해지는 고정된 장소가 아닌, 새로운 상상력과 교육의 혁신을 견인하는 동적인 촉발제 그 자체일 수 있음을 강조하는 책이다. 그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문화예술교육을 통한 학교의 변화, 교육의 혁신을 이야기해 왔던가? 이 책은 교육의 변화와 혁신을 담는 ‘그릇’ 그 자체가 상상의 역동성을 담지할 수 있어야만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임을 오롯이 일깨워 준다. 학교 공간의 주인인 아이들의 관점에서 다르게 상상하기, 그 자체가 문화예술교육의 가장 좋은 출발점일 수 있다는 ‘뒤늦은 깨달음’에 동참하실 분들은 꼭 읽어보시길!
최보연 _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연구위원, 본지 편집위원
최엄윤
정리_프로젝트 궁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