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보통신과 네트워크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사람들은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만지고 느끼고 오감을 충족하며 생생한 현실감을 느끼고자 하는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여 온라인으로만 존재했던 가상의 상황 등이 현실 공간에 재현되거나 가상현실(VR) 기기의 활용으로 실감 나는 경험이 가능하다거나, 또는 스스로 선택한 동선에 따라 각자의 작품을 즐기며 마치 작품 속 인물이 된 듯한 체험을 통해 내가 지금 이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다양한 실감형 콘텐츠가 개발되고 있다.
좀 더 감각적으로, 좀 더 주체적으로
이머시브(immersive)는 ‘에워싸는 듯한’, ‘몰입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을 활용하여 지금보다 훨씬 나은 표현력과 선명함, 현실감을 제공하는 기술로서 방송, 영화,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직접 체험하고 감각하며 상호작용하길 원하는 최근의 문화 소비 트렌드와 맞물려 다양한 이머시브 콘텐츠가 제작되고 있다.
이머시브 요소가 지닌 몰입감은 프로젝션 맵핑 기술과 음향을 활용하여 미술 작품에 온몸이 ‘푹 잠기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프랑스의 문화유산 및 예술공간 운영 회사인 컬처스페이스(Culturespace)는 2018년 제주 성산의 옛 국가 기간 통신 시설을 문화시설로 바꾼 ‘빛의 벙커’를 무대로 아미엑스(AMIEX, Art & Music Immersive Experience), 즉 예술과 음악에 몰입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전시를 펼치고 있다. 100여 개의 비디오 프로젝터와 스피커가 설치된 전시장에서는 각종 이미지와 음악으로 새로운 공간을 연출한다. 또한 관람객이 거장들의 회화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디지털로 표현된 작품을 직접 느끼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공연계에서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없애는 체험적 요소가 오래된 화두이다. 2011년 3월 초연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꾸준히 상연되고 있는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는 대표적인 이머시브 시어터(Immersive Theater, 관객 몰입형 공연) 작품으로 뉴욕을 찾는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원작으로 한 이 공연은 관객들이 맥키트릭호텔(Mckittrick Hotel) 전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둘러보거나 참여하는 형식이다. 무대와 객석, 배우와 관객의 경계를 무너뜨린 이 작품에서 관객들은 각자의 선택에 따라 각기 다른 공연을 경험하게 된다. 더 이상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주체적 참여자가 되는 이머시브 시어터는 국내외 공연예술의 새로운 흐름으로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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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립 노 모어>
[사진 제공] 맥키트릭호텔 -
<빛의 벙커>
[사진 출처] 컬처스페이스 홈페이지
현실로 나온 가상세계
문화산업 분야에서도 시·청각을 넘어 감각, 감성, 인지, 행동, 관계적 요소를 활용한 체험 마케팅이 대두되고 있다. 2018년 10월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영화를 듣고 보는 것을 넘어 함께 노래를 부르는 싱어롱 상영관 열풍을 일으켰다.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관객은 수차례 반복해서 영화 관람을 하기도 하고 주인공 프레디 머큐리처럼 옷을 입고 노래를 따라부르고 춤을 추는 등, 마치 퀸의 콘서트에 있는 것 같이 스크린을 뚫고 나와 오프라인의 현실 세계로 경험을 확장했다. 한편 오프라인 방탈출 카페는 온라인 게임 화면 속 세트를 실제 현실 공간으로 옮겨 직접 보고 듣고 만지며, 추리하고 단서를 찾아 탈출하도록 구성된 신종 놀이 공간이다. 또한 브랜드 매장에서 직접 체험하고 경험하여 소비자가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다양한 체험 마케팅 방식은 언제나 손쉽게 닿을 수 있었던 정보와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모이고, 만나고, 직접 움직이고 사용해 봄으로써 모든 감각을 통해 느끼기를 원하는 ‘실감세대’의 출현을 알리고 있다.
기술로 변화하는 교육 환경
실감콘텐츠는 문화산업뿐 아니라 교육, 의료, 관광, 영화, 공연, 자동차, 항공 등 전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중 교육 분야에서는 시간과 장소, 비용과 위험 등 물리적 한계를 넘어 ‘경험을 통한 교육’, ‘상호작용이 가능한 교육’을 실행할 수 있는 ‘실감 교육’이 주목을 받고 있다. 문화재를 활용한 실감콘텐츠체험관은 교육 현장에 기술이 유의미한 도구로 활용되는 사례를 보여준다. 2016년 개관한 ‘실감콘텐츠체험관 탐’은 개항기 인천, 제물포에서 밀려난 조선인들이 모여 사는 배다리 ‘우각동’에서 나고 자란 아이 ‘탐’의 마법 모험이라는 스토리를 따라 가상현실, 증강현실, 시뮬레이션 게임, 방탈출 게임 등 다양한 신기술로 제작한 콘텐츠를 활용해 인천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렇듯 다양한 실감콘텐츠는 체험자들이 시공간을 초월한 가상의 세계 속에서 상호반응하며 기존과 다른 생생한 체험으로 교육 현장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실감콘텐츠체험관 탐
[사진 출처] 실감콘텐츠체험관 탐 홈페이지
[사진 출처] 실감콘텐츠체험관 탐 홈페이지
자연스럽게, 존재를 느끼는
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 ICT)의 발전 속도는 해마다 더 빨라지고 있고,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응용 기술도 본격적으로 상용화되고 있다. 실감콘텐츠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적 기반이 더욱 탄탄해지고 있다. 온라인에 익숙한 세대가 ‘실감’에 환호하는 것은 ‘내가 지금 이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상상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재료로서의 ‘기술’과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체험’을 통해 나뿐 아니라 타인의 ‘존재’를 함께 느끼고 존중하는 ‘경험’으로 예술과 교육이 더욱 풍성해지길 기대해 본다.
- 프로젝트 궁리 _ 최엄윤
- omyun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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