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숨, 나를 위한 바람

2017 창의적 예술교육 프로젝트 ‘숨-바람-숨’

숨-은 혹은 사라진 대화
잘될까? 어떨 것 같아요? 충분히 납득하고 따라갈 수 있을까요? 조형만을 위해 단물을 빼고 껌을 씹는다는 게 걱정스럽단 얘기 아닌가요? 조형은 뭔가 뱉기 전에 짧게 시간을 주는 게 좋겠고 만들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는 무엇을 버리느냐 왜 버리는지 그 행위를 생각하며 껌을 씹으면서 다른 행위가 이루어지고요, 체감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보면 어떨까요. 예술을 오해하는 것도 그렇잖아요, 결과물로서의 예술, 거기에 의도와는 상관없이 전부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꽤 의미 있는 행위일 수 있겠죠, 그렇게 피드백이 잘되면요? (…) 이건 개인적인 기록인 거예요, 껌을 씹으며 생각하는 시간도 서로 대화하는 방식도 있지만, 뱉지는 않고 씹으면서 계속 기록만 하는 거죠, 단어 나열이든 최후통첩 선언문이든. 기록하는 시간을 주고 맨 마지막에 낭송을 하던, 어쨌든 다 같이 껌을 한꺼번에 뱉는 거예요. 조형은 하지 않고? 뭔가 너무 개인화되는 건 아닐까요? 자기 고백적 행위이긴 한데 조형적인 것이 아예 빠지는 건, 씹는 행위나 만드는 과정도 분명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이 대화는 작년 12월부터 2017 창의적 예술교육 프로젝트 연수가 시작되는 2월 사이 진행된 기획 회의 중 빙산의 일부분을 옮긴 것이다. 기획 회의는 참여 대상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미리 진행되기 때문에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보다 섬세한 구성으로 다양한 실험을 거쳐 그 형태를 점점 구체화 시켜 나갔다. 이 과정에는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아이디어와 의견들이 자유롭게 오가는데, 실제 그 기획이 가능한지 어떻게 진행될지 왜 필요한지 수업의 분위기나 참여자의 반응은 어떨지 등에 대한 집요한 질문과 끊임없는 확인을 통해 과정 하나하나를 촘촘히 엮어 나갔다. 세부 프로그램의 경우 분 단위까지 쪼개어가며 시간을 정확히 헤아리면서도 언제든 예기치 못한 변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충분한 여유와 틈을 남겨 두기도 했다. 특히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중간에도 수시로 참여자의 반응과 현장 분위기를 파악하고 수정 보완해가며 기획을 다듬는데, 이는 전체 프로젝트를 보다 입체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렇게 드러나지 않는 기획의 섬세한 과정들은 실제 수업에서 일어나는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정체하지 않고 끝까지 순조로운 항해를 할 수 있는 힘을 불어 넣어준다. ‘숨-바람-숨’ 기획의 가장 첫머리, 숨겨진 대화 혹은 사라진 대화를 소개하고 싶었다.
  • <60개의 체스오브제> (임상빈)
  • 2017 창의적 예술교육 프로젝트 ‘숨-바람-숨’
D동 411호에 예고 없이 부는-바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처음 만난 낯선 얼굴들-사이로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저마다의 뚜렷한 의지와 동기를 지닌 참여자들은 이 낯설기만 한 만남 사이에서 쉬이 긴장감을 내려놓기 힘들다. 어색한 첫 대화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기 위해 임상빈 작가의 작품 <60개의 체스 오브제>가 강의실 바닥에 설치되었다. 작가의 작품이 전시장이 아닌 프로젝트 강의실 안에 전시되어 자연스럽게 말을 걸고, 참여자들은 익숙한 책상과 의자 배열이 사라진 이 낯선 풍경 속에 갸우뚱하며 자신의 취향이어서 혹은 자신과 좀 닮은 것 같아서 등의 이유로 체스 오브제 하나씩을 선택하게 된다. 전공이나 소속, 경력 등의 표면적인 소개로 마무리되는 겉 인사가 아닌 자신의 성격과 특성을 체스 오브제에 빗대어 비교하면서 자연스럽게 스물여섯 명의 서로 다른 첫인사가 이루어졌다.
참여자들의 기대와 낯설음으로 인해 다소 묵직했던 공기가 조금은 흐트러지고, 이후 삼키기 뱉기의 첫 과정으로 껌을 씹으며 버릴 것들에 대해 사유하고 씹던 껌을 뱉어 조형하는 설치 작업이 곧바로 이어졌다. 단물이 빠지는 시간 동안 지난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나를 돌아보며 버리고 싶은 것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이 사적인 시간은 말없이 허공을 응시하는 눈과 껌을 씹는 소리로만 공간이 가득 메워질 만큼 진지한 침묵 속에서 진행되었다. 버리고 싶은 것들 또한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기에 그 감정을 함부로 대할 수 없고, 연필로 옮긴 종이 위의 기록들과 단물이 모두 빠져버린 껌 또한 소중히 뱉어낼 수밖에 없는 버림의 이중적인 행위인 것이다. 버린다는 것에 대한 통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이 설치 작품들은 연수가 끝날 때까지 강의실 벽면에 전시되어 모두에게 읽혔다.
버리고 가지기 과정으로 ‘더듬으며 따로 또 같이 빚기’는 개인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면서도 협업에 더없이 좋은 과정이다. 우선 4인 1조가 한 팀을 이루어 앞서 진행한 작업에서 버리고 싶은 것들에 대해 서로의 공통점을 찾는 토론을 벌이고, 하나의 주제를 선정한 후 정해진 시간 안에 네 명이 돌아가며 상자 속에 손을 넣고 오직 손의 감각만으로 더듬어 함께 흙을 빚어야 한다. 총 일곱 개 팀이 동시에 빚기 시작 하는데 먼저 빚은 사람의 조형물을 더듬고 새로 빚거나 또는 덧붙여 다시 빚으며 하나의 주제를 다르게 해석하는 네 사람의 차이를 오롯이 감당해내야 하는 것이다. 상자 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아무도 알 수 없으며 이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의심, 충돌, 기쁨, 좌절, 화해, 분노 등의 복합적인 심리 상태를 겪으며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차이를 수용하고 협업해 나갈 것인지 아니면 무시하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방식을 취할 것인지 어느 것이든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 20분간의 더듬고 빚기가 끝나고 각자의 선택으로 완성된 일곱 개 상자 속의 조형물이 하나씩 공개되었다. 그제야 빛을 본 조형물은 말이 없고, 빚은 각자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털어놓았다. 모두의 눈으로 확인하게 된 그 다름, 이제야 속사정을 알게 된 서로 다른 조형물들 앞에서 우리는 이상하리만치 즐거웠다.
감각을 깨우고 가치를 묻다
다음 날 아침, 아직 잠들어 있는 정신과 몸을 깨우기 위해 ‘장다리’라는 도구를 착용하고 걸음마를 배워보기로 했다. 장다리는 바닥으로부터 50cm 높이 위에서 걸을 수 있는 도구이며 두려움을 시작으로 용기와 자신감을 얻게 되는 걸음마를 연습할 수 있는 과정이다. 시작 전에 넘어지고 다칠 것을 두려워하는 다소 미지근한 반응들 속에서 엉거주춤 걸음마 연습이 시작됐지만, 곧 두 발로 걷게 된 사람들로부터 터져 나오는 기쁨과 아직 연습 중인 사람들의 도전으로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허공을 걷는 새로운 걸음마는 어디서든 느껴보지 못할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장다리를 타며 깨운 정신과 몸에 ‘표준화에 저항하기’ 주제 강의가 이어졌다. 강의의 시작은 음악, 무용, 그림, 조각, 퍼포먼스, 문학, 영화 등 각 장르마다 담고 있는 메시지를 차례로 전달하면서 우리 몸 안에 깊숙이 박힌 표준화와 통념들에 대해 날카롭고 깊은 질문들을 던졌다. 이미 너무도 익숙해져서 저항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굳어버린 몸과 감각들, 교육 현장의 문제부터 참여자 개개인에게 직면해있는 여러 문제들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개인의 뚜렷한 생각과 소신이 왜 중요한지 개인의 변화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또 우리는 예술의 범주 안에서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지닌 존재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환기가 필요할 정도로 뜨겁게 몰입한 강의가 끝나고 이후에는 6~7명이 한 조를 이루어 주제 강의의 여운을 이어갔다. 자신들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프로그램에서 개인이 발언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진 않지만 되도록이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생각을 듣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의 필요와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싶었다. 프로젝트에 배정된 총 열여덟 시간 중 온전히 그 사람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집중해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조금 출출해진 오후는 통닭을 먹으며 살과 뼈를 추려내고 조형하는 과정으로 토론과 함께 삼키고 뱉기, 버리고 가지기의 통합 과정이 진행되었다. 고기를 삼키고 뼈는 뱉어내어 깨끗이 세척한 후 자신이 취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상징적인 뼈 조형물을 제작하게 된다. 앞서 토론을 하며 버릴 것들을 적어 모아둔 종이는 석고를 부어 그대로 굳혀 또 다른 하나의 조형물을 제작했다. 버릴 것들을 매몰시켜 굳힌 석고 조형물 위에 취할 것들을 쌓아 올린 뼈 조형물을 얹어 하나로 결합함으로써 개인의 다짐과 신념을 더욱 확고히 세우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마지막 날 오전은 개인 작품(석고와 뼈로 만든 조형물)을 데리고 근처에 산책을 나가 개별 촬영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작품과 함께 곳곳을 산책하며 신선한 공기를 가득 채워 다시 강의실로 돌아왔다. 이후 몸 풀기를 통해 익힌 장다리를 활용하여 즉흥적인 하나의 극을 기획하고 협업하여 시연하는 과정이 진행됐다. 총 네 개의 모둠에서 각각 자유로운 형식으로 구성된 극이 시연되었고, 장다리로 인해 높아진 50cm의 시선만큼이나 좀 더 멀리 보고 느끼며 우리의 문제들을 유쾌하면서도 수준 높이 풀어냈다. 이로써 프로젝트의 모든 과정이 마무리 되었다.
모두 다른 숨- 그 후
앞서 ‘숨-바람-숨’ 프로젝트의 프로그램들을 순서대로 나열한 데에는 단순히 과정을 소개하려는 데에만 목적을 둔 것은 아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끊임없이 삼키고 뱉고 버리고 가지는 과정의 반복 속에서 참여자는 근래에 일어났던 일부터 과거를 중심으로 자신의 여러 모습들을 드러내 보이게 된다. 이 자유로운 나열 곳곳에는 자신을 바로 보게 하는 장치들이 숨어있다. 흥미롭고 독특한 형식을 빌려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지만 사실 그 깊은 속에는 움츠러들고 가라앉아 보이지 않는 당신을 수면 위로 떠오르도록 갈구하는 ‘절실함’이 있었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반드시 당신이어야 한다는 ‘바람’이 있었고, 더욱 소신 있게 계속해서 가도 좋다는 ‘위로와 응원’이 있었다. 삶의 어떠한 바람의 흔들림에도 휘둘리지 않고 고유한 숨을 쉬며 사는 ‘나’이기를 바랐다. 그 모든 것에는 ‘나’가 존재한다. 자신의 존재와 그 가치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드는 질문을 통한 답은 결국 스스로 명확해지는 것이다. 그로 인해 2박 3일간의 ‘숨-바람-숨’ 프로젝트는 다른 사람이 쉬니까 나도 같이 쉬는 숨 없이, 비슷해 보이는 숨 없이, 스물여섯 가지 다른 숨들이 쉬어질 수 있었다.
오전에 산책하며 촬영했던 이미지가 화면에 띄워지고 그와 함께 전체 프로젝트에 대한 소감들이 이어졌다.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시간을 앞에 두고 과연 어떤 변화들이 일어났을까.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에도 여전히 내게 생생한 그 숨들을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비행하는 인간’의 한 구절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육체의 해방을 꿈꾸던 익스트리머 ‘딘 포터’는 날고 싶어 했다. 오래 날기 위해 가벼워져야 했고 더욱 높은 곳을 향해 갔다.
“인간이 난다는 게 미친 생각이란 걸 나도 안다. 하지만 언젠가 그게 가능해지려면 생각이 허용하지 않는 곳으로 누군가는 나아가야 한다.”
– 『가만한 당신』 ‘비행하는 인간’ 중 (최윤필, 마음산책)
강민채
강민채
잔꾀 대표. 2007년부터 《종촌, 가슴에 품다》, 《북아현동에서 잃어버린 마르티스 여아를 찾습니다》, 《골목에서 주름잡기》, 《통인시장의 발견 프로젝트》, 《섬의 노래》, 《비단수레 000》, 《닭에서 알까지》 등을 진행하며 프로젝트적 삶을 연장시키고 있다. 2017 창의적 예술교육 프로젝트 ‘숨-바람-숨’에 강사로 참여했다.
잔꾀 www.zanque.kr
이메일 dalsou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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