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10월 23일, 쓰레기 소각장이었던 공간이 새롭게 변모한 경기도 ‘부천아트벙커 B39’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개최한 ‘2018 문화예술교육 공간 포럼 – 자발적 삶을 이끄는 네모의 변화’에 기조연설자로 영국 어셈블(Assemble)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인 프란 에쥘리(Fran Edgerley)가 대표로 참석했다. 어셈블의 인터뷰를 요청받고 살짝 흥분까지 되었던 건 2015년 세계적인 영국 터너상(Turner prize) 수상 이후 각종 매체를 통해 우리나라에 소개된 어셈블의 활동은 거의 신화처럼 다뤄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셈블은 영국 리버풀에서 진행한 ‘그랜비 포 스트리트(Granby four streets)’ 프로젝트로 터너상을 받은 이후 일약 스타가 되었고,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약 20명의 멤버들이 수평적 협업 형태를 유지하는 건축가 그룹인 어셈블의 다양한 작업이 소개되었다. 버려진 주유소를 활용하여 일정 기간 동안 주민이 즐길 수 있도록 한 영화관 ‘시네롤리엄(Cineroleum)’ 프로젝트,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낙후된 런던 동부의 인적이 드문 고속도로 다리 밑에 세운 주민을 위한 소규모 복합문화공간 ‘폴리 포 프라이오버(Folly for a flyover)’ 프로젝트, 문 닫은 설탕공장을 개조하여 만든 워크숍 공간인 ‘슈가하우스(Sugarhouse)’와 ‘야드하우스(Yardhouse)’, 폐업한 공중목욕탕을 개조한 ‘골드스미스 현대미술센터(Goldsmiths Contemporary art center)’ 등이 있다.
사진출처 : 어셈블 홈페이지 https://assemblestudio.co.uk
포럼 기조연설에서 프란 에쥘리는 “어셈블은 ‘좋은 도시(good city)’에 그 기반을 두고 작업한다. 좋은 도시란 사람들이 그들의 환경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고 그 환경을 만들어가고 운영하는 곳”이라고 했다. 즉, 어셈블이 만든 공간은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과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를 있게 한 그 무언가(원문에서는 forces)와의 관계를 더 심화시킬 수 있도록 시도한다 했다. 또한, ‘교육은 문화적 변속기’이라 칭하면서 현재 사회에서 인간은, 일상생활에서 자기주도형 교육을 통해 개인의 자유와 존재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고 하였고, 이에 직접 무언가 만들고, 다른 사람들과 바로 부딪히며 새로운 문제를 헤쳐 가는 일련의 행위들이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고 보고 있었다. 즉, 사람들은 호모 파베르(Homer Faber)가 되어야 세상과 더 깊은,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이로써 ’예술‘은 앞서 언급한 형성된 문화의 결실물인 것이다. 이 개념을 가지고 어셈블이 추구하는 공간은, 1) 모두에게 열린 공간, 2) 자기주도형 교육이 추구되는 공간, 3) 자체적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라 하였다.
프란의 기조연설을 통해 어셈블이 만들거나 만들고 있는 공간들이 어렴풋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포럼이 진행되는 내내, 어셈블의 이런 분명한 철학이 그들로 하여금 어떻게 지역민들의 삶에 영향을 주어 변화를 불러냈는지에 대해 집중하기로 하였다. 어셈블 멤버들의 내부적 협업, 어셈블과 지역민들과의 협업, 특히 현재도 계속 성장하고 있는 과정에 있는 어셈블 스튜디오(Assemble Studio)의 외부적 활동 등이 그들이 생산해내는 공간과 어떻게 함께 작동하는지를 이번 기회에 알 수 있다면, 그들이 보여준 행보가 지역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2015년 터너상의 심사평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으리라 보았다.
포럼이 끝난 늦은 오후, ‘부천아트벙커 B39’의 2층 회의실에서 프란 에쥘리와 마주하였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한 후 바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개인보다 그룹으로 더 유명한 어셈블의 멤버 구성과 그 시작을 소개해 달라.
2010년에 케임브리지대학을 함께 졸업한 마음이 맞는 13명의 건축과 친구들과 타과 친구 3명이 모였다. 저녁 시간과 주말, 휴가 기간에 모여 우리의 관심사와 맞는 재밌는 일을 직접 해보기로 했다. 그 첫 번째 작업이 버려진 주유소를 가지고 진행한 ‘시네롤리엄’이었다. 우리는 약간의 후원금과 저렴한 기부 자재들을 가지고, 각자의 시간을 내서 무보수로 직접 일일이 만들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했고 그 일을 통해 다음 프로젝트부터는 사회적기업(CLC) 형태의 회사로 출범하였다. 이후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여러 형태의 회사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랜비 포 스트리츠’(이하 ‘그랜비’) 프로젝트를 계기로 터너상을 수상했다. 어떻게 런던에서 자리 잡고 있던 어셈블이 멀리 영국 북부 리버풀에 있는, 재개발계획으로 조각난 작은 마을과 연결되었나?
‘감당할 수 있는 주거(affordable housing)’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았던 한 독지가가 소개하였다. 그랜비는 이미 20여 년간 방치되어 점점 더 낙후되어 가고 있었고 원주민이 많이 떠난 상태였다. 이미 사라진 광장과 공원, 마을의 중심지인 하이 스트리트(high street)를 대신하고자 주민들은 2010년부터 지역의 정원을 가꾸기 시작하고, 거리를 청소하고, 주말 벼룩시장을 열고, 황폐해진 빈집 벽에 그림을 그리며 다시 활력을 넣고자 시도하였다. 2011년에는 영국 전역의 움직임에 발맞추어 주민토지신탁(Community Land Trust)을 설립하여 적극적으로 지역을 재생시키고자 하였다. 2013년 독지가를 통해 우리에게 의뢰가 들어와서 함께 하기 시작했다. 마을을 살리기 위한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 움직임이 독지가를 움직였고, 그의 후원금으로 그랜비 사거리 개발계획 인허가를 위한 서류를 준비하게 되면서 그랜비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지역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지역주민 등 지역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과정이 굉장히 인상 깊다. 참여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냈는지 방식이 궁금한데, 자본이 없던 그랜비 주민들과 어떻게 일을 진행하였는가?
그랜비 지역은 이미 많은 빈집이 있었고 쓰임이 없어져 상당수가 파손되어 있었는데 당장에 이를 수리할 수 있는 자본도 없었다. 마을 주민이 직접 제공할 수 있는 노동력만 존재하는 상태였다. 우리는 최소한의 자본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했기에 주민들과 함께 현장에서 폐자재를 조심스럽게 발굴해서 재활용하기로 했다. 너무 파손이 심한 집은 다시 집으로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실내정원인 ‘윈터가든(Winter Garden)’으로 제안하여 사라진 하이 스트리트와 함께 잃어버린 커뮤니티 공간의 역할을 새롭게 수행할 수 있는 ‘장소 만들기’로 먼저 접근하였다. 사람들이 떠나 버려지고 있던 마을에 활기를 넣기 위해 주민들이 기존에 이미 진행해 오던 프로그램과 더불어 주민들이 물리적으로 모여 함께 뭔가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윈터가든에서 주민토지신탁 관련 회의도 진행하고 지역 예술가들이 모여 주민과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다시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이기 시작했다.
윈터가든(Winter Garden)
사진출처 : 어셈블 홈페이지 https://assemblestudio.co.uk
사진출처 : 어셈블 홈페이지 https://assemblestudio.co.uk
지역주민들과 진행한 교육 프로그램 진행 과정에서, 초기 단계부터 예술가들을 개입시키면서 공간에 대한 설계에서 나아가 지역사회의 문화 전략에 대한 논의까지 이끌어낸 구조로 진행했다고 알고 있다. 이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을 부탁드린다.
스스로 뭔가를 일어나게 하는 역할을 윈터가든이라고 명명한 실내정원이 수행한 것이다. 인위적(재개발계획)으로 없어진 커뮤니티 시설들이 다시 인위적(어셈블)인 ‘장소 만들기’를 통해 부활하게 된 것이다. 지역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모여 그랜비 지역에서 나온 폐자원들을 업사이클하여 사용 가능하도록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다. 부서진 돌과 벽돌은 벽난로나 테라코타 조명 등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흙으로는 타일과 그릇, 컵 등을 만들었다. 우리는 그 디자인들을 수용하여 집을 수리할 때 활용했다. 그렇게 수리된 집을 주민토지신탁의 자산이 되었고 공간 임대를 통해 들어온 수입으로 다음 집을 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순환구조를 통해 5년에 걸쳐 총 10개의 집을 수리해 완성했다. 이런 변화의 과정 속에서 터너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리버풀의 작은 마을은 세상에 당당히 서게 되었다. 이는 동네 주민들로 하여금 자부심을 심어주게 되었고 자신들의 존재가치에 의미를 두게 되었다.
그랜비 프로젝트를 조사하다 보면 회사 ‘그랜비 워크숍(Granby workshop)’이 따라온다. 이 그랜비 워크숍은 특히 지역주민들이 직접 제품 양산에 참여하는 과정으로 구조가 되어있는데, 이에 대해서 이야기해달라.
그랜비 스트리트에 위치한 유한회사 그랜비 워크숍은 어셈블이 운영하는 여러 회사 중 하나이다. 그랜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주민에게는 커뮤니티 공간이, 우리에게는 지역을 재생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는 메이킹 장소, 워크숍이 필요했다. 주민들이 수집하고 제공한 폐자원으로 지역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제품을 실제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기 위해 마을에 유한회사를 설립했다. 그랜비 워크숍에서는 주민들을 채용하여 집수리에 필요한 물건들을 간단한 형태로 만들어 생산하고 쇼룸을 운영하여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판매도 했다. 현재는 그랜비 워크숍에서 2018 런던 디자인페스티벌, 2018 베니스건축비엔날레 전시, 골드스미스 아트센터 공사 등 어셈블의 다른 프로젝트에 필요한 주문도 함께하고 있고, 자체 제작한 타일은 런던 지하철 공사 등 다른 지역에 유통시키고 있다. 어셈블 멤버 중 한명인 루이스는 이 회사를 위해 이주한 상태이다.
주민들은 어셈블이 세운 유한회사 그랜비 워크숍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
주민들은 제조회사 자체가 지역에 들어온 것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 회사의 성장이 곧 지역의 성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거기서 생산하고 있는 재료의 대다수도 지역 디자이너가 참여하여 만든 만큼 그들을 하나로 엮는 중요한 구심점 역할을 한다. 또한 주문이 밀려 일손이 필요하면 원하는 지역 주민에 한해서 정당한 임금을 주고 지원을 받기도 한다.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웃음) 끝으로 단순한 공간 리모델링을 넘어, ‘공간을 베이스로 한 지역 재생’에 대한 의미를 한 번 더 짚어달라.
그랜비 스트리트에서 그랜비 워크숍이 위치해 있는 건물은 원래는 문 닫은, 약간의 생필품과 신문을 팔던 작은 가게가 있던 곳이다. 우리는 일부러 간판도 바꾸지 않은 채 1,2층을 워크숍 공간으로 쓰고 3층은 주민토지신탁의 사무실로 내주었다. 최근에 그랜비 마을 4개의 코너 중 한곳은 철거했고, 남은 건물 중 하나에 1층엔 카페가 있는 주상복합 아파트를 짓기 위해 설계를 마치고 예산 지원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 프로젝트가 완공되면 새로운 담보물이 되어 빠르게 다음 코너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지역 밀착형 작업을 통해 주민들과 자주 만나면서 그들이 필요한 것을 빠르게 수용하여 공간적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주민들이 아무런 수입도 발생할 수 없었던 첫 번째 프로젝트 ‘윈터가든’을 받아들인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주민들은 스스로 그곳에서 다음 프로젝트가 일어날 수 있게 하였다. 이것은 하나의 문화가 되었고 그 결과물로 지역을 다시 재생시키고 있다.
인터뷰를 통해 어셈블이 추구하는 ‘공간’이 교육, 문화, 예술의 순환구조를 자발적으로 발생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셈블은 지역을 밀착 조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공간부터 하나씩 제안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그랜비 워크숍을 통해 성장하는 기회를 잡았다. 어셈블의 작업들에는 일련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멤버들의 메이킹(making, 노동)으로 결과물을 만든다는 것이다. 공동노동의 형태로 공간이 완성되면, 그곳은 그대로 함께 메이킹을 공유하는 곳이 되어 생산이 발생하고, 계속적으로 사용자들에게도 메이킹을 하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시네롤리엄이 그러했고 폴리 포 프라이오버가 그렇다. 슈가하우스나 야드하우스, 그랜비 워크숍은 아예 공동 제작을 추구하는 워크숍이다. 골드스미스 아트센터는 원래 목욕탕이었던 형태를 수용함으로써 앞으로 그 공간을 사용할 아티스트들에게 공간 자체가 열려있는 장소로 인식될 수 있도록 하였다. 호모 파베르(Homo Faber)로서의 어셈블은 그들이 만드는 공간 또한 사용자들로 하여금 메이커로서의 자기인지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프란 에쥘리(Fran Edgerley)
건축가 디자이너 콜렉티브 그룹 어셈블 창립 멤버. 어셈블은 리버풀 그랜비의 주민들과 공동으로 만든 이웃 네트워크 프로젝트 ‘그랜비 포 스트리트’를 통해 2015년 터너상을 수상하며 사회적인 집중과 영향을 인정받게 되었다. 주거, 문화 및 공공영역에 중점을 둔 프로젝트를 창안하며 오픈 엑서스 커뮤니티 워크숍, 그랜비 워크숍 등 여러 조직을 설립하여 활동 중이다.
사진_이재범(pov 스튜디오)
- 이정희
- (주)이가디자인랩 대표. 여러 지역자치단체와 용도를 잃은 공간을 재생하여 생산력을 가진 장소로 만드는 공간기획을 진행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폐산업시설 문화재생 사업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단국대학교에 출강중이다.
jhlee9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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