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용아법(我用我法). 자신만의 법으로 나아간다. 길이 아닌 곳이 곧 길이 된다. 당연히 먼 길을 돌았고 때론 무모했다. 그런데도 끈질기게 관조하고 몰입해서 해체하고 대화하며 화해하는 과정을 반복한 사람. 자신만의 그릇을 만들었다가, 그것 자체를 깨뜨리고 관념에 갇히지 않으려 하는 사람. 사진의 테크닉이나 구도, 색채 등 기존 예술의 잣대를 뛰어넘어, 압도적인 스케일과 파격적인 작품을 보면 김아타 작가만의 깊은 철학이 담겨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은 김아타 작가가 일반 시민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의 예술관을 듣는 기회는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김아타 사진작가의 작품세계 속으로
지난 10월 21일(토) 서울 광화문 광장 근처 KT 올레스퀘어 드림홀에는 앳된 대학생부터 중년 부부, 인자한 미소를 띤 할아버지까지, 약 200명의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모였다. 김아타 명예교사의 강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그의 대표 작품들을 약 1시간 동안 영상으로 접할 수 있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소개된 <온에어(ON-AIR) 프로젝트>는 8시간 혹은 더 긴 시간동안 장노출 기법을 사용해 움직이는 물체의 사라지거나 흔적만 남은 모습을 담은 작업이다. 파리, 워싱턴, 로마, 모스크바, 프라하 등 12개 도시를 다니면서 촬영한 1만여 장의 사진들을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압축해 각 도시를 표현한다. 또한, 약 100여 명의 초상 사진을 한 장으로 만든 ‘Self-Portrait Series’, 1시간 동안 성행위를 하는 커플의 잔상을 찍은 ‘Sex Series’ 등이 있다.
다음으로는 온 네이처(On nature) 프로젝트의 작업 과정이 이어졌다. 본 프로젝트는 자연, 문명과 역사가 깃든 지역에 빈 캔버스를 수년 동안 설치해두고, 자연이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도록 만든다. 캔버스에는 바닷 속 생물의 흔적, 비와 눈 등의 자연의 흔적이 남는다. 캔버스는 베이징, 뉴욕, 도쿄, 히로시마, 갠지스강, 4대 문명 발생지 등에 설치되었다.

직접 부딪히며 풀어가는 의문점
영상이 끝나고, 김아타 명예교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동그란 테이블 위에는 그가 준비한 선물과 필름박스가 마련되었고, 그는 1989년부터 사용해왔다는 에이바이텐 필름박스를 관객들에게 직접 보여주었다. 아직까지도 흑백필름 현상을 직접 하고 있으며, 에이바이텐 카메라 3대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스카프로 포장한 상자를 가리키며, “이 안에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오브제가 들어있어요. 이것의 정체는 잠시 후에 밝히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관객들은 오브제가 무엇인지 한껏 호기심을 품고 강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다 알면 무슨 재미로 살겠어요.”
김아타 명예교사가 운을 띄었다. 여전히 모든 것에 의문점을 두고 또 풀어간다는 작가는 약 30년 전에는 더욱 무모하고 용감했다. 1985년부터 1986년까지 어느 정신병원에서 350여 명의 환자들을 만났고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는데, 그 이유가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부딪히며, 정신과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였다.
그 후 1989년부터 1990년까지 150여 명의 인간문화재를 만났고, 그중 70여 명을 사진에 담았다. 한 분야에 평생을 바친 이유와 고유한 정신을 직접 마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가로서 김아타는 그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그들과 대화했다. 사진은 만남의 과정을 기록할 뿐이다. 그는 “정신이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것을 찾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에요.”라고 덧붙였다.
대화하고 화해하는 과정
“예술은 궁금한 것에서 출발해요. 궁금한 것, 즉 알지 못하는 것에서 출발하죠. 모르는 것은 알 수 있는 여지이고, 희망이자 내일입니다. 부족함이 아니라, 에너지이자 이상이에요. 모르는 것을 찾아가는 행위가 제 작업의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그것을 어떻게 찾아가고 있을까. 1991년 무렵 시작한 <해체>가 관념에서 벗어나려는 작업이었다면,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진행한 <뮤지엄 프로젝트>는 사물에 대한 존재 의미를 만들어가는 작업이었다. 김아타 명예교사는 “어느 것으로 전이되는 것도 넓은 의미의 윤회입니다. 생각이 어떤 생각으로 물 흐르듯 흐르는 것 또한 넓은 의미의 윤회에요”라며, 그가 끊임없이 대화하며 만든 작품들을 소개했다.
소개된 작품에서는 한쪽 다리가 없는 한 남자가 나체로 투명박스 안에 앉아있다. 그는 베트남전에 출전했던 군인이다. 김아타 명예교사는 그 남자와 몇 달 동안 대화하고 충분히 인간적으로 교류한 후에 사진을 찍었다. 스텝 역할은 그의 부인이 맡았다. 이 작품으로 미국에 진출할 수 있었지만, 한국에는 전시하지 못했다. 다음으로 소개한 작품은 니르바나(Nirvana) 시리즈이다. 당시 큰스님께서 직접 삭발 의식을 진행했으며, 4명의 모델이 나체로 유리박스 안에서 가부좌를 들었다. 디지털 방식이 아닌 현장에서 모델이 직접 연출한 방식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집니다.” <뮤지엄 프로젝트>의 해체로 <온에어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온에어 프로젝트>의 마지막 시리즈 ‘인달라’는 색과 공을 해체했다. 《도덕경》 속 글자들을 하나씩 포개어 쌓았고, 솜사탕처럼 보이는 사진 한 장으로 만들어졌다. 그렇게 비로소 세상의 이치를 모두 담은 무게에서 해방된 것이다.
깨뜨리고, 해체하고, 비워내라
김아타 명예교사는 강연 시작 직후에 소개했던 오브제의 정체를 공개했다. 바로, 두 개의 돌이었다. 그는 두 개의 돌을 마찰시켜 갈았다. 그리고 ‘후~’하고 불자, 무대로 쏟아지는 조명 빛에 돌가루가 흩어져 공중으로 흩어졌다.
“이것은 돌가루가 아니라, 시간과 빛이에요. 절대적인 에너지인 빛이 있어야 먼지가 보이고, 먼지를 통해 빛도 볼 수 있죠. 절실하고 절묘하게 실제 자신을 대입시키는 순간입니다.”
다음으로 돌을 서로 부딪쳐 깨뜨렸다. 그것들은 깨진 시간, 시간의 얼굴이라고 했다.
이어 김아타 명예교사가 소개한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점 ·선 ·면(Point and Line to Plane)》(1926)에서 공간에 대한 외형적인 것을 정밀하게 묘사했다. 점의 기능이 죽어야 선이 되고, 선의 기능이 죽어야 면이 된다. 사실은, 면 안에 선이 살아 있고, 선 안에 점이 다 살아있다. 점, 선, 면의 정체성은 살아있기 때문이다. 유여열반(有餘涅槃). 즉,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면서 외형적인 형태가 변하는 것이다.
이어서 김아타 명예교사는 테이블 위에 있던 잔을 들어, 바닥에 있는 돌을 향해 떨어뜨려 잔을 깨뜨렸다.
“잔은 깨달음, 에너지, 물, 생명을 담는 곳이에요. 잔을 비워야 새것으로 채울 수 있죠. <해체>에서 <뮤지엄 프로젝트>, <온에어 프로젝트>, 그리고 <온 네이처>까지 이끌어온 원동력은 제가 갖고 있던 그릇을 깨뜨리고 또 깨뜨린 덕분입니다. 담았던 그릇, 관념, 틀을 깨는 것이 대화의 시작입니다.”
관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본인이 가장 잘 쓰고 익숙한 것을 버려야 해요. 그 전에 칼을 잘 갈아 놔야 합니다. 중용은 넘침도 부족함도 아닌 중간인가요? 아니죠, 중용은 과함입니다. 과해보지 않으면 중용을 알 수 없어요. 칼을 너무 많이 갈아서 날을 넘겨봐야 중간 지점을 알 수 있어요.”

대중과 함께 소통하고 대화하다
강연 후에는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한 참가자는 한국에서 예술 활동을 할 때 어떤 점이 힘든지와 극복방식, 그리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제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을 버리진 못하겠더라고요. 사실 형언하기 힘든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며’ 라는 노래처럼 계속 나아갈 것입니다. 저만의 법을 만들어 길이 아닌 곳으로 가고 있어요.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가지고요. 저는 죽어서도 살고, 살아서도 죽을 것입니다. 주어진 모든 것을 긍정했으면 좋겠어요.”
참가자들의 열정적인 질문에 김아타 명예교사도 정성스레 답을 해주었다. 다음으로 열린 사인회에서는 또 다른 대화의 장이 펼쳐졌다. 많은 분들이 강연을 통해 생긴 의문점을 김아타 작가와 충분한 대화로 주고받으며 풀어나갔다.
강연 참가자들은 “책이나 인터넷이 아닌, 작가님의 육성으로 직접 작품 세계를 들어서 마음에 깊이 와 닿았어요. 힘든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본인의 철학을 사진이라는 메커니즘으로 구현했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지구력과 성실함도 존경스럽습니다.”, “관념을 깨는 방법을 현장 퍼포먼스로 보여준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정체성이 확실한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가님의 세계를 더욱 알고 싶어서, 1박 2일 워크숍도 신청했어요.”와 같이 소감을 전했다.
강연과 사인회가 끝나고 진행된 미니 인터뷰에서 작가는 이렇게 밝혔다.
“특별한 하루는 매우 중요해요. 앞으로도 외연을 더 넓히고 싶어요. 그래서 하루하루가 소중합니다. 특별한 하루를 쪼갠 모든 순간이 소중하죠. 저와의 만남이 관객들에게 특별한 하루를 선사했다면, 정말 행복하고 만족스러울 것 같습니다.”
<특별한 하루> 프로그램을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와 삶을 등지고, 잠시 멈추어 사색하는 시간을 경험하였다. 스스로를 ‘아날로그 시대의 마지막 작가가 될 수도 있겠다’고 밝혔던 것처럼 그의 작품세계가 바쁜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시간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2017 문화예술 명예교사 <특별한 하루>
문화예술 명예교사 <특별한 하루>’는 문화예술계 저명인사 또는 예술인이 명예교사가 되어 어린이‧청소년‧일반 시민과 직접 만나 문화예술을 깊이 이해하고 체험하는 특별한 하루를 선사하는 사업이다. <특별한 하루>는 명예교사에게는 창작활동에서 얻은 영감과 감수성을 시민들과 나누는 공유의 장이 되고, 참가자들에게는 특별한 문화예술교육을 경험하는 기회의 장이 되고 있다.
* 문화예술 명예교사 사업 ‘특별한 하루’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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