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예술-공간의 미래 앞에서 다시, 인간을 생각하다

과학기술과 예술 그리고 창조적 문화예술교육공간을 위한 <오픈토크> 리뷰 ① 기조연설+세션1

시대가 급변하고 있다. ‘급변’이라는 단어가 부족할 정도로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상상하고 예측하고 대비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미래는 성큼 우리 눈앞에 다가왔다. 과학기술은 미래의 도래를 놀라운 속도로 앞당기고 있다. 개인의 일상과 사회 시스템 전반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미처 준비할 새도 없이 다가온 미래 앞에서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동시에 뼈아픈 과제를 떠안는다.
지난 11월 15일, ‘과학기술과 예술, 그리고 창조적 문화예술교육공간을 위한 <오픈토크>(이하 ‘오픈토크’)’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교육동 아트팹랩에서 진행됐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으로 주최한 본 행사에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예술과 기술, 문화예술교육의 가능성과 미래의 문화예술공간에 대해 짚어보고,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모색했다. 그중에서도 공간, 즉 현장에서 직면하는 변화에 대한 요구에 집중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미 시작된 미래, 문화예술현장은 무엇을 발견하고 시도할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갈 과제는 무엇인가.
포노 사피엔스 시대의 문화예술교육
<오픈토크>가 진행된 아트팹랩은 3D 프린터, 레이저 커터, 밀링 머신 등과 같은 디지털 제작기기를 갖추고 있는 융복합 창의공간이다. 과학자와 예술가가 소통할 수 있는 공간, 창의적 사고를 위한 공간, 열린 교육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오픈토크>의 취지와 맞닿는다.
기조연설을 맡은 성균관대학교 최재붕 교수의 강연은 한마디로 다이내믹했다. 그는 수려한 언변으로 좌중을 휘어잡았고, 센스 있는 위트로 지루할 틈 없이 몰입하게 만들었다. 강연은 “새로운 미래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4차 산업혁명, 시작된 미래 사람이 답이다”를 주제로 진행됐다. 최재붕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의 시대라 진단했다. 시장(market)에서부터 기존의 시스템을 빠르게 무너뜨리고 있는 스마트폰. 인류는 스마트폰을 선택하는 그 시점부터, 스마트폰을 들고 생각하며 소비하는 ‘포노 사피엔스’로 진화했다. 이제 변혁의 흐름은 막을 수도 역행할 수도 없다. 적응할 수 없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기존의 질서는 점점 더 빠르게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참여자들의 얼굴에 때론 놀라움이, 때론 걱정스러움이 스쳤다. 의구심이 엿보이기도 했다. 특히 연령대에 따라 체감하는 바가 조금씩 달랐다. 최재붕 교수는 혁명의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팬덤(fandom)을 형성하는 “미묘한 차이”에 있다고 분석했다. 이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사람들의 감성을 움직일 수 있는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가, 고민하고 찾아야 한다. 디지털 신인류, 포노 사피엔스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출구는 결국 ‘사람’이었다. 감성과 창의력, 공감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예술교육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최재붕 교수는 시대를 학습하고 함께 호흡하는 크리에이터가 더 많아지기를 기대하며 강연을 마쳤다.
톰 도스트는 영국 상상력 연구소의 ‘경험과 학습 디렉터’이다. 그는 상상력 연구소에서 예술과 교육, 과학, 디지털 기술에 관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워크숍을 진행해 왔으며, 그 활동을 중심으로 “미래사회를 바라보는 문화예술교육의 시선”에 대해 강연했다. 그가 기획하고 참여했던 다양한 활동들은 먼 나라 영국의 사례였지만, 우리 예술교육 현장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흥미로웠다. 상상력 연구소는 예술과 문화, 과학 기술의 접점을 상상력과 아이디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은 상상력을 키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상상력 연구소는 다양한 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상상력 교육의 장을 넓히고 있었다. 기술력을 갖춘 스타트업 그룹과 협업해 재미있는 도구들을 개발했고, 테이트모던과 새로운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실험했다. 또한 창의적인 창작, 체험, 교육 공간인 ‘상상력 랩(imagination lab)’을 열어 예술, 과학, 디지털 기술에 대한 다양한 행사와 워크숍을 기획했다. 상상력 랩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워크숍에는 부모와 아이가 똑같이 참여한다. 함께 경험해야 더 오래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사람 사이의 교감 또한 중시한다. 때문에 자원봉사자나 퍼실리테이터가 항시 참여해 교육을 지원하고 아이들의 생각을 자극하도록 돕는다. 톰 도스트는 상상력 교육을 위한 기관과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야기는 청중들에게 의미 있는 과제를 던졌다. 아이들이 시대의 변화를 직접 실험하고 체감하며 재창조할 수 있는 교육이 무엇인지, 또한 그러한 교육 공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깊이 고민하고 상상하게 만들었다.
  • 최재붕 교수
  • 톰 도스트
예술과 기술이 만나는 공간 실험
예술 공간은 어떤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예술과 기술이 상생하고 확장하는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세션1 ‘예술+기술+공간’의 발제를 맡은 백남준아트센터의 이채영 학예팀장은 미술관의 미래를 ‘공유’에서 찾았다. “과학기술과 예술의 상생과 공유 공공미술관의 실험과 실천은 가능한가?”를 주제로 그녀는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진행 중인 ‘예술 공유지, 백남준’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여전히 예술이 일부 상류층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시대,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를 “누가 독점할 수 없고, 모두가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의 공동재산”이라 정의했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전시와 심포지엄, 메타 뮤지엄 프로젝트를 통해 백남준이 남긴 예술 공유의 정신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지난 10년간의 관람객 수, 예산, 인력 추이 등의 데이터를 아카이빙하고 그 결과를 웹사이트와 관내에 모두 공개하는 것으로, 공유지로서의 첫걸음을 시작했다. 개관 10주년 기념 전시의 주제도 ‘공유지’로 선정했다. 안규철, 옥인 콜렉티브, 박이소 등, 지난 10년간 백남준아트센터와 함께했던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예술과 공유, 미술관과 공유지, 예술적 발화와 공공의 관계를 진지하게 탐구했다. <미래미술관 : 공공에서 공유로>를 주제로 국제 학술심포지엄도 병행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메타 뮤지엄 프로젝트였다. 메타 뮤지엄 프로젝트는 교육과 시민참여 프로그램이 결합된 형태로 진행 중인데, 공공미술관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공론화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실험이다. 먼저, 아트센터 야외 공간에 놓일 구조물을 시민들과 함께 만들고 이 공간을 시민들이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공모를 통해 시민들의 작은 동아리 활동도 지원했다. 백남준아트센터의 미술관 공유 실험은 미술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요구가 더 이상 ‘수용’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사람들은 더 적극적으로 미술관을 활용하고 싶어 하고, 참여하고 싶어 한다. 미술관 공유 실험 끝에, 백남준아트센터가 어떻게 거듭나게 될지, 미래 미술관으로서 어떠한 해답을 찾게 될지 궁금해졌다.
현대차 아트랩의 이대형 팀장은 “과학기술과 예술의 만남을 통한 문화예술공간의 변화와 움직임”에 대해 발표했다. 아트디렉터이자 평론가이기도 한 그는 현대차 아트랩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래의 플랫폼에 대해 역설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인간에게 위협이 될 수도,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미래는 여전히 혼돈 속에 있는데, 혹자는 이미 시작되었다고도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아니라 관점이다. 미래에 대해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떠한 관점을 갖고 변화를 추구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이대형 팀장은 예술이 미래에 대한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술은 시대의 눈이자, 인간의 상상력과 가능성을 대변한다. 오늘의 기술은 내일의 일상이 되지만, 오늘의 예술은 내일의 지표가 될 수 있다. 예술은 이미 전시장을 벗어나고 있고, 누군가의 콜렉션이 되기를 거부하고 있다. 비물질화되고 공유되고 있다. 현대차 아트랩의 미래 플랫폼에 대한 실험도 이러한 인식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었다.
이대형 팀장은 현대 자동차에서 개발 중인 수소차 넥소(NEXO) 콘셉트 영상과 미국의 산업 디자이너 패트리샤 무어(Patricia Moore)의 이야기를 나란히 소개했다. 넥소는 더러운 공기를 흡수한 후, 깨끗한 공기로 바꿔 배출한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차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는 동시에 차의 사회적 기능까지도 확장한다. 패트리샤 무어는 26살의 나이에 80세 노인으로 분장해, 3년 동안 노인의 삶을 경험했다. 그녀는 이를 토대로 성별, 연령, 신체적 능력에 상관없이 평등하게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추구했다. 넥소와 무어, 얼핏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두 사례 모두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다. 이대형 팀장이 추구하는 미래 플랫폼은 기술이나 혁신이 아니라, 따뜻한 인간애를 기반으로 한다. 느끼고 교감하고 공유하는 인간, 이러한 인간을 닮은 예술을 또한 느끼고 교감하고 공유하는 공간. 미래 플랫폼의 열쇠는 인간에게 있었다.
  • 이채영 학예팀장
  • 이대형 팀장
관계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공간
세션1의 마지막 순서로 예술과 기술의 상생을 실험하는 현장의 생생한 경험을 들을 수 있는 라운드 토크가 준비됐다. ‘문화기반시설에서의 예술과 기술 그리고 공간’을 주제로 진행된 라운드 토크는 개인적으로 가장 기다렸던 시간이었다. 지역사회, 산업 커뮤니티, 예술가의 창작공간에서 예술과 기술의 상생은 얼마나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을까.
유쾌한 아이디어 성수동 공장(이하 ‘성수동 공장’)은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전시, 교육, 공공미술 프로젝트 등의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실천하고 있는 멀티 플랫폼이다.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예술 콘텐츠를 성수동이라는 지역, 즉 보통 사람들의 삶터에서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동네에서 미디어 파사드 작품도 상영하고, 지역 내 청소년을 대상으로 메이커 교육프로그램 도 운영했다. 지역잡지 [성수애서]를 만들고, ‘스트릿성수’ ‘청춘성수’ ‘골목에서 만나요’ 등의 이름으로 동네 축제도 기획했다. 주민들과 동네의 문제를 함께 공유하고 해결해보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성수동 공장의 신윤선 대표는 예술과 기술이 만나는 현장에 ‘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사람과 예술과 기술의 유쾌한 공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끝내 공동체의 근간인 동네를 떠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운상가에는 우리나라 기술 발전의 역사가 고스란히 집적되어 있다. 60년대부터 지금까지, 제조, 전자, 컴퓨터를 아우르며 기술 유통과 학습의 플랫폼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하지만 점점 노후화되어 가는 건물환경 탓에 철거와 존치 사이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시세운 프로젝트는 세운상가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세운협업지원센터의 박주용 박사는 세운상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작동하는 거대한 산업 커뮤니티의 거점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세운상가의 업체들은 철저하게 동료를 평가하고, 신뢰 관계를 구축하며, 공동의 문제의식과 목표의식을 공유한다. 세운상가의 가장 큰 자산은 바로 이 커뮤니티의 힘에 있다. 다시세운 프로젝트에서는 세운상가 산업지도인 세운산도(世運産圖)를 제작하고 세운상가의 기술 장인, 세운 마이스터를 발굴해 플랫폼의 기반을 다졌다. 상가 내 스타트업 메이커 스페이스를 지원하는 한편, 협업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세운 마이스터와의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있다. 존치와 철거 사이에서 갈등했던 세운상가가 새로운 메이커 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나는 과정을 보고 있자니, 협력이 곧 생존이며 관계가 혁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운상가의 미래는 예술도 기술도 아닌, 사람 사이의 관계가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미디어아티스트 황주선 작가는 “스마트 작업장, 스마트하게 작업하기”를 주제로 창작공간의 의미를 면밀히 분석하고 평가했다. 개인 작업실을 운영하는 동시에, 아트팹랩과 같은 메이커 스페이스 또한 자주 이용하는 작가의 소견이라 무척 구체적이고 흥미로웠다. 그는 철저히 창작자 입장에서 작업장의 조건부터 정리해 나갔다. 주변 환경, 편의성, 기능성, 개방성 등의 항목을 기준으로 개인 작업장과 메이커 스페이스들의 장단점을 따졌고 점수 매겼다. 황주선 작가는 아트팹랩에 무척 후한 점수를 주며, 그곳이 창작자, 교육 참여자, 관람객 모두에게 친화적인 공간이라 분석했다. 관람은 작품과의 미학적 거리를 유지한 채 이루어지는 행위이지만, 아트팹랩에서 행해지는 교육, 체험, 창작의 과정은 보다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는 행위이다. 이를 모두 수용하는 미술관은 예술과 기술이 만나는 공간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다. 황주선 작가는 이러한 상징들이 더 많아지고, 적극적으로 이용되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메이커 스페이스의 운영 방식이나 구조가 좀 더 유연해져야 한다. 공간을 중심으로 사용자들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도 좋다. 예술가에게 창작 공간은 더없이 중요하다. 공간이 창작을 유도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제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황주선 작가의 작업장 이야기는 공간이 가진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미래의 창작과정과 창작공간에 대한 즐거운 상상 또한 불러일으켰다.
  • 신윤선 대표
  • 박주용 박사
  • 황주선 작가
<오픈토크>에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는 다양한 주체들의 흥미로운 실험들이 소개되었다. 교육자, 예술가, 큐레이터, 공공미술관, 지역사회, 산업커뮤니티까지. 미래에 대한 전망은 다를지언정, 강조하는 바는 결국 ‘사람’과 ‘관계’였다. 과학기술이 기존의 패러다임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면, 예술은 그 변화 속에서 무엇을 붙잡고 어떠한 가치를 다음 세대에 남길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하는 문화예술교육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공간은 관계 속에서 숨 쉬어야 하며, 유연하게 변화해야 한다. <오픈토크>는 인간성에 대한 고민이 미래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임을 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럼에도, 미래는 여전히 열린 결말이다. 또 다른 주제를 발견하기 위한 노력이 앞으로도 꾸준히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사진 _ 이재범(POV스튜디오)
박유미
박유미
설치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매체에 관심이 많은 미술작가. 2013년 개인전 《what a wonderful world》 외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으며 2014년 아르코 퍼블릭아트 프로젝트 ‘마로니에 다방’을 기획했다. 어린이 예술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여전히 예술로 말하고 예술을 가르치는 작가 겸 강사로 목하 활동 중이다.
gomako19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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