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생물을 바라보는 관점도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술을 통해 육안으로 보이지 않았던 생물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된 덕분인데요. 예술의 영역에서도 생명과학을 활용하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볼까요?
미술관에 들어온 생명과학 <스타이켄 참제비고깔> 전(展)
최초의 바이오 아트 전시는 1936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의 <스테이켄 참제비고깔(Edward Steichen’s Delphiniums)>전(展) 입니다. 참제비고깔은 미나리제비과의 두해살이풀로, 관상용으로 키우는 식물인데요. 세계적인 사진가이면서 원예가로도 유명한 스타이켄이 26년간 애지중지 길러온 참제비고깔을 미술관에 전시한 것입니다. 전시는 살아있는 생물을 미술관에 전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생명과학과 예술의 거리를 한발자국 좁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바이오 아트는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미술관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포르투갈 아티스트 마르타 드 메네제스(Marta de Menezes)는 지난 2007년 <디콘:해체,제거,분해(DECON: DECONSTRUCTION, DECONTAMINATION, DECOMPOSITION)>전시를 통해 박테리아를 이용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메네제스는 단순한 선과 색으로 이루어진 그림으로 유명한 추상화가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작업을 재현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아크릴 박스를 설치하고 그 안에 섬유 염료를 분해하는 박테리아를 투입하여 전시 기간 동안 색깔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관찰하였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단세포 생명체인 박테리아의 활동을 색상 변화를 통해 작품으로 표현한 것인데요. 이러한 소재도 예술 작품이 되어 미술관에서 전시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이처럼 바이오 아트는 신비로운 생명과학의 모습을 이용하여 예술의 표현 수단을 확장해주고 있습니다.
원래 바이오 플라스틱이라고 하면 기존의 플라스틱과 다르게 토양에서 분해되는 친환경 플라스틱을 말하는데요. 네덜란드의 아티스트 마얀 피사치(Maayan Pesach)는 <바이오 플라스틱(Bio Plastic)>이라는 작품에서 이 개념을 활용해 플라스틱에 자연의 재료들을 섞어 설치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녀는 플라스틱에 과일, 야채, 허브, 향신료 등을 섞어 재료들의 색깔과 질감, 부드러움 등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실험하고 그 결과를 전시했는데요. 붉은 와인이 섞인 플라스틱의 빛깔과 질감, 냄새는 어떨지 궁금해집니다. 자연의 재료들이 플라스틱을 만나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한 사례입니다.
생명과학과 예술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형광색으로 빛나는 토끼는 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브라질 출신의 아티스트 에두아르도 카츠(Eduardo Kac)는 지난 2000년 프랑스 국립작물재배연구소(Institut National de la Recherche Agronomique)와 함께 ‘형광토끼(GFP BUNNY) 알바(Alba)’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는 이 작업으로 바이오 아트(Bio Art)라는 용어를 최초로 정립한 사람이 되었는데요. 본래 알바는 체내 색소가 결핍된 알비노 토끼로, 카츠와 연구진은 이 토끼에게 발광 해파리에서 추출한 형광 유전자(GFP, green fluorescent protein)를 주입하여 특정 파장의 빛을 쬐었을 때 형광색을 내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작업은 연구가 아니라 미적인 목적을 가진 예술 작업이었는데요. 실험실에서 유전자 변형 작업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살아있는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생명과학이 예술의 영역으로 성큼 걸어 들어온 사례입니다.
헤더 듀이 하그보그(Heather Dewey-Hagborg)의 <스트레인저 비전스(Stranger Visions)>는 공공장수 수집한 담배, 껌, 머리카락 등에서 DNA를 추출하여 얼굴 형상을 복원한 전시입니다. 전시를 통해 하그보그는 이렇게 묻습니다. “DNA 데이터베이스는 급격히 커지고 있고 이 기술에 대한 접근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누가 이러한 정보에 접근하게 될 것이며, 누가 이를 이용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인가?” 길을 걷다가 무심코 떨어진 머리카락 한 올에 우리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니 신기하지 않나요?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이를 복원할 수 있게 된 과학기술의 힘도 놀랍지만, 이를 활용한 전시를 통해 현대에 던지는 아티스트의 메시지도 예리하고 묵직합니다.
최첨단 장비를 통해 본 생명과학의 아름다움
지난 3월 22일부터 국립과천 과학관은 ‘사이아트(Sci-Art) 갤러리’에서 ‘상상하는 미술전’을 열어 과학과 예술의 융합이 만들어낸 신비한 예술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 전시는 ‘무한공간, 상상 그리고 현실, 영역의 확장, 지구의 미래’라는 4가지 소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과학자들이 과학실험 과정에서 발견한 신비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전시한 미세과학 작품들과 예술가들의 예술적 상상력으로 과학을 표현한 작품들이 함께 전시되어 관람객들을 신비한 과학과 예술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특히 최첨단 과학 장비를 통해서 눈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감추어진 장면을 드러낸 미세과학 작품은 관람객들을 경이로움에 빠지게 하는데요. ‘뇌 속의 유성우(流星雨)’라는 작품은 초록, 빨강, 원적외선 등 세가지 색상의 형광단백질을 전극봉을 이용해 전기충격요법으로 수정한 후 15일이 지난 배아에 주입하고 촬영한 대뇌피질의 신경세포들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마치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똥별을 연상시키는 모습입니다.
‘눈 속에 펼쳐진 무지갯빛 혈관’이라는 작품은 태어난 지 5일된 생쥐 눈의 망막혈관을 이미지화한 것인데요. 초록색 형광을 내는 망막 혈관 내피세포와 붉은색 형광을 내는 인접한 혈관 주위세포가 어우러져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지는 과학을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감상할 수 있는 전시임을 확인할 수 있네요.
이제까지 생명과학의 모습을 예술작품으로 엿볼 수 있는 사례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식물이 예술 작품이 되어 미술관에 들어오기도 하고,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것들이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오거나, 유전자를 이용한 실험이 예술 작품이 되기도 하는 모습을 살펴보았는데요. 생물이 과연 예술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하면서도, 예술의 경계를 무궁무진하게 확장시키는 사례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생명과학이 예술에 가져온 놀라운 관점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채널원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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