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0일, 하자센터 ‘청개구리 작업장’을 보고 온 후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 이야기를 한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기 위해 녹취하여 정리하고, 거기에서 아이들의 키워드를 찾아서 다음 수업의 맥락을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에 대해.
벽면에 빼곡히 붙어있던 ‘난관 – 난관 극복 – 난관’에 대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작전 회의’를 하면서 길을 만들어가는 아이들에 대해.
청개구리 작업장 이야기를 하려면, ‘하자센터’(이하 하자)와 분리할 수 없다. 이것은 유형의 공간이 지향하는 것을 무형의 프로그램 안에 넣으면서 그 의도와 가치를 발견해내는, 지극히 ‘하자’ 스타일의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찾은 하자 작업장은 또 다른 공간으로 변신한 느낌이다. 입구에는 전시장이 생겼고, 중앙 로비에는 이야기를 나누는 다양한 모임 공간이 있다. 작업장 안에 설치된 하자를 소개하는 광목 현수막은 그 이야기만큼 따뜻함을 품고 있다. 이 공간은 끊임없는 변신과 변화를 겪고, 그것을 고스란히 공간에 남긴다. 많은 교육공간이 그 틀 안에서 프로그램을 모색한다면, ‘하자’는 변신하는 작업장 같다. 그리고 이것이 여러 세대와 만나 서로 성장하고 지지하는 공동체를 위한 ‘하자 마을’의 색깔로 지난 20여 년을 채워오고 있는 곳 같다. 변화하는 마을, 그 안을 채우는 사람들.

하자 마을에서 초등 아이들과의 만남을 시도한 것은 7년 전이다. 한국암웨이의 지원으로 6년간 추진된 ‘어린이 창의인재 육성사업’을 통해서였다. 이 사업으로 추진된 ‘생각하는 청개구리’ 프로젝트는 개인 차원의 기존 창의교육의 틀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더불어 사는 창의’의 가치를 지향하였다. 그리고 그것의 실천을 위해 다양한 팝업 놀이터(pop-up playground,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잠시 열렸다 사라지는 일시적인 놀이터)를 공공지대에 만들어나갔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아동센터, 초등학교를 근간으로 한 ‘창의 클래스’를 만들었다. 또한 놀이 활동가 ‘놀활’을 통해 놀이터를 꾸리고 펼치는 일, 놀이문화를 키워가는 청년을 양성했다. 2017년 마지막 지원사업이 끝난 후에도 청개구리 작업장을 하자 자체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생각하는 청개구리’를 끌어왔던 ‘하루’와 놀이 활동가였던 ‘하리’가 운영을 맡고 있었다.(하자센터에서는 민주적 관계를 맺는 상호 존중의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서로 이름을 부를 때 직함을 포함하지는 않는 ‘별칭’을 쓰고 있으며, 본 글에서도 ‘별칭’을 쓰고자 한다.)
작전 회의 하는 아이들
아이들은 스케이트 보드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플라스틱 보드에서 바퀴를 분리해내기도 쉽지 않고, 보드 모양으로 나무를 갈고 다듬는 작업도 그렇다. 보드에 바퀴를 달 때도 위치에 따라 균형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세심해야 한다. 하리와 작업을 지원하는 판돌 ‘하하’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목공실에서 다른 작업을 하고 있는 ‘어른이’들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아이들은 집중하고 있다. 하루와 하하는 아이들에게 나무의 결, 굵기, 보드의 크기 등이 적당한지 여러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 방법을 찾도록 도와준다. 처음 보드를 제작하며 한 번의 실패를 겪었던 아이들은 두 번째 보드를 제작하면서는 서로 조언한다. 재밌냐는 질문에 “노동이에요. 힘들어요.” “하지만 해야 하는 거예요.” “이제 요령을 터득해서 조금 쉬워요”라는 대답을 하는 아이들.
2층 모임 동에서는 다음 주 9월 8일 ‘창의 서밋’에서 진행할 <보드 놀이터> 안내 홍보지를 만들고 있다. 하루가 조금 지루해하는 ‘블루베리’를 독려하니 쉽게 한 장을 그려낸다. ‘버드나무’도 꼼꼼히 그림을 그리며 하자 센터 곳곳에 붙일 홍보지를 만든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도 홍보하려 한단다.
아이들이 모두 모인 간식 타임, 슬슬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제제: 어떻게 보드를 만들게 되었어?
바다: ‘토토’가 보드를 잘 타고 좋아해요. 처음에 자전거 공방과 목공방을 돌면서 토토가 여기서 보드를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었는데, 제가 모두에게 제안을 했고 다들 동참했어요.
제제: 벽에 보니까 ‘난관 – 난관 극복 – 난관’ 이라고 있던데, 어떤 게 힘들었어?
토토: 보드를 만들려고 보니 쉽지 않았어요. 바퀴는 가격도 비쌌구요. 그래서 방법을 찾았죠. 플라스틱 보드를 사서 바퀴를 이용하기로. 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았어요. 바퀴를 떼는 것도, 우리가 만든 나무에 다는 것도.
제제: 난관 – 난관 극복을 하던데, 토론이 잘되었어요?
지민: 저희는 토론하지 않았는데요?
제제: 그럼?
지민: 우린 작전 회의를 한 거예요. 토론은 A와 B가 다른 의견일 때 서로를 설득해서 한쪽의 의견으로 모아가는 거죠.
제제: 하자 센터랑 학교랑 뭐가 다르지?
토토: 예전에 누나 따라 이곳에 왔을 때는 앉아만 있어야 해서 재미없었어요. 지금은 내가 해볼 수 있는 게 많아서 재미있어요. 학교는 가만히 앉아서 책 공부만 해야 하잖아요. 여기서는 난관에 봉착하고 해결해가는 과정들이 재미있어요.
그렇다. 초등 고학년 아이들의 그 많은 호기심에 대해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찾게 하는 시간,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 그리고 난관을 겪고, 작전 회의를 거쳐 해결방안을 모색해 가는 흐름과 시간의 과정들을 우리는 얼마나 내주고 있을까? 예술교육이라는 틀에서 다시 짧은 시간에 결과를 내려는 목적으로 아이들에게 최소의 실패와 제작 경험에 집중된 교육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한다.

실패와 극복의 경험에서 배우기
어린이에게 작업이란 무엇인가? 기꺼이 놀이가 될 수 있고, 몰입의 시간이 될 수 있는 또 하나의 새로운 도전으로 비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을 위해 청개구리 작업장은 다음의 방향을 갖게 된다.
첫 번째, 하자 공간을 탐색하면서 어린이의 눈으로 새롭게 재해석하기
두 번째, 하자센터 환경에서 어린이의 놀이와 관찰이 작업과 활동으로 이어지는 경험 쌓기
세 번째, 장소에 대한 추억과 애정을 가지고 이후에도 스스로 그곳에 기여하는 구성원이 되어보기
이것은 2017년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등대 같은 역할이었고, 계속 확인과 수정의 반복이었고, 2018년은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초기에 기획하면서는 2017년에 만들었던 아지트 공간을 새롭게 꾸밀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3월 한 달 아이들과 하자 공간을 탐색하는데, 아지트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더라구요.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계속 “자유 시간을 주세요”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아이들은 그 시간에 보드를 만들고 싶었던 거죠. 이 친구들은 작년의 그 아이들이 아니었고, 이 동네에 살지 않는 친구들이 많아요. 하자를 일상 공간으로 향유하는 동네 어린이들이 아니다 보니, 아지트보다는 작업장에서 만나는 아주 구체적인 작업물에 더 자극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초기 생각과 달리 보드 만들기를 하게 된 거죠.”
– 하루(하자센터 청개구리작업장 판돌)
청개구리 작업장의 프로그램 운영방식은 ‘레지오 에밀리아 교육법’의 연장에서 마련했다고 한다. ‘어린이는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자 시민’이라는 교육철학 아래, 관계에 기초한 교육, 의사소통,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철학적 이념을 중시하며, 협동학습과 과정의 기록, 탐문식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내고 탐색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판돌들은 초기에 ‘작업장 탐색 – 아이디어 구상- 제작 – 중간 점검- 쇼하자’의 프로세스 정도만을 구상했다. 이것의 세부를 구성하는 방식은 아이들에게서 나온다. 하지만 아이들 스스로 의견을 만들어가기 위해 판돌들은 매 회차 아이들의 이야기를 녹취하고, 그 이야기 속에서 키워드를 발견하며, 중요하게 나온 말들을 다음 차시에서 되짚어간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던진 말들을 발견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매 회차를 아이들의 의견으로 엮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하게 만든다고 하지만, 생각의 카테고리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놓친 것을 발견하고, 또 과정 과정에서 생기는 변수들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과정, 그리고 이 시간이 창의성을 발견하고 확장하는 동기가 되도록 만드는 것은 어렵다. 대부분의 경우, 이 구조를 아이들에게 맡겼을 때 수업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계속 제자리를 맴돈다고 이야기하거나, 또는 일정한 구조나 틀 안에서 아이들이 낼 수 있는 변수를 최소화하거나, 결과 중심의 행동으로 유도하게 함으로써 실패의 경험을 주지 않는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얼마나 듣고 있을까? 아이들이 지나가며 떠오르는 말들이 새로운 가능성의 실마리가 될 수 있고, 그것이 온전히 존중될 때, 그 아이들이 느끼는 자존감은 새로운 작업의 동력이 되는 것은 아닐까? 특히 이것이 학교로 가게 되면, 아이들을 중심에 세운다고 하면서도 학교의 규칙과 보편적 운영 방침에 갇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짧은 시간에 여러 교과목이 갖고 있는 목표 달성, 시간의 틀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과제, 안전에 대한 수많은 위험요소를 생각한다면, 우리 교육 환경은 교사들에게 아이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듣고, 작전 회의를 하고, 몸을 움직이며, 수업에 반영할 수 있는 여지를 얼마나 마련해 주고 있을까?
“학교는 쓰는 공부를 하는 곳이라면, 여기는 만드는 공부를 하는 곳이에요, 학교는 365일 쓰기만 해요. 토론이 있지만 30% 정도이고요. 여기서는 계속 난관에 봉착해요. 그러나 우리는 그 난관을 뚫고 나갈 작전 회의를 하는 거지요.”
– 지민, 토토(청개구리 작업장 참여자)
아이들이 사회를 살아가며 한 시민으로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난관이 있을까? 이것이 온전히 혼자의 실패로 남지 않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 그리고 작전 회의 속에서 많은 난관을 함께 이겨낼 동료의 힘을 배우는 소중한 경험이 이뤄지는 모습을 청개구리 작업장에서 보았다. 그리고 이 과정들 속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진정 지향하는 참여와 이해, 주제를 중심으로 한 통합의 경험을 온전히 풀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관련링크]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센터 https://www.haja.net/
『생각하는 청개구리, 6년의 기록』 보고서 다운로드 https://haja.net/storage/10053
사진제공_하자센터 청개구리 작업장
사진없음
김지연
공연 기획자에서 예술교육 프로그램 기획자로, 그리고 이제는 문화기획자로 불린다. 현재 교육연극연구소 프락시스 공동대표로 있으며, 2007년 양평 교사들과의 인연이 세월초등학교 문화 코디네이터로 10년을 살게 하였다. 이제는 양평에 살면서 아동, 청소년, 청년, 예술가, 마을 주민들을 만나 함께 사는 공동체에 대해 모색하고 있다. 현장의 활동은 정답이 없고, 변화무쌍하기에 언제나 게으른 나를 반성하며 산다.
najej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