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4일, 제6회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 행사가 시작되었다. 이번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 행사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블루스퀘어로 이원화되어 국제심포지엄, 컨퍼런스, 워크숍이 열렸고, 각 지역 문화기반시설에서는 지역 프로그램이 풍성하게 개최되었다. 5월 26일, 문화예술교육 워크숍 현장을 찾았다. 문화예술교육 전문가, 일반 시민이 함께 문화예술교육을 체험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기회로 마련된 문화예술교육 워크숍은 영‧유아부터 초등학생, 문화예술교육 매개자 등을 대상으로 음악, 연극, 문학, 목공, 미술, 사진 6개 장르, 총 9개의 프로그램으로 구성하여 진행되었다.
오늘 소개할 ‘시네버스’의 <빛나는 초상화>는 하나의 선으로 그리는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Blind Contour Drawing)’기법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프레임을 경험해보는 프로그램이다. 영화를 전공한 전현구, 김태훈 예술교육자가 활동 중인 시네버스는 사진, 디자인, 애니메이션, 연극 등 분야별 전문 인력들이 모여 양질의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위해 서로 협력하는 예술교육 네트워크로서 다수의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시네버스의 단체명은 도시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시내버스처럼 영화교육을 위해 어디든 찾아간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비주얼 리터러시, 시각적 소통 능력 익히기
오후 3시, 문화예술교육 워크숍 <빛나는 초상화>가 신용산초등학교 5학년 학생 20명이 참여하는 가운데 시작되었다. 교육 진행을 맡은 전현구 예술교육자는 오늘 진행되는 워크숍 순서에 대해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설명한 후, ‘생각틀(사진, 영상)’이라는 글씨를 화면에 띄웠다.
사진, 영상을 어디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지 묻자 어린이들은 유튜브, 휴대폰, 컴퓨터라고 답했다. 전현구 강사는 이런 사진과 영상의 화면 프레임은 ‘사각형’이며 네모난 틀 속에 본인이 생각하는 것을 담아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어린이들과 양손 집게손가락으로 사각 프레임을 만들어 맞은편에 앉은 친구들의 모습과 워크숍 장소 곳곳을 마음 속 네모난 틀에 담았다.
다음 화면에서 파란 하늘에 떠 있는 듯 의자 사진이 나타났다. 몇몇 어린이들이 ‘하늘 의자’라고 제목을 지었고 사진 밖의 풍경에는 벽, 지붕, 강가, 갈대, 바다 등이 있을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답했다. 이어진 다음 화면에서 실제 의자는 저수지 물 위에 버려져 있었고 주변은 어린이들의 상상과 다르게 황량한 풍경이었다. 전현구 예술교육자는 의도적으로 왜 의자만 보여줬을까.
전현구 예술교육자는 네모난 틀에 전체 풍경을 담지 못하는 현실적 한계에 대해 설명한 후, 앞선 예시처럼 인상 깊은 장면, 기억하고 싶은 순간 등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생각을 기준으로 사진과 영상으로 담긴 결과물을 해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누군가가 선택한 특정한 생각이 전달된 결과물의 대표적인 예시로 광고를 들었다. 재미있는 광고 몇 편을 보고 어린이들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소비자의 제품 선택 유도’라는 명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쓰인 함축적인 메시지 전달을 위한 장치(특수효과 외)에 대해 알아봤다. 이런 다양한 예시를 통해 ‘생각의 틀’이란 우리의 관점을 담는 기본 골격이며 그 안에는 각자의 생각과 상상이 담긴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앞선 일련의 과정은 ‘비주얼 리터러시 교육’이었다. 비주얼 리터러시라는 용어는 1969년 존 데베스에 의해 처음 쓰였다. 데베스는 비주얼 리터러시를 ‘보는 것을 통해 다른 감각 경험과 통합시킬 수 있는 일련의 시각적 능력’이라고 정의하며 비주얼 리터러시를 갖추면 눈에 보이는 행동, 사물, 상징체계 등을 시각적으로 분별하고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오늘날 비주얼 리터러시는 시각적 소통 능력, 더 나아가 분석과 평가, 성찰의 개념까지 포함하며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영상을 판단하기 위한 비판적 시각과 인식을 요구하고 있다.
대상만 바라보는 연습, 새로운 이미지 탐구의 시작
본격적으로 <빛나는 초상화>를 그리는 시간이 되었다. 오늘 진행할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Blind Contour Drawing)’은 스케치할 때 오로지 대상만 바라보고 그리는 기법으로 집중력과 관찰력을 높여준다고 알려져 있다.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온전히 대상에 대한 관찰을 유지한다는 것이 특징이며 자세한 관찰을 통해 대상이 지니고 있었던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미지를 포착할 수 있다.
20명이 서로 짝을 맞춰 마주 앉았다. 오늘 완성될 <빛나는 초상화>는 내 앞에 모델이 되어준 친구와 선물로 주고받는다고 한다. 먼저 종이로 연습한 후, 캔버스에 직접 그리기 시작했다. 친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색상의 색연필을 골라서 머리카락을 포함한 친구의 얼굴 전체를 그렸다. 친구 얼굴 중 그려낼 부분만 꼼꼼히 관찰하면서 그림으로 옮긴다. 눈과 손에만 의지하여 천천히 그리면서 친구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관찰하고 ‘눈이 참 예쁘구나.’, ‘코가 참 오똑해.’라는 이야기를 건네면서 초상화를 완성시킨다. 여기서 못 그렸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전현구 예술교육자의 호언장담이 있었다. 묘책을 써서 빛나게 해주겠다고 했다.
친구 얼굴 중에 가장 마음에 두는 부분, 예쁘게 보이는 부분부터 그리라는 말에 어린이들은 눈이 이끄는 대로 천천히, 때로는 과감하게 손을 움직였다. 대체로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 기법을 잘 따랐고 몇몇 아이들은 상대를 잘 그려주기 위한 것인지, 또는 자신의 그림이 우스꽝스러워지는 것이 싫은지 캔버스로 곁눈질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잠시 후, 어린이들은 서로의 초상화를 돌려보며 ‘와!’, ‘대박’, ‘닮았지?’, ‘이 정도면 비슷하지 않아?’, ‘코 위만 보면 그대로 얘야’ 등 웃거나 발랄하게 야유하며 각자의 감상을 쏟아내느라 매우 떠들썩해졌다.
그려진 초상화들은 ‘삐뚤빼뚤’한 글씨와 닮아 있었다. 유아의 그림처럼 울퉁불퉁한 선을 따라 눈, 코, 입의 자리에 귀와 목이 겹쳐 있었다. 캔버스 한편으로 얼굴이 치우쳤거나 머리핀, 안경 등의 소품 디테일이 특징적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서로 겹쳐진 선과 면의 분할에 따라 다른 사물의 모습도 연상되었다. 그렇게 먼저 얼굴 그림을 완성한 후, 주변 배경을 채웠다. 친구의 얼굴이 돋보일 수 있도록 색칠, 문양, 무늬를 만들어서 꾸미라는 요구에 어린이들의 손이 분주해진다. 배경을 채우니 얼굴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이어서 캔버스 뒷 여백에 ‘왜 이 색상으로 그렸는가, 어떤 부위부터 그렸는가’에 대해 친구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적었다. 아래는 어린이들이 남긴 메시지이다.
‘나는 너의 입술이 예뻐서 입술부터 그렸어.’
‘너의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이빨을 노란색으로 그렸어.’
‘길쭉한 얼굴형부터 그렸어. 그리기 쉬워서. 너에게 잘 어울려서 핑크색을 골랐어.’
‘코부터 그렸어. 정말 오똑하고 예뻤기 때문이야. 진정한 너의 친구가 되고 싶어.’
아직 모든 순서가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초상화에 빛을 입히는 순서가 남아 있었다. 전현구 강사는 야광물감을 나눠주면서 불을 껐을 때 어떻게 보일지 상상해서 쓰라고 당부했다. 어린이들은 주로 눈동자, 입술, 얼굴 윤곽, 배경무늬 등에 야광물감을 칠했다. 이어서 빛을 넣어주기 위해 4-5분간 캔버스 위에 랜턴 불빛을 쬤다. 잠시 후, 실내 전체의 불을 끄고 일제히 초상화를 들어 올렸다. 20개의 빛나는 초상화가 반짝이고 있었다.
예술적 경험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즐거움
워크숍을 마친 후, <빛나는 초상화>를 기획, 진행한 전현구 예술교육자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빛나는 초상화>는 새로운 방법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점, 상대방에 대한 새로움을 발견한다는 점, 서로의 사이가 더욱 돈독해진다는 점 등 많은 장점이 돋보이는 워크숍이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장점은 모든 과정 속에서 즐거움을 잃지 않도록 놀이처럼 설계했다는 점이었다. 영상을 보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도 어린이들이 즐거워할만한 유머와 리액션을 활용했고 초상화를 그리는 시간에는 야광물감을 활용하여 어린이들의 자발적 참여도를 높였다.
아이들의 신나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은 <빛나는 초상화> 워크숍과 같이, 향후 즐거움을 잃지 않는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교육 현장에서 실행되기를 기대한다.
- 이초영
- 문화기획자. 별일사무소 대표. 홍대 앞 시민작가들의 모임인 ‘희망시장’을 거쳐 성남문화재단, 중구문화재단 충무아트홀, 서울디자인재단 등에서 다수의 커뮤니티 연구와 실행을 맡았다. 함께 사는 내일을 고민하는 문화예술 분야의 기획사 대표답게 그간 현장에서 만나 온 사람들의 마음을 관찰하여 무엇인가 만들 준비를 하는 중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웹진 [들음] 에디터, 안양문화예술재단 [터무늬ZINE]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다.
eve-2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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