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

[기획자 추천도서] 서혜윤 작곡가가 보는 『생각의 탄생』



음악 전공과 관련된 입시위주의 교육을 하다가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넓은 범위로 들어와 학생들과 만나게 된지 6년차가 되었다. 정해진 커리큘럼과 확실한 목표가 있는 입시 수업과 달리, 문화예술교육은 아이들의 눈빛과 태도가 제각기다. 게다가 문화예술교육 학습자들은 개인별로 수업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한 편차가 크기 때문에 그 효과를 단언할 수도 없다. 나 역시 문득 나의 수업방식과 커리큘럼에도 의문이 들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기존의 방식에서 고작 한두 걸음 움직인 것이 전부였다. 이런 답답한 마음은 우연히 지인에게 선물로 받은 『생각의 탄생』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창조적인 상상력’의 중요성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창조적인 상상이다. 그것만이 우리를 관념의 단계에서 현실의 단계로 나아가게 해줄 것이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음악의 시학』 중에서

이고르 스트라빈스(Igor Stravinsky)의 『음악의 시학』 첫 구절이다. 막연한 상상이 아닌 창조적인 상상은 무엇일까? 문화예술교육자로서 늘 고민하는 문제다. 『생각의 탄생』에서도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일방적이고 두뇌만 집중적으로 사용하도록 하여 두뇌를 불구로 만드는 교육만 받아온 나’. 이는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가 아버지가 받은 케임브리지(Cambridge) 대학의 교육을 비판할 때 사용한 표현이다. 나 역시도 학생들에게 과연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잘 하고 있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생각의 탄생』에서는 생각의 본질은 ‘감각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교육자의 창조적인 생각이 창조적인 커리큘럼을 만들게 하고, 그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의 감각을 깨우는 과정에서 또 다른 감각을 무차별적으로 불러내도록 한다는 것이다. 특히, 교육자는 수업에 대한 결과를 예측하면 안 된다. 이를 염두하고 교육을 하게 되면 학생들의 무한한 창의력에 대해 무심코 지나칠 수 있기 때문이다.
‘관찰’부터 ‘통합’까지… 13가지 생각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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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창조적으로 접근하는 생각도구 13가지를 제시한다. 13가지 생각도구는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인식, 패턴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이다. 각 도구에서는 수많은 예술가, 학자, 철학자, 교육자, 발명가가 거쳤던 과정 및 결과들이 기재되어 있다. 이 도구들은 내가 현재 만나고 있는 학생들의 가능성을 발화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력하게 느껴졌다.
관찰 이 장에서 설명하는 ‘관찰’은 보이는 것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어떤 것’을 보이게 한다. 관찰을 통해 잠재된 것들까지 발견하게 되며, 매일 새로운 관찰을 하려면 끈기와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내가 학생들을 관찰할 때도 마찬가지다. 보이는 걸 넘어서 숨겨져 있는 ‘무언가’를 관찰해야 한다. 마치 빙산의 일각처럼, 보이는 것들은 잠재된 의미가 많기 때문이다.
형상화
“소리로 생각하기는 일류 음악가들이 ‘소리를 안 내고 연습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말해준다. 그들은 자신의 곡을 상상한다. 마치 운동선수가 머릿속으로 동작을 연습하는 것과 같다.”
-『생각의 탄생』 본문 중에서
미국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헨리 코엘(Henry Cowel)은 음악을 듣는 것보다 악보로 읽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 이유는 음악 소리를 자신의 마음속에서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형상화’는 현상을 그대로 재현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달 수단으로 변환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말, 음악, 동작, 모형, 회화, 도형, 영화, 조각, 수학, 논문 등이 해당한다.
추상화 ‘추상’은 대상의 전체가 아닌 눈에 덜 띄는 소수의 특성만 나타내는 작업으로, 핵심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현실에서 출발하되, 사물의 본질을 드러나게 하는 과정이다. 즉, 추상화는 단순화라고 할 수 있다. 나의 경우 문화예술 관련 수업 시간에 추상화 그리기를 적용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노래 가사를 쓸 때 자신의 일과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중요한 한 가지를 찾아내어 표현하도록 했다. 학생들은 추상화를 그리는 시간을 통해 학교 수업시간을 통해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스스로 알게 됐다. 궁극적으로는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진실에 대해 탐색을 하는 작업이다.
패턴인식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안다는 것, 곧 무지의 패턴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아는지 아는 것만큼 귀중하다.”
-『생각의 탄생』 본문 중에서
‘패턴’을 알면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 있다. 지각과 행위의 일반원칙을 이끌어내어 이를 예상의 근거로 삼는다.
패턴형성 이 장에서는 한 패턴을 분해하면서 동시에 다른 패턴을 조립하는 일의 요소들에 대해 실제적으로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행위는 지식의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한다. 말 속에는 언어적인 의사전달 외에도 다른 패턴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단순한 요소들이 결합해서 복잡한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패턴형성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특징이다. 예술분야의 패턴형성에 나타나는 교묘함, 의외성, 다양성까지 과학 분야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유추
‘유추’란 둘 혹은 그 이상의 현상이나 복잡한 현상들 사이에서 기능적 유사성이나 일치하는 내적 관련성을 알아내는 것을 말한다. 유추는 우리가 기존지식의 세계에서 새로운 이해의 세계로 도약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어떤 사물을 볼 때, ‘그것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그것이 무엇이 될까‘에 착안해야 한다. 그래야 사물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생각의 탄생』 본문 중에서
교육자들은 이러한 사고방식에 착안해 학생들이 또 다른 가능성의 우주를 발견하게 해야 한다. 꽃을 사람으로 보고, 버섯을 요정의 계단이라고 말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장난감이라고 말한다면 상상력이 얼마나 훼손될까?
몸으로 생각하기 몸의 상상력이 작동하는 순간 사고(思考)의 형태를 느낄 수 있고, 느낄 수 있을 때 사고(思考)할 수 있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은 인체가 가지고 있는 선들을 통합해서 ‘나’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야만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을 확신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감정이입 배우는 스스로 극중 인물이 되어야 한다. 실제 인물이 행동하는 것처럼 연기해야 한다. 이를테면, 대나무를 그린다고 가정하자. ‘내’ 안에서 대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주문을 걸며 그 상황에 녹아든다. 배우에게 있어 가장 완벽한 이해는 자신이 이해하고 싶은 무언가가 될 때다.
차원적 사고 2차원적인 세계의 크기, 색채, 형상을 3차원 세계로 옮기거나 반대로 3차원의 물체가 가지고 있는 다면성과 입체성을 2차원 평면으로 묘사할 때 ‘차원적 사고’가 가능하다. 이때 나타나는 창의력과 상상력은 상호작용한다. 예를 들어 어떤 공간을 입체적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평면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크기가 큰 것을 작게 그리기도 하고, 작은 것을 크게 묘사하기도 한다. 공간 자체가 정서적인 메시지의 일부를 담고 있기 때문에 시공간의 차원을 아우르면서 구상하는 능력은 현대미술과 과학, 천문학, 생물학 분야까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모형 만들기
“모형이 지닌 가장 큰 가치는 새로운 생각의 탄생 과정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생각의 탄생』 본문 중에서
생화학자 리누스 파울링의 인용구다. 모형은 보는 사람이 즉각 인식할 수 있도록 실제를 축약하거나 다른 차원에서 표현해야 한다. 모형은 실제상황을 염두에 두고 필요한 규칙과 자료 및 절차를 이용하는 시뮬레이션이다.
놀이 놀이는 목적이나 동기가 없다. 승패를 따지지 않으며, 결과를 설명해야 할 필요도 없다.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도 아니다. 내면적이고 본능적인 느낌, 직관, 쾌락에서 창조적인 통찰이 나온다.
변형 변형적 사고는 음악, 유전자, 전신, 시, 수학 등 다양한 분야를 연결시켜주는 메타 패턴을 드러낸다. 더불어 특정 영역에 치우진 사고보다 더 가치 있는 통찰을 낳는다. 예를 들어 한 예술작품이 완성하기까지 수많은 단계를 거친다. 모호한 생각에서 출발해 유추, 표상화, 모형화, 놀이, 추상화, 차원적 사고 등을 거쳐 비로소 완성된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통합 ‘통합’은 감각적 인상, 느낌, 지식, 기억 등이 다양하고 통합적인 방법으로 결합되는 것이다. 현실에 처한 우리에게도 통합적인 마인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오늘날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 역시도 특정한 학문 분야에만 국한하지 않듯이, 한 가지 접근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학생들을 존재 자체로서 존중하는 통찰력
그동안 이론에만 치우쳐진 교육만 받아왔던 나로서는 단편적인 지식들이 지성의 힘으로 변화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나온 후에야 얄팍하게 습득했던 지식들은 허약하거나 겉만 번지르르한 ‘학문적 성취’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쓸데없는 만족감과 나태 그리고 자기 위안적인 판단 착오를 불러일으켰다.
“나쁜 것은 환상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춘 마음의 눈을 계발하지 않는다면 육체의 눈으로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생각의 탄생』 본문 중에서

이 책에서는 ‘생각’의 행위에 대해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교육자가 학생들을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욕구는 반드시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느낌이 한데 어우러져야 한다. 즉, ‘지성’과 통합되어야 한다. 나 역시 교육자로서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보다 나 자신을 잃어버리면서까지 학생들을 생각해야 한다는데 동감한다. 이 책을 읽고 나의 수업 욕심이나 성과보다, 학생들 자체를 바라보는 일이 문화예술교육의 일부분임을 깨닫게 되었다.
감각적 체험이 이성과 결합하고, 환상이 실재와 연결되며, 직관이 지성과 짝을 이루고, 가슴속의 열정이 머릿속의 열정과 연합하고, 한 과목에서 획득한 지식이 다른 과목으로 가는 문을 열어젖히는, 그런 때를 아는 사람들인 것이다.

-『생각의 탄생』 본문 중에서

과거를 돌아보면 예술이 융성하던 시절에 수학이나 과학, 기술도 꽃을 활짝 피웠다. 미래에도 흥망을 같이 할 것이다. 현재 내가 하는 문화예술교육은 음악이라는 장르에 국한돼 있지만, 음악만을 위한 상상의 도구들이 아니라 학생들의 교육 전체를 위해서 옹호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교육은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통합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문화예술교육자들과 함께한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성장하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서혜윤 작곡가의 또 다른 추천도서
1. 『왜 학교는 예술이 필요한가』 제시카 호프만 데이비스
교육에서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2. 『청춘의 독서』 유시민
답이 없는 세상에서 답을 찾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3. 『소피의 세계』 요슈타인 가아더
비교적 딱딱하게 느껴지는 철학서지만, 소설처럼 술술 읽힌다. 철학적인 삶과 태도에 대해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한다.

서혜윤
서혜윤_작곡가, 강사
통합예술교육단체 ‘다락’의 연구원이자, 단편영화 음악 감독, 인디밴드와 개인 앨범 작곡, 작사, 연주 활동 중이다. 현재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청소년X예술가 프로그램’에서 <마지못해민트초코와 함께하는 앨범 발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hyeyoon010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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