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꽃들이 환한 모퉁이를 돌아 엄마들이 학교에 간다. 하나, 둘, 셋, 넷, 마음이 급한지 종종걸음이다. 여기는 충북 음성의 예술꽃 씨앗학교 감곡초등학교. 아이들이 공부하는 교실을 지난 복도 끝자락에 엄마들의 교실이 있다. 앞에 하나씩 악보대를 마주하고 나란히 앉아 아에이오우 목부터 풀었다. ‘해피싱어즈’ 감곡학부모합창단이다.
“우리 항상 이렇게 입어요.” 옷차림이 학교 근처에서 서둘러 온 매무새로는 보이지 않아 아래위로 자세히 살피는 것을 알아차렸나보다. 아이가 아까 집에서 본 엄마인지 몰라볼 수도 있겠다고 말을 건네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한다. 합창단원으로서의 마음가짐이 생활에 미친 영향일 것이다. 하나같이 표정이 밝고 목소리가 높았다. 잠시후 우렁찬 목소리가 창문을 울리며 교실을 채우기 시작했다. 다른 교실의 아이들 수업에 지장이 없을지 잠깐 걱정이 됐지만, 엄마들과 강사들은 익숙하게 파트별로 연습하고 코러스를 넣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교실들이 방음이 잘 되어 문제가 없다고 한다.
엄마들의 선생님, ‘우리 음악 선생님’
시골마을에서 합창단을 이끌어줄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일은 엄청나게 운이 좋아야 가능하다. 그런데 감곡초등학교는 엄청나게 운이 좋게도 음성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온 지휘자를 강사로 만났고 지인을 따라 음성에 온 피아니스트가 합창단 반주자로 아예 지역에 남게 된 매우 특별한 사례가 되었다.
“고향 같은 곳에서 아이들과 음악활동을 하는 것이 즐거워요. 마을 주민들과 음악으로 만나고 소통하는 것이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것 같아 친구도 내려오라 했죠. 이젠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음악을 이어가야죠. 지역의 문화예술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이 우리의 숙제가 된 거죠.”
– 하성수 강사, 지휘자
예술꽃 씨앗학교 사업이 지역에 청년예술가를 불러모으고 이들이 더불어 활동하는 터전을 마련해 주고 있는 단편을 볼 수 있었다.
음악도 씨앗처럼 잘 가꾸니 꽃을 피우네
감곡초등학교에는 ‘예술꽃실’이 있다. 음악 수업을 할 수 있는 전담 교실이다. 각반에서 정규수업 과정에 포함된 음악 활동을 하면서 합주와 합창을 할 때 전담 교실을 활용한다. 현재 예술꽃 씨앗학교를 담당하고 있는 고재희 선생님은 4년 전 예술꽃 씨앗학교에 선정되었을 때 부담당교사로 참여했고, 2018년부터 담당교사를 맡고있다.
“아이들의 변화가 보여서 보람 있어요. 전체 학년이 악기 연습하고 합창하는데 특히 작년에 이야기가 있는 음악극을 진행해 본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학교생활을 힘겨워하는 아이들과도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이 음악이어서 가능하지 않았나 한 거죠.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서 알맞은 음악을 찾아 연극처럼 표현하는데 모두 재밌어하고 잘하더라고요.”
– 고재희 감곡초등학교 교사
감곡초등학교에는 교사밴드 동아리도 있는데 이름이 ‘몸부림’이다. 간신히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악기 연습을 한다. 그야말로 몸부림치며 이어가는 연습에 빠지는 선생님은 없다고 한다. 어려워도 이어서 하다 보면 실력이 늘고 재미도 알게 되는 법이다. 학교의 예술 수업이야말로 즐기는 교사가 있어야 가능할 활동일 것이다. 시골마을 학교의 특성이기도 한데 감곡초등학교의 교사 대부분 이 학교의 근무연수가 3년 미만이면서 타지에서 거주하는 분들도 절반 정도라고 한다. 교사 역시 학교에 마음을 붙이고 지역과 소통할 여유를 마련하는 데 예술의 힘을 빌려 올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교과수업 연계와 교사밴드 모임은 그간 구축해 온 예술교육 시스템이 있고, 교사들의 협력 속에서 큰 어려움이 없이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다만, 학부모합창단의 지속가능성 등은 운영예산확보가 과제로 남아있다. 학부모합창단원은 모두 14명. 지금이 4년 차인데 창단 멤버가 절반이 넘는다. 단합이 잘 이루어지고 있고, 지역에서 합창단이 짬을 내 봉사 활동을 해 온 것도 자체적으로 활동 의지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고재희 선생님은 이러한 단원들의 활동이 알려져 음성군이나 교육청의 지원이 연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예술꽃 씨앗학교의 2막을 준비하는 과정에 담당교사의 어깨가 무겁다.
‘해피싱어즈’, 노래꽃을 피우다
충북 음성의 감곡면은 복숭아 특산지다. 복숭아꽃과 살구꽃이 피는 고향 같은 마을이기도 하다. 그런데 감곡초등학교에서 만난 엄마들의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음성은 혁신도시로 산업단지가 들어서고 인구 유입이 늘어나고 있는 지역이다. 반면 문화기반시설이 부족해 젊은 층의 삶의 질과 안정성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시골마을에서 학교는 세대를 아우르며 담아낼 수 있는 유일한 공공의 교육문화 공간이지만 실제 주민에게 열린 마을의 우리 학교로서 역할을 하는 곳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저는 집에만 있었어요. 여기 사람이 아니라 아는 사람이 없어서요. 아이를 따라서 학교에 오니까 갑자기 언니들이 생기는 거예요. 제가 너무 좋아하니까 아이도 엄마가 노래하는 것이 좋다고 하더라구요.”
“학교가 어려웠어요. 아이가 다니고 있는데도 저한테는 멀게 느껴지더라구요. 어떻게 하다가 합창반 활동을 하면서 ‘우리 학교’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우리 마을의 학교구나. 나에게 필요해지고 의미가 있으니까 계속 남아있게 됐어요.”
“혼자 노래를 부르는 것은 잘 안 되잖아요.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참여했는데 처음에는 너무 어려웠어요. 3년 정도 하면서 같이 음을 맞추다 보니 점점 하나가 되고, 계속 연습하면서 부르고 부르다 보니 멋진 하모니가 되잖아요. 너무 좋았어요. 내가 그 가운데 있다는 것에 성취감이 생기더라고요.”
한 달 두 달, 한두 해도 아니고 삼 년 이상 서로 소리를 맞추며 만나왔으니 실력이 늘게 되는 것은 당연할 터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와 엄마가 각자 학교에서 성장하고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는 역량을 높이게 된 것에 스스로 대견하게 여길 만 하다.
“꼭 여고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요. 결혼하고 이런 걸 할 수 있을 거라 생각지 못하고 살았어요. 사회하고 단절된 상황에서 무엇인가에 참여할 것도 생각 못 하고. 합창단에 와서 이렇게 잘할 거라고도 생각 못했죠. 항상 기다려지는 시간이에요.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시간을 기다리고 서로 반갑고 그런 사람들이 됐어요.”
깔깔 웃은 적이 언제였던가 하는, 설레고 감동하는 마음을 느껴보니 새삼스러워서 서로가 귀하게 여기게 된 지난 3년의 시간이 전해졌다.
“처음 시작할 때는 즐기지 못하고 백지상태였어요. 무대에 한 번씩 오르면서 성취감이 생긴 것 같아요. 지금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아이와 남편에게 신경 쓰는 외에 나 자신에게 열정을 쏟을 일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놓지 못하고 계속 오고 있어요. 아이가 졸업했으니까 안 나와도 되는데 같이 한 시간이 있어 소속감이 생겼어요.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하고 싶어요.”
아이가 졸업한 후에도 계속 참여하는 엄마가 있다는 것이 다른 단원들에게도 기회를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학교 밖으로 나간 ‘예술꽃 씨앗’이라고 해도 좋겠다. 학부모합창단에서 마을합창단이 되는 길을 놓은 것이다. 단원이라는 소속감도 꽤 비중 있게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감곡학부모합창단 ‘해피싱어즈’는 그동안 성탄절에 아이들에게 교실을 다니면서 노래를 불러주고, 학교 밖에서는 경로회관에 가서도, 장애인복지관도 방문하여 노래를 불렀다. 이들의 활동이 지역신문에 실리고 TV에도 나왔다고 했다. 남 앞에 서는 것도 쑥스러워하던 엄마들은 무대에 서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첫해부터 사진을 찍어왔는데 이상하게도 다들 점점 젊어졌다고 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기에 통쾌하게 같이 웃었다.
“잘한다고, 선생님들이 자꾸 칭찬하셔서 잘하는 줄 알고 이어온 것 같아요.”
감곡이 예술꽃마을로 피어나는 배경에는 예술꽃 씨앗학교가 있었다.
- 예술꽃 씨앗학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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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부터 농산어촌, 도서벽지의 소규모 학교와 지역민들에게 문화예술교육을 지원하고자 전국 400명 이하 소규모 학교를 예술꽃 씨앗학교로 선정하여 공연, 음악, 시각, 통합 예술 등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을 최대 4년 동안 지원하고 있다. 2008년 10개 학교를 시작으로 사업 11주년을 맞이한 2019년까지 전국 118개의 학교가 예술꽃 씨앗학교로 선정되었다.
∙ 예술꽃 씨앗학교 홈페이지 www.arte.or.kr/seedschool/index.do - 예술꽃 씨앗학교 7기 감곡초등학교는
- 아이들이 음악을 매개로 즐겁고 행복한 문화예술교육을 경험함으로써 감수성을 기르고 음악을 생활화하며 스스로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돕고자 2016년부터 예술꽃 씨앗학교로서 감상·창작·리듬 등 교과와 연계한 입체적인 통합문화예술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전교생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있는 음악극> 만들기 프로젝트뿐 아니라 감곡 팝 앙상블 밴드, 나도 예술가처럼!(방과 후 악기 프로그램), 감곡 어린이 합창단, 감곡 교사밴드 등 다양한 방과 후 예술동아리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지역과의 연계활동으로 학부모합창단 ‘해피싱어즈’ 운영 외에도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감곡문화데이>에는 지역 예술단체 초청공연도 진행하고 있다.
축제사진제공 _ 감곡초등학교
- 오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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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이네도서관 관장. 함께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청주에 있는 작은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매일 재밌게 놀 궁리만 하며 살고 있다. 작은 문화 만들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네트워크도 하고 있다.
chorong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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