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4일, 파란 잔디가 인상적인 광명시민운동장은 다음 날 진행되는 ‘2018 광명생활문화축제 with 문화의집’ 준비로 분주했다. 축제의 베이스캠프로 목공소가 차려지고 다양한 구조물과 부스를 만들기 위해 나무 자르는 소리가 한창인 그곳에서 예술감독인 정민룡 광주 북구문화의집 관장과 만났다. 사람과 삶에 대한 끊임없는 관찰과 관심으로 동네, 골목, 일상을 문화의집으로 끌고 들어와 다양한 프로젝트를 펼쳐 온 정민룡 관장과 만난 지도 15년이 되었다. 그간 북구문화의집에서 진행해왔던 수많은 프로젝트 중 여전히 기억에 생생한 것은 2004년에 진행했던 ‘골목길 이야기 프로젝트’이다. 재개발을 앞둔 어느 동네의 이야기를, 골목 속 사람들의 삶을 영상으로, 이미지로, 지도로, 놀이로 담아낸 프로젝트이다. 독거노인들의 삶을 구술한 영상을, 어린이들의 눈으로 본 마을 지도를, 다른 동네 주민들의 시선으로 해석한 동네 이미지를, 가족들과 함께 하는 골목 놀이를 통해 주민의 삶을 기록했다. 동네로, 골목으로 들어가 삶의 내력, 생활의 한 부분을 포착해내어 삶의 문화, 곧 일상이 문화임을 보여주는 그에게 물었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시대에 여가란 무엇이냐고.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 저녁이 있는 삶, 워라밸이 대세인 시대다. 여가와 관련한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어 왔고, 2016년 국민여가활성화기본법 제정 후 올해 6월에는 국민여가활성화기본계획도 발표되었다. 국가가 정책적으로 여가를 지원하는 이 시대의 여가를 어떻게 봐야 하나.
최근에 일과 여가의 적절한 균형, 워라밸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는데, 일단 여가에 대한 개념을 더 고민했으면 좋겠다. 여가 자체가 독립적인 시간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다 보면 일과 여가가 분리돼버린다. 정책에서 말하는 여가는 한정된 시간 개념으로 일과 분리한다. 일하는 시간, 즉 인건비를 받는 노동시간 자체를 분리시켜 그 이외 시간에 직장인들이 여가를 뜻있게 보낼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여가’는 훨씬 다양하고 여러 가지이다. 예를 들어 농사짓는 사람들의 여가는 어떤 것일까? 직장인 말고 다른 직종이나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여가는 퇴근 시간 이후부터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것이다. 하루 자체가 일과 여가가 같이 돌아가는 거다.
생활문화도 문화 전반에 걸쳐있지만, 문화예술 활동 중심으로 좁게 해석된 부분이 있다. 여가도 똑같이 그렇게 해석될 기미가 보인다.
지금의 생활문화는 남는 시간에 예술적 활동을 하는 것으로 얘기된다. 이렇게 얘기하면 사람들이 쉽게 알아들으니까. 남는 시간에 여유롭게 자기 취미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생활문화의 전부이고, 이것이 여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여가를 뜻있게 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니, 국가가 그것을 할 수 있도록 권장하고 독려하는 것이고. 좁은 의미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여가는 자기가 즐기고 끝내버리면 되는 것이라 사회적으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여가도 역으로 생산적인 활동이 될 수도 있다. 대부분 지금 문화예술에서 여가는 문화센터에 가서 교육을 받는 것 딱 그 자체만 생각한다.
남는 시간에 취미활동 하는 것이 여가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래서 ‘사회적 여가’를 제시한 걸로 알고 있다. 굳이 사회적 여가라는 표현을 쓴 이유가 있나.
‘개인의 여가’ 이렇게 하니까 ‘사회적 여가’라고 썼지. 없어 보이니까.(웃음) 사회적 여가는 더 넓은 개념인데, 취미로서의 여가뿐만 아니라 자기의 생활이나 가치관을 구현하는 것도 있다. 북구문화의집에는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산책커즈’라는 모임이 있다.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는 모임이다. 산책을 위한 길잡이 잡지나 동네 산책길 지도를 만들어 산책에 대한 의미, 재미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려고 한다. 사회적 여가는 이런 개념이다. 그 전에 산책은 혼자 즐기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고 알리고 싶고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이고 싶어 하기 때문에 ‘산책커즈’도 만들어진 것이다. 취미로 만났지만, 관계를 넘어 다른 역할까지 모색할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 뜻깊은 일도 도모할 수 있는 것들이 생긴다. 사회적 여가는 획일성으로, 개별로 끝나는 것이 아닌 그룹으로 만나고 다른 공동체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회적 여가는 이런 것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즉 정책적 관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회적 여가는 개인의 여가 자체를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기 위한 환경적 기반인 거다. 거기에 사회적 가치가 있으면 더 좋은 거고. 여행으로 치면, 각자 자기 돈 내고 다니면 되지 않나. 그런데 정책이나 지원사업이 개입한다면, 개인에게 여행을 가라마라 하는 게 아니라 개인의 재미있는 여행 경험을 모아서 어떤 책들을 만든다거나 공정여행처럼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여행을 독려하면서 떠나보라고 할 수 있다는 거다.
‘산책커즈’ 외에 북구문화의집에서 사회적 여가와 관련한 프로그램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여가를 취미생활과 곧바로 연결시켜 생각하지만, 여가는 광범위하고 다양한 활동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북구문화의집에서는 그 다양한 여가 중 북구문화의집 스타일에 맞는 것만을 핀셋으로 집어서 기획하려 한다. 사회적 여가라는 의미도 이런 측면에서 생각하려 한다. 쭉 나열하자면, 시 감상과 낭송의 사회적 여가 ‘걷는 시’, 마을에서 장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한평장터’, 동네의 특별하지만 잘 안 팔리는 가게 ‘문산상회’, 살림살이를 모아놓고 전시함으로써 자기 살림은 아니지만 마치 자기 것인 것처럼 공감했던 《우리집 살림살이전》, 제한된 장소에서 제한된 사람만이 듣는 음악감상 ‘나도 디제이’, 어린이들의 집짓기 여가활동 ‘어린이 목수축제’, 할머니들을 모아놓고 트로트, 댄스, 요가 말고 할 수 있는 취미활동으로 전라도 사투리를 발굴하는 ‘전라도 새참 바구리단’, 1997년부터 지금까지 20년 이상 사자소학과 한학을 강독하는 중장년 어머님들의 학습 여가활동인 ‘화목서당’ 그리고 의미 있는 여가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대관료 안 받고 밤 시간에 곳간(문화의집) 열쇠를 주고 피아노 치며 알아서 놀게 하는 ‘삼대합창단’ ‘가곡동아리’ ‘문산마을 가족합창단’이 있다.
이렇게 보면 문화의집은 여가와 밀접한 곳이라고 볼 수 있다. 북구문화의집은 어떤 곳인지, 어떻게 운영되는지 소개해달라.
북구문화의집 운영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다른 문화시설과 다른 우리만의 운영 패턴을 갖는 것이다. 자기 스타일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스타일을 만든다는 것은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일정한 패턴과 반복을 유지하면서도 변화를 추구하면서 일정 시간 동안 지속가능하도록 하며 노하우를 축적해가는 것이다. 이를 다른 곳과 공유하려는 노력도 하긴 하는데, 잘 되는지는 모르겠다.
9월 15일 열리는 ‘광명생활문화축제 with 문화의집’의 주제가 ‘라이프스타일’이다. 전국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큐레이션 해서 보여주는 방식으로 축제를 만들었는데 어떤 축제인가.
제목이 ‘나의 하루 나의 일상 9 to 5, 5 to 9’이다. 일과 여가를 딱 구분했을 때는 퇴근 이후 시간을 이야기하겠지만, 구분하지 않고 보면 ‘일상’이고 ‘하루’라는 시간이다. 이 구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축제다. 그것을 다 표현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고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를 축제의 한 공간에 넣으려고 했다.
라이프스타일숍 전시 중 ‘미자네 상회’는 미자 씨가 와서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자기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거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대상, 자기의 취미, 일에 관한 것, 30대인 미자 씨의 앞으로의 비전이나 꿈에 관한 내용 등 라이프스타일을 형성하는 것들을 판다. 일부러 ‘미자네 상회’라는 전시형태로 한 이유는 개인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 거다. 미자가 아니라 말자, 순자, 행자들-30대의 청년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반적이거나, 혹은 특수할 수도 있는 일상이 모이게 되면 하나의 패턴을 보여줄 수도 있다. 그게 결국에 라이프스타일인 것이고. 길순네 가게를 가면, 나이 드신 분이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라이프스타일이 있다. 그런 개별적인 라이프스타일이 많이 모이고, 같이 공유되고, 공감이 형성되면 우리가 ‘생활문화는 라이프스타일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만들어지지 않을까. 라이프스타일과 개인의 정체성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어떻게 될랑가 모르것다.(웃음)
보통 ‘생활문화’라는 타이틀을 달고 하는 축제를 보면 공연, 전시, 체험 등으로 정형화된 패턴이 있다. ‘광명생활문화축제 with 문화의집’은 어떤가.
축제는 비일상적인 건데, 공연, 전시, 체험 형태로 일상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나. 생활문화로 접근한다면, 음악감상실 프로그램을 하되 집에서 혼자 음악 감상을 하는 게 아니라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음악을 듣는다는 점이 재미있는 거다. 그렇게 사람들의 행위 중심으로 축제를 구성하려고 노력했다.
관장님이 기획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손으로 하는, 수작업들이 많다. 이번 축제에서도 부스를 포함해 모든 구조물을 목공소에서 직접 만드는데, 그렇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전문성이 없어서 그렇다.(웃음) 축제에 전문화된 사람이 있는데, 여기서 전문화됐다는 건 양식화됐다는 것이다. 축제는 비일상이지만 우리는 일상의 축제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일상을 그렇게 살지 않는다. 최대한 일상과 비슷하게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의자도 나오고 소파가 나오고, 집에 있는 게 광장에 나와서 같이 갖춰져 있을 때 ‘생활문화’와 연결되지 않을까. 또 그런 상황이 비일상적이기도 하다. 집에 있을 때는 너무 일상적이기 때문에 존재감이 없는, 아주 일상적인 것을 끌고 나왔는데 비일상적인 것이 되는 그런 특이함. 운동장 한가운데 세워진 목공소도 일상의 공간에서 볼 수 있지만 여기 있으니까 다른 느낌이 만들어진다. 진짜 일상에서 만나는 걸 다 모아놓고 조망하자는 거다.
일상을 비일상으로 끄집어내서 오히려 일상성을 더 드러내 보이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번 축제에서 문화의집은 어떤 역할을 했나.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북구문화의집은 끊임없이 ‘모두의 집, 공공의 집’을 추구하는 곳이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사적 공간인 내 집이 있다면, 동네에는 내 집과 같이 편안한 문화 여가를 이웃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모두의 집’이 필요하다. 그리고 ‘모두의 집’은 우리의 세 번째 집이 될 수 있다. 진짜 집, 직장, 그리고 삶의 세 번째 집인 문화의집. 진짜 집에서는 각자 사생활을 즐기면 되는데, 세 번째 집에서 자기 행위가 비쳤을 때는 사회성을 갖고, 거기에서 사람들이 의미를 찾게 된다.
그래서 문화의집을 ‘근린 문화시설’이라고 표현하나.
그렇다. ‘근린(近鄰)’은 ‘접근성’의 다른 표현이다. 심리적 접근성, 장소적 접근성, 관계로서 접근성. 근린이라는 말은 ‘가까이에 있다’는 말을 의미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친밀감’을 의미하기도 하고, 격식이 없고 틀이 없는 ‘개방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기능을 고정해놓고 존재하는 시설이 아닌, 상황에 따라, 시기에 따라 기능의 변주가 가능한 곳, 바로 그런 곳으로서 북구문화의집을 비유하여 근린 문화시설이라고 내 맘대로 쓰는 말이다. 문화의집은 문턱이 낮으니까 별다른 의도 없이 올 수 있는 공간이고, 우리는 뭘 하는 곳이라고 기능화하지 않았던 거다.
뭘 해도 좋은 공간, 하지 않아도 좋은 공간이 문화의집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관장님의 여가는 무엇인가?
좋은 사람들과 동네 술집에 가서 술 먹으면서 쓸데없는 이야기하는 것이다.(웃음)
정민룡 _ 광주 북구문화의집 관장
전남 완주에서 태어났다. 농대를 다니며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었었고, 대학원에서 영상 인류학을 공부했다. 1997년 개관한 북구문화의집에 2000년에 입사해 현재까지 문화예술교육과 시민문화활동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근린 문화기획’ 하는 일을 좋아하며, 북구문화의집 공방 프로그램 ‘생각하는 손’, 노작 중심의 예술교육 ‘바퀴달린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어린이놀이도시 in 광주 우락부락’(2015) 총괄기획, 2018 광명생활문화예술축제 예술감독, 어린이목수축제 ‘예술아지트’ 총괄기획 등 다양한 축제와 예술행사를 기획했으며, 지역문화, 생활문화 등을 주제로 다양한 강의와 컨설팅을 하고 있다.
사진_이재범(pov 스튜디오)
사진제공_(사)한국문화의집협회
사진제공_(사)한국문화의집협회
- 우지연 _(사)한국문화의집협회 이사
- 생활 속 문화체험공간 문화의집과 더불어 동네에서, 골목에서 주민들과 함께 살고 함께 노는 것에 몰두하다보니 공간은 세상을 바라보는 통로이자 삶과 예술이 부딪히는 현장이 되었다. 한국문화의집협회에서 일하며 문화적인 삶 그리고 삶의 문화라는 화두를 가지고 문화의집과 세상과의 접점을 만들어가는 요즘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 컨설턴트, 생활문화센터 컨설턴트, 예술인 파견지원사업 전문위원 등도 겸하고 있다.
pianow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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