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존재를 새롭게 만나게 하는 힘, 놀이

2019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행사 울프트랩 가족 워크숍 ‘땅으로! 바다로! 예술의 즐거움’

올해로 여덟 번째를 맞이한 2019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에는 ‘영유아·어린이 문화예술교육’을 주제로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펼쳐졌다. 그중 미국 공연예술재단 울프트랩(Wolf Trap)이 진행하는 가족 워크숍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5월 21일(화) 워크숍 장소인 일산 EBS 사옥을 찾았다.
아침부터 분주함으로 가득한 스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민트색 삼면 가벽과 회색 매트 위에 큐빅 구조물들, 오늘 워크숍에 사용될 여러 가지 물건들이 놓인 탁자, 그 위를 환하게 밝히고 있는 조명과 사이로 움직이고 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낯선 공간에 설치된 카메라들, 아이들보다 많은 어른이 오가고 있는 중에도 엄마, 아빠, 할머니가 앉아있는 반대편 넓은 공간으로 아이들이 미끄러지듯 놀며, 뛰고, 무릎으로 기어 다니기도 했다. 색깔이 다른 방석들을 가지고서 색깔 맞추기를 하다 흐트러뜨리고, 징검다리 삼아 건너기도 했다.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듯 가끔 엄마, 아빠, 할머니 무릎에 앉아 있다가 골똘히 생각하기도 하고, 품에 안겨서 뭐라고 재잘거리다가 다시 힘을 얻은 아이들은 에너지를 뿜어내며 자신들만의 놀이터로 공간을 확장하고 있었다.
마음을 두드리고 감각을 깨우는 리듬
아직 도착하지 않은 참여자가 있어서 10분 후에 시작한다는 스태프의 안내 멘트와 함께 노랫말 없이 리듬으로만 구성된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이들은 리듬에 맞춰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거나 콩콩 뛰어다니는 등 놀이의 형태가 바뀌고 있었다.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참여자들을 여유롭게 살폈던 울프트랩 전문가 중 한 명이 원준이(6세)네 가족에게 “하이(Hi)”하고 인사를 건네며 작은 젬베를 두드렸다. 다리가 불편하여 또래 친구들의 놀이를 지켜보던 원준이는 젬베를 두드리면서 얼굴이 환해져 갔다. 원준이 부모님의 긴장도 함께 풀리는 듯했다. 참여자들을 찾아가는 젬베 소리는 원준이네 가족처럼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어른들에게는 아이들보다 부담스럽게 느꼈던 공간에 대한 마음을 훨씬 더 편안하게 내려놓는 듯했다.
가족 참여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 방석을 깔고 둥글게 앉아있었다. 움직이는 활동이다 보니 앞으로 진행될 활동에 대한 안내와 함께 가벽과 구조물에 대한 안전교육이 이루어졌다. 나는 ‘울프트랩’이라는 이름이 가진 재미난 상상력 때문에 가족 참여자들과 함께 만들어갈 프로그램이 무엇일지 매우 궁금했다. 또한 그들과 만나는 아이들의 모습, 특히 표정이 무척 보고 싶었다. 먼저 울프트랩 강사 텔렌 테리 토드가 손발과 의성어를 사용해서 리듬을 만들면 참여자들은 그 리듬을 함께 따라 했다. 다음은 박스 안에 있는 물건을 흔들어 무엇인지를 맞추게 했다. 그것은 웃고 있는 ‘미스터 드럼(Mr. Drum)’이었다. “미스터 드럼 세이(Mr. Drum say~)”로 시작하는 노래에 맞춰 드럼을 한 번 치면 하던 동작을 멈추고, 두 번 치면 ‘헬로우’ 혹은 ‘안녕’이라고 말하고, 세 번 치면 발가락을 만지게 했다. 또 방석을 자신이 원하는 곳에 놓고 까치발로 방석 쪽으로 다가가기도 하고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뛰어 건너기도 하고 심지어 머리에 올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참여자들이 따라 하기 어색해하여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하고, 가족 외의 참여자들과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지만, 리듬이 반복되고 노래를 부르면서 무뎌진 몸의 감각이 자극되면서 앞으로 펼쳐질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초원을 지나 바다 건너 무지개 아래로
아쿠아 코야테-테이트 울프트랩 부대표가 참여자들에게 사바나 초원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크리스티나 파렐 울프트랩 강사는 이어서 어떤 상자 하나를 보여주었고 상자가 토끼집으로 변형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그림으로 그려진 토끼가 애벌레, 개구리, 표범, 코뿔소 등 다양한 동물들을 만나면서 앞서 함께 만든 리듬을 변형하고 소리도 더하여 반복하며 사바나 동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들은 이야기 속으로 점점 빠져들었고 그들만의 동물들이 되어 초원으로 모험을 떠나거나 또 다른 상상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야기가 끝났는데도 한 남자아이는 온몸으로 표범이 되어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후, 참여자들에게 바다가 그려진 그림을 보여주었다. 화려한 색깔의 열대어들이 그려져 있는 바다 천이 바닥에 깔리자 참여자들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천 주변에 모여들었다. 까치발로 바닷가 주변을 거닐다가 좋아하는 색깔의 물고기를 만져보기도 하고,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바닷물을 뿌리며 놀기도 했다. 아이들과 어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과 모양 그리고 종류가 다른 물고기를 선택하여 밟았고, 한 명씩 바다를 건너는 활동을 하는 등 자발적으로 상상한 창조의 세계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아주 진지하게 경험을 하고 있었다.
원준이 역시 바다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엄마, 아빠의 도움을 받아서 천천히 걸어갔다. 다른 참여자들 역시 진지하게 원준이네를 응원하며, 진짜 바다를 헤엄치고 나온 것처럼 청량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합류했던 아이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지기 시작하면서 공간을 자유롭게 움직였다.
다음 활동은 에그쉐이커를 무릎, 발가락, 배, 어깨 위에 놓고 달걀이 깨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규칙적인 박자를 만들고, 이 박자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이어서 카니발도 열었는데 색색깔의 띠를 사용하여 파티에서 출 군무의 시퀀스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경험했다. 알록달록한 색 띠를 머리 위로 올리기도 하고, 높낮이를 달리해서 움직이기도 하고, 띠를 몸통 주변으로 돌리기도 하고, 가운데로 모여서 흔들기도 하면서 한동안 춤을 계속 이어갔다. 춤 췄던 색 띠를 강사의 몸에 걸치면서 숲속의 큰 나무로 변신시키기도 했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되어 사진을 찍기도 했다.
“가족과 무엇을 나누었나요?(What do you share with family?)”라는 노래와 율동을 하며 마무리 활동으로 들어갔다. 신비로운 분위기의 음악이 들리고 강사의 작은 가방에서 하얀 구름, 키 큰 나무, 풀, 해님 등의 단어들이 나오니 광활한 자연 속에 서 있는 듯 했다. 스태프들이 무지개 천을 들고 참여자들 반대편에 서 있었다. 모든 참여자는 울프트랩 강사들이 제시한 여러 가지 방법(달려서, 한 발로 뛰면서, 두 발로 뛰면서)으로 저편의 커다란 무지개 아래를 지나갔다.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법대로 무지개 아래로 지나가길 원했다. 모든 참여자가 무지개 아래를 지나간 이후 평화로운 음악이 들리며, 마치 양초가 녹듯이 바닥에 누워 몸을 쉬게 했다.
놀이에 초대된 가족, 되살아난 감각
“우리 손자, 손녀가 집에서 하는 거랑은 달랐어요. 요즘 놀이를 집에서 안 하잖아요. 내가 젊은 사람이 아니다 보니 손자, 손녀와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이제는 조금씩 같이 놀 수 있을 것 같아요.”
– 나윤이 할머니
“원준이는 다리가 불편하니까 바깥 놀이가 제한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오늘 편견 없는 시선으로 선생님께서 원준이에게 인사해주시고 편안하고 자유롭게 하라는 말씀이 아주 고마웠어요. 저 역시 원준이가 할 수 있는 영역을 더 넓혀주고 할 수 없는 영역에서도 조금씩 함께 도전해봐야겠어요.”
– 원준이 어머니
이 프로그램은 울프트랩 전문가의 진행 하에 아이들의 연령에 맞는 신체, 지적 발달을 고려하여 도입단계에서부터 변주가 가능한 리듬과 연극적 규칙으로 설계되었다. 3명의 전문가가 유기적인 진행함으로써 가족 참여자들이 놀이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을 순간순간 쌓았다. 각각의 공간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다양한 목소리 변형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긴장감보다는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음악으로 참여자들의 집중과 호응을 유지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사바나 초원과 바다, 그 사이의 수많은 공간을 누비는 경험을 했지만, 참여자들이 따라 하는 것을 넘어서 상상의 세계로 확장하지 못한 부분이 매우 아쉽게 느껴졌다. 또한 함께 노래와 춤을 나누며 익힌 언어, 단어나 다양한 물고기의 종류와 색깔, 그리고 짧은 이야기들이 의사소통과 수리적 이해능력 등 학습 성취를 향상시키기 위한 도구로 제공되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오늘 활동은 하늘색이에요. 서로 푸르고 맑으니까요.”
– 나윤이(7세)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무지개 아래를 지나갈 때 막 달려가고 있었어요.”
– 원준이(6세)
외부적 환경이 어떠하든 상상의 세계를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아이들의 놀이성과 어른들의 어린 시절을 끄집어낸 기억들은 나이, 역할과는 상관없이 깊은 원천에서 흘러나와 두 존재 사이의 접점을 넓히면서 새롭게 만나게 하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발견하게 되었다. 오늘의 경험을 통해 어른들이 놀이성을 잃어버렸다는 걸 무심코 들키거나, 놀이를 위장하여 학습하기를 원하는 부모의 마음을 드러내어 어린이들의 의심을 사지 않기를, 가족의 일상에서 ‘소통’으로 이어지는 프로그램이 되었기를 기대해본다.
김지옥
김지옥
극단 북새통 예술교육팀장.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놀이하며 연극을 한다. 특히 연극놀이를 통해서 사람들 자신의 고유한 시선과 감성 언어를 탐험하고 발견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요즘 관심 있는 것은 다채로운 숲의 모습과 그 안의 생명에 대한 의미를 연극과 연극놀이를 통해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다.
j16m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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